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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가까운 적, 성병
엘렌 스퇴켄 달 지음, 이문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평점 :
"아래쪽에 꽤 큰 문제가 생겼어요."
"무슨 문제죠?"
"그냥 보여 드리는게 제일 쉬울 거 같네요."
그는 일어서서 손을 바지 아래로 밀어 넣어 깊은 곳에서 믿기 힘든 양의 티슈를 빼내기 시작했다.
그는 더러운 종이가 수북이 쌓인 쓰레기통에 등을 구부리며 서 있었다.
"고치실수 있나요?“
매독 급증 시대, 우리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
최근 미국과 일본, 그리고 국내에서 매독 환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3년 국내 매독 환자는 2,786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단순한 감염 증가를 넘어, 매독균이 눈을 침범해 실명 위기에 처한 사례까지 보고되고 있다.
과거에는 페니실린의 등장으로 종식될 것 같았던 매독이 왜 다시 확산되고 있을까?
단순히 개인의 부주의 때문만은 아니다. 오랜 시간 성병은 금기시되었고,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성병의 위험성과 치료법에 대한 정보 없이 살아가고 있다. 성병에 대한 터부는 결국 감염을 증가시키는 요소가 되어버린 셈이다.
성병, 이제는 ‘부끄러움’이 아닌 ‘지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나의 가장 가까운 적, 성병』은 이러한 사회적 편견을 깨고, 성병을 ‘질병’ 그 자체로 바라보며 성병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책은 매독을 비롯해 임질, 클라미디아, HPV, 헤르페스 등 11가지 주요 성병을 다루며, 감염 원인과 치료법, 예방 방법까지 상세하게 설명한다.
‘섹스’는 자연스러운 것, 하지만 ‘성병’도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성병을 질병 그 자체로 바라봐야 한다는 관점이다.
저자인 엘렌 스퇴켄 달은 성병학과 전문의로,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며 축적한 경험을 토대로 성병이 결코 특별한 사람들만 걸리는 병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성병은 성관계를 하는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으며, 우리가 감기에 걸리면 병원을 찾듯, 성병 역시 적극적으로 검사받고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환자들의 실제 사례를 통해 성병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예방과 치료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그동안 성병을 둘러싼 사회적 낙인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방치해왔는지를 보여주면서, 이제는 우리가 성병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이해하고 관리해야 할 때임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현재 우리는 매독이 다시 확산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감염병은 정확한 정보를 알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충분히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 매독의 경우 1기에서 치료하면 쉽게 낫지만, 치료가 지연되면 2기, 3기로 진행되어 뇌, 심장, 간, 중추신경계를 침범할 수 있다. 특히 매독균이 눈으로 침범하면 실명에 이를 수 있으며, 최근 국내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다수 보고되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이상 성병을 ‘쉬쉬’할 문제가 아니라, 알아야 할 지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성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으므로 감염은 종종 우리가 하는 선택만큼이나 운이 좋으나 나쁘냐의 문제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구보다 정확히 알아야 한다. 『나의 가장 가까운 적, 성병』은 성병을 두려움이 아닌 ‘지식’으로 바꿔준다. 성병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건강한 성문화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으로 이 책으로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