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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 아래에서 ㅣ 세계 문학 단편선
기 드 모파상 외 지음, 정회성 외 옮김 / 다정한책 / 2025년 5월
평점 :
'봄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사랑을 조심하십시요.‘라는
문장 하나에 훅, 반해서 책을 받았다.
봄이라는 소재로 펼쳐지는 아홉편의 봄단편들,
익숙한 이름도 낯선 작가도 만나게 되는 봄,
생각보다 단편들이 단단하게 읽혀졌다.
읽으면서 ’봄‘이라는 단어를 찾게 되었고
마흔 한 번의 ’봄‘을 찿게 되었다.
-봄빛. 봄날, 봄바람, 봄 한 접시, 봄의 땅, 봄코트,
봄의 향기, 봄날저녁, 봄햇살, 4월의 소나기, 4월의 먼지…
소설속 봄은 삼월부터 사월.오월이 되고
헤세의 봄은 부활절로 쓰여지기도 한다.
(헤세는 왠지 자기경험적 소설같기도 한)
”삶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 만큼 또 많은 것을 요구하는 건 아닐까. 깊이 느끼고, 그것을 이해하고, 다시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결국 더 자주, 더 깊이 아프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삶이 주는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어떤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걸까.“
-수잔 글래스팰의 빛이 머무는 곳에서 중
봄이 말랑한듯 보이지만 때때로 봄은 격렬하게 심장을 할퀴고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순간의 상흔을 오래 간직하게도 한다.봄은 여전히 사랑이지만 짧은 봄처럼 이별을 발빠르게 불러들이기도 한다. 그 안심할 수 없는 봄의 음흉한 변덕스러움도 대가를 치르게 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는 봄을 조심해야 한다.
소설속에 나오는 모든 봄을 애정하게 되었다. 그만큼 작가들의
단편들이 단단하게 읽혔다. 모파상의 <봄날>, 오 헨리의 <봄 한 접시>, 다자이 오사무의 <벚나무와 휘파람>, 이디스 워튼의
<4월의 소나기>, 버지니아 울프의 <질문하는 여자들>, 헤르만 헤세의 <약혼>, 스콧 피츠제럴드의 <젤리빈>이 역시나 유명작가인만큼 글도 좋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짧은 글속에서도 여성작가로의 충분한 고뇌가 느껴졌다. 주고 받는 질문과 답은 여전히 존재하는 시대 속 페미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 중에서 새롭게 알게 된 작가 수잔 글래스팰의 <빛이 머무는 곳에서>가 가장 좋았다. 어쩌면 이 작가를 알기위해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유일하게 처음 만난 작가였는데,
유독 그의 문장들이 마음에 남았다. 12장속에 포스트잇도 가장 많이 붙인듯 했다. 칠십이 된 철학교수의 평생의 삶과 일치하는 그의 사유의 말들이 봄햇살처럼 따뜻하고 환하게 오래 심장으로 내려앉았다.
-어쩌면 5월은, 철학보다 더 깊이 삶을 이해하는 철학자인지도
모르겠다(p80)
-그의 삶은 종종 '외롭다'라는 말로 요약되곤 했다. 하지만 외로움 속에서도, 책과 일, 사유가 주는 온기 덕분에 마으미 얼어붙는 일은 없다.(p90)
-삶은 사람을 소진시킨다. 고귀한 목적이 아니라, 거칠고 냉정한 방식으로, 인간이 아무리 그럴듯한 의미를 덧 씌우려해도,결국 삶은 한 사람을 끝까지 사용하고, 더는 필요 없을 때 밀어내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정면으로 마주해야 되지 않을까. 아무리 넉넉햐 마음을 주었고, 아무리 기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도,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단 하나였다. "이제, 당신을 어떻게 치울 것인가?"(p91)
-책 속에서 애써 삶의 의미를 찾기보다 있는 그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그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책에서 얻는 깨달음이 주는 만족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지켜주는 건 그런 이론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의 결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p95)
-올곧은 지성과 흔들림 없는 품위를 위해 싸워 온 그의 세대역시 결코 헛된 길을 걸어온 게 아니었다. 만약 그들이 남긴 가치가 이 세상에 그레타 같은 사람 몇 명이라도 남겨둘 수 있었다면,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p99)
-그것은, 인생이라는 고독하고 거친 길도 결국은 평온한 들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조용한 깨달음이었다.(p102)
있어야할 때와 떠나야 할 때를 끊임없이 사유하고 사색하는 한 철학교수의 눈빛이 떠오른다. 젊은 세대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는 그의 지성과 품위가 돋보이는 글이었다. 그러한 지성인들과 스승이 절실히 필요하다 느끼는 요즘에 그의 소설의 문장들이 깊이 와닸는다. 그러한 스승밑에 그러한 제자가 있다는 것이, 저녁놀에 그 둘의 대화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작가의 또 다른 소설도 읽고싶어졌다.
<봄볕 아래에서>단편집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잘 구성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마지막 단편인 F스콧 피츠젤드의 <젤리빈>의 문장은 결코 마침표를 짓지 않는다. ‘4월의 먼지는……오래된 농담처럼 되풀이되던 지루한 오후는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이런 날씨 속에서는 어떤 일도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게 하찮아 보이는 무더운 날들을 견디다 보면,언젠가 지친 이마 위로 조용히 내려앉는 누군가의 손길 같은 시원한 하루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게 되는 법이다……그곳이라면,누구나 알고 있는 오래된 농담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틀림없이 있을 테니까.(239)
오래된 농담을 함께 나누는 것처럼
즐거히 읽은 늦은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