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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챈들러를 왜 하드보일드의 음유시인이라 부르는지 알고 싶으면 빅슬립을 읽어 보아라. 많이 읽을 필요도 없다. 서점으로 가서 맨 앞의 열 페이지 정도만 읽으면 된다. 그 열 페이지에서 충분히 챈들러 특유의 문체와 그 놀라운 직유법과 리얼리즘이 흠뻑 배어 있는 묘사에 탄복할 것이다. 또 주인공 필립말로의 매력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열 페이지가 아니라 350페이가 넘는 긴 문장들을 모두 읽고 싶어 질 것이다.

챈들러의 소설은 코난도일로 대표되는 본격추리소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흔히 떠올리는 탐정의 이미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냥용 모자를 쓰고,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셜록 홈즈, 그리고 또 하나는 중절모를 깊이 눌러 쓰고, 트랜치 코트의 깃을 높이 세운 채, 한 손에 권총을 든 남자. 후자의 남자가 바로 챈들러가 탄생시킨 필립 말로다. 이 후 말로의 이미지는 다른 여러 추리소설에서도 등장하며 미국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느와르의 이미지로 각인된다.

빅슬립은 닷새동안 일어나는 이이기다. 그러나 그 닷새는 말로가 느끼는 바대로 독자에게도 일 년처럼 길게 느껴진다. 그 사이에 수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고, 말로의 생명도 여러 차례 위협을 받는다. 그리고 최후에는 추악한 진실이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 진실에 당도하게 되지만 셜록 홈즈나 포와로의 소설처럼 통쾌하거나 환호를 내지를 만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마치 바닥 장판을 뜯어 내어 그 안에 벌레들이 잔뜩 죽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는 다시 장판을 덮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 많은 이야기들이 결국은 추악한 인간상과 비열한 도시의 진실을 보여주고, 그것이 그저 일상적인 일에 불과하다는 또 다른 진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귀결된다.

빅슬립이라는 제목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이 제목에 대한 의미는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진다.

하드보일드 소설의 가장 비정하고 냉소적인 주인공. 필립 말로를 알게 된다는 것 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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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lkirim 2005-02-10 16:33   좋아요 0 | URL
학교도서관에 본 기억이 나는데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그냥 지나칠 뻔했는데 좋은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