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자 뱀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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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과 미스터리의 대가인 피에르 르메트르의 초기작품을 만날 수 있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겠다. 55세인 늦은 나이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데 이 작품은 거의 초기작으로 미발표 소설이었다.


표지부터가 강렬하지 않은가. 군더더기가 없으면서도 요염한 여인의 손에 쥔 총을 돌출식으로 표현한 것부터가 예사로운 소설이 아님을 예고하는 것 같다.

실제 이 소설이 일반 스릴러의 느낌을 넘어서 킬러의 무지막지한 살해장면이 연출되면서도 뭔가 코믹함이 버무려져있다. 슬픔과 분노와 그리고 묘한 위트같은 것들이.


예순 여섯의 마틸드는 킬러다. 원래부터 킬러가 되기로 했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국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있었을 때 그녀는 레지스탕스로 활약을 했었다. 독일군을 사로잡아 아주 끔찍한 방법으로 비밀을 빼내는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고 동료들은 그녀를 외면하거나 경외했다.

독일군시체옆에 있던 양동이에는 남자의 고환과 손과 발이 가득한 피에 잠겨있었다.

고작 열 아홉의 마틸드였다. 후에 그녀는 의사와 결혼을 했고 딸을 낳았고 보통의 여인처럼 살기도 했다.


인간들의 세상에서는 없어지면 좋을 인물들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역시 그런 인물들이 처리해야 하는 처리반들이 존재해야 하는 것은 하늘에 해와 달이 있는 것과 같이 당연한 순리이다.

앙리는 바로 그런 조직의 DRH(인력관리부장)으로 처녀시절부터 마틸드를 지켜봐온 인물이었고 당연히 그녀를 킬러로 고용하게 되었다. 이후 마틸드의 활약은 엄청났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딸은 미국인과 결혼을 했고 자신은 할머니가 되었지만 일은 계속들어왔다.


대개 은밀하게 진행되는 살인의 경우처럼 그들은 공중전화를 이용한다. 이 사건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는 CCTV라는 것도 없었다. 지금보다 더 사람죽이기가 쉬운 시절이기는 했지만 마틸드의 해결방법은 은밀하다기 보다는 대범한 쪽이었다. 바람둥이 재벌 남자가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길에 마틸드에 의해 생식기쪽과 목에 총을 맞았다. 그리고 가여운 반려견도 함께 총을 맞았다.

반려견의 죽음은 예정된 것이 아니었다. 앙리가 후에 물었을 때 마틸드는 '주인을 잃은 개가 살아갈 날의 슬픔을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에요?'라고 되물었다.

마틸드는 사이코패스인 걸까. 아니면 진정으로 생명의 슬픔과 고통을 이해하는 섬세한 인간미를 가진 킬러일까.


그녀는 최근까지 꽤 깔끔하게 일을 처리했었다. 하지만 요즘 그녀의 기억력이 흐릿해지고 의도치 않은 죽음을 야기했다. 집안일을 도와줄 도우미의 집주소와 이름이 씌여진 메모를 앙리가 보낸 처단자라고 생각하고 아들을 키우려고 일자리를 찾던 가여운 미혼모를 처리한 일이 그랬다. 앙리는 결단을 내려야했다. 이제 더 이상 마틸드에게 일을 맡길 수가 없다.

그녀를 처리해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킬러가 무대를 내려갈 때는 퇴직금이나 주면서 쫒아내는 방식이 아닐 것이라는 것은 독자들도 안다. 흔적이 없애야지. 킬러가 있었다는 흔적을 지워야한다.

마틸드는 앙리를 사랑했고 그가 안아주기를 간절히 원하며 살았었다. 앙리도 지금은 뚱뚱해진 마틸드가 과거 날씬하고 섹시하고 빛나던 시절 마음이 흔들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용인과 킬러의 관계는 냉정해야 한다는 지론때문에 그녀의 간절함을 외면했었다.

이제 마틸드는 지워져야 한다. 마틸드도 앙리의 계획을 눈치챘다.

이제 서로는 서로의 계획을 알고 서서히 다가간다. 누가 먼저 총을 쏘고 사라질 것인가.

마지막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만남이 안타깝게 그려진다. 그 잔인함이라니..

그리고 저자는 최후의 승리자는 따로 남겨두는 특유의 기법을 그대로 다시 써먹었다.

역시 독자의 예상은 늘 그렇듯이 빗나가고 만다. 최후의 승자가 누구인지 알게되면 뿌듯함과 허탈의 그 사이에서 헤매는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멋지다. 이렇게 썼구나 초기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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