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 아래에서 세계 문학 단편선
기 드 모파상 외 지음, 정회성 외 옮김 / 다정한책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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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사랑을 조심하십시요.‘라는
문장 하나에 훅, 반해서 책을 받았다.

봄이라는 소재로 펼쳐지는 아홉편의 봄단편들,
익숙한 이름도 낯선 작가도 만나게 되는 봄,
생각보다 단편들이 단단하게 읽혀졌다.
읽으면서 ’봄‘이라는 단어를 찾게 되었고
마흔 한 번의 ’봄‘을 찿게 되었다.

-봄빛. 봄날, 봄바람, 봄 한 접시, 봄의 땅, 봄코트,
봄의 향기, 봄날저녁, 봄햇살, 4월의 소나기, 4월의 먼지…

소설속 봄은 삼월부터 사월.오월이 되고
헤세의 봄은 부활절로 쓰여지기도 한다.
(헤세는 왠지 자기경험적 소설같기도 한)

”삶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 만큼 또 많은 것을 요구하는 건 아닐까. 깊이 느끼고, 그것을 이해하고, 다시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결국 더 자주, 더 깊이 아프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삶이 주는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어떤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걸까.“
-수잔 글래스팰의 빛이 머무는 곳에서 중

봄이 말랑한듯 보이지만 때때로 봄은 격렬하게 심장을 할퀴고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순간의 상흔을 오래 간직하게도 한다.봄은 여전히 사랑이지만 짧은 봄처럼 이별을 발빠르게 불러들이기도 한다. 그 안심할 수 없는 봄의 음흉한 변덕스러움도 대가를 치르게 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는 봄을 조심해야 한다.

소설속에 나오는 모든 봄을 애정하게 되었다. 그만큼 작가들의
단편들이 단단하게 읽혔다. 모파상의 <봄날>, 오 헨리의 <봄 한 접시>, 다자이 오사무의 <벚나무와 휘파람>, 이디스 워튼의
<4월의 소나기>, 버지니아 울프의 <질문하는 여자들>, 헤르만 헤세의 <약혼>, 스콧 피츠제럴드의 <젤리빈>이 역시나 유명작가인만큼 글도 좋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짧은 글속에서도 여성작가로의 충분한 고뇌가 느껴졌다. 주고 받는 질문과 답은 여전히 존재하는 시대 속 페미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 중에서 새롭게 알게 된 작가 수잔 글래스팰의 <빛이 머무는 곳에서>가 가장 좋았다. 어쩌면 이 작가를 알기위해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유일하게 처음 만난 작가였는데,
유독 그의 문장들이 마음에 남았다. 12장속에 포스트잇도 가장 많이 붙인듯 했다. 칠십이 된 철학교수의 평생의 삶과 일치하는 그의 사유의 말들이 봄햇살처럼 따뜻하고 환하게 오래 심장으로 내려앉았다.

-어쩌면 5월은, 철학보다 더 깊이 삶을 이해하는 철학자인지도
모르겠다(p80)
-그의 삶은 종종 '외롭다'라는 말로 요약되곤 했다. 하지만 외로움 속에서도, 책과 일, 사유가 주는 온기 덕분에 마으미 얼어붙는 일은 없다.(p90)
-삶은 사람을 소진시킨다. 고귀한 목적이 아니라, 거칠고 냉정한 방식으로, 인간이 아무리 그럴듯한 의미를 덧 씌우려해도,결국 삶은 한 사람을 끝까지 사용하고, 더는 필요 없을 때 밀어내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정면으로 마주해야 되지 않을까. 아무리 넉넉햐 마음을 주었고, 아무리 기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도,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단 하나였다. "이제, 당신을 어떻게 치울 것인가?"(p91)
-책 속에서 애써 삶의 의미를 찾기보다 있는 그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그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책에서 얻는 깨달음이 주는 만족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지켜주는 건 그런 이론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의 결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p95)
-올곧은 지성과 흔들림 없는 품위를 위해 싸워 온 그의 세대역시 결코 헛된 길을 걸어온 게 아니었다. 만약 그들이 남긴 가치가 이 세상에 그레타 같은 사람 몇 명이라도 남겨둘 수 있었다면,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p99)
-그것은, 인생이라는 고독하고 거친 길도 결국은 평온한 들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조용한 깨달음이었다.(p102)

있어야할 때와 떠나야 할 때를 끊임없이 사유하고 사색하는 한 철학교수의 눈빛이 떠오른다. 젊은 세대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는 그의 지성과 품위가 돋보이는 글이었다. 그러한 지성인들과 스승이 절실히 필요하다 느끼는 요즘에 그의 소설의 문장들이 깊이 와닸는다. 그러한 스승밑에 그러한 제자가 있다는 것이, 저녁놀에 그 둘의 대화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작가의 또 다른 소설도 읽고싶어졌다.

<봄볕 아래에서>단편집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잘 구성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마지막 단편인 F스콧 피츠젤드의 <젤리빈>의 문장은 결코 마침표를 짓지 않는다. ‘4월의 먼지는……오래된 농담처럼 되풀이되던 지루한 오후는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이런 날씨 속에서는 어떤 일도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게 하찮아 보이는 무더운 날들을 견디다 보면,언젠가 지친 이마 위로 조용히 내려앉는 누군가의 손길 같은 시원한 하루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게 되는 법이다……그곳이라면,누구나 알고 있는 오래된 농담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틀림없이 있을 테니까.(239)

오래된 농담을 함께 나누는 것처럼
즐거히 읽은 늦은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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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이리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35
헤르만 헤세 지음, 장혜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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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글을 제대로 읽은적이 있었나?
<데미안><나르치스와골드문트>는 십대에
어떤 느낌으로 읽었을까.
<수레바퀴아래서>는 이십대에 읽으며
어떤 것을 내 삶으로 이끌어냈을까
<싯다르타>는 유독 기독교집안이었던 나는
결국 지금까지 읽지 못하고 넘어왔었다.
(이제는 자유하게 읽을 수 있다)
<황야의 이리>를 중년의 문턱에서 이제야
만나게 되었다. 그의 모든 소설이 자서전적
이야기라고 하는데,중년의 나이에 헤세를
제대로 만나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마주하게 되는 생의 의문들,
신학자 가문에서 자라며 자신이 추고하고자 하는 삶의
이면을 갈망하게 되고 그래서 거친 광야로 도망쳐나올
수밖에 없었던 헤세, 인간의 자유를 향한 그의 글들은
그의 삶을 오로지 대변해준다. 두 번의 결혼과
실패, 아이의 정신병,그리고 전쟁, 그래서 자살자로 살아내야
했던 헤세, 다른 세상에서 온 낯선 존재로 사람을 꺼리게 된
야생의 존재로 존재하게 된다. 그런 성향과 운명탓에
끝없는 고독과 외로움을 겪어야 했던 헤세, 그의 글을 읽을
수록 그는 지옥을 운명처럼 끌어안고 사는 존재인듯 했다.

“아, 여긴 냄새가 참 좋습니다.” -p12
다정하고 단정한 생활의 냄새가 그리윘던 그는
오십세에 책속의 집으로 이사하며 고백한다.
그렇게 시작되는 주인공 하리 힐러의 이야기.
그는 보통의 시민의 삶에 정착하지 못하고
우연찮게 집어든 마술극장 팜플책의 서두에
써있는 글귀처럼 그곳에 입장한다.

“마술극장
아무나 입장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나……할 수는 없습니다.
미친……사람……만……입장할 수 있습니다."

헤세는 황야의 이리를 통해 인간존재의 고독과 자아의 이중성,
끝내 살아내야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의 글을 쏟아놓는다. 어쩌면 이 책은 헤세의 서문처럼 미친 사람만 입장하고 읽어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결코 미치지 않고는 찾아낼 수 없는 고통을 동반하게 되니까요. 그의 글은 지극히 문명화된 고도의 현대문명사회속에서 다시 한 번 나를 찾는 시간들일듯 합니다. 물질과잉의 자본이 최고인 시대속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이상으로 추구해야 하는지를 (알면서도 계속되는 타협속에서 잠시 길을 잃게되는)생각하게 합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속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헤세. 우리는 다시 데미안부터 새로이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싶은 생각도 들게 하네요. 그래야 진정 헤세를 만나지 않을까 싶은 오늘입니다.

’보이는 것처럼 고독도 더는 참을 수가 없고, 나만의
세상도 견딜 수 없이 증오스럽고 구역질이 났으며, 공기가
사라진 내 지옥의 방에서 질식해가며 발버둥치고 있으니,
무슨 출구가 남아있단 말인가? 출구는 없다.‘p109

그러나 그는 출구를 찾는다. 85세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동안 글을 쓰고 자살자의 삶은 희망의 메세지를 들려준다.
황야의 이리는 마술극장을 통해 통합과 회복의
여정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간다. 잔인할 정도로
위태롭게 미쳐가는 삶을 치유하는 또 하나의 삶으로 보게한다.
뜻밖의 여정, 우리의 본성을 다시 들여다보게하는,
어떤게 정의인지 혼탁한 시대에 맑은 비판의 시선을
들려주는 헤세,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내야한다.

어느곳에서 이러한 질문을 들었다
”당신은 서머셋몸 입니까 헤르만헤세 입니까?“하는,
나는 서머셋몸 글을 좋아하지만 헤세의 성향에 더
가까운듯 했다. 멀다면 머언 길을 걸어 이제야 생의
뒤안길에서 새롭게 만나게 된, #황야의이리
헤세는 평생을 자신의 존재를 찾기위해
고군분투했음을 알 수 있었다. 황야의 이리를 안고
살아가는 자의 끝없는 자기 성찰의 글들, 그의 소설은
그렇게 나에게도 자기 사색과 위로를 주는 고통의
글들이지만 인간 존재의 자유를 준다. 나또한 유독
생의 우울감과 지독한 상실의 고독감으로 힘들때가 있다.
그래서 더욱 헤세의 글은 깊은 공감을 안겨주었고
십대,이십대에 읽었던 헤세의 글또한 결코 그저 우연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학은 그렇게 나의 평생의
스승이었고 나를 치유했고 나를 더 자라게 했다. 내 생에
있어서 너무도 지대한 역활을 해주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좋은책을 보내주신 문예출판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고전의 교과서적인곳, 오래 좋은듯 합니다.

ps:표지그림:빈 센트 반 고흐 <해 질 녘의 버드나무>
왠지 그림도 지금을 말해주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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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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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유서깊은 수도원, 사크라 디 산미켈레.
그곳 지하에는 겹겹의 잠금장치로 가둬진 피에타 석상이 있다.
감금을 지시한것은 다름 아닌 바티칸 교황청. 카톨릭에서 가장 아름댭게 여기는 피에타석상을 지하에 가두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은 이렇게 의문을 두고 시작된다.

"네가 사라지게 절대 내버려두지 않을거야."p420

왜소증(연골 형성 저하증)을 갖고 태어난 천재석공예가 미모(미켈란젤로/미켈란젤로처럼 유명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어진),미모는 가난한 조각가 아버지로부터 대리석 조각에 대해 배우게 되지만 아버지의 죽음 후 미모를 돌보기 어려웠던 어머니는 먼삼촌격인 알베르토에게 공방의 도제로 보내버린다. 그러나 미모의 천재성을 알아본 알베르토는 그의 재능을 시기하게 되고, 미모는 구타와 폭력으로인한 끔찍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러한 시절에 만나게 된 천재적인 소녀 비올라,

'비올라가 나를 자신의 세계로,
우리가 내뻗은 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별들이 박힌
그 애의 열렬한 삶으로 나를 끌어당기고 있으니,p190

'그애가 없으면 세상은 물론 훨씬 단순했다. 생각해보면,
그런 세상은 그다지 아름다운건 아니었다.'p229

오로시가 가문의 막내딸인 비올라는 미모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빛이 되어준다. 그들은 밤마다 무덤가에서 만나게 되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특별한 일상을 만들어간다. 그렇게 미모는 비올라를 통해 의식의 세계를 키워나간다. 비올라는 매일 미모에게 책을 빌려주고 읽게하고 외우게하고 깨닫게한다. 비올라는 미모의 더이상 자라지않는 외모보다 천재성을 면저 알아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런 비올라는 미모에게 평생의 삶속에서 피에타의 또다른 조각으로 탄생하게 된다.

'내 부모는 늙었다고.나이를 말하는 게 아니야. 그들은 다른 세상 사람들이지. 그들은 앞으로 우리는 말을 타듯이 날게 되리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내 부모의 세계는 죽었어.넌 좀비를 무서워하지만 네가 무서워해야 할 건 바로 그 세계라고. 그 세계는 죽었는데도 여전히 움직이거든. 누구도 그것을 보고 죽었다고 말하지 않으니까.바로 그런 까닭에 그건 위험한 세계야. 그 세계는 저절로 무너져'p145

날고싶었던 비올라.그래서 그녀는 날개를 만들고 스스로 뛰어내린다. 그녀는 오랜 정통과 관습의 체제속에서 오로지 자신으로 살고 싶어했다. 자신만의 시간을 책속에서 찾아내고 그것을 미모에게 끊임없이 연대해 간 비올라.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면 미모의 천재성은 배움이 없는 가난속에서 묻히고 말았을것이다. 미모는 새로운 피에타상을 창조한다.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과 거리가 먼 마리아의 품에 안긴 예수의 상에 인간 비올라를 보여지게 한것이다. 이것은 곧 교황청의 정통성에 벗어난 작품이되고 그래서 누구도 보지못하게 지하에 가두어버린다.

'우리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유폐하는 겁니다.'
사제는 그녀를 거기에 가둬 둔 자들은 스스로를,
그들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던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p48

생각자않은 대지진으로인한(이러한 반전이라니) 비올라의 죽음은 미모에게 마리아의 품에 안겨 죽은 예수만큼이나 절망케하는 슬픔이었다. 오르시니 저택은 완전히 무너져내렿고, 폐헉가 된 그 속에 비올라는 상처하나없이 죽음을 맞는다. 미모는 빛을잃은듯 그녀를 안고 절규하게 되고, 잠도 자지않고 피에타상의 제작에 몰입하게 된다. 그는 지하에 가둔 그녀를 남은 생애동안 지켜낸다. 끝도없이 아름다운 그들의 생애가 우아한 필체로 그려진다. 끝까지 그녀를 지키는 미모 바틸리아니, 그의 비올라를 향한 숭고한 사랑이 마지막장까지 고귀하게 펼쳐진다.

'은밀했던, 살을 저미듯 아렸고 뒤뚱거렸던 우리의 우정,
야행성의 우정이 마침내 햇볕에 복권되고 그 위로 처음으로
햇살이 환히 부서졌다.'p369

데뷔 이래 단 네 권의 소설로 프랑스 주요 문학상 19개를 수상한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걸작 [그녀를 지키다].바티간이 피에타 석상을 수도원 지하에 가둘 수 밖에 없었던 비밀스런 사연을 한 챕터 한 챕터 중간중간에 끼워맞춘 이야기는 실제 역사이야기를 읽는듯했다. 그리고 그안에서 얽힌 왜소증을 안고 태어난 천재 석공예가의 고난과 역경, 그리고 그에게 운명처럼 나타난 오르시니가문의 막내딸 비올라의 자유를 향한 투쟁은 작가의 시적인 문체에서 무척이나 아름답게 그려진다. 600여페이지의 장편을 순시간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있었다. 이러한 상상력에 인간의 삶을 녹여내는 작가의 펜이 놀랍기만하다. 한국을 방문해 뉴스에 나오는 모습을 잠깐 본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호기심이 더했던 소설이기도했다. 미모와 비올라의 삶이 얽힌 피아트라달바의 오렌지나무 가득한 공간은 왠지 직접 거닐어보고싶게까지 한다.

'피에트라달바 숲의 내음이 너무나 그리워서 아침이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거의 육체적 고통을 느꼈다.'p283
누구든 이러한 공간이 있지 않을까하는,


비올라,
비올라,
비올라……
나의 피에타!

롤리타, 롤리타를 부르듯 한음절 한음절이 오래도록 아름답게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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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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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발터 벤야민의 책 출간소식을 보고
제목과 표지,추천글에 반해버려 서평신청을 했다.
새롭게 알게되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고
처음이지만 읽어보고싶은 끌림이 좋았다.
검색해보니 작가는 철학서나 문예비평등에 사실 더
유명했고 그가 출간한 소설은 한권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 국내 초역으로 엘리출판사에서 유일하게 작가의
문학작품집을 출간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출간소식이 의미있고 소장의 가치는 충분한듯 했다.

발터 벤야민은 독일출신 유대계 언어철학자, 문예학자,
비평가,번역가로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는 교수자격취득
논문 [독일 비애극의 원천]으로 독일 교수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재야로 밀려나게 된다. 그는 좌파 아웃사이더‘
지식인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1940년 미국으로 망명하는
도중 프랑스-스페인 국경통과가 좌절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고독의 이야기]는 발터 벤야민의 문학적 테마가
담긴 글들을 묶은 책으로 그의 유일한 문학작품집이 된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그가 끊임없이 장소를 옮겨다니며
불안정한 생활속에서 쓴 글로 어느 글은 메모처럼 짧기도하고 어느 글은 흩어진 파편처럼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기도 했다. 읽기 쉽게 편집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쉽게 읽어나갈 수 없는 묵직한 사유가 존재한다. 이야기는 꿈과 환상, 여행, 놀이와 교육론의 3부로 나누어져있다. 이야기속에 이야기가 존재하는 듯 인용구들과 수수께끼 같은 글들은 단번에 풀어내지 못하지만 곱씹어 다시 읽으면 경괘한 답과 함께 웃음을 짓게 한다.그리고 작가의 새로운 글쓰기의 시도들이 놀라웠고 그것이 결코 가벼워보이지않고 고급스럽게 아름다웠다.

단편들이 읽을수록 여운을 남기고 다시 읽고싶게 자꾸만
페이지를 만지작거리게 한다. 아껴가며 읽게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것은 그가 사랑한 화가 파울 클레의 작품들과 잘 어우러진 글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림과 글이 이질감없이 어울리고 책 자체를 고급스럽게 만들어준다. 사실 파울 클레의 그림도 처음이었지만 벤야민의 글이 또 그림을 돋보이게 한다. 참 잘 만들어진 책이라고 읽는 내내 생각했다. 내가 유독 좋아했던 첫 챕터 <꿈과 몽상>에 담긴 꿈과 달에 대한 글은 몇 번을 반복해서 읽게 했고 파울클레의 천사그림을 단번에 좋아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리워한 대상은 왜그렇게 알아볼 수 없을만큼
일그러져 있었던 것일까?
답: 꿈에서 내가 그 대상에 너무 가까이 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그 그리움, 아예 그리움의 대상안으로
들어가 있던 나를 엄습했던 그 그리움은, 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데서 비롯되어 대상을 그리는 마무리되는 그리움이 아니었다. 상상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 사이의 문턱을 이미 넘어서 있는 그리움. 그런 그리움은 이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 뿐이다. 그리운 사람은 이름 속에서 생명을 얻고 몸을 바꾸고 노인이 되고 청년이 된다. 이름 속에 형상 없이 깃든 그는 모든 형상의 피난처다."
-8너무나 가까운 중에서 (p51)

그의 글들을 읽으며 그를 애정하게 되었다. 불안한 삶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글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순간들, 그렇게
읽고 쓰고 고뇌했던 순간들,그의 짧은 생애가 무척이나 아쉽다. 글을 완성시키는 그림, 그림에 다시 생명력을 넣어주는 글들, 금방이라도 사라질까봐 흡입력있게 빠져든 정독의 시간이었다. 오래 간직하고싶은 고독의 이야기들이 내내 다정해진다.

"잘 됐군요. 하지만 그 이야기로 뭐가
증명된다는 겁니까?" -행운의 손 중(p287)
그러게 무엇이 증명될 수 있을까. 이렇게 읽어내는 책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증명받을 수 있을까?
"그 이야기로 뭐가 증명되든 말든,…"(p287)라고 답하는,
진정한 지성인다운 발터 벤야민의 사유의 글들,
오늘날 고독과 침묵의 시대에 새로운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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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에서, 나 홀로
우에노 지즈코 지음, 박제이 옮김, 야마구치 하루미 일러스트 / 청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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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의 삶,
그것도 산기슭에서
과연 가능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말한다.
“살아 있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해야지!”

한때 나의 이상이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들려오는 말이
'병원은?교육은?혼자일수록 도시에서 살아야돼'라는 말들.
도시생활도 버거웠지만 사실 도시를 떠난 생활도 용기가
나지 않았었다. 그것은 결코 낭만이 아니다.
가끔 TV에서 자연인의 삶을 본다. 그들의 사연도 다양했지만
그들의 마지막 선택의 용기가 대단하다. 자연속에서 생산해내는
그들의 몸의 흔적은 정말 아무나 할 수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작가는 과감히 도쿄를 떠나 산기슭에 집을 짓는다. 저자도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코로나로인해 도시를 떠나는 이들도 생겼고 무엇보다 도쿄의 열기를 견딜수
없었다고 한다. 오십대이고 처음이지만 그녀는 산기슭에서의
남겨진 삶을 이어가기로 한다. 그녀의 글은 결코 다크하지않다.
자연의 생명력만큼이나 강하면서도 생의 위트로 가득하다.
글속에 그림 삽화도 좋았지만 사진으로 그곳의 풍경을 직접 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작가는 두번째 삶을 산다.

산속마을 늦은 봄의 아름다움. 잎을 떨구며 점점 환해지는
가을 숲의 낙엽을 밟으며 걷는일. 겨울의 쨍하게 맑은 하늘과
바늘로 찌르는듯한 냉기도 그녀에게는 최고의 기쁨이 된다.
생활이 주는 불편도 삶의 힘듦과 문제도 사계절 자연과 함께
경험해본다. 그리고 그녀는 사방이 온통 책으로 쌓인 곳에서
읽고 쓴다. 자연에서 자라는 초간단해지는 음식과 다거점생활을
하며 소소하게 이웃들과 연대해간다. 그녀의 집은 온통 빛이들고 물론 와이파이도 되고 아직은 줌으로 일도한다. 가끔 운전면허 반납일과 (이글을 읽으며 살짝 미소가지어지기도,그치 반납일 얼마남지 않았지)나이많은 이웃을 보내야하는 고민도 있지만 지금자체로 충분히 괞을거라는 근거없는 답도 낸다.

근교의 소도시로 이사를하고 새롭게 남은 삶의 방향성을
세웠었다. 생산해보고싶은 먹거리와 자연을 충분히 즐기는것.
미니멀하게 주변을 축소시키고 계속해서 읽고 쓰는 행위와 함께
홀로를 연습해보는것. 왠지 작가의 책으로 공감과 위로를 얻는다.
산기슭으로 완전히 떠나지는 못했지만 계절을 충분히 느낄수 있는곳. 큰 건물이 없어서 시야가 가려지지 않은 자연풍경들.봄이 무척이나 기대되는 등산로와 작은 나의 텃밭도. 어쩌면 꽤 괜찮을거라는 근거없는 답을 내기도 한다.

그녀의 현재 가장 주된 관심사는
'나 홀로족이라도 사랑하는 호쿠토에서 마지막 날까지 보내기’다.

여성학자, 대학교수로 활동하며 많은 저작을 남겼지만 사적인 삶을 다룬 에세이는 쓰지 않았는데 20여년 동안 도쿄와 야쓰가타케 남쪽 기슭을 왕복하는 ‘두 집 생활’을 하며 이 경험을 써보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의 글에서 나오는 여유로운 시간과 말들, 그 따스한 문장들이 그렇게 나이들고 싶다는 생각을하게 된다. 남은 나의 삶은 좀 더 나로써 살아낼 수 있는 시간이기를 기대해 본다. 나만의 살고싶은 삶을 산다는 건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한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또한 오십대, 남은 시간은 내것이기를 기대하며 이 책을 가까이둔다. 또 어떤 선택을 할지 가만하 지켜본다.멀리까지 좋은책을 보내준 청미 출판사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 오랜 고마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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