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성당에 들어섰을 때 에바는 막 제단을 장식하고 있느라 바쁘다. 성당 안에는 유향과 꽃향기가 뒤섞인 매혹적인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 있다.
에바는 성당 문이 나직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듣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나를 알아보고는 곧장 성호를 긋는다.
나는 유유히 중앙 통로로 걸어가면서 모자와 장갑을 벗는다. 좋은 아침입니다. 펠리체 신부님은 계신가요?」「사무실에 계십니다.」 에바는 내 붉은 피부를 보고는 깜짝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곧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간다. 「신부님한테 직접 가보세요. 안 그래도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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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뜻이죠? 그러니까 당신이 아는 사람이 아벨 바우만이아니라 신이라는 말입니까?」「안다고 말하는 건 좀 과장인 것 같군요. 우린 영겁의 세월동안 서로 보지 못했으니까. 누군가를 안다는 것이 그 사람이지금 어디 살고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는신이 지금 어디에 숨어 있고,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나는 에스프레소 잔을 집어 들고 천천히 입으로 가져가 아주 적은 양을 홀짝 마신다. 그러고는 한 번 더, 또 한 번 더 홀짝거린다. 시간을 벌기 위한 나만의 제식이다. 그러니까 대화중에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면 나는 매번 이렇게 아주 천천히 커피를 몇 번에 나누어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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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릴 때부터 나름의 전통을 만든다. 루틴은 역사 없는 존재들이 우발적으로 빚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를 바로 세우는 뼈대다. 이 자동적 행위들의 집합이 우리를 구성하는 동시에 억압한다. 삶은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옥죄기도 하고 떠받치기도 하는 보이지 않는 실에 매달려 있다. 언젠가는 그 실이 하나하나 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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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반복은 인기가 없다. 낭만주의와 정신분석의 탄생 이후 반복은 더 인기가 떨어졌다. 고전주의는 이상적 과거의 확실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므로 모든 영역에서 완벽에도달했던 고대인을 모방하기만 하면 됐다. 개혁은 그저 불편한것이었고, 지적 재산권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표절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오히려 콩트, 이야기, 우화의 샘을 모두에게 열어놓고 콜라주와 몽타주를 적극 활용했다. 장 드 라 퐁텐은 끊임없이 기원전 7세기의 노예 이솝의 이야기를 다시 썼고,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거리낌 없이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끌어다가 하프시코드 협주곡으로 재편했다.


좋은 글, 좋은 음악은 옛 문헌과 악보에 넘쳐나니 거기에 아주 약간의 우아한 변형이나 언급만 더하면 작품이 되기에 충분했다. 모작과 위작은 처벌받기는커녕 권장되었다. 기존의 모방 작품을 바탕으로 한 재창조는 충분히 인정받았다. 고대인의 이름을 빌려 새로운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서 ‘위경僞經이라는 수법을 쓰기도 했다(얀 포토츠키가 1810년에 《사라고사에서발견된 원고》에서 쓴 수법이다. 그 밖에도 많은 저자가 검열을 우려하여 비슷한 전략을 취한 바 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15세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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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방에 쓰레기통을 두지 않고 지정된 한곳에만 버리는 이점은 매우 많습니다. 방의 미관을 해치는 일도 없을뿐더러 악취와 오염을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한 각 방에 있는 쓰레기통을 비우는 번거로움도 없어서 합리적입니다.
저는 이 ‘쓰레기통을 놓지 않는 것‘이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
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다이어트를 할 때 집에 과자가 있으면 나도모르게 먹게 되지만 과자를 아예 사두지 않으면 먹을일도 없는 것과 같은 것이죠. 쓰레기통이 있으면 나도모르게 쓰레기를 쉽게 만들고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음식을 만들다 보면 아무래도 음식물쓰레기가 나오기 때문에 부엌에는 쓰레기통을 놓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집안에 딱 하나의 쓰레기통을 놓을 장소는 자연스레 부엌의 싱크대 아래가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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