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의 눈
토마 슐레세 지음, 위효정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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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사는 열 살 소녀 모나, 어느날 식탁에 앉아 숙제를 하던 중,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 현상을 겪는다.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며 모든 사물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된다. 그것은 일시적인 순간이었지만 어쩌면 시력을 완전히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된다. 모나의 부모는 병원을 찿고 수많은 치료끝에 심리적인 문제일 수 있다며 의사는 정신과 상담을 받기를 권한다. 그러나 모나의 할아버지 앙리는 시력을 잃을 위기에 처한 모나를 데리고 세상의 가장 아름답고 인간적인 것을 보여주기위한 또다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은 미술관여행으로 일주일에 하루는 미술관을 방문해서 오래 작품을 보는 것이다. 그것도 한 작품을 선택해서 오래 바라보고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정을 가져보고 싶은것이다.

—앙리는 유년시절이 단지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으레 천박하고 추악한 사물들로 채워진다는 가슴 아픈 사실을 확인했다. 모나도 이 법칙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름다움, 진정한 예술적 아름다움은 아이의 일상에 은근슬쩍 겨우 틈입해 있을 뿐이다. (…) 아이의 눈이 영영 멀게 된다면 아이 기억의 영역 속에는 저 번쩍번쩍하고 경박한 물건들의 추억만 남을 것이다. 암흑 속에서 평생을 보내면서, 추억의 도피구도 없이, 세상이 만들어낸 최악의 것들만 머릿속에서 조합하며 살아간다고?그럴수는 없다. 끔직한 일이다.<p29>

모나와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 한결같이 미술관으로 가서 작품 하나를 단 하나의 작품을 바라본다. 색과 선이 펼쳐내는 무한한 아름다움과 그림속에 가려진 의미를 나누며 예술의 진정한 아름다움속에서 교감을 나누게 된다. 그들은 파리의 3대 미술관인 르브르를 시작으로 오르세,보부로로 확장을 시켜나간다.  그렇게 작품을 통해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정립해 나가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것은 어린 손녀 모나를 위한 시간이었지만, 그것을 읽는 우리에게 예술가의 삶을 통한 고유하고 명징한 삶의 메세지를 들려준다. 그렇게 한 작품 한 작품의 깊이가 진부하지않은 ( 늘 듣던것이 아닌) 또 다른 시선을 갖게하고 새롭게 발견되는 이미지는 놀라운 느낌으로 다가서게 한다. 그것이 이 책의 큰 울림인듯 하다.

“모나야 우리는 둘이서 매주 미술관에 와서 작품 한 점을 볼 거야. 딱 한점, 더는 말고 우리 주위에 있는 이 사람들은 한 번에 전부를 삼키고 싶어하겠지. 욕심을 어떻게 다룰지 몰라서 갈피를 잃는 거야. 우리는 훨씬 더 지혜롭게, 훨씬 더 분별있게 해보자. 딱 한 작품을 볼거야. 일단 아무말도 않고, 최대한 오랫동안, 그런 다음 그 작품에 대해 얘기를 해보는 거야.”<p38>

작가 토마 슐레세는 프랑스의 미술학자라고 한다. 약 20년간 미술사를 가르쳤고, 19~20세기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연구, 집필하며 예술계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두번 째 장편 소설인 [모나의 눈]은 2025년도 프랑스의 출판문화상인 ‘토로페 데 레세디옹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고, 세계 최대규모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관에서 화제작으로 소개되며 판매 수량이 전부 품절되기도 했다고 한다. 예술이 인간의 삶에 진정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작가의 깊이있는 가치관의 해석이 여실히 드러난 작픔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책이나 영화는 언제나 슬픔과 불행이 있는데, 그걸 잘 엮어서 얘기하면 아름다워져요……”<p87>
“앙리는 오직 삶의 경험만이 그 가운데서 중용을 찾게 해준다는 사실을 똑똑이 알고 있었다. <p102>

인간 기피자였던 인간을 싫어하지 않으려고 인간과 가까이 지내는 일을 피한다고 말하곤 했다던 낭만주의화가 프리드리히의 <까마귀들이 있는 나무>속의 그림을 뒤집어서 봐야 발견하는 무덤과 까마귀들의 풍경이 유독 좋아졌고, 노란색을 열정적인 광기처럼 강박처럼 사용했다는 터너의 작품 < 배경에 강과 만이 있는 풍경>을 색다르게 느껴졌다. 작품활동 내내 금지사항을 보란듯이 어겼던 쿠르베의 작품들, 당시에 변장허가서를 내야만 바지를 입을 수 있다는 시대에 시가를 물고 바지를 입었던 포뇌를, 버지니아울프의 어머니 초상화를 찍은 캐머린의 이야기등은 너무도 흥미롭게 읽게 되었다. ‘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 그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빛을 발한다고 말해주는 마네의 작품과 복잡한 독해, 박식한 해석, 대단한 암호풀이, 수백개의 가설이 아니어도 충분히 아름다움을 들려주는 모네는, 조금 벗어나도 괜찮다고 조금 떨어져 나가도 괜찮다고 들려주는 드가의 작품은 이미 생의 숭고한 의미를 들려쥰다. 여기에 현기증을 정착시키는 고흐는 너무도 아름답게 공감과잉을 불러일으킨다. 침묵속에서 항상 끈질기게 그려던 화가하머스호이의 <휴식>은 오래 오래 나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자연을 거쳐 루브르에 가고, 
루브르를 거쳐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p595>
모나의 시력을 잃을뻔한 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신체적문제일까 아니면 심리적인 문제였을까? 뒷장으로 갈수록 작품에 대한 글들이 아름답고 모나의 지난 기억들속에 한 인물이 등장한다. 모나가 사랑했던 사람, 그러나 결국 다른 세상으로 보낼수 밖에 없었던 상실의 경험, 그렇게 아픈 상실을 겪어내야 하는 열 살 소녀는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 앙리는 ”위험에 맞서라“고 말한다. 모나는 그토록 억눌렸던 눈물, 성장하면 순순히 마르게 하는 법을 배우는 눈물을 쏟아냈고 검댕, 부스러기, 잿가루를 완전히 씻어냈다. 유년기를 잃어버리면서 유년기가 무엇이었는지  배우고, 그러면서 모든 것을  항시적으로 잃을 것임을 배운다. 성장이란 획득한 것을 쌓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있다. 내 주변의 사물을 살펴본다. 그것은 계속해서 그곳에 쌓여가는 것들이 아니라는것을 배운다. 어떠한 것이든 사라질 수 있다는것을 배운다. 그러할 때 곁에 남는것은 무엇일까? 세상에는 간직해야할 책들이 너무 많다. 오래 읽으며 곁에 두고 끊임없이 나를 수선하고 재정립나가는 시간들이다. 그것은 결코 끝이나지 않는 오랜 생의 작업인듯  하다. 요즘도 절실히 느낀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속에서 우리는 가끔 길을 잃는다. 지금까지 세워온 것들이 어느 순간 사라질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물질일수도, 사람일수도, 건강일수도 있다. 그래서 때때로(어느땐 발작적으로)불안감을 느낄때가 있다. 그러한 위험에 당당히 맞서기위해 오늘도 나는 문학을 찾는다. 오래 곁에 두고 읽어도 좋을 책이다. 작품들이 스르륵 스치고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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