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참 살기 좋아졌다. 불과40여년전만 해도 도시락을 못싸오거나 중학교를 못가는 아이들이 무척이나 많았던 우리나라는 보리밥도 배불리 못먹었던 가난의 과거가 이제 먼나라의 이야기가 되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이 듣는다면 라면이나 피자를 먹지 그랬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어두운 60년대를 지나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70년대를 넘어 88년 올림픽이 경제성장의 전환점이 되었던것 같다. 겨우 배고픔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올림픽을 한국에서 개최한다는것은 불가능한것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너무나 힘들었지만 결국 대한민국이 우뚝서는데 큰 기초가 된 사건이긴 했었다. 당시라면 수출도 잘되고 서울도 점점 몸집이 불어나던 시기였었다. 그러나 아직 시골에서는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하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 딸들이 많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작품의 주인공인 꼼새, 깡새, 꿍새역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자 혹은 형제많은집의 맏이로서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도시로 돈을벌러 나온 열입곱의 소녀들이다. 시골에서 순박하게 자란 그녀들에게 도시는 꿈의 세계였고 무시무시한 현실이었고 넘기힘든 산봉우리이기도 했다. 욕설과 저임금의 고달픈 공장생활에서도 풋풋한 꿈을 잃지않고 날아오르고 싶었던 그녀들에게 닥친 현실은 참담하다. 쥐새끼와 함께 생활해야하는 무허가 지하기숙사의 생활에서도 몰려드는 잠을 쫓으며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던 그녀들은 어느날 시골집에 가지고 갈 선물을 머리맡에 놓았던 그날 저녁 갑작스러운 화재로 꽃같은 생명을 접어야만 했다. 쇠창살로 막아놓은 창문도 넘지 못하고 화장실 창살을 붙잡고 몸부림 치다가 결국 그 창살 밑에서 켜켜이 쌓인 채로 연기에 질식해서 죽어 간것이다. 그녀들이 넘지 못했던 그 창살 은 도저히 넘볼수 없었던 세상과의 경계선이기도 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순지는 친구들을 잃은 충격으로 말을 잃고 정신을 자꾸 놓치는 병을 앓게 된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무지막지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여리고 순박한 영혼이었다. 살아남은 죄책감에 몸부림치던 그녀를 구원한것은 결국 사랑이었다. 미움과 고통을 헤치고 손을 내밀어준 가족들과 그녀가 사랑했던 한남자의 사랑이 그녀를 붙잡아 주었다. 이제 순지는 먼저간 친구들이 원했던 삶을 향해 훨훨날아오를것이다. 나비처럼 아름답고 가뿐하게.. 풍요가 넘쳐나는 요즘...과거의 어느 시간에는 그녀들의 안타까운 희생이 있음을 기억하게 해준 소중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