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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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모든 것’이 아니라 드물기 때문에 희망이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에 대한 바람이어서 희망이다.

악과 부덕과 불운이 넘치도록 많은 세상이어서 희망이 귀한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진실인 경우가 더 많다.

시력이 엄첨 좋다는 몽골인들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많은 법이다.

아무 감정도 없고 있는 그대로를 찍어내는 카메라의 렌즈조차도 조작이 개입된다니

조작된 것들이 진실이고 조작되지 않은 것들이 허구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오직 인류에게만 유전된다는 ’농담유전자’는 이렇듯 공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건강을 선물하고 활기를 주는 ’삶의 비타민’인 셈이다.

 

여행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작가의 모습은 집 앞 공원에서 마주치는 여느 아저씨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자그마한 키에 중학교 2학년때 서울에 왔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꿋꿋하게 고향의 사투리를 고수하는 그의 고집이 조금 느껴지긴 했다.

 



 

’파이는 파이다’에서 처럼 중학교에 입학한 첫 수학시간 단지 선생에게 잘 보이기 위해

던졌던 질문 하나가 결국 그에게 수학은 끔찍한 학문이라는 지독한 배신감에 빠지게 된다.

"파이가 뭡니까?"

"파이는 너희 같은 촌놈들이 공부 안하면 인생이 파이지. 뭐가 어쨋길래."

사실 사춘기에 있어 스승이란 때로는 하기 싫었던 과목을 잘하게도 만들고 첫사랑의 대상이 되기도 하련만

무책임하고 안일한 태도가 한 인간의 생에 어떻게 작용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수학에 나올만한 문제를 깡그리 외워서 시험을 봐도 대학을 갈 수 있는 시절이

있었으니 말이다.

 

또한 회사에 사표를 내고 무작정 떠났던 여행에서 만난 막국수에 반해 며칠이라도 막국수만

먹고 지내도 좋을 것 같다던 그의 입맛이 참으로 예사롭지 않다.

그의 고향음식이기도 한 배추전에 대한 향수와 제대로 된 비빔밥을 먹자고 차를 타고 달려가 기어이

뭉개지지 않고 살아있는 밥알을 느끼면서 행복해하질 않나 중국 사오싱이라는 도시에서 만난

’푸른 파를 곁들인 가지볶음(청총가자)를 먹으면서 싱싱한 파에 적당한 볼륨감을 느끼는 장면을 보면

가히 그의 식도락은 대단한 경지임이 분명하다. 물론 이 ’북방자매점’이란 식당의 세자매를 보며 서시의

아름다움을 떠올랐기 때문에 그 맛이 더 특별할 수도 있었겠다. 그리고 난 그 집을 선택한 사람이 분명

그 일것이라고 생각한다. 백주와 맥주를 섞어 먹어 몽롱하였다고 말만 안했다면 누가 선택하였든 대수도 아니었을테지만.

 



 

작가로서 세상을 보는 일은 보통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까지 깊게 봐야만 하겠지만

때로는 너무 많은 것들을 봐야 해서 세상 사는 일이 고단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많은 세상에서 ’보지 않아도 될 것’들이나

’보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 왜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지나 능력은 불수의근처럼 통제불능이거니와,

타고난 팔자려니 어쩌겠는가. 덕분에 잘 숙성되고 제대로 걸러진 약주처럼 맛좋은 세상을

우리에게 이렇게 보여주고 있으니 모자라고 우민한 우리들은 그저 그의 농담에 웃기만 하면 될것을.

그가 들이댄 카메라의 눈에 비친 세상은 실랄하고 따뜻하고 유쾌하고 담백하다.

 



 

앞으로 그가 세상에 내어 놓을 작품들은 예사롭지 않은 그의 감성과 잘 어우러져

제대로 곰삭은 맛으로 다가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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