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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만든 세계 - 세계사적 텍스트들의 위대한 이야기
마틴 푸크너 지음, 최파일 옮김 / 까치 / 2019년 4월
평점 :
세계 최초의 문자 기록으로 알려진 점토판에는 우루크의 어느 왕이 경쟁상대인 왕에게 보내는 위협의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기호들로 채워진 점토판을 보며 상대방 왕은 마치 점토가 말을 하는 느낌을 받았고, 그 놀라움에 우루크 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한다.
그렇게 소리 없는 문자는 마치 인간의 소리를 담은 듯, 과거와 미래, 신들과 악마의 이야기, 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기록했다. 기록은 어느 한 서기가 텍스트를 받아 적으면서 시작됐다.
인류의 문명과 역사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세계를 만든 세계사적 텍스트들의 위대한 여정
마틴 푸크너 『글이 만든 세계』 이다.
이 책은 결코 쉽지 않은 책임은 분명하다. 5,000년 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발명된 텍스트를 시작으로 글이 만들어낸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철학 사상들의 영향이 어떻게 이 세계를 만들었는지 작가는 그 역사적 장소를 여행하고 탐구하며 깊이 파고든다.
그리스어와 그리스 알파벳을 확산시키는데 주요 도구가 됐던 일리아스, 최초의 의미 있는 문학인 길가메시 서사시, 신의 소리를 담은 성서와 금강경, 소크라테스와 논어, 세계 최초의 소설인 겐지이야기, 면죄부 판매에 대한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괴테 문학에 영향을 받아 탄생한 마르쿠스와 엘겔스의 공산당선언, 천일야화부터 해리포터에 이르기까지 4,000여 년을 걸친 글이 만든 장대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책을 읽다 보니 우리의 역사에 글이 얼마나 중심적 역할을 했는지 깨닫게 된다. 텍스트는 인류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무자비한 권력자들에 의해 수많은 희생을 낳기도 했다. 문자 하나로 충성을 맹세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기록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발전을 거듭해온 인류에는 그렇게 글이 존재했다.
오늘날, 우리는 기사 한 줄에 분노하고 환호한다.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스스로 판단하기 전에 이미 쏟아지는 관련 기사들과 댓글의 홍수에 떠밀려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 한 서기의 기록으로 시작된 텍스트는 지금 수많은 이들이 기록하는 텍스트로 이어져오고 있다. 그리고 글을 넘어 이제 짧은 영상이 그 자리를 채우는 지금. 내가 쓴 글이 내가 찍은 영상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우주에서는 당신이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누구든 저마다 이야기를, 흔히 경이와 우연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거지는 알고 보면 왕으로 태어났을지도 모르며, 그냥 짐꾼도 무엇인가 들려줄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다. 모두가 각자 하나의 이야기이다. _p.275
그러니 누군가의 이야기를 함부로 재단하고 단정 지어 옮기지 말아야 함을 ... 이 책, 글이 만든 세계를 완독하며 다시 한번 새겨본다. 글은 누군가를 구원할 수도 파괴할 수도 있다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