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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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발터 벤야민의 책 출간소식을 보고
제목과 표지,추천글에 반해버려 서평신청을 했다.
새롭게 알게되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고
처음이지만 읽어보고싶은 끌림이 좋았다.
검색해보니 작가는 철학서나 문예비평등에 사실 더
유명했고 그가 출간한 소설은 한권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 국내 초역으로 엘리출판사에서 유일하게 작가의
문학작품집을 출간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출간소식이 의미있고 소장의 가치는 충분한듯 했다.

발터 벤야민은 독일출신 유대계 언어철학자, 문예학자,
비평가,번역가로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는 교수자격취득
논문 [독일 비애극의 원천]으로 독일 교수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재야로 밀려나게 된다. 그는 좌파 아웃사이더‘
지식인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1940년 미국으로 망명하는
도중 프랑스-스페인 국경통과가 좌절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고독의 이야기]는 발터 벤야민의 문학적 테마가
담긴 글들을 묶은 책으로 그의 유일한 문학작품집이 된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그가 끊임없이 장소를 옮겨다니며
불안정한 생활속에서 쓴 글로 어느 글은 메모처럼 짧기도하고 어느 글은 흩어진 파편처럼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기도 했다. 읽기 쉽게 편집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쉽게 읽어나갈 수 없는 묵직한 사유가 존재한다. 이야기는 꿈과 환상, 여행, 놀이와 교육론의 3부로 나누어져있다. 이야기속에 이야기가 존재하는 듯 인용구들과 수수께끼 같은 글들은 단번에 풀어내지 못하지만 곱씹어 다시 읽으면 경괘한 답과 함께 웃음을 짓게 한다.그리고 작가의 새로운 글쓰기의 시도들이 놀라웠고 그것이 결코 가벼워보이지않고 고급스럽게 아름다웠다.

단편들이 읽을수록 여운을 남기고 다시 읽고싶게 자꾸만
페이지를 만지작거리게 한다. 아껴가며 읽게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것은 그가 사랑한 화가 파울 클레의 작품들과 잘 어우러진 글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림과 글이 이질감없이 어울리고 책 자체를 고급스럽게 만들어준다. 사실 파울 클레의 그림도 처음이었지만 벤야민의 글이 또 그림을 돋보이게 한다. 참 잘 만들어진 책이라고 읽는 내내 생각했다. 내가 유독 좋아했던 첫 챕터 <꿈과 몽상>에 담긴 꿈과 달에 대한 글은 몇 번을 반복해서 읽게 했고 파울클레의 천사그림을 단번에 좋아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리워한 대상은 왜그렇게 알아볼 수 없을만큼
일그러져 있었던 것일까?
답: 꿈에서 내가 그 대상에 너무 가까이 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그 그리움, 아예 그리움의 대상안으로
들어가 있던 나를 엄습했던 그 그리움은, 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데서 비롯되어 대상을 그리는 마무리되는 그리움이 아니었다. 상상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 사이의 문턱을 이미 넘어서 있는 그리움. 그런 그리움은 이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 뿐이다. 그리운 사람은 이름 속에서 생명을 얻고 몸을 바꾸고 노인이 되고 청년이 된다. 이름 속에 형상 없이 깃든 그는 모든 형상의 피난처다."
-8너무나 가까운 중에서 (p51)

그의 글들을 읽으며 그를 애정하게 되었다. 불안한 삶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글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순간들, 그렇게
읽고 쓰고 고뇌했던 순간들,그의 짧은 생애가 무척이나 아쉽다. 글을 완성시키는 그림, 그림에 다시 생명력을 넣어주는 글들, 금방이라도 사라질까봐 흡입력있게 빠져든 정독의 시간이었다. 오래 간직하고싶은 고독의 이야기들이 내내 다정해진다.

"잘 됐군요. 하지만 그 이야기로 뭐가
증명된다는 겁니까?" -행운의 손 중(p287)
그러게 무엇이 증명될 수 있을까. 이렇게 읽어내는 책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증명받을 수 있을까?
"그 이야기로 뭐가 증명되든 말든,…"(p287)라고 답하는,
진정한 지성인다운 발터 벤야민의 사유의 글들,
오늘날 고독과 침묵의 시대에 새로운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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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에서, 나 홀로
우에노 지즈코 지음, 박제이 옮김, 야마구치 하루미 일러스트 / 청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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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의 삶,
그것도 산기슭에서
과연 가능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말한다.
“살아 있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해야지!”

한때 나의 이상이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들려오는 말이
'병원은?교육은?혼자일수록 도시에서 살아야돼'라는 말들.
도시생활도 버거웠지만 사실 도시를 떠난 생활도 용기가
나지 않았었다. 그것은 결코 낭만이 아니다.
가끔 TV에서 자연인의 삶을 본다. 그들의 사연도 다양했지만
그들의 마지막 선택의 용기가 대단하다. 자연속에서 생산해내는
그들의 몸의 흔적은 정말 아무나 할 수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작가는 과감히 도쿄를 떠나 산기슭에 집을 짓는다. 저자도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코로나로인해 도시를 떠나는 이들도 생겼고 무엇보다 도쿄의 열기를 견딜수
없었다고 한다. 오십대이고 처음이지만 그녀는 산기슭에서의
남겨진 삶을 이어가기로 한다. 그녀의 글은 결코 다크하지않다.
자연의 생명력만큼이나 강하면서도 생의 위트로 가득하다.
글속에 그림 삽화도 좋았지만 사진으로 그곳의 풍경을 직접 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작가는 두번째 삶을 산다.

산속마을 늦은 봄의 아름다움. 잎을 떨구며 점점 환해지는
가을 숲의 낙엽을 밟으며 걷는일. 겨울의 쨍하게 맑은 하늘과
바늘로 찌르는듯한 냉기도 그녀에게는 최고의 기쁨이 된다.
생활이 주는 불편도 삶의 힘듦과 문제도 사계절 자연과 함께
경험해본다. 그리고 그녀는 사방이 온통 책으로 쌓인 곳에서
읽고 쓴다. 자연에서 자라는 초간단해지는 음식과 다거점생활을
하며 소소하게 이웃들과 연대해간다. 그녀의 집은 온통 빛이들고 물론 와이파이도 되고 아직은 줌으로 일도한다. 가끔 운전면허 반납일과 (이글을 읽으며 살짝 미소가지어지기도,그치 반납일 얼마남지 않았지)나이많은 이웃을 보내야하는 고민도 있지만 지금자체로 충분히 괞을거라는 근거없는 답도 낸다.

근교의 소도시로 이사를하고 새롭게 남은 삶의 방향성을
세웠었다. 생산해보고싶은 먹거리와 자연을 충분히 즐기는것.
미니멀하게 주변을 축소시키고 계속해서 읽고 쓰는 행위와 함께
홀로를 연습해보는것. 왠지 작가의 책으로 공감과 위로를 얻는다.
산기슭으로 완전히 떠나지는 못했지만 계절을 충분히 느낄수 있는곳. 큰 건물이 없어서 시야가 가려지지 않은 자연풍경들.봄이 무척이나 기대되는 등산로와 작은 나의 텃밭도. 어쩌면 꽤 괜찮을거라는 근거없는 답을 내기도 한다.

그녀의 현재 가장 주된 관심사는
'나 홀로족이라도 사랑하는 호쿠토에서 마지막 날까지 보내기’다.

여성학자, 대학교수로 활동하며 많은 저작을 남겼지만 사적인 삶을 다룬 에세이는 쓰지 않았는데 20여년 동안 도쿄와 야쓰가타케 남쪽 기슭을 왕복하는 ‘두 집 생활’을 하며 이 경험을 써보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의 글에서 나오는 여유로운 시간과 말들, 그 따스한 문장들이 그렇게 나이들고 싶다는 생각을하게 된다. 남은 나의 삶은 좀 더 나로써 살아낼 수 있는 시간이기를 기대해 본다. 나만의 살고싶은 삶을 산다는 건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한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또한 오십대, 남은 시간은 내것이기를 기대하며 이 책을 가까이둔다. 또 어떤 선택을 할지 가만하 지켜본다.멀리까지 좋은책을 보내준 청미 출판사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 오랜 고마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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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개자식에게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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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중독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된걸까.

제목에 반해 표지에 반해 우연찮게 만나게 된 이 소설은
온통 중독된 현 시대를 그려낸다. 알코올과 마약의 중독,미투논쟁으로 인한 SNS에서의 공격적인 온라인환경, 시대에서 배제되는 나이듦과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혐오논쟁 그리고 코로나로인한 관계의분리등 여러 사화적 증오들이 분출된다. 읽으면서 내내 고개끄덕이면서도 팽배한 세대간의 대립들은 혼란을 준다. 나도 태어날때부터 아니 내 어머니의 어머니때부터 아니 그 훨씬전부터 페미니즘을 배운적이 없다는것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결코 우리 다음세대를 위해 제대로 된 페미니스트로 자라지 못했다는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희망은 절망을 지우는 단 하나의 해독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압수당한 것 또한 희망입니다.(p286)‘

세대갈등과 남녀 분열이 극심해진 오늘을 살아가면서 제대로 된 소설을 읽게 되었다. 지금 시대를 극명하게 반영해주는 이 소설은 고전도 아니고 오늘 읽어야되는 소설인듯하다. 계속적인 질문과 답을 주는 소설, 소설속 세 주인공의 대화는 끝도없이 팽배해있는 세대에 급격히 퍼진 절망의 감정을 조금은 희망스럽게 끄집어내준다. 세 주인공을 통해 시대의 면면을 들여다 된다.

오스카: 43세의 인기 소설가. 어린 시절부터 선망하던 배우의 외모를 폄하하는 말을 sns에 올렸다가 그 배우로부터 <친애하는 개자식(소설 제목이 된)>이라는 답메일을 받는다. 그는 자기 책의 홍보담당자 조에로부터 미투 고발을 당한상태고 현재 알코올과 마약으로 중독된 상태다.

레베카: 오래도록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여배우. 그러나 오십대에 들면서 그런 명성은 찾기가 힘들다. 점점 나이듦으로 밀려나는 배역때문에 위기위식과 함께 불안하다. 이십대 여성 조에의 페미니즘글을 읽으며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작각하고 새롭게 변화되는 관점을 가지게 된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실은 우리 어머니에게는 페미니즘을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죠. 그녀 주변엔 지지리 고생하는 남자뿐이었죠.(p95)’이 말은 왜이렇게 공감이 될까.

조에: 페미니즘 블로그를 운영하며 수많은 독자를 보유하고있다. 그녀는 오스카와의 미투논쟁을 올렸다가 온라인의 공격을 받게되고 강박적 불안으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한다.(최근에 있던 모여배우의 사건들이 떠오르기도 한다.)조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를 ‘인정하기를’거부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요?‘(p103)

결국 이 문제이다.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요. 소설 속 세 사람은 개인의 문제로 시작해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들을 드러낸다. 메일로 주고받는 시대의 상황은 결코 녹녹지않다. 이것은 세계 전반의 문제들의 집합소인듯하다. 이들의 질문과 대화속에서 우리는 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1969년 프랑스 낭시에서 노동계급의 딸로 태어난 작가 비르지니 데팡트는 주류에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그의 데뷔박 <베즈무어>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포로노그래피와 폭력의 문제를 다루었고 2006년 출간된 <킹콩걸>은 현 시대의 최고의 페미니즘책이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프랑스 문단에 다시 노벨상의 기회가 온다면 그 영광은 데팡트의 몫이다”라는 찬사를 받기도 한 작가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프랑스 4대 문학상인 메디시스상 파이널리스트에 노미네이트되었다고 한다.

좀 더 일찍 페미니즘을 배웠다면 좀 더 나다운 삶을 살았을까?좀 더 내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성장시킬수 있었을까?21세기를 중독의 힘이 아닌 나 자신의 모습으로 서로가 지옥이 되지않는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문학의 힘은 언제나 위대해진다. 스스로의 자유를 만들어내고 획일적이지 않은 다양성의 모자이크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것은 생각하게하고 행동하게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작가들의 활동이 눈에뛴다. 페미니즘.퀴어나 레즈비언등 다양한 소재의 소설을 읽게되는것이 즐겁다. 이분법적인 근시안적 시야를 벗어난 다양한 프리즘을 내는 빛은 읽는내내 희망스럽기조차하다. 참 오늘날 읽기 좋은 소설이었다.

"오늘은 그저 어제보다
제가 덜 개자식처럼 느껴집니다."
오스카의 고백처럼 오늘 우리는 덜 개자식이기를!!

#책은 비채에서 제공받아 직접읽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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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코 여자
고노 다에코 지음, 부윤아 옮김 / 톰캣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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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레전드 소설가 고노 다에코의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미스터리 역작!

굉장히 고급스런 소설을 읽었다.
서사의 문장들이 자연스러운듯
미스터리하게 일상을 흔든다.
특이해보이는 제목을 지닌 소설,
끝나도 끝난게 아닌듯한, 그래서
"그 후는 어떻게 되었다고요?"

'양초가게 엘레나'가 있다. 양초가게의 막내딸
엘레나를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 누군가의 질문에
그녀는 "그건 그렇지만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나중
대답을 사람들은 듣지 못한다. 그녀는 그렇게 자랐고
결혼을 하게 된다. 이 결혼의 틈새에 그 도시국가의
사형제도에 대한 글이 이어진다.

'결투와 공무에 따르는 것을 제외한 상황에서 사람을
죽인 자는 어떤 사정이 있든 상관없이, 그게 설령 과실
이라고해도 참수형이 내려졌다. 통화 및 수표 위조조차도 마찬가지였고, 불에 타서 죽은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불을 지른 방화범도 마찬가지로 참수형이 내려졌다.이런 범죄는 큰 범죄로
불렸고, 큰 범죄 용의자는 체포되면 무죄 판결을 받아
석방되지 않는 한 가족과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P90

인상이 강렬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보편의 삶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듯이 평이한 문장속으로
미스테리한 인상들을 그려놓는다. 섬뜻하지만 그것은
일상속에서 흘러간다. 남편 자코모가 한 청년을 살해하게 된다. 이 살해 장면이 또 섬뜻하다. 참수형전에 그는 아내 엘리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녀의 코를 물어 뜯으며(너무나 괴이해서 또 섬뜻하다)
"나는 아내가 나를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남겨두고
떠나야하는 이상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만남을 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허락된 자리라고 깨닫고 그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막상 엘레나를 만나고보니 도저히 그대로
돌려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참수형을 당한다.

그 후 엘레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10년 사이에....'라는. 문장들이 여러차례 이어지며 그 후의 시간을
들려준다. 평이한 일상인듯 하면서도 그 안에는
엘레나의 미스터리한 인상들이 숨겨져 있다. 누구도
알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는 엘레나의 생은 그렇게
'10년 사이에....'를 지나고 있다. 엘레나는 사형을
생각한다. 남편과 이어지는 것이 아닌 연을 끊고싶은
격렬한 마음이 욕정처럼 그와 같은 사형을 원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사형소망을 서서히 준비한다.

그 이후, 나는 그녀의 그 이후의 삶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서로를 아는듯하지만 서로를 전혀 모른다.
누군가의 삶도 어느 관계속에서도 아는듯 하지만
서로의 삶은 모두 미스테리로 남는다. 이 소설은
마이니치 예술상과 이토세이 문학상을 받았다. 작가의
또 다른 소설들의 수상이력도 꽤나 화려하다. 나는
마이니치 예술상, 예술상이라는 것에 공감하게 되었다.

마이니치 예술상은 일본 마이니치(매일)신문사 주최로
소설등 출판물뿐 아니라 연극,건축등 종합적인 예술을
대상으로 시상하는 상으로 내가 읽은 소설로는 엔도 슈사크의 <깊은강>과 <인도방랑>이 있다. (인도방랑도 첫 장부터 너무도 인상깊은 사진이 실려있었다.그리고 소롬돋게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런지 이 상의 의미가
<하얀코여자>소설과 잘 맞아
떨어진듯 보인다. 일상의 서사 속에 그려놓은
미스터리 한 인상이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속에 해설가의 이 말이 공감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미스터리를 도무지 풀 수가 없다.
다만 '이렇지 않을까'라고 아주 살짝 생각되는 것이
있다.바로 어긋남이다. 어딘가 이 소설 세계 묘사
속에는 어긋남이 있다.'

톰갯의 책을 두 번 째 읽게 되었다. 첫 만남이었던
'조릿대 배게'도 너무도 특별하게 느낌 좋게 읽었던
책이었는데, 이렇게 두 번 째 출간책도 특별한 느낌을
갖게 했다. 오래 믿고 읽을 수 있겠어요. 오래 함께
걸어가게 되기를 '그 후 10년사이....'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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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리듬 (알라딘 한정판 표지)
엘라 윌러 윌콕스 지음, 이루카 옮김 / 아티초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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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사랑시다.
충만한 사랑도 빼앗겨버린 사랑도
혼자하는 사랑도 서로간의 사랑도
잃어버린 사랑도 첫,처음의 사랑도
열병에 묻히고 광기에 사로잡힌 사랑도
생의 본질은 결국 '사랑'이라는듯이,

비유가 아니고
비비꼬아서 만든 언어도 아닌,
어느 땐 날것으로 어느 땐 직관적으로
어렵지 않게 사랑을 쓰고 그려낸다.
누구든 쉽게 사랑을 수용하고,
만지고, 보고, 누릴 수 있는 그런 사랑을 논한다.
그래서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고, 그래서 누구나 용기를 얻고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막힘없이 이끌어 낸다.

지금 사랑하는 이
지금 이별하는 이,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그게 무엇이든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가는 길이 어둡거나 밝거나
생사의 사슬의 일부인 우리는
우중 중심의 섭리아래 강하다고
그래서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다고'
시대를 넘어 깊은 위로와 울림을 준다.
그래서 윌콕스는 문단의 비평가들보다
대중에게 더 사랑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많이 사랑하라

많이 사랑하라. 세상은 쓴맛으로 넘치니까
기회 있을때마다 단것을 넣으라
아무리 굳은 마음이라도 결국 사랑이 이긴다
사랑은 인간의 숭고하고 원초적인 이상이다
미움은 시초의 위대한 섭리와는 관계가 없다

많이 사랑하라. 너의 마음이
시샘과 속임으로 쌓은 제단으로 인도되어 도살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사랑하라. 끊임없이!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사랑이, 꾸밈없는 사랑이,
천상의 달콤함을 지닌 사랑이 당신의 발앞에 놓이리니

많이 사랑하라, 너의 믿음이 힘을 잃고 흔들리며
너의 신뢰가 솔깃하고 부정한 유혹에 배반당하지 않으려면
믿음을 복구하고 새로운 신뢰를 일깨우라
구름에 가릴지라도 신뢰의 별은 순수하다
사랑은 생명력이니 지속되어야 한다

많이 사랑하라, 차가운 의심은 영혼을 수축시키고
따뜻한 사랑은 영혼을 확장시킨다
인류의 낮은 곳에서 숭고하고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건 신조가 아니라 사랑이다
세상이 그걸 알고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집 한 권 속에 담겨진 사랑의 메세지가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유의 시간을 허락한다. 어쩌면 지금의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고 경쟁의 시대에서
'더 많이 사랑하라"는 문장은 지독하게 이질감과
함께 불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역설로 윌콕스의 시가
더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말은
사랑(자기애가 강해지고 헌신이 사라지는)할 힘을
잃어가는 시대에 무해한 풍경소리처럼 울린다.
윌콕스의 숙명과도 같은'사랑'이
왠지 나를 부끄럽게 한다.

"나는 어떤 기준에도 구애받지 않고 내 마음이
이끄는대로 시를 썼다. 하지만 훗날 세상 사람들은
나보다는 더 면밀하고 고지식한 예술가들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내게 무엇이 부족한 지 잘 알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해도 아마 다르게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내게 주어진
의무에 충실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단독 시집으로 #엘라윌러윌콕스 의 시 세계를
한국에 처음 소개해준 #아티초크 에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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