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계속되다가 끝이 난다
앤 드 마르켄 지음, 송예슬 옮김 / 허블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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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초반부터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처음에는 좀비를 소재로 한 아포칼립스 소설처럼 읽혔다. 매우 사색적이고 몽환적이고 또 아득한 애수가 깔려 있었다. 소설을 읽어 나갈수록 공포를 다루는 게 아니라 상실과 애도를 그린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섬뜩하거나 참담한 묘사도 종종 등장한다. 그런데 사람을 죽이거나 몸이 절단되며 썩어가는 장면이 등장해도 크게 무섭거나 좀비를 소재로 한 기존의 공포소설 같은 감흥이 일지 않았다. 마치 그 장면을 꿈속에서 응시하는 것 같은 안타까움과 비애, 아득한 슬픔이 느껴질 뿐이었다.


작품 속 화자는 이미 삶과 죽음의 경계에 걸쳐 있는 존재다. 어떻게 해서 좀비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오랜 시간 좀비로 살아왔다. 어느새 왼팔이 떨어져 나간 신세가 되었다. 어떤 이는 손가락을 잃고, 어떤 이는 더 중요한 신체 부위를 잃기도 한다. 좀비의 몸이란 그런 것이다. 주인공 여자는 한동안 떨어진 자신의 왼팔을 들고 다니다가 끝내 불태운다. 왼팔이 없는 존재. 심장이 뛰지 않는 존재. 그럼에도 뇌는 살아 있는 듯 끊임없이 사색하고 회상한다. 그녀는 텅 빈 자신의 몸 한 쪽에 죽은 까마귀를 넣고 다니기도 하며, 또 다른 신체가 분리되기도 한다. 이러한 신체 훼손은 공포나 고어를 위한 묘사가 아니라 화자가 조금씩 자기 자신을 상실해가는 과정처럼 보인다. 몸이 망가지고 사라질수록 그녀의 상실감과 고독은 더욱 선명해진다. 그렇게 좀비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상실을 그린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죽어가는 과정이다. 죽어간다는 건 조금씩 몸을 상실해가는 과정일 것이다.


화자는 끊임없이 '너'라는 존재에게 말을 건넨다. 이 '너'라는 존재가 매우 의미심장하다. 처음에는 대상을 특정하기 어려웠다. 독자를 지칭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작품 속 그녀가 유산을 경험한 적 있음이 밝혀진 이후부터 '너'의 존재가 다르게 해석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아이가 아닐까. 간혹 '너'가 '우리'로 변하는 장면에서 더 안타깝고 애절한 감상이 느껴졌다. 그녀는 몸을 상실하기에 앞서 먼저 소중한 무언가를 상실했던 것이다. 한때 같은 몸 안에 존재했던, 그러나 생살을 찢는 듯한 아픔을 남기며 떠나가 버린 소중한 존재에 대한 상실감.

이 소설은 어쩌면 작품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애도문일지도 모른다. 유산은 자기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경험이다. 소설 속 화자의 상실은 정신적인 슬픔에 그치지 않고 육체 전체에 각인되어 있다. 그녀가 죽은 까마귀를 몸속에 품고 다니는 장면 역시 사라진 존재를 몸에서 떼어내지 못하는 행위처럼 보였다. 죽은 아이를 대신해서 몸 안에 키우는 죽은 까마귀. 그것은 기괴하면서도 동시에 처절함이 느껴지는 짙은 비애와 허무의 절정처럼 보였다.


소설 속 화자는 사실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 듯했다. 몸은 흩어져 사라지길 원하고, 마음은 계속해서 과거를 붙잡고 기억하려 하는 것이다. 소설 결말 부는 그래서 더욱 아련하고 비극적이었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분리된 화자의 신세가 처량하고 안타까웠다. 조각조각 떨어졌던 몸은 결국 본능이다. 본능은 실체를 찾아 떠난다. 마음은 이성이다. 이성은 끝까지 기억할 수 있는 것에 머물고 붙잡으려 한다. 몸은 마침내 돌아갔지만 의식은 끝내 돌아가지 못한다. 결국 남겨진 것은 슬픔을 기억하고 상실을 생각하는 정신뿐이다. 비극은 그렇게 발생하는 것이다. 인간의 비극. 삶의 비극. 영원히 계속되다가 끝이 나는 존재의 비극.

이 작품에 대한 독서 경험은 매우 특별했다. 처음에는 서서히 마음에 진동을 일으키다가 나중에는 온통 마음을 뒤흔들었다. 문장은 시처럼 함축적이고 몽환적이며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편적이지만 그것이 바로 상실 이후의 감각인 것이다. 독자는 그 감각을 추체험할 수 있다. 설명되지 않는 슬픔, 끝나지 않는 애도, 현실과 기억이 뒤섞이는 상태가 문체 자체에 스며 있었다. 공포소설이라 생각하고 읽었는데 결국 상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고찰이고 드라마였다.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몸이 사라져도 기억은 남을까. 잃어버린 존재는 정말 완전히 사라지는가. 존재는 사라져도 존재에 대한 기억은 남는다. 그 기억을 붙들고 산다면 존재도 살아 있는 것일까. 작가가 던지는 존재론적 질문과 상실에 대한 아득한 애수와 노스탤지어가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출간하자마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2024년 어슐러 K. 르 귄 소설상을 비롯 각종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영화화를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기대된다. 분량은 짧지만 홍보 문구의 호언처럼 독서 후 깊은 감상에 빠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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