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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에 선 시간들 - 살아낸 시간 끝에 발견한 삶의 온기
강미희 지음 / 미다스북스 / 2026년 7월
평점 :
40대 후반, 흔히들 인생의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가장이라는 무게를 짊어지고, 한 가정을 책임지며 앞만 보고 치열하게 달려온 이들에게 뒤를 돌아볼 여유란 사치에 가까웠습니다. 내 몸이 힘든 것보다 가족의 안위가 먼저였고, 내 마음이 다치는 것보다 내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과 무게를 견디는 것이 당연한 삶이었습니다. 그렇게 정작 '나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마음의 소리는 무엇인지 외면한 채 무작정 버텨온 날들이 많았습니다.
좋은 기회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게 된 강미희 작가의 《거울 앞에 선 시간들》은 제목 그대로,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깊이 마주하지 못했던 제 지난 세월을 담담히 비추어보는 거울이 되어주었습니다. 에세이를 펼치기 전에는 중년 여성 작가의 삶의 기록이 과연 40대 후반을 살아가는 남성인 나에게 얼마나 큰 공감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솔직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장을 한 장씩 넘길 수록, 그것이 성별을 떠나 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중년 모두의 이야기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는 세상을 뒤흔들 만한 화려한 성공 스토리나 극적인 반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린 시절에 느꼈던 작고 서글픈 결핍, 서투르게 사랑을 배우고 가정을 이루던 순간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며 중년의 문턱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 감정들이 잔잔하고 담담하게 녹아 있습니다. 작가가 풀어내는 삶의 조각들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제가 지나온 청춘의 방황과 가장으로서 묵묵히 견뎌내야 했던 수많은 밤의 기억들이 겹쳐 보였습니다. 타인의 삶을 읽고 있음에도 마치 제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듯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곤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늘 완벽한 아버지가 되려고 애썼고, 든든한 남편이자 흔들리지 않는 사회인으로 버텨내기 위해 스스로를 매섭게 다그치기만 했던 날들이었습니다. 실패나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늘 긴장 속에서 스스로를 밀어붙였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 흔들리고 불안했던 시간조차 결코 의미 없는 방황이 아니었다고 위로를 건넵니다. 묵묵히 버텨온 평범한 하루하루가 차곡차곡 쌓여, 비로소 지금의 단단한 나를 만들어준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책을 덮으며 정말 오랜만에 타인이 아닌 제 자신에게 "그동안 참 잘 버텼다, 정말 애썼다"라는 다정한 안부를 건넬 수 있었습니다.
가족과 직장을 챙기느라 정작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던 이 시대의 모든 동년배 남성분들과 아버지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거울 너머에 서 있는, 조금은 지치고 나이 든 진짜 나의 모습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묵직한 위로와 용기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 늦었어도 우리는 충분히 잘 살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