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 - 장애, 세상을 재설계하다
사라 헨드렌 지음, 조은영 옮김 / 김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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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예측할 수 없고 인간은 늙기 마련이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치매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내 의지와 달리 몸이 움직여지지 않을 때 우린 절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절망의 가장 큰 이유는 비장애인에 맞춰져있는 공간에서 비롯된다. '표준'과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만들어진 공간과 도구는 대부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도저히 이동할 수 없고 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 도시설계가 예전보다 많이 개선되고 발전됐다 하지만 여전히 제한적이고 불편한 게 현실이다. 이에 책은 전체 시스템을 당장 바꿀 수 없는 현실에서 몸과 세상이 만나는 지점에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제안한다. 저신장 장애인 어맨다에게 탄소섬유탄으로 제작한 휴대용 강연대를, 발달장애로 스스로 앉지 못하는 니코에게 맞춤형 골판지 의자를, 양손을 잃은 신디에게는 케이블 타이가 그녀의 손을 대신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복잡하고 값비싼 보조 기구가 아닌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제품으로 신체 맞춤형 기구를 제작한 것이었다. 특히 재활용 쓰레기인 골판지로 가구를 만드는 적응형디자인협회의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는 놀라울 정도였다. 가볍고 쉽게 재활용할 수 있는 흔하고 보잘것없는 재료인 골판지를 겹치고 심지를 만들어 끼워 1제곱 센티미터다 약 77킬로그램이라는 엄청난 무게를 견디는 가구를 만들어낸다.

몸이 테크놀로지의 도움으로 환경에 적응하는 여러 사례를 보며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장애와 디자인에 대한 필요성은 공감이 간다. 하지만 무엇보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없는 환경이 오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우린 결국 끝에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장애의 몸이 될 수밖에 없으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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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시드
김도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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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다음 날 약속만 없었다면 밤을 새서 읽고 싶을 정도로 궁금증을 자아내며 나를 안달나게 만들었다. 미친 남편 원우, 담대하면서도 무서울 정도로 강한 멘탈을 가진 아내 정하와 그녀를 계속 쫓는 소름돋는 앞집 여자, 그리고 앞집여자의 완벽한 남편까지, 그들의 얽힌 섬뜩한 이야기에 책을 놓을수가 없었다. 남편의 일기장을 발견한 순간 아내 정하보다 내가 더 흥분해 남편 원우의 사지를 갈기 길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너무 잔인한가?) 오랫동안 함께 살아 온 남편의 감춰두었던 마음을 알게된다면 얼마나 비참할까. 사랑까지 아니었지만 믿음. 그 신뢰가 무너질때 절망할거 같은데,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묵묵히 견뎌낸다. 그런 그녀 앞에 조금씩 다가오는 앞집 남자와 어느 날 갑자기 사망한 그 남자의 아내. 이제 남은 건 정하와 앞집 남자 두사람이다.

"당신과 살 수 있다면 나는 무슨 짓이든 할 생각이었어. 얼마의 시간이 흐르든 어떤 일을 겪게 되든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각오를 하고 열심히 연구했지. 그리고 결국 꿈을 이루었어. 지금 당신과 한집에 있으니."

그런데, 남편이 사라진지 13년이 지난 지금 아들 상원이 사라졌다. 그 날 남편이 피묻혔던 그 칼을 남긴채...

어쩌면 우리는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 서있는 배우들일지도 모른다. 진실을 밝히는 것과 진실을 덮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사는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도 그녀와 같은 선택을 했을거 같다. 잔인하고 소름돋지만 그 진짜 사랑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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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생각의 기술 UP - 창의력을 깨우고 일상을 바꾸는 7가지 수학적 사고법
박종하 지음 / 김영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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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포자였던 나에게 이 책은 큰 도전과제였다. 과연 복잡하고 어려운 수학을 내가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그리고 그 걱정은 딱 들어맞았다. 검은건 글씨고 흰건 종이요. 수학을 흥미롭게 알려준다더니 뭔 소린지 전혀 모르겠다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내 생애 포기란 없다. 차분히 읽다 보니 재미있는 퀴즈와 도형, 수배열, 패턴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수포자들도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생각 실험>들은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 급기야 가족들 모두를 모아놓고 문제적 가족 퀴즈 대잔치를 열었다. 성냥개비와 동전을 옮겨 답을 도출하고 방정식을 만들고 패턴을 읽어 수를 써내려가며 다들 어찌나 열띤 경쟁들을 하는지 장내 진정을 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학 개 싫다는 예비 중 딸까지 문제를 계속 내달라고 매달리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 책의 첫 번째 목적이 수학을 재미있게 경험하며 즐기는 것이라고 했는데, 가족들과 이 책의 문제를 함께 풀고 공유하면서 수학적 즐거움과 사고력까지 키울 수 있어 무척 뿌듯했다.


1. 비판적 사고 : 당연한 것에 "왜 그렇지?"묻는다.

2. 개념적 사고 : 본질을 발견한다.

3. 연결적 사고 : 낯선 것들끼리 결합한다.

4. 전환적 사고 :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다.

5. 패턴적 사고 : 단순화하여 해결한다.

6. 차원적 사고 : 한 단계 위에서 생각한다.

7. 모순적 사고 : 패러독스를 인정하고 즐긴다.


일곱 가지 수학적 사고를 경험하며 어려운 수학 개념도 많았지만 그 개념을 알아가는 접근 방법이 무척 흥미로웠다. 복잡한 계산은 여전히 하지 못한다. 하지만 비판적 사고, 창의적 생각의 전환을 건드리며 뇌를 충분히 자극한다. 생각도 기술적으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저자의 말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이해하게 된다. 거의 마지막 문제에서는 우리 집 막내가 1분도 안돼 답을 낸 거 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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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건설 엔지니어 시점 - 철근 콘크리트를 사랑하는 일. 건설 엔지니어 일일드라마
양동신 지음 / 김영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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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직업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건 정말 신기한 경험이다. 그래서 직업과 관련된 책을 흥미롭게 찾아보는데, 건설 엔지니어는 단순히 건축과 관련된, 건물 올리는 직업이구나 했다. 이건 순전히 동기들의 허세에 내가 당한 것이었음을 이 책을 읽고 알게 됐다. 생각해 보면 그 큰 건물을 세우고 그 높은 허공에 다리를 놓는다는 게 상상도 안되는데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그곳이 한순간의 실수와 눈막음으로 잘못 건설되었다면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을 수 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은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남아있다.


건설은 정량적인 수치로 설계되고 시공되는 영역이지만, 풍하중이나 지진하중과 같이 예측하기 어려운 확률론적인 외부 변수가 100퍼센트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늘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다시 검토하고 두드리면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직종이다. 그중 공구리 치는 일은 매우 철저하게 수행되어야 하는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콘크리트와 철근의 만남은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떼어낼 수 없는 찰떡궁합 건설자재로 인류가 철과 콘크리트라는 재료를 사용하게 되면서 공간의 확장이라는 진보를 이뤄낼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아파트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새벽 5시에 출근, 밤 1시에 퇴근, 주말에도 어김없이 당직 근무를 서며 여러 협력업체들과 조율하고 건설 현장을 분주히 오간다. 현장은 특히 위험천만한 일들이 늘 존재하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동료들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을 들을 때면 마음이 너무 무거운 그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러한 사고를 다시 발생하지 않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대재해 611건, 사고로 숨진 근로자는 644명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지만 건설 현장에서는 오늘도 어김없이 소중한 생명이 유명을 달리한다. 법을 시행하기 앞서 현장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고 안전과 생명을 위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수용하고 검토한다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우리가 편리한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을 하고 따뜻하고 안전한 곳에서 샤워하고 맛있는 요리를 해 먹고 유튜브를 보며 하루를 마감할 수 있는 거. 그것은 우리가 버티고 서있는 땅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력, 통신, 수도, 가스, 난방 등의 시설을 24시간 순찰 및 점검하고 거미줄같이 연결되어 있는 정수장과 배수지, 상수도관을 수시로 점검하며 사고에 바로 대처해 주는 그분들의 노고가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존재와 그것을 만드는 엔지니어 분들의 모습을 보며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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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는 은유작가가 글쓰기 수업과 강연에서 자주 받은 질문과 대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를 쓰게 하는 것들

재능이 없으면 글쓰기를 그만두어야 하나요?

글쓰기로 고통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글감을 어떻게 고르나요?

첫 문장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요?

어휘력과 글쓰기 테크닉이 부족해요. 그래도 글을 쓸 수 있나요?

책 리뷰는 어떻게 쓰나요?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차례에서 마흔여덟 개의 질문 중 그동안 내가 글을 쓰며 가장 궁금했던 것부터 찾아 읽게 됐는데, 이 책이 가장 좋았던 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다는 거다. 글쓰기 첫 문장은 항상 어려웠고 어휘력과 글쓰기 테크닉도 부족했다. 책 리뷰를 쓰는 건 그래도 어느 정도 나만의 스타일을 갖춰가는 거 같은데, 진짜 내 이야기와 타인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건 너무나도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운 마음에 결국 글쓰기를 포기하고 만다. 그런 나에게 은유작가는 고통을 정확하게 서술한 글이, 덮어둔 문제와 아픔을 건들고 마주할 힘을 누군가에게 주기도 한다며 주저하던 '그것'을 꼭 한번 써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떤 형태의 글이든 매일 쓰는 행위가 중요하다며, '글쓰기의 유년기'를 편안하고 충분하게 누렸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글을 못 써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 쓴 글이 잘 쓴 글입니다."


다 쓴 글이 잘 쓴 글이라는 은유작가의 말이 참 큰 힘이 된다. 나한테는 좋은 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관심조차 없는 별로인 글이 될까 긴장하며 올린 적도 있었고, 아무리 봐도 부족해 보여 올리지 못한 글들도 있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글쓰기 유년기'의 사람들이 많았다.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한데 멋지고 근사한 문장을 쓰려니 막힐 수밖에... 은유 작가 말처럼 어떤 형태가 됐든 솔직하고 정직한 글을 매일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글쓰기의 시작은 오만하고 나빴지만 좋은 책을 읽고 그 글을 마음에 담아 쓰기 시작하면서 나의 글도 변화는 거 같다. 좋은 사람들의 글을 읽고 마음을 나누는 이 공간도 나에게 글쓰기 스승과 같아 늘 소중히 읽고 있다. 마음을 나누고 글을 나누는 곳이 있는 것만으로도 글 쓰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된다. 글쓰기를 하면서 더 나은 내가 되려 노력하게 되고 타인을 존중하게 됐다는 은유 작가의 말에 큰 공감을 하며 나도 글을 쓰며 더 나은 내가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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