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걸음의 여행
리처드 C. 모라이스 지음, 서현정 옮김 / 노블마인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운명을 믿는가'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단연코 '믿는다'라고 답할 것이다.

천부적인 미각을 타고난 인도 소년 하산은 비록 사랑하는 엄마를 잃는 불행한 사건을

겪긴 했지만 분명 행운아이다.

도시락배달로 성실하게 일하던 할아버지가 요리솜씨 좋은 할머니의 요리를 미군들에게

파는 것으로 성공의 열쇠를 쥐게 된 것이나 우연히 구입해둔 땅으로 백만장자가 된 아버지,

그런 조부와 아버지를 둔 하산은 전쟁의 소용돌이속에서 빈민촌에서 태어난 아이들보다는

확실히 행운을 가진 아이였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때마다 곁에서 조언을 하던 하산은 자신이 뛰어난 미각과 후각을 가진

훌륭한 요리사가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었다.

폭도들에 의해 엄마가 살해되는 사건 이후 런던으로 나중에 프랑스로 오게된 것도 우연만은

아닌듯 싶다. 뤼미에르라는 아름다운 도시에 이르러 정착을 결심하고 사들인 집앞에 마담

말로리가 운영하는 르 솔드 플뢰뢰르 레스토랑이 있었던 것도 하산의 운명에 프로그램된

길에 있었다.

 

 

읽는 내내 인도의 대표음식인 카페와 탄두리, 그리고 고소한 달의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아

자꾸만 샘솟는 식욕과 싸워야 했다.

프랑스의 이민자였던 인도소년 하산이 미슐랭이 주는 별 세개의 레스토랑 셰프로 성장한 것은

대단한 인간승리가 아닐 수 없다.

대마초를 피우고 여자 뒤꽁무니나 쫒던 하산의 능력을 알아보고 앙숙과 다름없는 하산의

아버지를 온몸으로 대항하고 굴복시켜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인 마담 말로리의 감각도 대단하다.

숨은 진주를 캐내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산이 막연히 짐작한 것처럼 파리의 레스토랑에 취직을 시켜주고 뒤를 봐준 것은 분명 마담

말로리의 입김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자신은 전혀 그런 적이 없다고 단언했지만.

정해진 운명이 있다해도 하산의 노력과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다문화사회가 된 우리도 여전히 이민자에 대해 마음을 다 열지는 않는다.

백인 우월주의가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진정한 셰프로 인정받은 하산의 여정이 즐거웠다.

대단한 식탐가인 하산 아버지의 세상과 맞장뜨기법도 속이 후련했다.

왠지 소설속의 이야기만이라기에는 음식의 묘사나 인물들의 묘사가 너무 생생하다.

파리시내 한복판에 도사견이 그려져 있는 '르 시엥 메샹'레스토랑에 피부가 가무잡잡한 인도 남자

하산이 멋진 요리사복을 입고 바쁘게 오갈 것 같은 모습이 자꾸 어른거리니 말이다.

그리고 저자인 리처드 C. 모라이스는 분명 대단한 미식가이거나 식도락가라는 것에 내기를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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