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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배트 20 - 완결
우라사와 나오키 글.그림, 나가사키 다카시 스토리 / 학산문화사(만화) / 2017년 7월
평점 :
인류와 지구의 운명이 걸린 마지막 선택...!
인간은 선택하는 동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살아가는 동안 시시각각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양 갈래 길 중 어디로 갈까,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어떤 영화를 볼까, 대학은 어디로, 학과는 어디로 갈까, 무슨 일을 할까, 대통령은 누구를 뽑을까, 이 문장에서 어떤 단어를 넣을까, 여기서 글쓰기를 멈추고 잠깐 쉴까...
자의든 타의든,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선택은 끊임없이 존재한다. 선택의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선택으로 둘러싸인 벽을 끊임없이 더듬는 일이 우리네 삶인 지도 모르겠다.
개개인의 모든 선택들은 어떤 결과로 이어지고, 그 결과들이 모여 하나의 우주를 이룬다. 선택이 하나라도 달라졌다면 필시 지금과는 다른 모습의 우주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우주가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을 갖느냐는 개개인의 선택들이 모여 결정되는 것이다. 선택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 지구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다.
무수한 선택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라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말하자면 인생 전체를 통틀어 몇 안 되는 중요한 선택을 내려야 하는 순간. 빌리 배트라 불리는 박쥐는 바로 그 중차대한 선택의 순간에 등장한다. 그리고 ‘널 영웅으로 만들어 줄게’, 혹은 ‘네가 원하는 게 뭔지 말해봐’라는 램프의 요정 지니 같은 달콤한 말로 인간을 현혹한다. 중대한 선택이면 중대한 선택일수록 박쥐의 제안은 더욱 달콤해진다. 이번 선택 하나만 잘 하면 평생의 팔자와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는 엄청난 기대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박쥐가 인간에게 실질적으로 뭔가를 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20권 분량의 긴 만화 속에서 박쥐는 수시로 등장하지만 사실 박쥐는 허깨비와도 같다. 없는 존재라고 봐도 무방하다. 메타포로만 존재한다. 선택을 유도할 뿐, 선택에 물리적인 힘을 가하지는 않는다.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다만 박쥐는 인간에 따라 다른 선택을 유도한다. 그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욕망을 읽고, 그에 맞는 선택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선택은 늘 인간 개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때로 개인을 넘어 타인들, 그리고 인류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심지어 그 선택을 한 개인에게는 좋은 영향을, 그 개인을 제외한 나머지 인간들에게는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나비효과처럼 한 개인의 선택이 그 개인과 인류에게 상상도 못했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는 것이다. 선택 하나로 운명이 바뀌고, 미래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박쥐로 상징되는 메타포의 의미를 우리는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박쥐는 선택의 기로에 선 우리 마음(양심)을 비추는 거울에 다름없다.
박쥐의 목소리를 듣는 이들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말했듯 박쥐의 제안대로 선택해 팔자와 운명이 바뀌는 인간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눈속임에 불과하다. 박쥐가 보여주는 미래는 인간 세계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질 운명의 단면들에 불과하다. 그것은 박쥐가 아니라 누구라도 조금만 심각하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지구의 운명도 그렇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들이 해 왔던 선택과 그 결과들이 오늘날의 모습이라면 지금 하고 있는 선택과 그 결과들이 바로 내일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열람 가능한 ‘역사’라는 미래 예측 교본서가 있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인간들의 선택과 결과가 어땠는지 잘 파악한다면 인간의 현재와 미래도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박쥐 목소리 따위에 기댈 필요가 없는 일이다.
문제는 대다수의 인간들이 역사에 대한 분석과 고찰을 게을리한다는 것이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분석과 고찰을 제대로 한 소수의 똑똑한 인간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역사와 미래를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극 중에서 박쥐와 소통이 가능한 인간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극소수의 인간들. 그들은 다시 말해 역사에 대한 분석과 고찰을 제대로 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이들이다. 문제는 그들이 어떤 인간인가 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박쥐는 인간의 성향에 따라 다른 선택을 유도한다. 말하자면 역사에 대한 분석과 고찰을 제대로 한 인간이 어떤 성향을 지녔느냐에 따라 미래는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인간이 히틀러라면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 같은 비극이 발생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아인슈타인이라면 인류의 미래를 위해 크나큰 업적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속을 챙기기에 급급한 이들이라면 케네디 암살이나, 9.11 테러, 세월호 같은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히틀러 같은 인간들만 박쥐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그래서 그들만 역사를 주도하고 미래를 바꿀 수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흑 속에 잠길 것이며, 만화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멸망의 길로 접어드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박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대부분의 인간들은 박쥐의 목소리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역사와 미래, 지구의 운명 같은 것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 산적한 선택지들을 처리하는 일만 해도 골치가 아프고 여유가 없으며, 남들보다 몇 가지 선택을 잘 해 약간의 여유가 생겨도 인류의 역사와 미래를 등한시하기 일쑤다. 그보다 더 재미있고, 당장 이익이 될 수 있는 일들에 더 관심이 쏠리기 때문이다.
당장 삼킬 수 있는 달콤한 것들을 마다하고 인류의 미래 따위를 걱정하고 고민할 인간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히틀러 같은 이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이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에 관심을 둔 인간이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며, 그 소수 인간들의 손에 의해 역사가 만들어지고 미래가 바뀔 수 있었던 것이다. 만화 내용으로 들어가 본다면 그런 소수의 인간들에 의해 인류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아니 그런 결과를 초래한 것은 소수 인간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소수 인간들이 그런 ‘중대한 선택’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둔(관심을 두지 않은) 모든 인간들의 잘못인 것이다.
그래서 박쥐는 말한다. 더 이상 리셋은 없다고. 더 이상의 평행우주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번 더 리셋하게 되면 지구는 멸망하고 만다고. 즉, 이제 더 이상 인류의 미래와 지구의 운명에 대해서 책임을 미루거나 전가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지구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단 한 명이라도 나 몰라라 하고 손 뗄 수 없다. 인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수많은 잘못된 선택들이 어떤 처참한 결과로 이어졌는지 알 수 있다. 그런 잘못된 선택들로 가득한 인간의 역사가 지구의 수명을 얼마나 처참히 갉아먹었는지 알 수 있다. 다른 동물이나 식물의 역사는 따질 필요 없다. 인간의 역사만 따져보면 과오와 답이 함께 나온다. 인류의 미래, 그리고 지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해답 역시 그 안에 있다.
작품의 마지막 권, 마지막 장면에서 빌리 배트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지뢰밭 속에 있는 아이를 구하라’ 그것이 어쩌면 박쥐가 인류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일 것이다. 마지막 부탁이자 경고일 것이다. 지뢰밭 속에 있는 아이를 구하는 일. 지금 당신이 만사 제쳐두고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것이다. 아이를 구하면 그 아이가 세계를 구할 것이다. 그러니까 지뢰밭 속에 있는 아이를 구하는 일은 바로 나를 구하는 일이고, 인류를 구하는 일이고, 지구를 구하는 일인 것이다.
박쥐의 목소리가 들리든 들리지 않던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적어도 답을 구하는 방법은, 지구인이라면 모두 알 수 있다. 알고, 실천해야 할 때다. 더 이상의 실수와 잘못은 용납되지 않는다.
이제 리셋은 없다. 이 지구는 마지막 남은 하나의 지구다. 전 인류가 올바른 ‘선택’을 위해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할 때다. 지뢰밭 속에 있는 아이를 위해, 인류를 위해, 지구를 위해, 그리고 내 가족을 위해, 내 아이들을 위해, 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