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은 이미 등단 10년이 넘은 작가고, 작가적 역량도 비슷한 연배나 경력의 작가들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그동안 참 조용히 지내왔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도 등단작인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와 소설집 두 권(처녀치마, 분홍 리본의 시절)이 전부다. 과작하는 작가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예로 최근 권여선은 활발하게 집필 활동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할 말이 꽤나 많은 작가임이 분명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변방을 떠돌며 이런 저런 곳에 띄엄띄엄 소설을 발표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등단 8년만인 2004년에 첫 소설집이 나왔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도 안 되어 다시 두번째 소설집이 나왔다. 작가적 역량을 인정받으면서, 나날이 더 많은 평론가와, 독자와, 문단의 원로들이 권여선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작가는 능력보다 운이 더 좋아야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운발이 잘 맞으면 등단 2,3년만에 스타 작가가 되고, 청탁이 쇄도한다. 결코 그런 작가들이 그렇지 못한 작가들에 비해 역량이 월등히 우수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각설하고 권여선의 두번째 작품집을 들여다본다.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렸다. 그 중 다섯 편이 마음에 든다. 다섯 편 가운데서도 특히 세 편은 아주 좋다. '가을이 오면'과, '약콩이 끓는 동안', '솔숲 사이로'가 그것들이다.
여기에 실린 일곱편의 소설들은 어딘지 모르게 후일담 문학의 냄새가 난다. 그래서 어쩌면 작가가 더 일찍 얘기하고 싶었던 것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90년대에 등단을 한 작가다. 그래서 당시의 상처를 먼저, 더 일찍 다루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그 기회가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많이 미뤄졌던 게 아닌가 싶다.
일곱 편의 소설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하나씩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타자와의 관계와 고립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 하고 방황한다. 하나의 현실에 안착하지 못하고 떠돈다. 여기에 앉는 척 했다가 금방 금빛 가루를 흩날리며 다른 곳으로 날갯짓을 하는 나비처럼... 타자를 조소하고 경멸하면서 그 자신도 기실 똑같은 조소와 경멸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 한다. 못 하거나, 애써 아닌 척 하거나, 뒤늦게 깨닫고 비참해 한다.
그런 인간들의 이야기다. 홍상수 영화에 나올 법한, 부조리하고 이중적인 인간들의 상처어린 초상이다.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담히 보여 주는 것으로 끝낸다. 보여줬으니 생각은 독자들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작가는 그저 담담히, 그러나 때론 과감한 생략과 점프를 통해 감각적으로, 재미나게 보여주기만 한다. 그것으로 우선적인 임무는 훌륭히 완수한 것이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즐겁다. 딱히 대단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은 아닌데도, 작가의 역량은 그런 사소하고 별 볼일 없는 인간들의 구차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그려낸다. 가끔 거슬리는 설정이나 대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만족스럽고 재미있다.
개인적으로는 은희경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보다 분명 더 나은 소설집이다. 그러나 평론가와 문단 원로들의 평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은희경은 덮어놓고 극찬을 해 댈 테고, 권여선은 상당히 꼬장꼬장하게 따지고, 테클을 걸며 미심쩍게 쳐다볼 것이다. 두 작가 사이에 얼마나 큰 역량의 차가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점점 재미 없어지는 최근의 은희경 소설들에 비해, 권여선의 이 신작 소설집이 '더 재미있다'는 것 뿐이다. 동인문학상을 결국 누가 받든 내게는 이 소설집이 올해 읽은 한국 소설집 가운데서는 일단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