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 - 창의성은 어떻게 현대사회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는가
새뮤얼 W. 프랭클린 지음, 고현석 옮김 / 해나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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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제공하여 작성한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창의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 말은 이제 단지 예술가나 발명가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기업, 학교, 심지어 정부까지도 창의성을 필수적인 역량으로 강조한다. 이 책에서는 이 당연하게 여겨진 전제를 근본부터 뒤흔든다. 창의성은 진정한 인간의 본성인가, 아니면 시대와 체제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인가.

저자는 20세기 중반,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사회에서 창의성이 어떻게 하나의 문화적 코드이자 경제적 자산으로 떠오르게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당시 미국은 대량생산과 소비가 주도하는 사회였고, 군사적 관료주의는 인간을 효율화된 톱니바퀴로 만들고 있었다. 획일화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다르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되었고, 이 욕망이 바로 창의성이라는 개념을 사회 전반에 부상시킨 토양이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과 함께 이 책에서는 창의성이 단지 인간의 고유한 능력으로서 강조된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 안에서 특정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가치라고 분석한다.


심리학에서는 IQ와 별개로 창의성을 측정하려는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교육계에서는 순응보다는 발랄함과 독창성을 키우려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기업은 창의성을 통해 조직 내 문제 해결 능력을 강화하려 하고, 광고업계는 창의성을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포장하며 소비자의 감성을 공략했다. 심지어 도시 재생과 문화 정책에 이르기까지, 창의성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마법 같은 키워드가 되어갔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은 창의성의 양면성이다. 창의성은 분명 인간의 자율성과 개성을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동시에 자본주의가 인간의 고유한 가능성을 효율과 수익을 위해 조직화하고 활용하는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우리는 창의성을 통해 자유를 찾았다고 믿지만, 사실은 창의성을 발휘해야만 살아남는 구조 속에 갇히게 된 것이다. ‘창의적인 인간’이라는 이상형이 우리를 해방시켰는가, 아니면 새로운 규범의 족쇄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창의성이 어떠한 문화적 맥락에서 형성되고 확산되었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광고에서의 ‘창의적 카피’, 교육에서의 ‘비표준화된 아이’, 도시정책에서의 ‘예술가 공동체’ 등은 창의성이 단순히 ‘자유로운 사고’가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필요에 따라 형성된 개념이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특히, 창의성이 순수한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가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관점은,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온 나의 사고방식에 균열을 일으켰다.

지금까지는 ‘내가 창의적이지 못하기에 부족하다’라는 자책을 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이제는 ‘왜 우리는 모두 창의적이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창의성이 미덕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사회 전체의 압박이 되었을 때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거나 기여하려는 사람들을 소외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의성을 강조하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성장이나 자유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스템이 원하는 인간형을 강요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창의성’이라는 개념을 더 이상 고정된 의미로 바라보지 않게 된다. 창의성이라는 단어가 단지 개인의 독창성이나 천재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대적 상황과 경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활용된 사회적 산물임을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창의성을 포함한 어떠한 이상적 인간형을 이야기할 때에 그 이면에 깔린 문화적 장치와 권력 구조를 함께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창의성을 요구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조건을 다시금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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