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전집 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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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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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밤늦게까지 불 옆에 앉아 있었다. 행복이라는 건 포도주 한잔, 밤 한 톨, 허름한 화덕과 바닷소리처럼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생각을 했다. 다른 건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데 필요한 것은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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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념의 천국‘에는 다가갈 수 없어 보였고, 그 아래로 구토하며 진창에 빠진내육신을 질질 끌고 다녔다. 어떤때는 내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다시 그런 것들을 고민해 볼 수있길 바랐고, 또 어떤 때는 지식이란 습득해 봐야 결국엔 무너져 내릴 뿐인 허울 같은 구조물처럼 보였다. 어쨌든 논문을 쓰지 못하는 상황은 중절을 해야만 하는 필연성보다 더 끔찍했다. 논문을 쓸 수 없음은, 보이지 않는 내 타락의 명백한 징표였다. (수첩에 이렇게 적혀 있다. ‘아무것도 쓸 수 없다. 공부도 되지않는다.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이제 ‘지식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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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끔찍한 노릇은 이미 여행을 온 이상은 방 안에 틀어박혀 파리로 돌아갈 기차만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행 때면 늘 하던 대로 문화 유적지를 돌아보거나 거리를 산책하면서 여행 온 것을 입증해야 했다. 나는 올트라르노 거리와 보볼리 정원에 갔고, 산미켈란젤로 광장과 산미니아토까지 몇 시간동안을 걸었다. 문이 열려 있는 성당마다 들어가서 세 가지 소원을 빌었다(셋 중의 하나쯤은 이루어지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세 가지 소원은 모두 A와 관련된 것이었다). 나는 서늘하고 조용한 성당 구석에 앉아 내가 만들어낸 수많은 각본 중 하나를 세세하게 그려보았다(그 사람과 함께 피렌체로 여행을 온다든지, 십년 후에 공항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다든지 하는 것들이었다). 이런 상념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어디서나 끊임없이나를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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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츠는 어깨를 으쓱한다. 「얘기했을 거요. 젊을 때 내가망나니짓을 참 많이 했다고. 그러고 나니까 인생의 본질적인문제들이 궁금해져서 그 답을 찾으러 다녔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문제들이었죠. 나는 장장 15년 동안이나 그 답을 찾아 모든 대륙을 헤매 다녔소.」 하인츠는 이 대목에서 잠시 말을 멈춘다. 아마 지난 세월을 음미하는 듯하다. 도중에 현인들도많이 만났소. 그중에 몇 분은 성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사람들이었소. 하지만 아벨 바우만 같은 사람은 만난 적이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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