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 짧지만 우아하게 46억 년을 말하는 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이상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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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출판계에는 비전문가가 어떤 분야에 대해 자신의 지식을 종합해 입문서 혹은 안내서 격으로 쓴 책들이 유행인 모양이다. 

독일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스스로를 아마추어 역사자라고 처음부터 대놓고 밝히며 "스스로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과감히 세부를 무시하는 대신 정확히 핵심 또는 핵심적이라 여기는 것에만 집중"했다고 말한다.


이건 또 뭐야. 그냥 역사라는 이름만 걸쳐놓은 별 볼일 없는 책이 아닌가 하며 투덜거리며 읽기 시작했는데.....가볍게 역사를 훑자며 시작한 이 책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리고...굉장히 재밌다!!!!!


이 책은 열 개의 장에 걸쳐 열 개의 테마를 놓고 그에 관련된 역사적 사건과 인물, 사상 등에 대해 비선현적으로 설명을 한다. 기자 출신 작가여서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도 한 몫 한다. 또한 저자 자신이 아마추어 역사가임을 강조하며 자신의 주관적 관점을 최대한 배제하고, 역사학자들의 의견을 인용하고 종합하는 입장을 취하며, 이념이나 사상에 대해 다룰 때에는 반드시 대비되는 개념을 함께 다루며, '이것은 유럽인의 입장'이라고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서유럽이 세계의 중심이 된 이유를 유럽인의 입장에서 설명하지만, 오리엔트 문명과 이슬람 문명에 대한 서술도 충분히 곁들였다. (책에서 인용한 이슬람 관점에서 본 세계사에 대한 책도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다만 인도 문명이나 중국 문명에 대한 서술은 별로 없다는 것이 약간 아쉽다면 아쉽고, 초반 부터 유럽인 위주의 이야기가 될 거라는 변명을 이래서 늘어 놓았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친절하게 한국어판 서문도 따로 추가해 주었을까?)

또 각 장의 끝에는  그 장에서 다룬 내용과 관련된 토막 지식을 TOP10으로 정리해 두었다.  


서두에서 작가는 "우리 평범한 사람에게 역사가 대체 무슨 소용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에 대한 대답은 하나 뿐이다. 우리로서는 달리 어쩔 수가 없다. 물리학적으로 현재를 증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과거다. 내 옆에 놓인 유리잔은 아주 찰나일망정 원래보다 늦게 보인다."

우리가 겪고 있는 바로 이 순간이 백 년쯤, 아니, 십년 쯤 후에 뒤돌아 보면 역사적으로 엄청나게 의미있는 순간으로 기록될 지도 모른다. 작가가 아마추어임에도 역사에 대한 책을 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나, 역사를 의식하고 알아야 한다고.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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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등여행기 - 도쿄에서 파리까지
하야시 후미코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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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유럽으로 떠나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온 이야기.

작가는 작품 『방랑자』의 큰 성공으로 얻은 인세를 모아 여행길에 오른다.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성정. 1930년대, 세상이 대공황에 몸살을 앓으며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치달아가던 그 시절, 동아시아의 기혼 여성이 머나먼 유럽까지 혼자서 여행을 한다니, 21세기인 지금에도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제목이 『삼등여행기』이긴 하지만, 당연히 여행 경비에 대한 속사정은 있을거라 생각했다. 여행지에서 비용을 아끼려 노력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본국에선 뭔가 빵빵한 재력이나 뒷배경이 있겠지, 라고.

페이지가 넘어갈 수록, 내가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인세가 전부이며, 프랑스의 비싼 교통비를 일컬어 "정말이지 길에 비료를 뿌리는 기분이라 견딜 수가 없다"고 말하는 부분에선 웃음이 터져나왔다. 


작가는 이동 경비를 아끼기 위해 파리의 가난한 동네에 허름한 셋방을 빌려 장기 체류를 한다. 어딜 가건 한 달씩은 머문다. 나도 여행을 해 봐서 안다,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이 돈을 아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야시 후미코는 근근히 글을 써 잡지에 기고하며, 원고료를 송금받아 여행 경비에 보태고, 돈이 없을 땐 소중하게 간직하던 기모노를 전당포에 맡기고, 넝마장수에게 시계를 팔아 돈을 마련하고, 노래를 부르며 멀어지는 넝마장수를 보며 "정말이지 세계 어디를 가나 넝마장수는 참 자상합니다. 외치는 소리마저 일본의 넝마장수와 닮았답니다."라며 향수를 느끼기도 한다. 


사실 이 글이 쓰인 것이 1930년대 초반이기 때문에, 대공황과 맞물려 일본의 군국주의가 한창 무르익어가고, 한국은 조선의 식민지배에 시달리던 때였으며, 책의 초반부에서 기차를 타고 중국을 지나는 부분에선, 갓 시작된 일본의 중국 침략 전쟁 때문에 치안을 걱정하는 내용이 나와 어떤 우익사상의 흔적이나, 한국인이 읽기에 거북한 내용이 나오면 어쩌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우려와는 달리 하야시 후미코는 상당히 개혁적 성향을 가진 모양으로, 파리에서 열린 공산당 집회에 참가하기도 하며, 특권자와 프롤레타리아의 괴리에 대해 망설임없이 비판을 하기도 한다.

 비록 어눌한 러시아어로 더듬더듬 소통하는 수준이었지만, 그녀가 본 삼등열차의 가난하고 정 많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금세 동화되고, 여행에서 만난 인종 중에 러시아 사람이 최고였다고 말하기도 하고, 직업소개소의 끝없이 긴 줄을 보며 "전 세계가 굶주리고 있는 느낌"이라며, 런던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데모에 참여하고 나서 "대관절 누굴 위해 배를 주리고 저 긴 줄을 이루는 걸까요?"라며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네, 나라며 돈이며 인민을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XX들은 어떻게든 안 되는 걸까요?"라고 일갈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한결같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시선이 맞춰져있고, 그들에게 공감하고 있다. 

 또 여행길에 마주친 조선인에 대한 일화도 소개되었는데, 일어로 말을 걸어온 조선인 청년이 매우 반가웠던 모양으로, 다행히 크게 거슬리는 내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괜한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책 속에는 도쿄에서 파리까지, 그리고 마르세이유에서 고베까지 여행경비를 시시콜콜하게 기록한 내용도 실려있다. "여종업원 팁(기분이 좋아 많이 줌)"이라던가, "베개 하나, 담요 한 장의 임대료(이 값이라면 하얼빈에서 담요 한 장을 더 샀을 텐데)"처럼 추가 경비에 대해 투덜거리거나 변명하는 모습도 담겨있어 읽어내려가다 보면 웃음이 터진다.  


 여행은 확실히 사람을 크게 만든다. 책의 초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의 가난한 사람들과 동거동락하며 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백인종에 대한 신기함,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 혹은 안타까움, 험한 육체노동을 하는 여성에 대한 신선한 충격등이 주를 이루고, 파리에 도착해서도 대체로 "신기하다"는 식의 반응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파리와 런던을 오가면서는 유럽의 외식문화 - 식료품점에서 간단히 장을 보거나 남편이 귀가할 시간에 가족들이 나가서 식사를 하고 들어오는-와 일본의 가정식 문화를 비교하며, 하루 온 종일 주방에 메여사는 일본 주부들을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사방에서 키스를 나누는 파리의 풍경이 아직은 조금 부끄럽다고 고백하는 등, 파리와 런던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관찰한 느낌을 좀 더 세밀하게 적기도 하고, 그에 대한 반응도 마냥 신기해 하는 것을 넘어 받아들이는 폭이 좀 더 넓어졌다는 느낌을 준다. 귀국길에 지중해와 홍해를 거쳐 항해하는 길에는 삼등열차를 타고 가던 당시와는 다른 사람이 말 하는 것 같은 여유와 포용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한가지 아쉽다면, 돈 이야기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데도 당시 물가를 짐작할 정보가 전혀 없다는 것. 당시 1엔이 현재 어느 정도의 구매력이 있는지 역주 하나만 달아줬어도 좋지 않았을까.


여행기는 언제 읽어도 즐겁다. 하지만 뻔한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글도 많다. 오랜만에 즐겁고 따뜻한 여행기를 읽어 기분이 좋다. 

그 시절이나 21세기의 지금이나, 여행자의 고생 포인트는 똑같다. 돈 걱정과 지난한 이동에 시달리는 고생. 

1930년대 초의 동아시아인 기혼 여성이 혼자서 유럽까지 와 여행을 즐기다 귀국한 이야기라니, 더욱더 즐거울 수 밖에. 

"어쨌든 돈이 많은 사람이니까 그 시절에 유럽 여행 씩이나 했겠지"라던 나의 삐딱한 생각은 몇 페이지 지나지 않아 싹 사라졌고, 책장 구석구석 뭍어있던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공감이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무산자의 모습이란 아무리 인종이 다르다고 해도 보통 단벌 신사로 조선에서 파리까지 다들 같은 풍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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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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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너무 현란하고 요란하다. 작품 자체도 만만치 않은데 질려서 못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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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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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엄마도 '자식을 사랑한다' 말할 권리가 있고, 분명 충분히 조심하고 자중하며 말했다. 2부는 지나치다. 아들은 '자살'을 위해 살인을 했다며 자살예방을 거듭 말하는 것은 글쎄. 공범인 에릭은 소시오패스고 딜런은 우울증이니까 다르다는 건가? 기분장애 환자 모독이며 희생자 가족은 또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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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진짜 아이들
조 월튼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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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한 통화에 갈라진 두 개의 인생. 모두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팻의 모습이 안쓰럽고 슬프다. 역사 속 사건과 인물에 변화를 주어 실제 역사와 비교하는 맛도 즐겁다. 장수한 앨런 튜링, 데이빗은 혹시 프레디 머큐리가 모델일까? 그런데 변주된 가족 형태를 너무 많이, 꽉꽉 채워놔서 좀 질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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