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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신이라는 착각 - 확신에 찬 헛소리들과 그 이유에 대하여
필리프 슈테르처 지음, 유영미 옮김 / 김영사 / 2023년 9월
평점 :
'미쳤다'
'돌았니?'
'제정신 아니구나'
우리 눈에는 사실이 아니거나 터무니없게 생각되는 것을 사실이라고 굳게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 사람들 눈에는 반대로 자신들이 믿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평평한 지구 학회', 기후변화는 미국을 경제적으로 해를 끼치기 위해 중국이 고안했다는 '트럼프', 빌 게이츠가 인구 감축 계획으로 코로나19를 퍼트렸다고 믿는 '코로나 음모론'
왜 같은 것을 보고 서로 다른 논리에 빠질까?
모두 자신이 옳다고 착각하는 이유는?
내가 보고 믿는 것이 정말로 진실일까?
우주에서 찍은 구형의 지구 이미지도 음모론의 산물이라 치부하는 '평평한 지구 학회'단체는 그 어떤 과학적 증거를 들이밀어도 믿지 않고 지구가 평평하다고 확신한다. 거기에는 집단이 만들어내는 소속감과 내러티브가 강력하게 존재해 그 어떤 사고도 받아들이지 않게 뇌가 작동한다. 이런 소속이 만들어내는 확신은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으로 인터넷 기술의 발달과 코로나19이후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책은 확신은 뇌에서 어떻게 생겨나고, 개인에게 어떤 기능을 하며, 확신을 바꾸는 게 왜 어려운지에 대해 뇌과학 이론과 최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이 일종의 '착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철학, 유전학, 심리학, 뇌과학 등으로 추적하며 지나친 자기 확신을 왜 경계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하게 한다.
우리가 안다고 믿는 것,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 확신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뇌가하는 일이다. 책에서 설명하듯 뇌는 깜깜한 뼛속 방에서 감각기관이 보내는 신경 자극을 수신해 그로부터 세계의 상을 만들어 낸다. 이미 내가 믿고 확신한 그 세계는 그 어떤 반대되는 의견이 들어올 수 없다. 문제는 비합리적 확신이 사적으로만 개진하는 것이 아니라 큰 소리로 세상에 퍼지는 데에 있다.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잘못된 발언이나 틀린 확신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다 보면 다른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그 부작용을 각종 음모론을 통해 우린 이미 많이 봐왔다. 그리고 서로 끊임없이 헐뜯고 비난하며 자신만 진실이라 확신한다.
내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말을 섞는 건 정말 곤혹스러운 일이다. 차라리 벽을 보고 혼자 말하는 게 나을 정도지만 내가 믿고 진실이라고 믿는 게 과연 진실인지 그 또한 의심할 필요는 있다. 그렇기에 뇌의 사고를 막기보다 곤혹스럽더라도 저자의 말처럼 뇌의 문을 살짝 열어두고 분별력과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를 할 필요성도 있는 거 같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대화를 시도해 보는 거 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