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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의 소설은 확실히 잘 읽힌다. 요 근래에 김영하의 소설 3권을 연속해서 읽으며 모두 감탄을 했다. 이번 소설집도 마찬가지다. 출 퇴근 시간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만 읽었는데도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아름다운 지옥을 2주일 동안 들고 다녔던 것에 비하면 이 책의 흡인력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소설집은 99년에 발표되었고, 김영하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이 작품집을 묶으면서 김영하는 담배연기처럼 매케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 독한 연기에 여러 사람들이 오염될 수 있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좀 더 독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고 했다.
담배연기처럼 매케한 지는 모르겠으나, 기존 본격문학의 틀을 많이 부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아니 부순다기 보다도 많이 빗겨가고 있다. 기존의 낡은 방식을 과감히 거부하고 김영하는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듯 했다.
첫번째 단편인 사진관 살인사건이 그러했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다. 추리소설이라면 장르문학을 말하지 않는가? 장르문학이 버젓이 순수문학 계간지에 실렸던 것이다. 김영하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추리소설이 버젓이 순수문학 계간지에 실리는 것을 아무도 어쩌지 못했을까? 아니 아무도 어쩌지 못하는 게 아니라 김영하의 작품이라면 뭐든 반길 태세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는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개인적으로 순위를 매겨 보자면 이렇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사진관 살인 사건
흡혈귀
피뢰침
비상구
바람이 분다.
고압선
당신의 나무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물론 재미 순이다.
여기서 비상구라는 작품을 기준으로 윗 쪽 네 편은 오빠가 돌아왔다에 더 가깝고, 아랫 쪽 네 편은 호출에 더 가까웠다. 비상구는 그 중간쯤의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다. 이 단편은 유쾌하면서 퇴폐적이고, 신선하면서 불량하다. 특히 비상구의 마지막 문장은 김영하 소설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압권이다.
아무튼 위의 네 편은 재미있게 잘 읽혔고, 아래의 네 편은 위의 네 편 만큼은 잘 읽히지 않았다. 그러나 소설집에 네 편이나 재미있게 잘 읽히는 단편이 실렸다면 그것은 충분히 살 가치가 있으며, 읽어줄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 소설집의 백미는 역시 표제작인 엘리베이터에 낀... 이다. 그러나 나는 자꾸만 사진관 살인 사건에 눈이 간다. 부럽다. 추리 소설을 쓰고도, 당당히 순수 문학 계간지에 싣고, 작품집으로 묶어 내고, 극찬을 이끌어 내는 김영하가 정말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