잉여인간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
손창섭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손창섭의 소설집은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아주 예전에 읽었던 그의 단편 '비오는 날', '혈서' 두 편이 워낙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잉여인간'도 두 말 할 것 없이 좋은 작품이지만, 나에게는 위의 두 단편들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작품이었다.
특히 '혈서'는 손창섭의 대표작이라고 해도 될 만큼 특출난 단편이다. 이렇게 자신만의 특색 있는 문장과, 특색 있는 캐릭터들을 잘 융화시켜 이렇게 우울하고 황당하고 웃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작가는 별로 없다고 본다.

손창섭의 문체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특이하다. 그의 글은 첫 문장을 읽는 순간에 알 수 있다.
그의 문장에는 '~것이다.' '~인 것이었다.' 라는 식의 종결어가 자주 사용된다. 무언가가 이미 결정되어 진 듯한, 그것도 좋은 방향이 아니라 나쁜 방향으로, 바꾸려고 해도 결코 바꿀 수 없는 운명의 굴레를 씌워 주려는 듯한, 그런 암울한 문장인 것이다.
나는 이런 암울한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손창섭의 작품이 좋았다. 좋은 것이었다.

손창섭의 소설이 좋은 또 하나의 이유이자 어쩌면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웃기다는 것이다. 그의 소설에는 대부분 비정상적인 인물들이 등장하여 비정상적인 상황을 만들어 가며 참으로 맹랑한 대화들을 주고 받는다. 그러한 상황과 대화들은 마치 한편의 블랙코메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웃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혈서'를 보면서 적어도 대 여섯 번은 웃었던 것 같다.
어쩌면 작가는 웃음을 의도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그 기괴하고, 또 한편으로는 딱하고, 또 한편으로는 황당한 상황과 대화들을 보고 있자면... 그냥 웃음이 나온다.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웃음들에서 작가의 첨예한 주제의식이 느껴진다. 사실은 칼을 품고 있는 웃음들인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웃음일수도 있고, 자괴적인 웃음일 수도 있고, 그냥 웃겨서 웃는 웃음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런 기괴하고 황당한 상황들 - 특히 등장 인물들끼서 서로 울화통을 터뜨리며 으르릉 대는 그런 상황들 - 을 끝없이 만들어 내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할 따름이고, 그런 글을 계속 읽고 싶을 따름이다.

그런데 손창섭은 한국을 싫어하는 모양이다. 그는 일본에 귀화하여 현재 일본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뛰어난 작가가 우리나라에서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게 아쉽다.
아쉽고 안타까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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