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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
소네 케이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이렇게 잘 쓴 소설이라니...
소네 케이스케는 마흔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일본 문단에 등단했지만 등단과 동시에 에도가와 란포상, 일본호러소설대상,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경이적인 신예의 탄생을 알렸다.
아디다스 광고에 '불가능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카피가 있었다. 나는 소네 케이스케를 보면서 나이 따위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등단 시기, 나이 따윈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문제는 재능이고, 열정인 것이다. 약관도 안 된 나이에 데뷔한 오츠이치나 스물 다섯에 데뷔한 히가시노 게이고나 불혹 넘어 데뷔한 소네 케이스케나 뛰어난 재능과 열정을 타고났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쓰기 시작했고, 오츠이치가 나이로는 가장 젊어서 쓰기 시작했지만, 두 사람에 비해 모든 면에서 훨씬 늦게, 나중에 쓰기 시작한 소네 케이스케의 현재 위치는 앞선 두 사람에 비해 한 치의 뒤처짐도 없다고 본다. 그것은 글을 보면 곧장 알 수 있다. 작품의 상업적인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책을 파는 것은 출판사의 몫이지 작가의 몫이 아니다). 작품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다.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세 작가의 글을 보면 누가 먼저 쓰느냐 나중에 쓰느냐, 젊어서 쓰느냐 나이 들어 쓰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능과 열정. 이것만 있다면 언제라도 앞선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혹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열대야'에는 세 편의 중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작품마다 작가의 번뜩이는 상상력과 사회와 인간에 대한 섬뜩한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표제작 '열대야'는 친구의 아내와 함께 야쿠자에게 인질이 된 한 남자의 기막힌 사연을 그린다. 절묘한 구성과 반전의 묘미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근자에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은 본격이 아닌 이런 류의 범죄 미스터리에 주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호러소설로 케이스케를 알게 된 나로서는 작가의 또다른 면모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작가의 또다른 면모라면 두 번째 작품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두번째 수록작 '결국에...'는 더이상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 근미래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미스터리와 SF, 호러가 공존하는 기이한 혼합 장르소설이지만 그냥 한 편의 잘 쓴 순문학 작품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당면한 사회 현실 속으로 몸을 내던져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질 줄 아는 치열한 작가 정신이 돋보였다. 노인 문제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심도 있게 파헤치며 한 가족을 낱낱이 해체시켜 나가는 솜씨가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작가가 해체시킨 건 한 가족만이 아니다. 한 국가일 수도 있고, 온 세계일 수도 있다. 제목처럼 결국엔... 세계 어느 인간도 노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은 작품은 마지막 수록작 '마지막 변명'이었다. 이 작품은 말 그대로 공포의 진수를 보여주는 공포소설이다. 죽은 자가 다시 소생하여 돌아오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인간 본연의 이기심과 흉포함을 잔인할 정도로 섬뜩하게 해부한다. 조금의 망설임도, 타협도 없다. 작가는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낱낱이,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의 결말부에서 드러나는 반전은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장르에서만 나올 수 있는 최적화된 반전이었다. 라스트에서는 마음의 심연을 뒤흔드는 무거운 공포와 슬픈 노스텔지어를 함께 불러일으켰다. 작가에 대한 신뢰를 더욱 공고히 다져주는 수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