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웨이 부인 을유세계문학전집 142
버지니아 울프 지음, 손영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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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작가들중에는 그 얼굴이 담긴 표지만으로도 하나의 문학브랜드가 되는 이들이 있는다. 나에게는 프랑수아즈 사강, 수전손택, 마르그리트 뒤라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가 그렇다. 작가의 얼굴이 담긴 표지만으로도 읽어야겠다는 생각과 왠지 표지가 고급스럽게 와닿는다. 이번에 을유문화사에서 펴낸 [댈러웨이 부인] 또한 그랬다.  [댈러웨이 부인]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계속해서 문학의 정수가 되고 새롭게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삶이, 런던이, 6월의 이 순간이.
‘댈러웨이 부인은 꽃은 자기가 사오겠다고 말했다’를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파티를 위해 꽃을 사러가는 댈러웨이 부인의 하루의 시간이 담겨있다.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쓰여졌다는 이 소설은 댈러웨이 부인이 주인공인지 아니면 주변의 제 3의 인물들이 주인공인지 모를 정도로 많은 인물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장소도 수시로 바뀌고 인물도 사건도 수시로 바뀌면서 얽혀있다. 작가의 의식의 흐름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길을 잃을지도 모르지만 작가의 섬세한 의식의 물결은 살면서 무엇이 더 소중해지는지 어떻게 주변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지를 따뜻하게 전해준다.

댈러웨이 부인은 독감을 앓고 난 후, 파티를 위해 꽃을 사러가는 동안 더 주변을 바라보게 되고 기억을 새롭게 전환 시킨다. 갱년기를 지낸 52세의 클라리사는 일종의 삶의 전환기에 서 있게 된다.그녀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시간과 장소들, 그리고 현재 곁에 있는 주변인들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 버지나울프는 자신의 삶을 대변하듯 죽음과, 고독함과 젠더와 자살의 모습들이 계속해서 소설속에 오버랩 된다. 특히나 셉티머스라는 인물의 자살은 작가의 내면의 혼란스러움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듯하다. 그의 죽음의 의미를 살펴보며 죽음의 본질을, 타인에 대한 깊은 연민을 보이며 그 젊은이와의 일체감을 느낄정도로 가장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보여주고 그의 죽음을 누구보다도 깊이 애도한다.

“정말 바보같은 여자였어요.” 하지만 “멋진 세월을 보냈죠.” 
또 하나의 인물, 댈러웨이 부인의 지난 사랑, 피터 윌시의 시선으로 펼쳐지는 클라리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난 사랑이 본 기억들 속의 클라리사. 이제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 아이 다섯을 낳고 사는 파티의 주인공 댈러웨이 부인, 피터 윌시의 눈에 비치는 지난 사랑이 된 여인의 이야기는 오래 여운이 남는다. 그는 파티에 초대받기를 은근히 원하면서도  불편하기도 한 자리에 참석해 파티가 끝나는 순간까지 그녀를 관찰한다. 세월에 변할 수밖에 없는 사랑은 잠깐 속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황홀한 눈부심으로 남는다. 

소설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은 1923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약 4년이 지난 지점이었고, 전쟁 후반기부터 종전 직후에는 펜데믹으로 수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이 있었다. 댈러웨이 부인이 독감을 앓고 난 후 보여진 감정이 공감이 되기도 하며 소설속에 드러나는 전쟁의 폐허와 수많은 희생자들의 죽음은 계속해서 작가의 의식을 점령한듯도 보인다. 울프는 평생 우을증과 조울증, 두통과 불면, 환청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한 정신적 질병과의 싸움속에서도 울프는 오전의 글쓰기, 오후의 산책, 저녁의 독서를 엄격히 지켰다고 한다. 작가로서의 그녀의 삶은 여전히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세지가 크다는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된다. 그렇게 쓰여진 그녀의 아홉 권의 장편소설과 수십 편의 단편 소설, 에세이와 서평은 그녀의 표지에 올라온 모습만봐도 다시 읽게하는 매력이 있다.

’그 누구든 간에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을 완성하는 사람들을 심지어 장소들까지도 찾아내야 한다고, 그녀는 말 한 번 나눠 본 적 없는 사람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어떤 여자, 계산대 뒤에 있는 어떤 남자와 묘한 유대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나무나 헛간같은 것들과도. 그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맞물려 결국 초월적 이론으로 귀결되었다.‘p218

100주년 기념으로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된 [댈러웨이 부인]이 또 새롭게 익혀진다. 울프가 소중히 여겼던 것들에 대한 사유가, 섬세한 작가의 필체들이 좀 더 따뜻해지며 큰 울림마저 준다. 그녀가 써낸 문장들은 내 의식의 흐름을 건드리며 단단하게 흘러가도록 주춧대역활을 한다. 이것이 또한 고전의 힘인듯 하다. 울프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소설들,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은 내내 나를 새로운 고전의 세계로 이끈다. 늘 부단히 새롭게 고전을 출판해 주시는 분들께 그 깊은 노고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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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장미
온다 리쿠 지음, 김예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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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신 문장]
“시들지 않는 장미는 과연 아름다울까. 시들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그것은 종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조화와 무엇이 가를까.”

리드비 블라인드 서평단에서 내가 고른 문장이다. 제목은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고 쓰여진 문장중에서 하나를 택하면 문장이 들어있는 책을 받는 것이다. 책을 받는 순간 핑크의 표지가 확 들어오며 제목이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평소에 잘 선택하지 않는 화려한 제목과 표지였다. 내가 [온다리코]의 책을 읽었던 적이 있을까? 작가에 대해 빠르게 검색해 보았다. 일본 작가로 나오키상, 서점대상증 수상경력이 화려했다. 장르는 주로 SF, 판타지, 미스터리, 호러, 로맨스,청춘소설등 늘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다는 작가의 장르가 꽤나 폭이 넓다. 작가는 한 해 300여편의 도서를 정독한다고 한다. [어리석은 장미]는 데뷔 30주년을 앞둔 21년에 잡지 연재를 시작으로 무려 14년만에 완결한 역작이라고 한다. 뱀파이어와 SF세계관이 결합된 6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로 작가 스스로 큰 만족감을 가졌다고 한다.

장소는 이와쿠라마을, 축제를 앞두고 아이들이 캠프에 참가한다. 이곳은 아주 특별한 공간, 우주의 비밀이 숨겨져 이어온 곳이다. 아이들은 이곳에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모여든다. 그것은 외해로 나가는 배를 타는 허주승선원이 되고싶은 것이다. 허주승선원의 자격은 까다롭다. 뱀파이어처럼 피먹임을 하면서 변질의 시간을 이루어야 한다. 지구는 결국 태양에 먹힐것이고 인류는 더이상 지구위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은 인류를 옮길 새로운 공간을 찾아 떠나야 한다. 그일을 할 수 있는 존재가 허주 승무원인 것이다. 외해는 끝엇이 어둡고 고독한 공간이다. 아무리 쓸쓸하고 아무리 괴로워도 배를 타고 떠나야 하는 사명을 지닌 아이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 도착하게 될지 그렇게 떠났다가 사랑하는 기억의 공간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지 누구도 답을 줄 수 없다.

”외해에서는 우리는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고독을 맛보게 됩니다. 상하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그 누구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아요. 멀리 떨어진 지구에서 들려오는 메세지, 노래, 음악만이 유일한 소식이죠. 과거에서 들리는 빛과 신호를 어둡기만한 외해에서, 캄캄한 배 안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며 또 기다리면서 우리는 멀리 나아갑니다.“(125p)

우주에 닿기위해 피를 탐하며 변질을 기다리는 아이들,
변질하기 위해서는(어떠한 모습으로 변질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뱀파이어처럼 피먹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피를 먹는 아이와 피를 제공하는 아이들의 모호하고 불확실성한 관계들속에서 아이들의 비밀스런 세계가 그로데스크하게 펼쳐진다. 숙명처럼 떠안고 태어난 이와쿠라 아이들, 그리고 지구에서 태어난 자의 사명으로 멸망하는 인류를 위해 봉사해야하는 아이들의 갈등, 그렇게 책은 압도적인 고독과 압도적인 우주적 시각을 풀어놓는다. 외해의 길을 먼저 걸어간 부모의 길을 숙명처럼 떠안고 참여하게되는 나치, 그러나 피먹임이라는 과정을 받이들이고 인정할 수 없는 나치, 그러한 나치를 위해 기꺼이 피제공자가 되어주는 후카시, 순혈종으로 이미 변질체가 되어 참가한 아마치, 그리고 피먹임을 통해 빠르게 변질체가 되는 친구 유이. 빠르게 전개되는 그들의 운명의 시간들이 읽는이로 하여금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어리석은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 영원히 지지 않고 계속 피어있다. 자신의 생명이 이미 끝났다는 사실도 모른채, 어리석기 때문에 시들지 않는다.‘<p308>

일본소설은 어디로 어떻게 펼쳐질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그들의 문학은 폭이 넓고 극대화된 세계관은 미치도록 다양하고 새롭다. 끝없는 문장들은 질서정현하면서도 굉장히 우주적이다. 작은 마을 이와쿠라로 시작해서 외해라는 끄업ㄷ는 우주공간으로 끝없이 뻗어나간다. 지구라는 인류의 사랑하는 공간은 태양에 집어삼켜저 사라질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인류를 옮겨 새롭게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염원하게 된다. 인간의 의식은 무한히 꿈을 꾼다. 그것은 비논리와 윤리적인것을 떠나 그저 존재하고 싶은 열망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내내 어떠한 의문을 품게한다. 주인공 나치도 허락하고 싶지않은 것들이 존재한다. 괴물이 되고 싶지 않다. 아이들은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 어떠한 선택이든 우리는 그것을 수용하게 되지 않을까싶은, 끝내 풀어내야할 그래서 답을 얻고싶은 열린 결말을 떠안게 된다.

#어리석은장미 #온다리쿠 #리드비 #서평단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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횔덜린의 광기 - 거주하는 삶의 연대기 1806~1843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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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시인의 광기>라는 것에 호기심을 느껴서였다. 그가 시인이었다는 것 외에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한다. 순전히 ‘광기‘라는 단어에 매혹되었고 시인의 광기로 점철된 후기의 ’거주’하는 삶이 흥미를 끌었다. 36년을 네카 강변의 탑에 거주한 시인, 누군가는 미쳤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미친시인이라고도 한다. 그의 후기의 삶을 재조명하며 광대하게 자료를 모은 작가 조로조 아감벤을 통해 횔덜린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아감벤은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한 고립된 상황속에서 거의 1년간을 횔덜린과 살면서 그를 새롭게 찾기 시작했다. 힐덜린은 탑속에서 ’도서관 사서‘라고 불리는 데 집착하고 방문객들에게 ‘폐하‘, ‘각하‘,’전하’와 같은 칭호를 고집스레 사용하면서 은둔의 생활을 이어간다. 그는 거의 인간관계를 멀리하고 의례적인 인사말로 맞았다. 그가 온갖 경칭을 쓴다는 것은 ‘제발 저를 내버려두십시오’라는 뜻이었다. 작가는 이러한 횔덜린을 보며 ‘거주하는 삶’, ‘거주하는 존재로서의 삶’을 재발견 한다. ’거주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거주한다는 것은 특정한 존재 양식을 반복적이고 강화된 방식으로 ’가지고 있는 삶‘, 즉 스스로 결정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지는 삶이다. ‘습관적인 삶’은 자기 자신과 세계 전체와의 관계안에서 고유한 방식의 연속성과 응집성을 지닌 삶, 특별한 장소에 특별한 방식으로 거주하는 행위 자체에서 자기 자신에게 영향을 받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존재하게 하거나 소유할 수 없다. 오직 자기안에 거주할 뿐이다.


그는 17세부터 시를 썼다.(거의 천재적인 느낌) 그의 어머니는 그를 임신하면서부터 성직자가 되기를 기도했고, 그는 잠시 성직자의 길을 가지만 끝내 돌아선다. 정신병원에서 그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들은 냉기가 돌정도로 너무나도 간결하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반어적인 마음이 들어있는듯 했다.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냉혹한 인간조차 자연스레 지배받는 법칙조차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쓰여있다.이 책에는 그의 전기는 자세히 기록되어있지 않다.그러나 가정의 불화, 사랑의 실패로 받은 고통은 후기의 그의 방대한 기록물들 속에 녹아있고, 그가 어떠한 삶을 살기를 원했는지를 보여준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에 횔덜린의 ’거주하는 삶‘의 연대기 서술이 특별하면서도 재미있게 읽혀졌다. 괴테와의 같은 시기의 연대기는 서로의 삶의 방향성을 여실히 대비시켜 보여준다. 괴테의 얘기를 전혀 하지않았다는 횔덜린의 이야기가 흥미로울만큼 서로의 삶의 길은 달랐다. 작가는 이 부분을 책장의 좌우로 왼쪽지면에는 괴테의 일기를 중심으로 하는 소유적 삶의 세계를 오른쪽 지면에는 횔덜린의 시적 거주자로서의 삶의 세계를 기록해서 그 둘의 삶을 대비시킨다. 이분법으로 나뉘다시피한 현 세대에서 우리가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넌지시 일러주는듯 했다.

아감벤은 횔덜린이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와 그를 아는 후원자와 주변인들의 기록과 일기, 그리고 여러 메모들을 책속에 집어넣었다. 모든 세세한 기록물의 나열이 재미있게 읽혀진다. 더 재미있었던건 병원측에서 발행한 청구서 목록들이었다. 그 안에는 옷과 신발의 수선비, 뜨게양말가격, 실값, 코담배, 와인가격까지 한 조각도 버릴 수 없는 일상의 기록물들이 들어있다. 광기라는 시간속에서 그는 여전히 시를 썼고 피아노를 치고 산책을 즐겼다.그의 마지막 시로 여겨지는 부분과 마지막 기록물이 되는 그의 죽음의 기록을 읽어본다.

인간의 거주하는 삶이 저 멀리 사라져버리고
포도 넝쿨의 시간이 저 멀리서 빛날 때,
여름의 텅 빈 들판도 그곳에 함께 있고,
숲은 어두운 모습으로 나타나네.
-그의 마지막 시로 여겨지는 [전망]중에서


*프리드리히 횔덜린. 사서. 시인.
약 40년간 정신 이상 상태
출생일 및 나이: 1770년 3월 29일. 향년73세
사인: 폐질환
사망일: 6월7일 밤 10시 45분, 6월 10일 10시 안장

횔덜린의 삶이 실패로 보이는가? 우리는 삶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어야 될까? 이성/광기, 성공/실패, 공/사, 비극/희극. 같은 이분법적 사고들이 유연해지지 않는가? 힐덜린에게 ’거주하는 삶‘은 “ 인간은 이 지상에서 시적으로 거주한다”는 그의 명제처럼 ’시적인 삶‘이다.시적으로 거주하는 삶이란 우리가 주체적으로 구성하고 통제하는 삶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지고 구술되는 대로 살아가는 삶인 것이다. 우리는 이 삶을 소유할 수 없으며, 단지 그 안에 ‘거주‘할 수 있을 뿐이다. 아감벤은 사회전체의 광기에 비하면 횔덜린의 광기는 차라리 무해한 광기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거주하고 있는가? 지금’거주’의 자리는 어느정도로 무해하고 ‘시적일 수 있을까‘ 황폐해지는 정신의 세계에 또 하나의 큰 울림을 준다. 죽음직전까지 시를 놓지않고 폐허가 되는 정신속에서도 시를 썼던 시인의 ’거주‘가 끝없이 우주속에 이방인 같은 그의 존재가 현 시대의 살아가는 고독하고 쓸쓸한 존재들에게 깊은 위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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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의 눈
토마 슐레세 지음, 위효정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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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사는 열 살 소녀 모나, 어느날 식탁에 앉아 숙제를 하던 중,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 현상을 겪는다.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며 모든 사물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된다. 그것은 일시적인 순간이었지만 어쩌면 시력을 완전히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된다. 모나의 부모는 병원을 찿고 수많은 치료끝에 심리적인 문제일 수 있다며 의사는 정신과 상담을 받기를 권한다. 그러나 모나의 할아버지 앙리는 시력을 잃을 위기에 처한 모나를 데리고 세상의 가장 아름답고 인간적인 것을 보여주기위한 또다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은 미술관여행으로 일주일에 하루는 미술관을 방문해서 오래 작품을 보는 것이다. 그것도 한 작품을 선택해서 오래 바라보고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정을 가져보고 싶은것이다.

—앙리는 유년시절이 단지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으레 천박하고 추악한 사물들로 채워진다는 가슴 아픈 사실을 확인했다. 모나도 이 법칙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름다움, 진정한 예술적 아름다움은 아이의 일상에 은근슬쩍 겨우 틈입해 있을 뿐이다. (…) 아이의 눈이 영영 멀게 된다면 아이 기억의 영역 속에는 저 번쩍번쩍하고 경박한 물건들의 추억만 남을 것이다. 암흑 속에서 평생을 보내면서, 추억의 도피구도 없이, 세상이 만들어낸 최악의 것들만 머릿속에서 조합하며 살아간다고?그럴수는 없다. 끔직한 일이다.<p29>

모나와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 한결같이 미술관으로 가서 작품 하나를 단 하나의 작품을 바라본다. 색과 선이 펼쳐내는 무한한 아름다움과 그림속에 가려진 의미를 나누며 예술의 진정한 아름다움속에서 교감을 나누게 된다. 그들은 파리의 3대 미술관인 르브르를 시작으로 오르세,보부로로 확장을 시켜나간다.  그렇게 작품을 통해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정립해 나가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것은 어린 손녀 모나를 위한 시간이었지만, 그것을 읽는 우리에게 예술가의 삶을 통한 고유하고 명징한 삶의 메세지를 들려준다. 그렇게 한 작품 한 작품의 깊이가 진부하지않은 ( 늘 듣던것이 아닌) 또 다른 시선을 갖게하고 새롭게 발견되는 이미지는 놀라운 느낌으로 다가서게 한다. 그것이 이 책의 큰 울림인듯 하다.

“모나야 우리는 둘이서 매주 미술관에 와서 작품 한 점을 볼 거야. 딱 한점, 더는 말고 우리 주위에 있는 이 사람들은 한 번에 전부를 삼키고 싶어하겠지. 욕심을 어떻게 다룰지 몰라서 갈피를 잃는 거야. 우리는 훨씬 더 지혜롭게, 훨씬 더 분별있게 해보자. 딱 한 작품을 볼거야. 일단 아무말도 않고, 최대한 오랫동안, 그런 다음 그 작품에 대해 얘기를 해보는 거야.”<p38>

작가 토마 슐레세는 프랑스의 미술학자라고 한다. 약 20년간 미술사를 가르쳤고, 19~20세기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연구, 집필하며 예술계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두번 째 장편 소설인 [모나의 눈]은 2025년도 프랑스의 출판문화상인 ‘토로페 데 레세디옹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고, 세계 최대규모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관에서 화제작으로 소개되며 판매 수량이 전부 품절되기도 했다고 한다. 예술이 인간의 삶에 진정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작가의 깊이있는 가치관의 해석이 여실히 드러난 작픔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책이나 영화는 언제나 슬픔과 불행이 있는데, 그걸 잘 엮어서 얘기하면 아름다워져요……”<p87>
“앙리는 오직 삶의 경험만이 그 가운데서 중용을 찾게 해준다는 사실을 똑똑이 알고 있었다. <p102>

인간 기피자였던 인간을 싫어하지 않으려고 인간과 가까이 지내는 일을 피한다고 말하곤 했다던 낭만주의화가 프리드리히의 <까마귀들이 있는 나무>속의 그림을 뒤집어서 봐야 발견하는 무덤과 까마귀들의 풍경이 유독 좋아졌고, 노란색을 열정적인 광기처럼 강박처럼 사용했다는 터너의 작품 < 배경에 강과 만이 있는 풍경>을 색다르게 느껴졌다. 작품활동 내내 금지사항을 보란듯이 어겼던 쿠르베의 작품들, 당시에 변장허가서를 내야만 바지를 입을 수 있다는 시대에 시가를 물고 바지를 입었던 포뇌를, 버지니아울프의 어머니 초상화를 찍은 캐머린의 이야기등은 너무도 흥미롭게 읽게 되었다. ‘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 그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빛을 발한다고 말해주는 마네의 작품과 복잡한 독해, 박식한 해석, 대단한 암호풀이, 수백개의 가설이 아니어도 충분히 아름다움을 들려주는 모네는, 조금 벗어나도 괜찮다고 조금 떨어져 나가도 괜찮다고 들려주는 드가의 작품은 이미 생의 숭고한 의미를 들려쥰다. 여기에 현기증을 정착시키는 고흐는 너무도 아름답게 공감과잉을 불러일으킨다. 침묵속에서 항상 끈질기게 그려던 화가하머스호이의 <휴식>은 오래 오래 나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자연을 거쳐 루브르에 가고, 
루브르를 거쳐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p595>
모나의 시력을 잃을뻔한 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신체적문제일까 아니면 심리적인 문제였을까? 뒷장으로 갈수록 작품에 대한 글들이 아름답고 모나의 지난 기억들속에 한 인물이 등장한다. 모나가 사랑했던 사람, 그러나 결국 다른 세상으로 보낼수 밖에 없었던 상실의 경험, 그렇게 아픈 상실을 겪어내야 하는 열 살 소녀는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 앙리는 ”위험에 맞서라“고 말한다. 모나는 그토록 억눌렸던 눈물, 성장하면 순순히 마르게 하는 법을 배우는 눈물을 쏟아냈고 검댕, 부스러기, 잿가루를 완전히 씻어냈다. 유년기를 잃어버리면서 유년기가 무엇이었는지  배우고, 그러면서 모든 것을  항시적으로 잃을 것임을 배운다. 성장이란 획득한 것을 쌓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있다. 내 주변의 사물을 살펴본다. 그것은 계속해서 그곳에 쌓여가는 것들이 아니라는것을 배운다. 어떠한 것이든 사라질 수 있다는것을 배운다. 그러할 때 곁에 남는것은 무엇일까? 세상에는 간직해야할 책들이 너무 많다. 오래 읽으며 곁에 두고 끊임없이 나를 수선하고 재정립나가는 시간들이다. 그것은 결코 끝이나지 않는 오랜 생의 작업인듯  하다. 요즘도 절실히 느낀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속에서 우리는 가끔 길을 잃는다. 지금까지 세워온 것들이 어느 순간 사라질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물질일수도, 사람일수도, 건강일수도 있다. 그래서 때때로(어느땐 발작적으로)불안감을 느낄때가 있다. 그러한 위험에 당당히 맞서기위해 오늘도 나는 문학을 찾는다. 오래 곁에 두고 읽어도 좋을 책이다. 작품들이 스르륵 스치고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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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그리고 치유 - 슬픔을 건너는 매일 명상
M. W. 히크먼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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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조앤 디디온 의 <상실>이후,
또 다른 상실의 치유서가 된,
M. W. 히크먼의 《상실 그리고 치유》

내가 좋아하는 단어중 하나가 <상실>이라는 단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내 삶에 있어서 계속적인 의문이었고, 치유를 이루고싶은 희망이기도 했다. 살면서 사랑을 잃은적이 없는 삶이 있을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적이 없는이가 과연 있을까. 상실은 우리의 삶에 끊임없이 계속되고,그 상실의 늪은 우리의 시간을 끝없는 막연한 슬픔에 빠져들게 한다. 상실, 그 이후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치유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까.

M. W. 히크먼의 《상실 그리고 치유》는 1994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이후 2001년 9‧11 테러 이후 상실의 충격과 슬픔에 빠진 미국 독자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고 한다. 출간 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감동적인 후기가 올라오는 등 상실의 슬픔으로 힘겨워하는 사람에게 꾸준히 최고의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저자인 N.W 히크먼 역시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후 극심한 슬픔 속에서 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콜로라도 산맥에서 휴가를 즐기던 어느 화창한 여름날, 그녀의 딸은 낙마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 슬픔을 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온전한 삶을 찾았다고 느꼈을 때, 자신과 같은 아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 또한 큰 상실을 겪었다. 사랑하는 오빠 둘을 먼저 보내고, 아버지를 보내드렸다. 시간이 걸린 이별도 있었지만 갑자기 보낼수밖에 없는 이별도 있었다. 오래도록 그 <상실>의 슬픔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현재도 여전히 그러하지만)상실은 그렇게 우리의 일상에서 문득문득 생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시간을 주저 앉히곤 한다. 그때 만났던 책이 조앤디디온의 <상실>이었고, 그 책은 나에게 글을 쓰게 만들었다. 상실의 기억을 초단위로 기록했던 작가의 그 오랜 슬픔의 시간을 읽으며, 나 또한 그 상실의 기억들읕 꺼내어보곤 했다.

그 책이 상실을 드러내주었다면 그 이후의 상실을 넘어서게하는 치유의 시간을 도어 주는건 히크먼의 <상실 그리고 치유>가 아닌가싶은 생각이든다. 히크먼의 책은 심리학서적이나 이론서가 아니다. 이 책은 상실에 대한 365개의 명언과 조언들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슬픔 이후 찾아오는 여러 순간에 대한 적절하면서도 실용적인, 종종 감동적인 방법들이 담겨 있다. 그래서 섣불리 가르치려 하지 않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잔잔히 상실속으로 스며들게되고 그저 작가 자신이 직접 겪은 슬픔을 거치며 얻은 깨달음을 조용히 들려준다.

우리는 상실의 늪을 건널 수 있을까? 누군가의 상실을 우리는 다 위로할 수 있을까?히크먼은 이 모든 상황에 완벽한 정답은 없다는 것을 겸허히 인정한다. 다만 딸을 잃은 아픔을 겪은 사람으로서 독자의 슬픔과 함께한다. 그러한 내밀한 속삭임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 그리고 페이지마다 기록해놓은 상실에 대한 명언들이 깊은 위로를 전한다.

-당신은 회복할 수 없겠지만,(…)언젠가 이 견디기 힘든 불행은 두 번 다시 당신을 떠나지 않을 존재에 대한 추억이 될 것이다.(지금은 이런 생각만 해도 끔직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의 불행한 마음으로는 이런 약속을 믿기 어렵다. -마르셀 프루스트

강렬하지 않지만 따뜻하게 누군가의 호흡을 듣고 싶다면, 교훈적이지 않고 설명적이지 않은 스치듯 섬세한 누군가의 위로의 말을 듣고싶다면, 조용히 권하고 싶습니다. 여전한 상실의 슬픔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첫 페이지부터 읽으셔도 되지만 침대 머리맡에 두고 문득 슬픔이 차오를때, 어느 페이지든 열어보세요. 잠들기 어려운 늦은 하루가 조금은 위로가 될 듯 합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조금씩 천천히 스미는 글들이 우리를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으리라 믿어봅니다. 그렇게 수없는 날이 지나다보면 우리도 어느덧 떠난 존재가 추억이 되는 그런 하루가 어쩌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어느 하루가 닿기를 멀리서나마 기도합니다. 오늘도 치유의 하루가 저물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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