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
노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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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은 예전 모습 그대로지만 이 세계는 어딘지 모르게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예전과 똑같지 않은 나.
불안하고 위태로운 현대인의 초상을 그리며 고독 속으로 침잠할 것을 제안했던 작가 노재희가 자유롭고 충만한 삶으로 돌아왔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해야 할까,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죽음 앞에서 살아났을 때, 부산에서 서울로 야반도주했을 때, 어쩌다 보니 이 책의 저자와 아주 비슷한 결로 인생의 변곡점을 맞은 거 같다. 약간의 위험과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내가 예상하지 못한 세계로 건너갈 수 있다. 물론 그것이 늘 좋은 방향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지금의 이 세계가 답답하고 불안정하다면 다른 세계로 건너가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결핵성 뇌수막염으로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베드에 결박된 채 괴성을 질렀던 저자는 당시의 상황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가족의 이야기를 짜집기해 그게 그의 기억이 되어버렸고, 회복된 후에도 예전 자신의 모습을 일기로 접하고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정말 같은 나일까? 그리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아프기 전과 후의 그의 글은 다른 듯 낯설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그도 지금의 그도 그인 거.

새로운 기억이 심어지고 자라나고 빛나고 있는 작가의 글들이 좋았다. 조금씩 나를 인지하고 주변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탐색하는 과정과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거. 거울 속에 비치는 내 모습이 진짜 나인지 확인하고 싶어 거울을 슬쩍 만져보듯 내가 기억하는 내가 진짜 나인지 나 또한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왜 자꾸 심야괴담회가 생각나는지 ㅋㅋ 난 무표정한데 거울 속 웃고 있는 내가 자꾸 상상돼)

완벽해야 했던 욕심은 이젠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로,
과했던 의욕은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에너지만큼만 하자는 생각으로 바뀐 저자는 뿌리를 내리고 싹이 돋아나고 점차 자라 커다란 나무가 되는 오랜 시간을 평온하게 기다린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볼까 했지만, 여전히 난 욕심 많고 의욕이 과한 사람인지 영 놓지 못할 거 같다. 내 인생의 변곡점은 나에게 과한 의욕을 심어주는 걸 보면 말이다 ㅎㅎ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 내가 잘할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일,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고 오직 내가 해나가기 시작해서 끝까지 도달한 후에야 그 결과를 알 수 있는 일을 나는 하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세계가 커지는 것일까? 이렇게 내 인생의 지도가 그려지는 것일까? 내 세계의 크기는 아직 나도 모른다. _p. 223

내 세계의 크기는 이왕이면 많이 많이 컸으면 좋겠다는 이놈의 욕심. ㅋㅋ
물려받을 땅도 없는데 마음으로나만 이 세계 좀 키워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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