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사랑으로 돌아옵니다 - 정목스님과 함께하는 행복한 마음 연습
정목 지음 / 김영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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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늦지 않았다. 생각이 바뀌었으면 말하거라."

삭- 삭- 머리카락 잘려나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고, 그 머리카락이 하얀 상 위에 가지런히 놓였다.
열여섯 소녀는 그렇게 출가해 스님이 되었다.

열여섯 소녀는 어떻게 출가할 결심을 했을까.
삶이 너무 괴로워서? 아니면 불심이 강해서? 어릴 때 엄마의 손을 잡고 절에 들어서는 순간 운명을 직감했을지도 모른다.

산행을 하다 보면 어김없이 나오는 곳이 사찰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댕댕 울리는 풍경소리에 이끌려 사찰 마당에 들어서면 편안한 마음에 절로 눈이 감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기도한다. 종교의 경계를 허무는 묘한 체험을 절에서 느껴보는 거 같다. 그리고 허기진 배를 채우는 점심 공양의 유혹이란, 이런 말 하기 참 죄송스럽지만 사찰 공양 맛집이라고 할 정도로 건강한 한 끼를 대접받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마음의 평화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근심 걱정이 있을 때 사찰을 찾아가는 게 아닐까, 책에 소개된 여러 에피소드에도 이런 근심 걱정, 불안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스님을 찾아가 하소연하고 위로와 그 해답을 찾으려 한다. 가끔 절을 점집처럼 생각해 복비를 내고 점을 봐달라는 분들도 있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정목스님은 삶의 지혜와 깨달음을 나눠주신다.

열여섯 출가 후 인생의 스승과 그들로부터 사랑을 새기고 또 많은 이들에게 그 사랑과 깨달음을 나누었던 정목스님은 국내 최초 비구니 DJ로 활동하며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책은 꼿꼿한 미움보다 부드러운 사랑으로 넓고 편해지는 삶을 이야기하며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 순간으로 만들어버린다.

벌써 11월 말, 달력에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보며 올 한 해 돌이켜보니 아쉽고 속상한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었다. 정목스님의 말씀처럼 살아보고 나서야 어리석었던 부분을 알게 되니 그 허전함과 회한의 감정이 더 많이 드는 거겠지. 하지만 꿈꾸는 힘이 없는 사람은 살아가는 힘도 없다고 꿈은 또 삶의 희망이 되고 우린 또 그 꿈을 향해 기꺼이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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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
노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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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은 예전 모습 그대로지만 이 세계는 어딘지 모르게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예전과 똑같지 않은 나.
불안하고 위태로운 현대인의 초상을 그리며 고독 속으로 침잠할 것을 제안했던 작가 노재희가 자유롭고 충만한 삶으로 돌아왔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해야 할까,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죽음 앞에서 살아났을 때, 부산에서 서울로 야반도주했을 때, 어쩌다 보니 이 책의 저자와 아주 비슷한 결로 인생의 변곡점을 맞은 거 같다. 약간의 위험과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내가 예상하지 못한 세계로 건너갈 수 있다. 물론 그것이 늘 좋은 방향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지금의 이 세계가 답답하고 불안정하다면 다른 세계로 건너가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결핵성 뇌수막염으로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베드에 결박된 채 괴성을 질렀던 저자는 당시의 상황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가족의 이야기를 짜집기해 그게 그의 기억이 되어버렸고, 회복된 후에도 예전 자신의 모습을 일기로 접하고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정말 같은 나일까? 그리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아프기 전과 후의 그의 글은 다른 듯 낯설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그도 지금의 그도 그인 거.

새로운 기억이 심어지고 자라나고 빛나고 있는 작가의 글들이 좋았다. 조금씩 나를 인지하고 주변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탐색하는 과정과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거. 거울 속에 비치는 내 모습이 진짜 나인지 확인하고 싶어 거울을 슬쩍 만져보듯 내가 기억하는 내가 진짜 나인지 나 또한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왜 자꾸 심야괴담회가 생각나는지 ㅋㅋ 난 무표정한데 거울 속 웃고 있는 내가 자꾸 상상돼)

완벽해야 했던 욕심은 이젠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로,
과했던 의욕은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에너지만큼만 하자는 생각으로 바뀐 저자는 뿌리를 내리고 싹이 돋아나고 점차 자라 커다란 나무가 되는 오랜 시간을 평온하게 기다린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볼까 했지만, 여전히 난 욕심 많고 의욕이 과한 사람인지 영 놓지 못할 거 같다. 내 인생의 변곡점은 나에게 과한 의욕을 심어주는 걸 보면 말이다 ㅎㅎ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 내가 잘할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일,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고 오직 내가 해나가기 시작해서 끝까지 도달한 후에야 그 결과를 알 수 있는 일을 나는 하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세계가 커지는 것일까? 이렇게 내 인생의 지도가 그려지는 것일까? 내 세계의 크기는 아직 나도 모른다. _p. 223

내 세계의 크기는 이왕이면 많이 많이 컸으면 좋겠다는 이놈의 욕심. ㅋㅋ
물려받을 땅도 없는데 마음으로나만 이 세계 좀 키워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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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별자리 여행
이태형 지음 / 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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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곱게 차려입은 남녀가 담 모퉁이에서 밀회를 즐기고 있다. 

혜원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은 달빛 아래 정을 통하는 남녀의 감정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특히 밤하늘에 살짝 걸쳐있는 손톱달이 이 작품을 더욱 은밀하게 만든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동안 이 작품의 제작연도를 알 수 없었는데, 한 천문학자가 그림 속 달을 분석하여 제작 시기를 추론했다. 달의 볼록한 부분이 위로 향한 것으로 보아 월식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신윤복이 태어난 백 년 동안 월식 자료를 분석해 1793년 8월 21일 무렵, 나이 만 35세이던 여름으로 추정된다는 결론이었다.


'월하정인'의 시대적 배경을 고증한 천문학자가 바로 이 책의 저자 이태형 천문학자이다. 

오로지 별밖에 모르는 별 바라기와 밤하늘로 떠나는 여정 


책을 펼치자마자 쏟아지는 별들에 잠시 넋을 잃었다. 

한국의 소백산 여름의 대삼각형, 적도 부근 킬리만자로에서 본 여름 은하수, 호주 울룰루에서 본 오리온자리, 캐나다 에노다 롯지에서 본 오로라, 우유니 사막에서 본 밤하늘의 별들이 아름답게 수놓았다. 사진이 아니라 실제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상상과 함께 저자가 안내하는 계절별 별자리 여행을 순항했다. 


이 책은 사계절의 하늘과 북쪽 하늘의 별자리를 쉽게 익힐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는데, 52개의 별자리 위치와 생김새, 구성별, 별자리에 전해지는 이야기까지 과학과 문학이 함께하며 천문학적 이야기에 머리가 아플 때쯤 재미있는 이야기로 흥미를 유발한다. 


그동안 별자리는 몇 가지 이름만 알았지 그 모양까지 다 알지는 못했는데, 책은 별자리 모양과 별자리 이름의 유래를 일러스트와 함께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단순한 별자리 모양을 동물이나 신화 속 인물 이름으로 붙인 건 엄청난 상상의 내공이 필요하다. 특히 쌍봉낙타쯤으로 생긴 별자리가 카시오페이아 왕비 별자리라니 아무리 내 상상을 밝휘해도 밤하늘에서는 도저히 그 이미지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역시 나는 별자리 운세를 보는 게 더욱 재미있는 것 같다. 책 속에도 별자리 운세가 나와있는데, 내 별자리의 유래도 찾아보고 운세도 점쳐보는 재미가 또 있다. 내 별자리인 '게자리'를 찾아봤는데, 오로지 줄을 잘 섰다는 이유로 성공적으로 기억되는 별자리라니.. ㅋㅋ 게자리는 화려한 1등성 사이에서 오로지 황도에 줄을 섰다는 이유만으로 유명 별자리가 됐다고 한다. 나도 게자리답게 줄을 잘 서보도록 해야겠다. 어느 줄로 서야 하나... ㅎㅎ


책을 읽으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생각났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떠올랐다. 그리고 어릴 적 집 앞마당에 누워 바라본 아름다운 별들. 내 기억에 아주 어릴 적 흔히 볼 수 있었던 별들이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별을 관찰하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별을 볼 수 있는 날은 마치 선물을 받은 듯 아주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도시를 벗어나야 볼 수 있는 별이 되었지만 내 기억 속 별들을 소환하듯 이 책을 보며 별자리 여행을 떠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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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해부하는 의사 - 영국 최고의 법의학자가 풀어놓는 인생의 일곱 단계
리처드 셰퍼드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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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신고를 받고 출동한 아파트는 잘 정돈되어 있었고 침입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욕조 안에는 지퍼가 채워져 자물쇠로 잠겨 있는 빨간 가방이 있었다. 가방에서 풍기는 심한 악취에 순경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가방 안에는 벌거벗은 채 태아자세로 등을 대고 누워있는 시체가 들어 있었다. 그는 바로 영국 비밀 정보부에서 암호해독가로 일하던 게리 윌리엄스로 이 사건은 '가방 속 죽음'의 미스터리라 알려지며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가방을 채운 자물쇠의 열쇠가 가방 안 시체 안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과연 이 미스터리한 죽음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있었던 걸까.


"이 사람은 왜 죽었는가?"

시신이 발견된 장소를 시작으로 부검실에서 주검에 새겨진 비밀을 밝혀내는 한 법의학자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



저자는 게리 윌리엄스의 성적 취향과 부검을 통한 분석으로 비극적 사고로 결론 내렸지만 '가방 속 죽음' 사건은 이중 스파이 비밀 요원 청부 살인 등의 음모론을 낳으며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이 책은 단순히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는 거에 멈추지 않고 인생의 각 단계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죽음의 종류를 다루고 있다. 아이와 젊은이의 때 이른 죽음, 꿈이 시들어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위기에 힘들어하던 중년의 죽음, 자신의 능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험을 느낀 노년의 죽음 등 살인부터 불운한 죽음, 질병부터 사고사까지 저자가 들려주는 죽음에는 인생의 아픔과 슬픔, 감동적인 이야기가 함께한다. 


그 어느 죽음 하나 안타깝지 않은 건 없겠지만 어린아이들의 죽음과 노년의 죽음은 인생의 시작과 끝이 닮아있음에 더욱 숙연해지는 죽음이었다. 그들의 신체는 자유롭지 못했고 보호받지 못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우리도 삶의 끝에 자유롭지 못한 정신과 신체로 인해 홀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스스로 선택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저자가 단순히 부검을 통한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려는 것보다 주검을 통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우리 사회가 정의하는 죽음의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 세상은 다 무대입니다. 세상 남녀는 그저 배우이고요.

등장도 하고 퇴장도 합니다.

한 사람이 생전에 여러 역을 하는데, 인생은 7막입니다.


맨 처음은 어린애, 유모 품에 안겨 칭얼대며 토악질을 합니다.


다음은 구시렁거리는 학생, 책가방을 둘러메고 환한 아침 같은 얼굴로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마지못해 학교에 갑니다.


다음은 사랑에 빠진 역할...


중략


이 파란만장한 인생 연극을 종결짓는 마지막 장면은 제2의 유년이자, 완전한 노망의 단계입니다. 이도 없고, 보이지도 않고, 입맛도 없고, 아무것도 없지요.

_윌리엄 셰익스피어, <뜻대로 하세요>2막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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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신이라는 착각 - 확신에 찬 헛소리들과 그 이유에 대하여
필리프 슈테르처 지음, 유영미 옮김 / 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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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돌았니?'

'제정신 아니구나'


우리 눈에는 사실이 아니거나 터무니없게 생각되는 것을 사실이라고 굳게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 사람들 눈에는 반대로 자신들이 믿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평평한 지구 학회', 기후변화는 미국을 경제적으로 해를 끼치기 위해 중국이 고안했다는 '트럼프', 빌 게이츠가 인구 감축 계획으로 코로나19를 퍼트렸다고 믿는 '코로나 음모론' 


왜 같은 것을 보고 서로 다른 논리에 빠질까?

모두 자신이 옳다고 착각하는 이유는?

내가 보고 믿는 것이 정말로 진실일까?


 

우주에서 찍은 구형의 지구 이미지도 음모론의 산물이라 치부하는 '평평한 지구 학회'단체는 그 어떤 과학적 증거를 들이밀어도 믿지 않고 지구가 평평하다고 확신한다. 거기에는 집단이 만들어내는 소속감과 내러티브가 강력하게 존재해 그 어떤 사고도 받아들이지 않게 뇌가 작동한다. 이런 소속이 만들어내는 확신은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으로 인터넷 기술의 발달과 코로나19이후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책은 확신은 뇌에서 어떻게 생겨나고, 개인에게 어떤 기능을 하며, 확신을 바꾸는 게 왜 어려운지에 대해 뇌과학 이론과 최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이 일종의 '착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철학, 유전학, 심리학, 뇌과학 등으로 추적하며 지나친 자기 확신을 왜 경계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하게 한다. 


우리가 안다고 믿는 것,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 확신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뇌가하는 일이다. 책에서 설명하듯 뇌는 깜깜한 뼛속 방에서 감각기관이 보내는 신경 자극을 수신해 그로부터 세계의 상을 만들어 낸다. 이미 내가 믿고 확신한 그 세계는 그 어떤 반대되는 의견이 들어올 수 없다. 문제는 비합리적 확신이 사적으로만 개진하는 것이 아니라 큰 소리로 세상에 퍼지는 데에 있다.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잘못된 발언이나 틀린 확신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다 보면 다른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그 부작용을 각종 음모론을 통해 우린 이미 많이 봐왔다. 그리고 서로 끊임없이 헐뜯고 비난하며 자신만 진실이라 확신한다. 


내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말을 섞는 건 정말 곤혹스러운 일이다. 차라리 벽을 보고 혼자 말하는 게 나을 정도지만 내가 믿고 진실이라고 믿는 게 과연 진실인지 그 또한 의심할 필요는 있다. 그렇기에 뇌의 사고를 막기보다 곤혹스럽더라도 저자의 말처럼 뇌의 문을 살짝 열어두고 분별력과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를 할 필요성도 있는 거 같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대화를 시도해 보는 거 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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