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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기다리고 있어
하타노 도모미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몇 줄의 간단한 소개 글만으로도 책이 무척 궁금했고, 잘 읽히고, 잘 쓴 소설일 거라는 어떤 확신이 들었다.
어느 날 문득 홈리스가 된 이십 대 여성과 그녀가 속한 세상의 차가운 풍경을 그린다. 그녀가 홈리스가 된 것은 삶이 사치스러웠거나 누군가에게 큰돈을 떼였거나 무모하게 사업에 손댔다가 실패해서가 아니다. 한 푼이라도 허투루 돈을 쓰지 않고 궁색할 정도로 아끼고, 알뜰하게 지출을 했으며, 더 좋은 직장,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위해 열심히 일했을 뿐이다. 그랬는데 그녀는 갑자기 모든 것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고 만 것이다. 정규직 전환만 믿고 열심히 일했는데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했고 계약직마저 연장하지 못하자 실직자가 되었다. 이미 적지 않은 나이에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일용직을 전전하면서 아무리 구직활동을 열심히 해봐도 번듯한 직장은 그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모아놓은 돈은 바닥이 나고, 더 이상 월세를 지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큰 가방에 남은 짐을 모두 싸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규직 전환,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는 일은 그렇게도 힘들었는데, 홈리스가 되는 일은 그렇게나 쉬웠던 것이다. 게으르게 살지도 않았고, 돈을 낭비하지도 않았고, 큰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하루 아침에 살 집이 없어지고, 통장의 잔고가 바닥나고, 연인도, 친구도 없는 거지꼴이 되어 버렸다. 그녀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간단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조금만 방심하거나 일이 잘못 돌아가면 누구라도 홈리스로 추락할 수 있는 것이다.
pc방에서 생활하며 궁핍한 삶을 이어가던 그녀에게 수상한 제안이 들어온다. 육체는 조금 편안할 수 있으나 정신이 고통스러울 수 있는 일. 그녀는 그 제안을 거부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당장 한 푼이라도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 한 푼마저 없으면 pc방에서까지 쫓겨날 수도 있었기에. 하루라도 더 살아가기 위해서 그녀는 뭐든 해야만 했다.
홈리스를 일부러 선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라도 번듯한 집에서 생활하길 바라며, 그러기 위해서 번듯한 직장에서 일을 하고, 열심히, 번듯이 살아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자칫 정신을 차리지 않거나 실수하면, 아니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별안간, 안 좋은 우연이 두어 번 정도만 겹쳐도 한 인간의 삶이 완전히 무너지고, 추락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실제 홈리스에 대한 취재를 열심히 한 듯 현장감이 느껴지는 생생한 묘사로 그들의 삶을 세밀하게 그려간다. 집이 없는 젊은 여자의 삶이 얼마나 던적스럽고 치사할 수 있는지. 얼마나 깊은 바닥으로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세상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사람이 맨몸뚱이로 다시 일어서기가 얼마나 힘겨운지. 또 세상의 시선은 얼마나 차갑고 위험한지.
집이 없는 한 어린 소녀는 거리에 서서 자신을 데려가 줄 사람을 기다린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하룻밤 머물 수 있는 집이다. 차가운 길바닥이 아닌 벽과 천장과 온기가 있는 방바닥. 그것을 제공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서슴없이 따라간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까지 생각하고 고민할 여유는 없다. 어쩌면 나타나 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느 날은 새벽이 되도록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자 소녀는 무척 초조해한다. 누군지 모를 사람을 따라가는 것도 위험천만하고 무서운 일이지만 그런 사람조차 없어 길바닥에서 밤을 보내는 일은 더욱 위험천만하고 무서운 일인 것이다. 소녀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시선은 당연히 안쓰럽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주인공의 시선이 그렇고, 독자의 시선 또한 그럴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 쪽을 짓누르는 답답하고 무거운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이것은 실제 우리 사회에서, 지금도 매일 밤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밤거리 곳곳에서 언제든 목도할 수 있는 풍경인 것이다. 자신에게 하룻밤 머물 수 있는 방을 제공해 줄 사람을 기다리며 밤거리를 서성이는 소녀의 이야기는 비단 책 속의 이야기만이 아닌 것이다. 누구라도 집이 없으면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고 그가 여성이거나 어린아이이거나 사회적 약자라면 그 삶은 더욱 비참해질 것이다.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유일한 희망인 소녀의 삶은 결국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작가는 냉정한 필체로 집 없이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그려가지만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 위로를 버리지는 않는다. 다소 작위적이라 할 수도 있지만 결말부에서는 한 줌 희망을 제시한다.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소설 속 인물에게도, 그것을 참담하게 지켜보며 따라온 독자에게도 안도의 숨 한 번 내쉴 수 있는 여지는 남겨둔 것이다.
이 책은 가난을 소재로 한 여러 소설과 영화, 드라마를 떠올리게 했다. 어린 동생과 함께 주인집 드레스룸에 간신히 붙어살던 '지붕 뚫고 하이킥'의 세경이 떠올랐고, 크게 친하지도 않는 언니 집에 어쨌든 붙어살기 위해 애쓰던 '하이킥3'의 진희도 떠올랐다. 그리고 이외수의 소설 '들개'의 여주인공이 생각났다. 가난한 여대생이었던 그녀는 지니고 있던 책을 팔아 먹을 것을 사고, 잠은 폐교 바닥에 닭털 침낭을 깔고 그 안에서 잔다. 팔 수 있는 책은 점점 줄어들고, 털이 다 빠져나간 얇은 침낭은 겨울의 추위를 감당하기에 벅차다. 그래도 책을 팔아 라면을 끓여 먹고 닭털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던 그녀. 80년대 초반의 소설이지만 그때도 홈리스는 존재했고, 그때도 젊은이들의 삶은 가난하고 팍팍했던 것이다.
왜 꿈과 열정이 가득한 젊은이들에게는 집이 없는 걸까. 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꿈과 열정이 거의 소진된 늙은이들이 대부분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젊은이들은 가난하다. 세상의 부자는 99%가 늙은이들이다. 고령의 자산가들이 돈과 집을 가득 움켜쥐고 있다. 물려받은 재산이나 기댈 수 있는 배경이 없는 가난한 젊은이들은 자신이 가진 젊음을 몽땅 소진하며 미친 듯이 숨 가쁘게 몇 십 년을 달려야만 간신히 집 한 채를 마련할 수 있는데,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집이 생겼을 때는 이미 열정도, 기력도, 꿈도 사라진 늙은이가 된 후다. 그렇게 얻은 집은 어쩌면 집이 아니라 관(棺)일 수도 있다. 젊음을 몽땅 바친 대가로 관 하나를 얻는 인생. 그렇게 살면 그래도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칭송받는 세상. 참 이상하고 서글픈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