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소리 동서 미스터리 북스 106
이든 필포츠 지음, 박기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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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왜 세계 10대 추리소설에 선정되었는지 다 읽고 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어둠의 소리는 추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추리소설의 기본 공식들을 배반한다. 여타의 추리소설처럼 불가능한 사건이 터지고, 탐정에 의해 사건의 전모가 조금씩, 서서히 밝혀지고, 마지막 순간에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범인으로 지목되는 식의 전개과정을 밟지 않는다.

이 추리소설의 묘미는 범인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에 있지 않고, 범인의 입에서 자백이 나오게끔 유도하는 과정에 있다.

은퇴한 베레랑 형사 링글로즈는 휴가를 즐기러 한 호텔에 투숙했다가 한밤중에 소름끼치는 아이의 비명 소리를 듣고 깨어난다. 그리고 호텔에 오래 투숙하고 있던 노부인으로부터 한 아이의 죽음에 얽힌 비정하고 끔찍한 범죄를 듣는다. 링글로즈는 그 악마의 가면을 쓴 파렴치한 범죄자를 기필코 잡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독자는 소설의 중간쯤에 이미 범인이 누군지를 알게 된다. 그러나 증거가 없다. 문제는 어떻게 증거를 확보하며 범인에게서 자백을 받아내느냐 하는 것이다.

링글로즈는 신분을 숨기고 범인에게 접근한다. 그러고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범인을 굴복시키려 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어느 순간 범인도 링글로즈의 의도를 파악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바를 뻔히 알면서도 겉으로 태연하게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만만찮은 두 천재가 격돌하는 순간부터 숨막히는 심리전이 펼쳐진다. 과연 링글로즈는 무사히 범인의 자백을 받아내고, 그를 재판장으로 보낼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범인을 초반에 드러내놓고 탐정이 어떤 식으로 범인에게 접근하며, 어떻게 자백을 받아내는지를 그리는 방식은 이후 '형사 콜롬보'에서도 사용된다. 언뜻 보면 이미 범인이 누군인지 밝혀졌기 때문에 추리소설로서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섣불리 추측할 수 있지만 실제로 소설을 읽어보면 그런 방식이 오히려 더 큰 긴장감과 스릴을 조성할 수 있음을 알게된다.

물론 이든 필포츠의 대단한 필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의 글솜씨는 정말 대단하다. 특히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그 재능이 빛을 발한다.인물들의 심리 상태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 날카롭게 드러난다. 대화를 통해 인물의 성격이 정교하게 해부되고, 서로가 상대의 역량을 헤아리면서 칼 없는 진검승부를 펼치는 것이다.

이 소설은 두고두고 읽어도 그 흥미가 가시지 않을 것 같다. 홈즈나 포와로, 엘러리 퀸에게 싫증을 느꼈으나, 파이로 번스에게 가려니 너무 현학적이라 엄두가 안 난다면 이 소설을 읽어 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마지막에는 독자를 위한 작가의 배려인 듯 작은 반전도 하나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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