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대로의 자연 - 우리에게는 왜 야생이 필요한가
엔리크 살라 지음, 양병찬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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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후기입니다


이 책은 자연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우리의 시각 자체를 송두리째 흔드는, 그러면서도 실용적 해답까지 제시하는 놀라운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자연은 '배경'이 아니다. 자연은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이며, 살아 숨 쉬는 존재이다. 이 책에서 엔리크 살라는, 자연을 그저 아름답다 여기는 감상의 대상으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자연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생태계의 정교한 구조와 기능을 이야기하며, 결국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가장 본질적인 시스템으로 재정의한다. 그리고 그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이 복잡한 생태적 그물망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저자는 인간을 자연 속 하나의 '종'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인간을 ‘초핵심종’이라 명명하며, 인간이 단지 생태계의 구성원이 아니라 그 구조 자체를 설계하고 재편할 수 있는 압도적 영향력을 가진 존재임을 강조한다. 초식 동물이나 포식자처럼 먹이망의 특정 층위를 차지하는 일반적인 핵심종과 달리, 인간은 산업화, 도시화, 농업, 에너지 개발을 통해 전 지구적 스케일에서 생물권의 질서 자체를 바꾸는 유일한 생물이다. 그러나 그 힘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을 동반한다.

우리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도 마땅한 도덕성과 윤리가 필요하다. 저자는 인간이 자연을 ‘소비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순환 공동체’의 일부로 인식할 때 비로소 진정한 공존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자연을 소모하지 않고 순환시키는 시선, 인간이 자연을 조율하거나 정복하는 존재가 아니라 더 큰 시스템의 일부임을 자각하는 시선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다. 저자는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 단지 개인의 철학이나 감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경제, 과학과 문화가 함께 감당해야 할 공동의 과제로 여겨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인간을 생태계 구조를 설계하고 재편하며 대규모로 변형시킬 수 있는 ‘초핵심종’으로 규정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농업, 산업, 도시화 등으로 자연을 설계하고 재편하는 인간의 힘은 강력하지만, 그만큼 커다란 책임이 동반된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자연의 소비자가 아니라 그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윤리적 전환이 절실한 시대라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는 1991년 바이오스피어 2 실험의 실패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인간이 인공 생태계를 만들려 했던 이 실험은 식량 부족, 산소 고갈, 생물 멸종 등의 문제로 자급자족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그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는 자연을 대신할 수 없다. 자연은 인간이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겸허히 그 일부가 되어야 할 거대한 순환체계다.

저자는 다양한 실례를 통해 자연계의 작동 원리를 설명한다. 수십 년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던 아타카마 사막이 비 한 번에 꽃으로 뒤덮이는 장면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씨앗은 묻혀 있던 땅 밑에서 수십 년을 버틴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다. 이 신비는 인간이 가진 어떤 공학보다 정교하며 깊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통찰도 날카롭다. 엔리크 살라는 숲을 단일 작물 농장으로 바꾸는 인류의 행위가 단순한 경제 활동이 아니라 '생태적 퇴보'임을 지적한다. 다양성 없는 숲은 더 이상 숲이 아니다. 자연을 설계하고 변형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인간은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엔티크 살라는 그들에게 ‘초핵심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처럼 강력한 영향력은 동시에 막중한 책임을 수반하며, 자연의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을 경우 인간은 결국 스스로를 해치는 존재가 되고 만다.



또한 이 책은 자연 보호가 도덕적 선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해양 보호구역이 어획량을 4배 늘리고, 맹그로브 숲이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경제적 가치를 가진다는 실증적 데이터를 통해, 자연 보전은 가장 똑똑한 투자임을 설득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태국의 맹그로브 숲과 새우 양식장을 비교한 예로,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양식장이 장기적으로는 엄청난 손실로 이어진다는 분석이었다.

엔티크 살라는 정치·경제 지도자들에게 수치를 들이대기 전에, 그들이 자연과 사랑에 빠져야 한다고 말한다. 마음이 움직여야 의미 있는 정책 변화가 시작된다는 그의 주장은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실제로 지도자들이 경외심을 느낄 수 있도록 '자연 속 체험'을 기획하고 그것이 정책을 바꾼 사례는, 과학과 감성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과학적 사실과 감성적 서사를 함께 엮어낸 데 있다. 생태계의 순환 구조, 생물 다양성의 가치는 문장마다 설득력 넘치는 사례로 뒷받침되고 있으며, 자연이 가져다주는 경이와 감동은 책장을 넘길수록 더 깊어진다. 마치 독자 스스로가 생태계를 구성하는 한 조각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이 책은 결국 야생을 통해 인간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야생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심리적 안식처이며, 도망쳐야 할 미개함이 아니라 다시 품어야 할 지혜다. 도시와 기술이 익숙해진 지금 이 순간에도, 땅 아래에서는 여전히 균류와 세균이 나무를 지탱하고 있고, 어느 먼 바닷속에서는 해양 보호구역이 생명을 회복시키고 있다. 저자는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대변한다. 그리고 이 책은, 지구의 모든 생명에게 보내는 그의 러브 레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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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AI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요? - 딥페이크, 여론 조작, 가짜 뉴스, 댓글 부대… AI 시대, 우리가 알아야 할 신종 AI 범죄와 법
박찬선 지음 / 이지스퍼블리싱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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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인공지능은 이미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다. 많은 사람들이 AI의 효율성과 편리함을 신뢰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이를 활용하고 있지만, 동시에 AI가 항상 정확하거나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생성형 AI의 환각(hallucination)현상이나 알고리즘 편향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국내 기업의 약 77%가 최근 3년 이내 AI를 도입했지만, 대부분은 외부 솔루션에 의존하고 있으며 핵심 업무보다는 보조적 기능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는 기술에 대한 신뢰와 활용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은 이제 더 이상 미래 기술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AI가 추천해주는 콘텐츠를 보고, AI가 쓴 문장을 읽으며, 때로는 AI를 사람보다 더 자주 만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눈부신 기술의 이면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박찬선 저자의 이 책은 기존의 AI 관련 도서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기술의 발전과 활용법을 소개하는 일반적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AI의 악용 가능성과 범죄 사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딥페이크 성범죄물과 로맨스 스캠 같은 민감하고도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며, 독자에게 기술의 이면을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딥페이크 성범죄물은 AI 기술이 가장 악의적으로 활용되는 사례 중 하나다. 피해자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해 유포하는 이 범죄는 단순한 사생활 침해를 넘어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유발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2024년부터 범정부 T/F를 구성해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집중 단속과 법 개정을 추진해왔다. 현재는 딥페이크 음란물의 제작·유포·소지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며, 최대 7년 이하의 징역형이 적용될 수 있다. 또한, 피해자 보호를 위해 영상 삭제 지원, 신속한 수사, 플랫폼 책임 강화 등의 조치가 병행되고 있다. 특히 ‘선 삭제 후 심의’ 원칙 도입은 피해자의 2차 피해를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로맨스 스캠 역시 AI와 SNS 환경이 결합되며 급증한 범죄 유형이다. 가해자는 온라인에서 연인 관계를 가장해 피해자의 감정을 조작하고, 금전적 피해를 유도한다. 피해자는 단순한 금전 손실을 넘어 심리적 충격까지 겪게 되며, 대응이 늦어질수록 회복이 어려워진다. 이에 따라 사이버수사대 신고, 금융기관 지급정지 요청, 형사고소 및 민사소송 병행 등의 법적 대응이 권장된다. 특히 피해 발생 직후 증거를 확보하고 빠르게 신고하는 것이 피해 회복의 핵심이다.

이 책은 단순히 기술의 원리를 설명하거나 AI를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AI가 악용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를 어떻게 감시하고 대응할 수 있는가'에 집중한다. 특히 2026년 시행을 앞둔 '인공지능기본법'의 핵심 내용을 다양한 실제 사례와 함께 풀어내며, 독자가 기술의 수용자를 넘어 능동적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시선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AI와 공존하는 사회에서 반드시 인지해야 할 제도적 토대를 친절하게 풀어주고 있다. 특히 2026년 시행 예정인 ‘인공지능기본법’의 주요 조항들을 사례와 함께 설명하며, 독자가 단순히 AI 기술의 소비자에 머무르지 않고 책임 있는 사용자와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고민하게 만든다.

법의 핵심은 먼저 인공지능 기술의 다양한 유형에 대해 정의를 명확히 하는 데서 출발한다. ‘고영향 인공지능’은 생명이나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AI를 의미하며, 의료나 에너지와 같은 분야에 활용되는 기술이 이에 해당된다. 반면 ‘생성형 인공지능’은 텍스트, 이미지, 음성 등 인간의 창작물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챗봇이나 이미지 생성기도 이에 포함된다. 또한 ‘인공지능사업자’는 이러한 기술을 개발하거나 제공하는 모든 주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정부는 이러한 AI 환경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3년마다 ‘AI 기본계획’을 수립할 책임을 지며, 대통령 직속의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설치하여 정책 심의와 인프라 구축을 담당한다. 이러한 행정 구조는 매우 중요하며, 단지 법률의 형식적 장치가 아니라, AI 기술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종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거버넌스의 핵심 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AI 사업자들에게 부과되는 책임과 규정이었다. 생성형 AI를 사용할 경우 해당 결과물이 AI에 의해 생성되었음을 명확히 밝혀야 하며, 기술의 수명주기 전반에 걸쳐 발생 가능한 위험을 식별하고 이를 제어하기 위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고영향 AI의 경우에는 그 기술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을 사전에 평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는 기업의 자율에 맡겨두기에는 위험성이 큰 영역이기에, 이러한 규정의 도입은 단순한 규제를 넘어 사회적 신뢰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느꼈다.

더불어, 해외 기업의 책임도 명시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일정 기준 이상 국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외 AI 기업은 반드시 국내에 대리인을 지정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최대 3천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AI가 국경을 넘는 기술인 만큼, 이러한 ‘국내 책임화’ 조치는 현실적으로 매우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법적 감독과 제재 체계 역시 구체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정부는 필요 시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AI 서비스가 법을 위반했다고 판단되면 서비스 중단이나 시정 명령도 가능하다. 이 모든 조항은 AI 기술의 남용을 방지하고, 기술 발전의 속도를 안전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최소한의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책장을 덮고 나면, 단순한 정보 습득 이상의 현실적 긴장감이 남는다. 우리는 지금 AI라는 거대한 기술의 물결 속에 휩쓸려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당신은 AI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요?』는 이러한 불안한 질문에 확실한 해답을 주지는 않지만, 최소한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법을 알려준다. 특히 인공지능기본법을 통해 기술과 법, 사회가 어떻게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게 되며, 기술의 윤리적 기준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꼭 필요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은 AI 기술을 맹목적으로 환영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에 대한 건강한 회의와 숙고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기술의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모르는 척’ 넘어가선 안 된다. 이 책은 그 첫걸음을 내딛는 데 매우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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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노화 마인드셋 - 노년내과 의사가 알려주는, 내 몸의 주도권을 되찾고 무너진 삶을 회복하는 법
정희원 지음 / 웨일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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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은 저속노화라는 개념을 대중적으로 알린 정희원 교수가 그간의 오해를 바로잡고자 펴낸 결정판이다. 특히 가속 사회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속도를 늦추는 것이 곧 건강을 되찾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출간 직후부터 언론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빠름과 효율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우리는 점점 더 지치고 병들어간다. 저자는 우리는 건강이 나빠진 것이 아니라, 잘 나이 드는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저속노화는 단순한 안티에이징이 아니라,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이 책은 건강 실천이 실패하는 이유를 몸이 아닌 마음에서 찾는다. 단편적인 실천법이 아닌 삶의 태도와 관점을 바꾸는 마인드셋을 통해 지속 가능한 건강 루틴을 설계하도록 돕는다. 특히 중년 이후 삶의 전환점을 고민하는 독자들에게는 실질적 도움을 준다.

이 책은 총 4장에 걸쳐 저속노화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건강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비판하며, 가속노화를 부추기는 사회 구조를 날카롭게 짚는다. 특히 수면, 식사, 운동, 글쓰기 등 일상 속 루틴을 통해 저속노화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장면들을 제시하며, 건강은 정보나 의지가 아닌 구조와 환경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단순한 건강서가 아닌, 삶의 속도와 방향을 재설계하게 만드는 철학적 안내서다.

저속노화는 늙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아니다. 저자는 이를 삶의 선순환을 만드는 것은 건강한 나이 듦으로 정의한다. 특정 음식이나 루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 수면, 식사, 운동, 관계 등 삶 전반을 조율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마인드셋은 단순한 마음가짐이 아닌, 삶의 속도를 조절하고 내면의 관성을 재설정하는 힘이다. 마음의 속도가 결국 몸의 속도를 만든다고 저자는 말하며, 건강 실천의 출발점을 '속도 조절'로 제시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중간만 따라가도 균형 있는 삶이다”라는 통념은, 우리가 흔히 ‘무리하지 않고 평균만 지키면 건강할 것’이라는 착각을 비판하는 대목이다. 정희원 교수는 이 통념이 수동적이고 타율적인 삶의 태도를 조장한다고 지적한다. 책에서는 중용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평균값이나 타인의 기준에 맞추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을 짚는다. 예를 들어, “남들만큼만 운동하고, 남들만큼만 쉬면 되겠지”라는 생각은 자신의 몸과 삶의 리듬을 무시한 채 외부 기준에 맞추는 태도이다. 하지만 진짜 균형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저자는 중용은 ‘수동적 평균’이 아니라 ‘능동적 조율’이라고 강조한다. 즉, 나에게 맞는 수면 시간, 식사 방식, 활동량을 스스로 탐색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들과 같은 속도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속도를 찾는 것이 저속노화의 핵심이라는 메시지이다. 이 부분은 특히 중년 이후, 타인의 기대나 사회적 기준에 맞춰 살아온 이들에게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중간만 따라가면 된다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자기기만일 수 있는지를 책은 날카롭게 짚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 가장 깊이 다가온 부분은 식사에 대한 관점이었다. 나는 그동안 식사를 단순히 생존을 위한 행위로 여겨왔고, 때로는 바쁜 일상 속에서 대충 때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이 책은 식사를 단순한 영양 섭취가 아닌,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정성 없이 먹는 식습관은 결국 나 자신을 소홀히 대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자각했다. 식사는 내 몸뿐 아니라 마음을 대하는 태도였다.

이 문장은 내 일상에 조용한 울림을 남겼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처럼, 식사 시간은 나를 돌보는 가장 일상적이고도 확실한 루틴이었다. 이제 나는 식탁 앞에 앉을 때마다,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함께 돌아보게 된다.

많은 건강 관련 서적이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노력하라고 말하지만, 정희원 교수의 <저속노화 마인드셋>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실천이 어려운 이유를 의지의 결핍이 아닌, 구조의 문제로 바라본다. 예컨대, 수면과 운동이 좋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과도한 야근과 시간에 쫓기는 일상 속에서 이를 실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말한다. 정보나 의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의지를 지지해 줄 구조와 환경이 부재한 것이다. 이 말은 내게 깊은 울림을 줬다. 나는 그간 건강을 돌보지 못한 자신을 탓해왔지만, 이 문장을 읽고 나서 처음으로 내 삶의 속도와 구조를 돌아보게 되었다. 건강을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지 않은 채, 나 자신을 몰아붙였던 건 아닐까.

<저속노화 마인드셋>은 건강한 삶을 위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너무 빨리 살고 있지 않나요?” 그 질문은 단순한 속도 조절이 아닌, 건강한 나이 듦을 위한 구조와 관점의 전환을 요구한다.

또한 이 책은 가속노화를 부추기는 사회구조 즉, 과로, 완벽주의, 소비 중심의 휴식 등에 대한 비판과 함께, 나만의 가처분 시간을 확보하고, 삶의 주도권을 회복할 것을 제안하다. 이러한 관점은 건강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던 기존 담론을 넘어, 사회구조와 문화적 속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중년에게 나이 듦이 단지 쇠퇴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설계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물론 책의 메시지는 강력하지만, 마인드셋이라는 개념이 추상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말하는 '속도 늦추기'라는 본질에 주목한다면, 이 책은 진짜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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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는 사고를 위한 최소한의 철학 - 철학의 문을 여는 생각의 단어들
이충녕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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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50대의 나는 이제야 철학이 ‘쓸모 있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세상의 중심에서 한 발짝 물러나, 삶을 관조하게 되는 나이. 그동안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앞으로 살아갈 시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시기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단순한 철학 입문서가 아니었다. 지금 나는 어떻게 시대를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 거울이었다.

이충녕 작가의 이 책은 철학을 ‘아는 체’의 도구가 아니라, 삶을 해석하고 살아내는 렌즈로 제시한다. 책은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과 그들의 핵심 개념을 짝지어, 마치 사고의 지도를 그리듯 펼쳐 보인다. 플라톤의 이데아부터 니체의 초인, 그리고 헤겔의 시대정신까지—그동안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철학이 내 일상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특히 헤겔의 ‘시대정신’ 개념은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젊은 시절엔 위대한 개인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시대가 사람을 부른다는 말이 더 실감 난다. 변화를 만드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시대 그 자체다. 시대는 준비되고, 그 흐름은 누군가를 통해 드러날 뿐이라고 전한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지금의 한국 사회를 떠올렸다. 기술은 인간을 앞지르고 정치는 신뢰를 잃고, 사람들은 점점 더 고립되어 간다. 이 혼란 속에서 우리는 어떤 시대정신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지금 이 시대의 혼란과 변화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철학이라는 느린 사유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철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으로 바꿔놓는다. 플라톤의 이데아, 니체의 초인, 칸트의 정언명령 등 익숙한 이름들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철학은 먼 학문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내기 위한 가장 가까운 도구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철학이 쓸모 있는 사고'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것은 정답을 찾는 사고가 아닌, 질문은 품고 살아가는 태도라는 점이다.


또한 이 책에서 다뤄진 철학자 중 조지 버클리와 그의 핵심 개념인 관념론을 마주한 순간, 나는 문득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 나무는 내가 보고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보지 않아도 여전히 거기 있는 걸까? 이충녕 저자는 이 책에서 버클리의 사유를 '우리가 믿는 현실은 과연 진짜인가'라는 질문을 독자 스스로 하게 만든다. 버클리는 물질세계의 실재성을 부정하며,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지각에 의존하다고 말한다. 이 개념은 현대의 가상현실, 메타버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놀라울 만큼 시의적절하다. 스마트폰 화면 속 세상,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뉴스, 필터를 입은 얼굴들... 이 모든 것이 '실재'라고 믿어도 되는 걸까?

이 책은 철학을 통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하고 삶을 더 깊이 바라보게 만드는 사유의 시작점이 된 것 같다. 버클리의 관념론은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보고 듣고 믿는 것들을 다시 묻는 태도를 갖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철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쓸모 있는 선물이라 생각된다.

이 책은 철학 입문자에게도 친절하다. 복잡한 개념을 일상으로 끌어들여 쉽게 설명하고 있으며 독자가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꺼내 들었다. 철학은 결국 질문하는 삶의 태도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나를 다정하게 이끌어주었다. 철학 유튜버 '충코'의 경험을 녹여낸 친절한 해설과 대중적 설명력이 책 전반에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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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 - 창의성은 어떻게 현대사회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는가
새뮤얼 W. 프랭클린 지음, 고현석 옮김 / 해나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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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제공하여 작성한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창의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 말은 이제 단지 예술가나 발명가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기업, 학교, 심지어 정부까지도 창의성을 필수적인 역량으로 강조한다. 이 책에서는 이 당연하게 여겨진 전제를 근본부터 뒤흔든다. 창의성은 진정한 인간의 본성인가, 아니면 시대와 체제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인가.

저자는 20세기 중반,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사회에서 창의성이 어떻게 하나의 문화적 코드이자 경제적 자산으로 떠오르게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당시 미국은 대량생산과 소비가 주도하는 사회였고, 군사적 관료주의는 인간을 효율화된 톱니바퀴로 만들고 있었다. 획일화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다르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되었고, 이 욕망이 바로 창의성이라는 개념을 사회 전반에 부상시킨 토양이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과 함께 이 책에서는 창의성이 단지 인간의 고유한 능력으로서 강조된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 안에서 특정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가치라고 분석한다.


심리학에서는 IQ와 별개로 창의성을 측정하려는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교육계에서는 순응보다는 발랄함과 독창성을 키우려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기업은 창의성을 통해 조직 내 문제 해결 능력을 강화하려 하고, 광고업계는 창의성을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포장하며 소비자의 감성을 공략했다. 심지어 도시 재생과 문화 정책에 이르기까지, 창의성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마법 같은 키워드가 되어갔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은 창의성의 양면성이다. 창의성은 분명 인간의 자율성과 개성을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동시에 자본주의가 인간의 고유한 가능성을 효율과 수익을 위해 조직화하고 활용하는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우리는 창의성을 통해 자유를 찾았다고 믿지만, 사실은 창의성을 발휘해야만 살아남는 구조 속에 갇히게 된 것이다. ‘창의적인 인간’이라는 이상형이 우리를 해방시켰는가, 아니면 새로운 규범의 족쇄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창의성이 어떠한 문화적 맥락에서 형성되고 확산되었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광고에서의 ‘창의적 카피’, 교육에서의 ‘비표준화된 아이’, 도시정책에서의 ‘예술가 공동체’ 등은 창의성이 단순히 ‘자유로운 사고’가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필요에 따라 형성된 개념이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특히, 창의성이 순수한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가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관점은,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온 나의 사고방식에 균열을 일으켰다.

지금까지는 ‘내가 창의적이지 못하기에 부족하다’라는 자책을 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이제는 ‘왜 우리는 모두 창의적이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창의성이 미덕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사회 전체의 압박이 되었을 때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거나 기여하려는 사람들을 소외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의성을 강조하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성장이나 자유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스템이 원하는 인간형을 강요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창의성’이라는 개념을 더 이상 고정된 의미로 바라보지 않게 된다. 창의성이라는 단어가 단지 개인의 독창성이나 천재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대적 상황과 경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활용된 사회적 산물임을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창의성을 포함한 어떠한 이상적 인간형을 이야기할 때에 그 이면에 깔린 문화적 장치와 권력 구조를 함께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창의성을 요구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조건을 다시금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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