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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1년 3월
평점 :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이어령 지음, 열림원
이 책은 한국 최고의 석학이자 전 문화부 장관 이어령님이 딸을 기억하며 가슴에 묻어두었던 못다 한 이야길 담아 딸에게 보내는 영혼의 편지를 쓴 책입니다. '딸바보'라는 말이 있듯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애틋하고 유별납니다.
이어령님의 따님인 이민아님은 캘리포니아대학교 헤이스팅스 로스쿨 졸업 후, 2002년까지 미국 LA지역 부장검사를 지냈습니다. 돌연 목회자가 되었고 2011년 5월에 위암 말기 선고를 받고 2012년 3월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CTS에서 방송된 강연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암수술 없이 받아들이고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는데, 땅 끝 아이들을 향한 이민아목사님의 영혼 사랑의 설교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딸은 소위 잘나가는 미국 LA지역의 부장검사였고, 헌팅턴의 성채 같은 대저택에 살며 근사한 요트가 있고, 아침이면 베란다에 앉아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수십 평이 넘는 응접실에 황금빛 스타인웨이 그랜드피아노도 있었지만 행복래보이지 않았고, 피아노 치는 모습조차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스물두살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한 남편 김한길 오년을 버티다 이혼하고, 버클리대학을 맏아들은 스물다섯에 돌연사하고, 재혼해서 얻는 둘째 아들은 다섯 살 때 특수 자폐판정을 받고, 딸 이민아님은 실명이 됩니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그녀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딸은 결국 대저택을 버리고, 2009년 땅끝 아이들을 품을 수 있는 진정한 홈, 하늘의 집을 사모하며 목사가 되었습니다. 아깝고 아쉽고 분하기도 했다는 이어령교수님에, 저 또한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데카르트는 하녀인 엘렌 장과의 사이에서 딸 프랑신을 낳았습니다. 네덜란드 작은 마을에서 내놓고 딸이라 부르지 못했고 딸 역시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빠도 없는데 어떻게 생겼냐고 수근대는 사람들 때문에 딸은 아빠 데카르트에게 울면서 나타났는데, 데카르트는 프랑신의 귀에 대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언을 말했다고 합니다. 데카르트는 딸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하녀이뉴엘렝 장은 차갑게 대했지만 딸은 좋은 곳에서 교육시키며 다른 아이들에게 꿀리지 않게 키우려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다섯 살 때 성홍열로 죽게 되었는데, 너무 슬퍼 프랑스 신과 똑같이 생긴 인형을 만들어 품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이어령 교수님의 글에서 데카르트의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10년만에 딸에게 보내는 영혼의 편지를 쓰는 아빠. 한 문장 한문장 읽어내려갈 때마다 딸을 생각하는 아빠의 애틋함과 간절함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이어령님은 잘나가던 작가였지만 결혼하고 딸을 낳은 후에는 항상 모든 목표에는 딸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 교수, 언론인이 아니라 한 아이의 아버지로 평범한 보통의 아버지의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딸의 실명으로 인해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어릴 적 부터 꿈꾸었던 빨간 지붕의 하얀집이 아닌, 천국의 집, 영혼의 집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따님의 인터뷰 다음 장에 써 있는
"너는 한 아들을 잃고
세상의 땅끝 아이들을 품었다.
나는 딸 하나를 잃고
더 넓은 세상의 딸들을 품는다" 는 말이서 아버지의 신앙이 딸이 고백했던 신앙의 모습과 닮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현재 이어령교수님도 암 선고를 받았지만 따님이 그랬던 것처럼 수술, 치료 없이 투병 중이라고 합니다. 의학적 치료를 거부하고 있지만, 이어령님에게서 천국에서 만나게 될 딸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감사하게 살아가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천국의 소망이 있기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잠시 이별일 뿐입니다. 이 책을 통해 삶에 대한 자세, 신앙,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저 또한 좋았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