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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 관하여 ㅣ 수전 손택 더 텍스트
수전 손택 지음, 김하현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평점 :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예전부터도 그랬지만, 내 대답은 늘 같았다.
“내 나이 묻지 마세요. 내 이름도 묻지 마세요.”
(책스타그램을 오래 하면서도 한동안은 이름조차 밝히지 않았다.)
어디서나 쉽게 오가는 질문이지만,
여성에게는 단순한 나이 확인이 아니라 사회적 평가의 시작이 되곤 한다.
면접 자리에서 “결혼은 하셨나요?”라는 질문이 따라붙고,
모임에서는 “애 엄마치고는 어려 보인다”는 말이 칭찬처럼 소비되며,
매년 생일, 그중에서도 특히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해의 생일을 슬퍼하기도 한다.
수전 손택은 이런 나이 듦의 이중 잣대를 첫 글에서 예리하게 짚어낸다.
남성은 주름과 흰머리로 ‘연륜’을 얻지만,
여성은 곧바로 ‘실패’로 낙인찍히는 현실.
『여자에 관하여』는 손택이 마흔을 앞둔 1970년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쓴 글들을 모은 에세이집으로,
여성의 아름다움과 외모 강박,
욕망과 섹슈얼리티, 영화와 페미니즘,
심지어 파시즘까지 깊이 파고들며 질문을 던진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 책이 단순한 페미니즘 에세이 모음집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손택과 페미니즘의 거리를 드러내고,
때로는 다수 페미니스트와 날카롭게 충돌하는 모습에서 진짜 손택의 면모가 보였다.
그의 글은 여성 억압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동시에, 그 억압을 바라보는 내부의 복잡한 균열까지 보여준다.
읽으면서 가장 흥미롭게 다가온 부분은 「매혹적인 파시즘」과 「페미니즘과 파시즘」이었다.
손택은 나치를 우상화한 영화를 만든 레니 리펜슈탈의 작품이 어떻게 ‘매혹적’일 수 있는지를 분석하며, 그것이 문화적 기념비가 된 데에는 페미니스트들의 책임도 일정 부분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페미니즘 활동가 에이드리언 리치가 반박 서신을 보내면서 두 사람의 논쟁이 이어진다.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나 또한 예술적 성취와 정치적 올바름은 어디까지 함께 갈 수 있는가를 스스로 질문하게 되었다.
결국 이 책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일한 관점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복잡하고 모순적인 현실 속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다층적이고 때로는 모순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읽는 내내 공감과 불편함이 교차했다.
여전히 여성은 소녀처럼 보이길 요구받고, 끝없는 꾸밈 노동에 시달린다.
손택은 말한다.
"인간 삶의 연대기에서 가족은 가장 최초이자 심리적 차원에서 가장 명백한 성차별주의 양성소다."
"일은 여성이 온전한 성인이 되는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 일하지 않으면, 여성의 일이 남편의 일만큼 값지지 않으면, 기혼 여성은 자기 삶에서 진짜 권력을 얻을 기회, 즉 자기 삶을 바꿀 힘조차 갖지 못한다."
“여성은 친절하기보다 현명해지기를, 우아하기보다 강해지기를 선택할 수 있다.”
"당신에게 여성 해방은 어떤 의미인가?“
짧은 글이라도 손택의 문장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곱씹게 만든다.
때로는 밑줄을 긋고 다시 읽어야 했지만, 그만큼의 노력이 결코 아깝지 않았다.
『여자에 관하여』는 결코 쉽지 않은 책이지만,
읽는 순간마다 내 삶을 비추는 거울 같은 문장이 불쑥 튀어나온다.
불편하면서도 시원하고, 어렵지만 매혹적이다.
그리고,
단순히 ‘여자에 관하여’가 아니라
‘나 자신에 관하여’ 다시 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