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의 눈
토마 슐레세 지음, 위효정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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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사는 열 살 소녀 모나, 어느날 식탁에 앉아 숙제를 하던 중,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 현상을 겪는다.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며 모든 사물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된다. 그것은 일시적인 순간이었지만 어쩌면 시력을 완전히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된다. 모나의 부모는 병원을 찿고 수많은 치료끝에 심리적인 문제일 수 있다며 의사는 정신과 상담을 받기를 권한다. 그러나 모나의 할아버지 앙리는 시력을 잃을 위기에 처한 모나를 데리고 세상의 가장 아름답고 인간적인 것을 보여주기위한 또다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은 미술관여행으로 일주일에 하루는 미술관을 방문해서 오래 작품을 보는 것이다. 그것도 한 작품을 선택해서 오래 바라보고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정을 가져보고 싶은것이다.

—앙리는 유년시절이 단지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으레 천박하고 추악한 사물들로 채워진다는 가슴 아픈 사실을 확인했다. 모나도 이 법칙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름다움, 진정한 예술적 아름다움은 아이의 일상에 은근슬쩍 겨우 틈입해 있을 뿐이다. (…) 아이의 눈이 영영 멀게 된다면 아이 기억의 영역 속에는 저 번쩍번쩍하고 경박한 물건들의 추억만 남을 것이다. 암흑 속에서 평생을 보내면서, 추억의 도피구도 없이, 세상이 만들어낸 최악의 것들만 머릿속에서 조합하며 살아간다고?그럴수는 없다. 끔직한 일이다.<p29>

모나와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 한결같이 미술관으로 가서 작품 하나를 단 하나의 작품을 바라본다. 색과 선이 펼쳐내는 무한한 아름다움과 그림속에 가려진 의미를 나누며 예술의 진정한 아름다움속에서 교감을 나누게 된다. 그들은 파리의 3대 미술관인 르브르를 시작으로 오르세,보부로로 확장을 시켜나간다.  그렇게 작품을 통해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정립해 나가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것은 어린 손녀 모나를 위한 시간이었지만, 그것을 읽는 우리에게 예술가의 삶을 통한 고유하고 명징한 삶의 메세지를 들려준다. 그렇게 한 작품 한 작품의 깊이가 진부하지않은 ( 늘 듣던것이 아닌) 또 다른 시선을 갖게하고 새롭게 발견되는 이미지는 놀라운 느낌으로 다가서게 한다. 그것이 이 책의 큰 울림인듯 하다.

“모나야 우리는 둘이서 매주 미술관에 와서 작품 한 점을 볼 거야. 딱 한점, 더는 말고 우리 주위에 있는 이 사람들은 한 번에 전부를 삼키고 싶어하겠지. 욕심을 어떻게 다룰지 몰라서 갈피를 잃는 거야. 우리는 훨씬 더 지혜롭게, 훨씬 더 분별있게 해보자. 딱 한 작품을 볼거야. 일단 아무말도 않고, 최대한 오랫동안, 그런 다음 그 작품에 대해 얘기를 해보는 거야.”<p38>

작가 토마 슐레세는 프랑스의 미술학자라고 한다. 약 20년간 미술사를 가르쳤고, 19~20세기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연구, 집필하며 예술계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두번 째 장편 소설인 [모나의 눈]은 2025년도 프랑스의 출판문화상인 ‘토로페 데 레세디옹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고, 세계 최대규모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관에서 화제작으로 소개되며 판매 수량이 전부 품절되기도 했다고 한다. 예술이 인간의 삶에 진정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작가의 깊이있는 가치관의 해석이 여실히 드러난 작픔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책이나 영화는 언제나 슬픔과 불행이 있는데, 그걸 잘 엮어서 얘기하면 아름다워져요……”<p87>
“앙리는 오직 삶의 경험만이 그 가운데서 중용을 찾게 해준다는 사실을 똑똑이 알고 있었다. <p102>

인간 기피자였던 인간을 싫어하지 않으려고 인간과 가까이 지내는 일을 피한다고 말하곤 했다던 낭만주의화가 프리드리히의 <까마귀들이 있는 나무>속의 그림을 뒤집어서 봐야 발견하는 무덤과 까마귀들의 풍경이 유독 좋아졌고, 노란색을 열정적인 광기처럼 강박처럼 사용했다는 터너의 작품 < 배경에 강과 만이 있는 풍경>을 색다르게 느껴졌다. 작품활동 내내 금지사항을 보란듯이 어겼던 쿠르베의 작품들, 당시에 변장허가서를 내야만 바지를 입을 수 있다는 시대에 시가를 물고 바지를 입었던 포뇌를, 버지니아울프의 어머니 초상화를 찍은 캐머린의 이야기등은 너무도 흥미롭게 읽게 되었다. ‘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 그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빛을 발한다고 말해주는 마네의 작품과 복잡한 독해, 박식한 해석, 대단한 암호풀이, 수백개의 가설이 아니어도 충분히 아름다움을 들려주는 모네는, 조금 벗어나도 괜찮다고 조금 떨어져 나가도 괜찮다고 들려주는 드가의 작품은 이미 생의 숭고한 의미를 들려쥰다. 여기에 현기증을 정착시키는 고흐는 너무도 아름답게 공감과잉을 불러일으킨다. 침묵속에서 항상 끈질기게 그려던 화가하머스호이의 <휴식>은 오래 오래 나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자연을 거쳐 루브르에 가고, 
루브르를 거쳐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p595>
모나의 시력을 잃을뻔한 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신체적문제일까 아니면 심리적인 문제였을까? 뒷장으로 갈수록 작품에 대한 글들이 아름답고 모나의 지난 기억들속에 한 인물이 등장한다. 모나가 사랑했던 사람, 그러나 결국 다른 세상으로 보낼수 밖에 없었던 상실의 경험, 그렇게 아픈 상실을 겪어내야 하는 열 살 소녀는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 앙리는 ”위험에 맞서라“고 말한다. 모나는 그토록 억눌렸던 눈물, 성장하면 순순히 마르게 하는 법을 배우는 눈물을 쏟아냈고 검댕, 부스러기, 잿가루를 완전히 씻어냈다. 유년기를 잃어버리면서 유년기가 무엇이었는지  배우고, 그러면서 모든 것을  항시적으로 잃을 것임을 배운다. 성장이란 획득한 것을 쌓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있다. 내 주변의 사물을 살펴본다. 그것은 계속해서 그곳에 쌓여가는 것들이 아니라는것을 배운다. 어떠한 것이든 사라질 수 있다는것을 배운다. 그러할 때 곁에 남는것은 무엇일까? 세상에는 간직해야할 책들이 너무 많다. 오래 읽으며 곁에 두고 끊임없이 나를 수선하고 재정립나가는 시간들이다. 그것은 결코 끝이나지 않는 오랜 생의 작업인듯  하다. 요즘도 절실히 느낀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속에서 우리는 가끔 길을 잃는다. 지금까지 세워온 것들이 어느 순간 사라질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물질일수도, 사람일수도, 건강일수도 있다. 그래서 때때로(어느땐 발작적으로)불안감을 느낄때가 있다. 그러한 위험에 당당히 맞서기위해 오늘도 나는 문학을 찾는다. 오래 곁에 두고 읽어도 좋을 책이다. 작품들이 스르륵 스치고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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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그리고 치유 - 슬픔을 건너는 매일 명상
M. W. 히크먼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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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조앤 디디온 의 <상실>이후,
또 다른 상실의 치유서가 된,
M. W. 히크먼의 《상실 그리고 치유》

내가 좋아하는 단어중 하나가 <상실>이라는 단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내 삶에 있어서 계속적인 의문이었고, 치유를 이루고싶은 희망이기도 했다. 살면서 사랑을 잃은적이 없는 삶이 있을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적이 없는이가 과연 있을까. 상실은 우리의 삶에 끊임없이 계속되고,그 상실의 늪은 우리의 시간을 끝없는 막연한 슬픔에 빠져들게 한다. 상실, 그 이후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치유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까.

M. W. 히크먼의 《상실 그리고 치유》는 1994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이후 2001년 9‧11 테러 이후 상실의 충격과 슬픔에 빠진 미국 독자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고 한다. 출간 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감동적인 후기가 올라오는 등 상실의 슬픔으로 힘겨워하는 사람에게 꾸준히 최고의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저자인 N.W 히크먼 역시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후 극심한 슬픔 속에서 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콜로라도 산맥에서 휴가를 즐기던 어느 화창한 여름날, 그녀의 딸은 낙마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 슬픔을 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온전한 삶을 찾았다고 느꼈을 때, 자신과 같은 아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 또한 큰 상실을 겪었다. 사랑하는 오빠 둘을 먼저 보내고, 아버지를 보내드렸다. 시간이 걸린 이별도 있었지만 갑자기 보낼수밖에 없는 이별도 있었다. 오래도록 그 <상실>의 슬픔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현재도 여전히 그러하지만)상실은 그렇게 우리의 일상에서 문득문득 생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시간을 주저 앉히곤 한다. 그때 만났던 책이 조앤디디온의 <상실>이었고, 그 책은 나에게 글을 쓰게 만들었다. 상실의 기억을 초단위로 기록했던 작가의 그 오랜 슬픔의 시간을 읽으며, 나 또한 그 상실의 기억들읕 꺼내어보곤 했다.

그 책이 상실을 드러내주었다면 그 이후의 상실을 넘어서게하는 치유의 시간을 도어 주는건 히크먼의 <상실 그리고 치유>가 아닌가싶은 생각이든다. 히크먼의 책은 심리학서적이나 이론서가 아니다. 이 책은 상실에 대한 365개의 명언과 조언들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슬픔 이후 찾아오는 여러 순간에 대한 적절하면서도 실용적인, 종종 감동적인 방법들이 담겨 있다. 그래서 섣불리 가르치려 하지 않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잔잔히 상실속으로 스며들게되고 그저 작가 자신이 직접 겪은 슬픔을 거치며 얻은 깨달음을 조용히 들려준다.

우리는 상실의 늪을 건널 수 있을까? 누군가의 상실을 우리는 다 위로할 수 있을까?히크먼은 이 모든 상황에 완벽한 정답은 없다는 것을 겸허히 인정한다. 다만 딸을 잃은 아픔을 겪은 사람으로서 독자의 슬픔과 함께한다. 그러한 내밀한 속삭임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 그리고 페이지마다 기록해놓은 상실에 대한 명언들이 깊은 위로를 전한다.

-당신은 회복할 수 없겠지만,(…)언젠가 이 견디기 힘든 불행은 두 번 다시 당신을 떠나지 않을 존재에 대한 추억이 될 것이다.(지금은 이런 생각만 해도 끔직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의 불행한 마음으로는 이런 약속을 믿기 어렵다. -마르셀 프루스트

강렬하지 않지만 따뜻하게 누군가의 호흡을 듣고 싶다면, 교훈적이지 않고 설명적이지 않은 스치듯 섬세한 누군가의 위로의 말을 듣고싶다면, 조용히 권하고 싶습니다. 여전한 상실의 슬픔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첫 페이지부터 읽으셔도 되지만 침대 머리맡에 두고 문득 슬픔이 차오를때, 어느 페이지든 열어보세요. 잠들기 어려운 늦은 하루가 조금은 위로가 될 듯 합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조금씩 천천히 스미는 글들이 우리를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으리라 믿어봅니다. 그렇게 수없는 날이 지나다보면 우리도 어느덧 떠난 존재가 추억이 되는 그런 하루가 어쩌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어느 하루가 닿기를 멀리서나마 기도합니다. 오늘도 치유의 하루가 저물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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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 아래에서 세계 문학 단편선
기 드 모파상 외 지음, 정회성 외 옮김 / 다정한책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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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사랑을 조심하십시요.‘라는
문장 하나에 훅, 반해서 책을 받았다.

봄이라는 소재로 펼쳐지는 아홉편의 봄단편들,
익숙한 이름도 낯선 작가도 만나게 되는 봄,
생각보다 단편들이 단단하게 읽혀졌다.
읽으면서 ’봄‘이라는 단어를 찾게 되었고
마흔 한 번의 ’봄‘을 찿게 되었다.

-봄빛. 봄날, 봄바람, 봄 한 접시, 봄의 땅, 봄코트,
봄의 향기, 봄날저녁, 봄햇살, 4월의 소나기, 4월의 먼지…

소설속 봄은 삼월부터 사월.오월이 되고
헤세의 봄은 부활절로 쓰여지기도 한다.
(헤세는 왠지 자기경험적 소설같기도 한)

”삶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 만큼 또 많은 것을 요구하는 건 아닐까. 깊이 느끼고, 그것을 이해하고, 다시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결국 더 자주, 더 깊이 아프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삶이 주는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어떤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걸까.“
-수잔 글래스팰의 빛이 머무는 곳에서 중

봄이 말랑한듯 보이지만 때때로 봄은 격렬하게 심장을 할퀴고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순간의 상흔을 오래 간직하게도 한다.봄은 여전히 사랑이지만 짧은 봄처럼 이별을 발빠르게 불러들이기도 한다. 그 안심할 수 없는 봄의 음흉한 변덕스러움도 대가를 치르게 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는 봄을 조심해야 한다.

소설속에 나오는 모든 봄을 애정하게 되었다. 그만큼 작가들의
단편들이 단단하게 읽혔다. 모파상의 <봄날>, 오 헨리의 <봄 한 접시>, 다자이 오사무의 <벚나무와 휘파람>, 이디스 워튼의
<4월의 소나기>, 버지니아 울프의 <질문하는 여자들>, 헤르만 헤세의 <약혼>, 스콧 피츠제럴드의 <젤리빈>이 역시나 유명작가인만큼 글도 좋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짧은 글속에서도 여성작가로의 충분한 고뇌가 느껴졌다. 주고 받는 질문과 답은 여전히 존재하는 시대 속 페미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 중에서 새롭게 알게 된 작가 수잔 글래스팰의 <빛이 머무는 곳에서>가 가장 좋았다. 어쩌면 이 작가를 알기위해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유일하게 처음 만난 작가였는데,
유독 그의 문장들이 마음에 남았다. 12장속에 포스트잇도 가장 많이 붙인듯 했다. 칠십이 된 철학교수의 평생의 삶과 일치하는 그의 사유의 말들이 봄햇살처럼 따뜻하고 환하게 오래 심장으로 내려앉았다.

-어쩌면 5월은, 철학보다 더 깊이 삶을 이해하는 철학자인지도
모르겠다(p80)
-그의 삶은 종종 '외롭다'라는 말로 요약되곤 했다. 하지만 외로움 속에서도, 책과 일, 사유가 주는 온기 덕분에 마으미 얼어붙는 일은 없다.(p90)
-삶은 사람을 소진시킨다. 고귀한 목적이 아니라, 거칠고 냉정한 방식으로, 인간이 아무리 그럴듯한 의미를 덧 씌우려해도,결국 삶은 한 사람을 끝까지 사용하고, 더는 필요 없을 때 밀어내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정면으로 마주해야 되지 않을까. 아무리 넉넉햐 마음을 주었고, 아무리 기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도,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단 하나였다. "이제, 당신을 어떻게 치울 것인가?"(p91)
-책 속에서 애써 삶의 의미를 찾기보다 있는 그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그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책에서 얻는 깨달음이 주는 만족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지켜주는 건 그런 이론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의 결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p95)
-올곧은 지성과 흔들림 없는 품위를 위해 싸워 온 그의 세대역시 결코 헛된 길을 걸어온 게 아니었다. 만약 그들이 남긴 가치가 이 세상에 그레타 같은 사람 몇 명이라도 남겨둘 수 있었다면,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p99)
-그것은, 인생이라는 고독하고 거친 길도 결국은 평온한 들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조용한 깨달음이었다.(p102)

있어야할 때와 떠나야 할 때를 끊임없이 사유하고 사색하는 한 철학교수의 눈빛이 떠오른다. 젊은 세대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는 그의 지성과 품위가 돋보이는 글이었다. 그러한 지성인들과 스승이 절실히 필요하다 느끼는 요즘에 그의 소설의 문장들이 깊이 와닸는다. 그러한 스승밑에 그러한 제자가 있다는 것이, 저녁놀에 그 둘의 대화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작가의 또 다른 소설도 읽고싶어졌다.

<봄볕 아래에서>단편집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잘 구성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마지막 단편인 F스콧 피츠젤드의 <젤리빈>의 문장은 결코 마침표를 짓지 않는다. ‘4월의 먼지는……오래된 농담처럼 되풀이되던 지루한 오후는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이런 날씨 속에서는 어떤 일도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게 하찮아 보이는 무더운 날들을 견디다 보면,언젠가 지친 이마 위로 조용히 내려앉는 누군가의 손길 같은 시원한 하루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게 되는 법이다……그곳이라면,누구나 알고 있는 오래된 농담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틀림없이 있을 테니까.(239)

오래된 농담을 함께 나누는 것처럼
즐거히 읽은 늦은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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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이리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35
헤르만 헤세 지음, 장혜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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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글을 제대로 읽은적이 있었나?
<데미안><나르치스와골드문트>는 십대에
어떤 느낌으로 읽었을까.
<수레바퀴아래서>는 이십대에 읽으며
어떤 것을 내 삶으로 이끌어냈을까
<싯다르타>는 유독 기독교집안이었던 나는
결국 지금까지 읽지 못하고 넘어왔었다.
(이제는 자유하게 읽을 수 있다)
<황야의 이리>를 중년의 문턱에서 이제야
만나게 되었다. 그의 모든 소설이 자서전적
이야기라고 하는데,중년의 나이에 헤세를
제대로 만나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마주하게 되는 생의 의문들,
신학자 가문에서 자라며 자신이 추고하고자 하는 삶의
이면을 갈망하게 되고 그래서 거친 광야로 도망쳐나올
수밖에 없었던 헤세, 인간의 자유를 향한 그의 글들은
그의 삶을 오로지 대변해준다. 두 번의 결혼과
실패, 아이의 정신병,그리고 전쟁, 그래서 자살자로 살아내야
했던 헤세, 다른 세상에서 온 낯선 존재로 사람을 꺼리게 된
야생의 존재로 존재하게 된다. 그런 성향과 운명탓에
끝없는 고독과 외로움을 겪어야 했던 헤세, 그의 글을 읽을
수록 그는 지옥을 운명처럼 끌어안고 사는 존재인듯 했다.

“아, 여긴 냄새가 참 좋습니다.” -p12
다정하고 단정한 생활의 냄새가 그리윘던 그는
오십세에 책속의 집으로 이사하며 고백한다.
그렇게 시작되는 주인공 하리 힐러의 이야기.
그는 보통의 시민의 삶에 정착하지 못하고
우연찮게 집어든 마술극장 팜플책의 서두에
써있는 글귀처럼 그곳에 입장한다.

“마술극장
아무나 입장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나……할 수는 없습니다.
미친……사람……만……입장할 수 있습니다."

헤세는 황야의 이리를 통해 인간존재의 고독과 자아의 이중성,
끝내 살아내야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의 글을 쏟아놓는다. 어쩌면 이 책은 헤세의 서문처럼 미친 사람만 입장하고 읽어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결코 미치지 않고는 찾아낼 수 없는 고통을 동반하게 되니까요. 그의 글은 지극히 문명화된 고도의 현대문명사회속에서 다시 한 번 나를 찾는 시간들일듯 합니다. 물질과잉의 자본이 최고인 시대속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이상으로 추구해야 하는지를 (알면서도 계속되는 타협속에서 잠시 길을 잃게되는)생각하게 합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속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헤세. 우리는 다시 데미안부터 새로이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싶은 생각도 들게 하네요. 그래야 진정 헤세를 만나지 않을까 싶은 오늘입니다.

’보이는 것처럼 고독도 더는 참을 수가 없고, 나만의
세상도 견딜 수 없이 증오스럽고 구역질이 났으며, 공기가
사라진 내 지옥의 방에서 질식해가며 발버둥치고 있으니,
무슨 출구가 남아있단 말인가? 출구는 없다.‘p109

그러나 그는 출구를 찾는다. 85세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동안 글을 쓰고 자살자의 삶은 희망의 메세지를 들려준다.
황야의 이리는 마술극장을 통해 통합과 회복의
여정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간다. 잔인할 정도로
위태롭게 미쳐가는 삶을 치유하는 또 하나의 삶으로 보게한다.
뜻밖의 여정, 우리의 본성을 다시 들여다보게하는,
어떤게 정의인지 혼탁한 시대에 맑은 비판의 시선을
들려주는 헤세,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내야한다.

어느곳에서 이러한 질문을 들었다
”당신은 서머셋몸 입니까 헤르만헤세 입니까?“하는,
나는 서머셋몸 글을 좋아하지만 헤세의 성향에 더
가까운듯 했다. 멀다면 머언 길을 걸어 이제야 생의
뒤안길에서 새롭게 만나게 된, #황야의이리
헤세는 평생을 자신의 존재를 찾기위해
고군분투했음을 알 수 있었다. 황야의 이리를 안고
살아가는 자의 끝없는 자기 성찰의 글들, 그의 소설은
그렇게 나에게도 자기 사색과 위로를 주는 고통의
글들이지만 인간 존재의 자유를 준다. 나또한 유독
생의 우울감과 지독한 상실의 고독감으로 힘들때가 있다.
그래서 더욱 헤세의 글은 깊은 공감을 안겨주었고
십대,이십대에 읽었던 헤세의 글또한 결코 그저 우연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학은 그렇게 나의 평생의
스승이었고 나를 치유했고 나를 더 자라게 했다. 내 생에
있어서 너무도 지대한 역활을 해주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좋은책을 보내주신 문예출판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고전의 교과서적인곳, 오래 좋은듯 합니다.

ps:표지그림:빈 센트 반 고흐 <해 질 녘의 버드나무>
왠지 그림도 지금을 말해주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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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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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유서깊은 수도원, 사크라 디 산미켈레.
그곳 지하에는 겹겹의 잠금장치로 가둬진 피에타 석상이 있다.
감금을 지시한것은 다름 아닌 바티칸 교황청. 카톨릭에서 가장 아름댭게 여기는 피에타석상을 지하에 가두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은 이렇게 의문을 두고 시작된다.

"네가 사라지게 절대 내버려두지 않을거야."p420

왜소증(연골 형성 저하증)을 갖고 태어난 천재석공예가 미모(미켈란젤로/미켈란젤로처럼 유명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어진),미모는 가난한 조각가 아버지로부터 대리석 조각에 대해 배우게 되지만 아버지의 죽음 후 미모를 돌보기 어려웠던 어머니는 먼삼촌격인 알베르토에게 공방의 도제로 보내버린다. 그러나 미모의 천재성을 알아본 알베르토는 그의 재능을 시기하게 되고, 미모는 구타와 폭력으로인한 끔찍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러한 시절에 만나게 된 천재적인 소녀 비올라,

'비올라가 나를 자신의 세계로,
우리가 내뻗은 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별들이 박힌
그 애의 열렬한 삶으로 나를 끌어당기고 있으니,p190

'그애가 없으면 세상은 물론 훨씬 단순했다. 생각해보면,
그런 세상은 그다지 아름다운건 아니었다.'p229

오로시가 가문의 막내딸인 비올라는 미모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빛이 되어준다. 그들은 밤마다 무덤가에서 만나게 되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특별한 일상을 만들어간다. 그렇게 미모는 비올라를 통해 의식의 세계를 키워나간다. 비올라는 매일 미모에게 책을 빌려주고 읽게하고 외우게하고 깨닫게한다. 비올라는 미모의 더이상 자라지않는 외모보다 천재성을 면저 알아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런 비올라는 미모에게 평생의 삶속에서 피에타의 또다른 조각으로 탄생하게 된다.

'내 부모는 늙었다고.나이를 말하는 게 아니야. 그들은 다른 세상 사람들이지. 그들은 앞으로 우리는 말을 타듯이 날게 되리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내 부모의 세계는 죽었어.넌 좀비를 무서워하지만 네가 무서워해야 할 건 바로 그 세계라고. 그 세계는 죽었는데도 여전히 움직이거든. 누구도 그것을 보고 죽었다고 말하지 않으니까.바로 그런 까닭에 그건 위험한 세계야. 그 세계는 저절로 무너져'p145

날고싶었던 비올라.그래서 그녀는 날개를 만들고 스스로 뛰어내린다. 그녀는 오랜 정통과 관습의 체제속에서 오로지 자신으로 살고 싶어했다. 자신만의 시간을 책속에서 찾아내고 그것을 미모에게 끊임없이 연대해 간 비올라.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면 미모의 천재성은 배움이 없는 가난속에서 묻히고 말았을것이다. 미모는 새로운 피에타상을 창조한다.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과 거리가 먼 마리아의 품에 안긴 예수의 상에 인간 비올라를 보여지게 한것이다. 이것은 곧 교황청의 정통성에 벗어난 작품이되고 그래서 누구도 보지못하게 지하에 가두어버린다.

'우리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유폐하는 겁니다.'
사제는 그녀를 거기에 가둬 둔 자들은 스스로를,
그들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던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p48

생각자않은 대지진으로인한(이러한 반전이라니) 비올라의 죽음은 미모에게 마리아의 품에 안겨 죽은 예수만큼이나 절망케하는 슬픔이었다. 오르시니 저택은 완전히 무너져내렿고, 폐헉가 된 그 속에 비올라는 상처하나없이 죽음을 맞는다. 미모는 빛을잃은듯 그녀를 안고 절규하게 되고, 잠도 자지않고 피에타상의 제작에 몰입하게 된다. 그는 지하에 가둔 그녀를 남은 생애동안 지켜낸다. 끝도없이 아름다운 그들의 생애가 우아한 필체로 그려진다. 끝까지 그녀를 지키는 미모 바틸리아니, 그의 비올라를 향한 숭고한 사랑이 마지막장까지 고귀하게 펼쳐진다.

'은밀했던, 살을 저미듯 아렸고 뒤뚱거렸던 우리의 우정,
야행성의 우정이 마침내 햇볕에 복권되고 그 위로 처음으로
햇살이 환히 부서졌다.'p369

데뷔 이래 단 네 권의 소설로 프랑스 주요 문학상 19개를 수상한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걸작 [그녀를 지키다].바티간이 피에타 석상을 수도원 지하에 가둘 수 밖에 없었던 비밀스런 사연을 한 챕터 한 챕터 중간중간에 끼워맞춘 이야기는 실제 역사이야기를 읽는듯했다. 그리고 그안에서 얽힌 왜소증을 안고 태어난 천재 석공예가의 고난과 역경, 그리고 그에게 운명처럼 나타난 오르시니가문의 막내딸 비올라의 자유를 향한 투쟁은 작가의 시적인 문체에서 무척이나 아름답게 그려진다. 600여페이지의 장편을 순시간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있었다. 이러한 상상력에 인간의 삶을 녹여내는 작가의 펜이 놀랍기만하다. 한국을 방문해 뉴스에 나오는 모습을 잠깐 본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호기심이 더했던 소설이기도했다. 미모와 비올라의 삶이 얽힌 피아트라달바의 오렌지나무 가득한 공간은 왠지 직접 거닐어보고싶게까지 한다.

'피에트라달바 숲의 내음이 너무나 그리워서 아침이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거의 육체적 고통을 느꼈다.'p283
누구든 이러한 공간이 있지 않을까하는,


비올라,
비올라,
비올라……
나의 피에타!

롤리타, 롤리타를 부르듯 한음절 한음절이 오래도록 아름답게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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