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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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유지는 동생과 함께 동네 축제에 놀러갔다가 어두운 숲 속에서 야시로 통하는 길을 발견한다. 야시. 요괴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이다. 온갖 요괴들이 있고, 온갖 욕망을 충족시켜줄, 온갖 물건들이 있으며, 음울한 거래가 이루어진다. 야시에 한번 발을 들인 자는 야시의 물건을 하나 구입해야만 야시를 나갈 수 있다. 그것이 야시의 룰이다. 룰을 따르지 않으면 영원히 야시에 머무르게 되고, 결국 요괴에게 처참한 꼴을 당할 수 있다.
유지는 할 수 없이 납치업자에게 동생을 팔고, 그 대가로 능력을 하나 얻는다. 그리고 야시를 빠져 나올 수 있게 된다. 이쪽 세계로 다시 돌아오니 유지의 동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대신 유지는 야구를 무척 잘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능력이란 것이 유지에게 꼭 필요한 것도, 세상에 크게 쓸모있는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머지않아 알게 된다. 유지는 야시에서 동생을 잃은 후부터 현실을 비관한다.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야시가 열리고, 유지는 동생을 찾으러 한번 더 야시에 발을 들여 놓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랜 시간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던 놀라운 진실과 맞닥 뜨리게 된다.

"눈을 감으니 다른 세상이 열리더라"
「야시」는 이런 상상력에서 출발하는 소설이다. 함께 수록된 <바람의 도시>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우리의 생활 주변에, 우리가 전혀 모르고 있는 낯선, 그러나 현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야시에 등장하는 '야시'와 바람의 도시에 등장하는 '고도'가 바로 그런 세상인 것이다.

작가는 세상을 다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나의 틀과 하나의 길 위에서, 하나의 인생만을 두고서는 세상의 진실을 얘기할 수 없다. 우리가 숨을 쉬고 걸어 다니는 이 세상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 큰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으면 우리는 진실을 모르고 살 수 있다. 보이는 것만 믿는다면, 보이는 만큼의 사고로만 진실에 접근하게 되고, 결국 진실의 미비한 한 부분만을 받아 들이고, 그것이 진실의 전부인 양 착각하게 되거나, 혹은 갇힌 세계 안에서 혼자만의 믿음으로 혼자만의 진실을 끊임없이 위조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두 단편을 통해 세상에는 내가 서있는 곳 말고 다른 세상,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존재들도 있고, 마찬가지로 진실도 내가 사는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지 못하는 세상의 이면들에서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비록 내가 서 있는 이 땅에서 비롯된 진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야시나 고도로 스며들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세계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세계 자체가 사라지는 것도, 그쪽으로 스며든 진실이 덮혀지는 것도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야시나 고도에서 비롯된 진실이 내가 서있는 이 땅으로 스며 들수도 있으며, 그 진실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는 다른 세계로 눈을 돌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깊고 세심한, 그리고 애정어린 시선과 과연, 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크고 아름다운 상상력에 고개가 숙여질 정도다. 편협하고 좁은 시선과 틀에 박힌 상상력으로는 도무지 탄생될 수 없는 멋진 소설인 것이다. 이 정도 소설이라면 세계적 거장의 작품과 맞서도 밀릴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 만난 훌륭한 공포소설이다. 과연 일본호러소설 대상은 그 이름 값을 확실히 한다. 그 타이틀이 붙은 소설은 어느 것 하나도 걸작이 아닌 게 없었으니... 수준 높은 공포소설의 진수를 제대로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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