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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1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79년 8월 24일 정오 이탈리아 남부 연안에 우뚝 솟아있는 베수비우스 화산이 돌연 폭발하였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검은 구름이 분출되면서 엄청난 양의 화산재와 화산암을 뿜어내면서 인근 도시로
쏟아져 내렸다.
나폴리 남동부에 자리잡고 있는 폼페이는 이 화산폭발로 커다란 피해를 입고 소멸되었다.
이 폭발로 당시 폼페이 인구의 10%인 약 2천명이 도시와 운명을 함께 했다.
이 소설은 화산이 폭발되기 이틀 전인 8월 22일 부터 25일까지 나흘의 기록이다.
로마의 수도교의 수도기사인 아틸리우스는 세계에서 가장 긴 아우구스타 수도관의 책임자로 오래된
가뭄으로 물이 말라버리자 원인을 찾고 물길을 뚫기 위해 고군분투중이다.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진 수도기사자리는 그에게 자부심이었지만 아이를 낳다 죽은 어린아내를 잃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몇 달째 계속 비가 오지 않은데다가 알수없는 이상현상으로 물길이 끊긴 미세늄 북쪽 외곽의 해변에는
노예출신의 거부 암플리아투스의 대저택이 자리하고 있다.
폼페이의 대지진 당시 권력자 포비디우스집안의 노예였던 암플리아투스는 무너진 집을 수리하고 되파는
사업을 벌여 엄청난 돈을 벌었다. 그의 노예직은 이미 자신의 주인집 여자들을 즐겁게 해준 댓가로 해방된 후였다.
그의 집 양어장에서 귀하게 기르던 장어가 집단으로 죽는 사건이 발생하자 양어장을 관리하던 노예를 장어먹이로
던져주려는 아버지를 말리기 위해 암플리아투스의 딸 코렐리아는 물길을 관리하는 수도사를 찾아간다.
이미 아버지의 전 주인이자 이혼남인 포피디우스와 결혼이 약속된 코렐리아는 폭군 아버지의 또다른 노예였다.
장어의 떼죽음을 조사하던 아틸리우스는 물에서 유황성분이 있음을 발견한다.
원인을 발견하기 위해 폼페이로 향한 아틸리우스는 실종된 전임 수도기사 엑솜니우스가 모종의 음모에 관여했음을
알게되고 그 뒤에는 코렐리아의 아버지와 폼페이의 권력자들과의 커넥션이 있음을 눈치챈다.
당시 로마는 토할 때까지 먹고 목욕을 즐기는 퇴폐문화가 성행했었다. 그 향락을 즐기기 위해 공급되는 물이 바로
돈줄이었던 것이다. 더러운 권력자들과 타락한 수도기사는 공급되는 물의 수량을 조작하여 돈을 축척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창녀를 구해 멀리 떠난 것처럼 보였던 엑솜니우스의 실종은 무슨 의미일까.
우리는 이미 폼페이가 화산폭발로 사라진 도시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멸망의 날 이틀 전부터 시작된 한 수도기사의 분투기로 시작된 그 날의 기록들을 보면서 입이 바짝 타들어가는 것같은
초조감이 밀려온다. 과연 그 날 그 도시에서 살아남은 혹은 사라져간 사람들의 일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흘간의 기록에는 어느 시대나 그러했던 것처럼 인간의 다양한 모습들이 그려져 있다.
주인공이자 수도기사로서 자연의 재해를 헤쳐나가는 남자와 노예와 다름없이 아버지에게 속박당해 원치 않은 결혼을
앞둔 순수한 코렐리아..그리고 그 두 사람간의 미묘한 사랑의 예감.
독한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독한 시어머니가 된다던가. 노예출신으로 잔인한 지배자가 된 남자의 부를 향한 집념과
결국 그런 무모한 욕망의 비참한 말로.
해방시킨 자신의 노예에게 굴욕을 당하면서도 돈과 명예를 쫓는 비굴한 관리.
그리고 언젠가 이 사건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기록하고자 했던 남자의 모습까지 세심하게 그려져있다.
얼마전 인도네시아에서도 화산이 폭발하였다. 자연은 때때로 부패하고 썩어가는 인류에게 경고를 보낸다.
1500년 동안 묻혀있다 발견된 폼페이는 화산재 밑에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간직되었다고 한다.
갑작스런 재해로 순식간에 죽어간 사람들과 죽음을 앞둔 고통스런 모습, 뭔가를 향해 애절하게 외치던 단말바의 비명소리가
그대로 들려오는 것만 같다. 작가는 인간의 더러운 탐욕과 찬란한 문명도 자연의 엄청난 힘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극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마치 그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생생한 부활에 읽는내내 갈증이 느껴진다.
지구 곳곳에서 자연은 경고를 보내고 있다. 폼페이와 같은 도시 뿐 아니라 지구전체를 날려버릴 재난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인간은 만 년을 살것처럼 오늘도 탐욕에 찌들어 살아간다.
영화가 개봉된다는 소리를 들어서일까. 읽는내내 폼페이 도시의 환영이 어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