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의 도쿄 도시 산책 시리즈
양선형 글, 민병훈 사진 / 소전서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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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여름의 도쿄. 산책은 얼마든지 길을 잃어도 좋은것이 아닐까. 그렇게 예상치 못한 풍경을 긍정하는 일이 아닐까.”책중에서

나는 이제 ‘미시마 유키오‘를 ‘미시마 도쿄‘라고 부를 것 같다. 양선형 작가님의 글은 충분히 그의 작품세계를 들려주었고 미시마의 소설을 다 읽지 않아도 그의 소설을 읽어 본듯한 느낌을 충분히 갖게 했다. 도쿄에서 나고 자라고 생을 다한 미시마 유키코, 작가는 산책하듯 걸으며 그의 흔적들을 사진과 함께 아름답게 열어준다.하나의 도시로만 보여지던 도쿄의 이미지를 새롭게 바꿔주었고 그 안에서 마지막까지 글을 쓰고 활복자살을 한 미시마의 삶을 통해 여실히 작가를 끌어안을 수 있는 힘을 들려주었다. 사실 미시마의 소설을 아직 많이 접하지 않았다. [금각사]와 [사랑의 갈증], [봄눈]을 구입하고 제대로 읽었나싶은 생각과 함께 그를, 더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문장들의 의미를 계속해서 찾고 싶어졌고 그의 모든 책을 나의 한 공간에 채워두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곧 그의 자전적 소설인 [가면의 고백]을 읽게 될 것 같다.

‘나는 무언가 나를 죽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인가 나를 살게 해주기를 기다리는 것과 똑같은 일이었다.’ -가면의 고백중에서

미시마 유이코는 탐미주의자, 바디빌더, 극우작가, 퀴어, 활복자살을 한 작가다. 일반들에게는 거의 광인처럼 느껴지는 생을 살았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멈출 수 없게 극단적인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그것은 작가가 살아온 시대를 통해서 그리고 그 시대속에서 오로지 탐구한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어렸을때부터 허약했던 미시마, 그런 미시마를 과보호하고 예민하게 교육시켰던 할머니( 미시마를 빛을 보지 못하게 할 정도로), 그리고 늘 죽음을 보여줬던 태평양전쟁과 제국의 패망……미시마는 소외감속에서 글을 쓰고 컴컴한 어둠속에서 빛을 그리며 수많은 책을 탐독했다고 한다. 그리고 십대부터 집필해낸 소설들. 미시마는 소설과 일체할 수 있는 죽음을 생각했다. 미시마의 모든 소설은 죽음을 예고하는 죽음의 미학을 그려내는 글들이었다고 한다. 그는 죽음을 사랑했고 그것은 삶을 사랑하는 일과 동일했다. 소설속에서 인물들의 죽음은 어쩌면 어느정도 그의 죽음을 예고해준것이 아닐까 싶다. 문학과 현실의 간극을 폐지하는 일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작품속으로 자신을 밀어넣는 것이었는지도, 그래서 불타는 [금각]은 활복을 통해 [금각]이 되었는지도.

‘작품에 매혹된 독자라면 그 매혹에 상응하는 사유의 값을 치러야 한다. 그의 소설을 좋아하면서도 그와 갈등하기를 바랐고, 갈팡질팡하면서 그에게로 향하는 회귀한 샛길을 발견하기를 바랐다.미시마도 그걸 원하지 않았을까? 그는 대결과 반항을, 모독과 투쟁을 사랑했으니말이다.’-본문중에서

양선형 작가님의 글들이 빛이난다. 자꾸만 계속적으로 미시마를 표현해내는 문장들이 끌림이다. 계속해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을 찿고, 작가님의 소설도 찾게 되었다(소설가인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그리고 소전서가의 책들을 찾아내서 담아놓았다. 이 책 전에 펴낸 [카프카의 프라하]와 이 후에 펴낸[울프의 런던]까지 함께 읽고 싶어졌다. 책 속의 글 뿐만이 아니라 감성있는 사진 그리고 페이지마다 고급스런 종이의 색채는 읽을때마다 나 나름대로의 단락을 나눌 수 있게끔 해주었다. 고민하지 않게 한다면 사유하지 않는다면 그건 글의 생명력을 잃은건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의식하게하고 내 의식을 새롭게하고 나의 세계관을 넓혀주는 책들, 그러한 책을 탐미하는것은 또 오로지 독자의 몫이 아닐까하는, 나의 책읽기에 더한 욕망을 주고 일상의 시간을 책읽기에 쏟아붇고 싶게하는 이러한 책들은 계속해서 곁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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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라는 왈츠는 우리 없이도 계속되고
비르지니 그리말디 지음, 손수연 옮김 / 저녁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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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를 보고 무조건 신청했다. 제목과 함께 책이 예뻤다. 그리고 또 프랑스 소설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전체적으로 모든 것이 낭만적인 느낌이 들게 했다. 소설은 한 편의 프랑스 영화를 보는듯 읽혀졌다. 통통튀는 대화들이 웃음짓게 하면서도 가슴 시리게 하는 문장들이 가득했다. 짧은 페이지인데 포스트잇이 가득하다. 소설 속 두 주인공인 엘사와 뱅상의 만남과 일상을 읽으며 열렬히 좋아지고 따뜻하게 공감하며 무조건 애정을 갖게 되었다.

아빠의 죽음으로 상실의 시간을 겪는 장례상담사인 엘사와
소설가이면서 사랑을 떠나보내고 오래된 상처를 안고 있는 뱅상,
그 둘은 정신과 대기실에서 스치듯 만남을 갖게 된다.

뱅상: “행복할 조건은 다 갖췄죠. 저도 알아요. 그런데도 공허해요. 더 이상 아무것도 의미가 없어요. 저는 부정적인 것만 기억하고ㅜ모두를 의심해요. 사람들은 제가 인류애 넘치는 이야기를 쓴다고 말하지만, 저는 더이상 인간을 믿지 않아요.우리는 공겨적이고, 비겁하고, 잔인해요. 실망스럽죠. 저는 더이상 정보를 접하지 않아요. 몇 달 째 신문을 펼치지도, 텔레비젼을 켜지도 않았어요. 세상의 소식은 저를 괴롭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 저를 지어삼키는 것 같아요.”

엘사: "어떤 상황속에서도 잘 지내야 한다는 그 압박감, 불편한 페이지는 빨리 넘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저를 몹시 짜증나게 해요. 아마도 제가 그런 것들에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일 거예요. 저는 행복 속에서 살기 위해, 아니, 최소한 거기에 가까워지기라도 하려고 오랫동안 저를 아주 몰아새웠거든요. 저는 슬픔을 문밖에 두려고 오래느시간 애썼어요. 얼마나 파괴적인지 잘 알고 있어서 집 안으로 들이고 싶지 않은 오래된 친구처럼요. 행복의 횡포에 짓눌렸던 거예요. ”

이러한 그 둘은 쇼메 박사의 정신과 진료실에서 대기하고 있다. 우연적 요소들이 겹치다 보면 인연이 되는걸까.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 그곳을 찾지만 결국 상처의 치유는 사랑밖에 없음을 은근슬쩍 보여준다. 둘은 어떤 기대도 의도도 없었지만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스미고 교차한다. 그들의 발랄하면서도 웃픈 대화법은 나도 이런 재치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부러움을 갖게 한다.(역시나 프랑스 소설다운)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면서도 서로의 삶의 유머를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치유되어가는 시간들, 빠르게 무언가를 이루려는 것이 아닌 서로를 충분히 깊이있게 이해하고 공감해가는 시간들이 너무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둘은 식빵에 케첩을 발라 먹고, 맛이 조금 변한 와인을 마셨다. 아이들과 읽는 책, 엘사의 일, 자신들의 어린 시절과 친구들, 흘러가는 시간과 90년대, 쇼메 박사, 지연된 기차,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어둠이 속마음을 털어놓는 걸 부추겼고, 그들은 흔들리는 촛불 아래서 한 겹씩 자신을 드러내 보였다.(p172)

문학을 품은 나라 프랑스의 한 신인 소설가 비르지니 그리말디. 그녀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재치 있는 글로 독자와 소통하다가 2014 에크리르 오페미닌 문학상을 수여하고 다음 해 첫 소설을 출간한다. 그녀의 소설은 2019년부터 매년 100만 부 가까이 팔리고 있으며 총 누적 판매 부수는 800만 부에 이르렀고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연이어 11권의 소설을 발표하지만 우리나라에는 3권정도가 출간되었다. 프랑스가 가장 사랑하는 여성 소설가 비르지니 그리말디의 이야기, <세상이라는 왈츠는 우리 없이도 계속되고>는 그녀의 열번째 소설이다.어쩌면 그녀의 소설을 한국에서도 계속해서 읽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일상의 대화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어쩌면 지상에서우리의 삶은 연습과 훈련이 아닐까싶은, 죽음에 대한 것 까지도 우리는 미리 준비하고 서로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갑작스럽게 닥친 죽음의 이별은 오래 아픔이 쌓이고 현실의 삶을 멈추게 한다. 여러 상실의 이유들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큰 장애가 되기도하는데 그때마다 찾게 되는 여러 다양한 문학들, 동시대에서 함께 그러한 상실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된다. 아프면서도 유쾌한 치료법, 그것이 프랑스문학의 오랜 힘이지 않을까싶다. 작가의 섬세한 통찰력이 또 하나의 상처를 조금은 가벼웁게 하고 웃게하고 다시 사랑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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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 을유세계문학전집 142
버지니아 울프 지음, 손영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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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작가들중에는 그 얼굴이 담긴 표지만으로도 하나의 문학브랜드가 되는 이들이 있는다. 나에게는 프랑수아즈 사강, 수전손택, 마르그리트 뒤라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가 그렇다. 작가의 얼굴이 담긴 표지만으로도 읽어야겠다는 생각과 왠지 표지가 고급스럽게 와닿는다. 이번에 을유문화사에서 펴낸 [댈러웨이 부인] 또한 그랬다.  [댈러웨이 부인]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계속해서 문학의 정수가 되고 새롭게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삶이, 런던이, 6월의 이 순간이.
‘댈러웨이 부인은 꽃은 자기가 사오겠다고 말했다’를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파티를 위해 꽃을 사러가는 댈러웨이 부인의 하루의 시간이 담겨있다.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쓰여졌다는 이 소설은 댈러웨이 부인이 주인공인지 아니면 주변의 제 3의 인물들이 주인공인지 모를 정도로 많은 인물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장소도 수시로 바뀌고 인물도 사건도 수시로 바뀌면서 얽혀있다. 작가의 의식의 흐름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길을 잃을지도 모르지만 작가의 섬세한 의식의 물결은 살면서 무엇이 더 소중해지는지 어떻게 주변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지를 따뜻하게 전해준다.

댈러웨이 부인은 독감을 앓고 난 후, 파티를 위해 꽃을 사러가는 동안 더 주변을 바라보게 되고 기억을 새롭게 전환 시킨다. 갱년기를 지낸 52세의 클라리사는 일종의 삶의 전환기에 서 있게 된다.그녀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시간과 장소들, 그리고 현재 곁에 있는 주변인들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 버지나울프는 자신의 삶을 대변하듯 죽음과, 고독함과 젠더와 자살의 모습들이 계속해서 소설속에 오버랩 된다. 특히나 셉티머스라는 인물의 자살은 작가의 내면의 혼란스러움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듯하다. 그의 죽음의 의미를 살펴보며 죽음의 본질을, 타인에 대한 깊은 연민을 보이며 그 젊은이와의 일체감을 느낄정도로 가장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보여주고 그의 죽음을 누구보다도 깊이 애도한다.

“정말 바보같은 여자였어요.” 하지만 “멋진 세월을 보냈죠.” 
또 하나의 인물, 댈러웨이 부인의 지난 사랑, 피터 윌시의 시선으로 펼쳐지는 클라리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난 사랑이 본 기억들 속의 클라리사. 이제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 아이 다섯을 낳고 사는 파티의 주인공 댈러웨이 부인, 피터 윌시의 눈에 비치는 지난 사랑이 된 여인의 이야기는 오래 여운이 남는다. 그는 파티에 초대받기를 은근히 원하면서도  불편하기도 한 자리에 참석해 파티가 끝나는 순간까지 그녀를 관찰한다. 세월에 변할 수밖에 없는 사랑은 잠깐 속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황홀한 눈부심으로 남는다. 

소설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은 1923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약 4년이 지난 지점이었고, 전쟁 후반기부터 종전 직후에는 펜데믹으로 수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이 있었다. 댈러웨이 부인이 독감을 앓고 난 후 보여진 감정이 공감이 되기도 하며 소설속에 드러나는 전쟁의 폐허와 수많은 희생자들의 죽음은 계속해서 작가의 의식을 점령한듯도 보인다. 울프는 평생 우을증과 조울증, 두통과 불면, 환청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한 정신적 질병과의 싸움속에서도 울프는 오전의 글쓰기, 오후의 산책, 저녁의 독서를 엄격히 지켰다고 한다. 작가로서의 그녀의 삶은 여전히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세지가 크다는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된다. 그렇게 쓰여진 그녀의 아홉 권의 장편소설과 수십 편의 단편 소설, 에세이와 서평은 그녀의 표지에 올라온 모습만봐도 다시 읽게하는 매력이 있다.

’그 누구든 간에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을 완성하는 사람들을 심지어 장소들까지도 찾아내야 한다고, 그녀는 말 한 번 나눠 본 적 없는 사람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어떤 여자, 계산대 뒤에 있는 어떤 남자와 묘한 유대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나무나 헛간같은 것들과도. 그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맞물려 결국 초월적 이론으로 귀결되었다.‘p218

100주년 기념으로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된 [댈러웨이 부인]이 또 새롭게 익혀진다. 울프가 소중히 여겼던 것들에 대한 사유가, 섬세한 작가의 필체들이 좀 더 따뜻해지며 큰 울림마저 준다. 그녀가 써낸 문장들은 내 의식의 흐름을 건드리며 단단하게 흘러가도록 주춧대역활을 한다. 이것이 또한 고전의 힘인듯 하다. 울프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소설들,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은 내내 나를 새로운 고전의 세계로 이끈다. 늘 부단히 새롭게 고전을 출판해 주시는 분들께 그 깊은 노고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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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장미
온다 리쿠 지음, 김예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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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신 문장]
“시들지 않는 장미는 과연 아름다울까. 시들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그것은 종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조화와 무엇이 가를까.”

리드비 블라인드 서평단에서 내가 고른 문장이다. 제목은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고 쓰여진 문장중에서 하나를 택하면 문장이 들어있는 책을 받는 것이다. 책을 받는 순간 핑크의 표지가 확 들어오며 제목이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평소에 잘 선택하지 않는 화려한 제목과 표지였다. 내가 [온다리코]의 책을 읽었던 적이 있을까? 작가에 대해 빠르게 검색해 보았다. 일본 작가로 나오키상, 서점대상증 수상경력이 화려했다. 장르는 주로 SF, 판타지, 미스터리, 호러, 로맨스,청춘소설등 늘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다는 작가의 장르가 꽤나 폭이 넓다. 작가는 한 해 300여편의 도서를 정독한다고 한다. [어리석은 장미]는 데뷔 30주년을 앞둔 21년에 잡지 연재를 시작으로 무려 14년만에 완결한 역작이라고 한다. 뱀파이어와 SF세계관이 결합된 6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로 작가 스스로 큰 만족감을 가졌다고 한다.

장소는 이와쿠라마을, 축제를 앞두고 아이들이 캠프에 참가한다. 이곳은 아주 특별한 공간, 우주의 비밀이 숨겨져 이어온 곳이다. 아이들은 이곳에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모여든다. 그것은 외해로 나가는 배를 타는 허주승선원이 되고싶은 것이다. 허주승선원의 자격은 까다롭다. 뱀파이어처럼 피먹임을 하면서 변질의 시간을 이루어야 한다. 지구는 결국 태양에 먹힐것이고 인류는 더이상 지구위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은 인류를 옮길 새로운 공간을 찾아 떠나야 한다. 그일을 할 수 있는 존재가 허주 승무원인 것이다. 외해는 끝엇이 어둡고 고독한 공간이다. 아무리 쓸쓸하고 아무리 괴로워도 배를 타고 떠나야 하는 사명을 지닌 아이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 도착하게 될지 그렇게 떠났다가 사랑하는 기억의 공간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지 누구도 답을 줄 수 없다.

”외해에서는 우리는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고독을 맛보게 됩니다. 상하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그 누구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아요. 멀리 떨어진 지구에서 들려오는 메세지, 노래, 음악만이 유일한 소식이죠. 과거에서 들리는 빛과 신호를 어둡기만한 외해에서, 캄캄한 배 안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며 또 기다리면서 우리는 멀리 나아갑니다.“(125p)

우주에 닿기위해 피를 탐하며 변질을 기다리는 아이들,
변질하기 위해서는(어떠한 모습으로 변질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뱀파이어처럼 피먹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피를 먹는 아이와 피를 제공하는 아이들의 모호하고 불확실성한 관계들속에서 아이들의 비밀스런 세계가 그로데스크하게 펼쳐진다. 숙명처럼 떠안고 태어난 이와쿠라 아이들, 그리고 지구에서 태어난 자의 사명으로 멸망하는 인류를 위해 봉사해야하는 아이들의 갈등, 그렇게 책은 압도적인 고독과 압도적인 우주적 시각을 풀어놓는다. 외해의 길을 먼저 걸어간 부모의 길을 숙명처럼 떠안고 참여하게되는 나치, 그러나 피먹임이라는 과정을 받이들이고 인정할 수 없는 나치, 그러한 나치를 위해 기꺼이 피제공자가 되어주는 후카시, 순혈종으로 이미 변질체가 되어 참가한 아마치, 그리고 피먹임을 통해 빠르게 변질체가 되는 친구 유이. 빠르게 전개되는 그들의 운명의 시간들이 읽는이로 하여금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어리석은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 영원히 지지 않고 계속 피어있다. 자신의 생명이 이미 끝났다는 사실도 모른채, 어리석기 때문에 시들지 않는다.‘<p308>

일본소설은 어디로 어떻게 펼쳐질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그들의 문학은 폭이 넓고 극대화된 세계관은 미치도록 다양하고 새롭다. 끝없는 문장들은 질서정현하면서도 굉장히 우주적이다. 작은 마을 이와쿠라로 시작해서 외해라는 끄업ㄷ는 우주공간으로 끝없이 뻗어나간다. 지구라는 인류의 사랑하는 공간은 태양에 집어삼켜저 사라질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인류를 옮겨 새롭게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염원하게 된다. 인간의 의식은 무한히 꿈을 꾼다. 그것은 비논리와 윤리적인것을 떠나 그저 존재하고 싶은 열망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내내 어떠한 의문을 품게한다. 주인공 나치도 허락하고 싶지않은 것들이 존재한다. 괴물이 되고 싶지 않다. 아이들은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 어떠한 선택이든 우리는 그것을 수용하게 되지 않을까싶은, 끝내 풀어내야할 그래서 답을 얻고싶은 열린 결말을 떠안게 된다.

#어리석은장미 #온다리쿠 #리드비 #서평단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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횔덜린의 광기 - 거주하는 삶의 연대기 1806~1843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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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시인의 광기>라는 것에 호기심을 느껴서였다. 그가 시인이었다는 것 외에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한다. 순전히 ‘광기‘라는 단어에 매혹되었고 시인의 광기로 점철된 후기의 ’거주’하는 삶이 흥미를 끌었다. 36년을 네카 강변의 탑에 거주한 시인, 누군가는 미쳤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미친시인이라고도 한다. 그의 후기의 삶을 재조명하며 광대하게 자료를 모은 작가 조로조 아감벤을 통해 횔덜린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아감벤은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한 고립된 상황속에서 거의 1년간을 횔덜린과 살면서 그를 새롭게 찾기 시작했다. 힐덜린은 탑속에서 ’도서관 사서‘라고 불리는 데 집착하고 방문객들에게 ‘폐하‘, ‘각하‘,’전하’와 같은 칭호를 고집스레 사용하면서 은둔의 생활을 이어간다. 그는 거의 인간관계를 멀리하고 의례적인 인사말로 맞았다. 그가 온갖 경칭을 쓴다는 것은 ‘제발 저를 내버려두십시오’라는 뜻이었다. 작가는 이러한 횔덜린을 보며 ‘거주하는 삶’, ‘거주하는 존재로서의 삶’을 재발견 한다. ’거주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거주한다는 것은 특정한 존재 양식을 반복적이고 강화된 방식으로 ’가지고 있는 삶‘, 즉 스스로 결정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지는 삶이다. ‘습관적인 삶’은 자기 자신과 세계 전체와의 관계안에서 고유한 방식의 연속성과 응집성을 지닌 삶, 특별한 장소에 특별한 방식으로 거주하는 행위 자체에서 자기 자신에게 영향을 받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존재하게 하거나 소유할 수 없다. 오직 자기안에 거주할 뿐이다.


그는 17세부터 시를 썼다.(거의 천재적인 느낌) 그의 어머니는 그를 임신하면서부터 성직자가 되기를 기도했고, 그는 잠시 성직자의 길을 가지만 끝내 돌아선다. 정신병원에서 그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들은 냉기가 돌정도로 너무나도 간결하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반어적인 마음이 들어있는듯 했다.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냉혹한 인간조차 자연스레 지배받는 법칙조차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쓰여있다.이 책에는 그의 전기는 자세히 기록되어있지 않다.그러나 가정의 불화, 사랑의 실패로 받은 고통은 후기의 그의 방대한 기록물들 속에 녹아있고, 그가 어떠한 삶을 살기를 원했는지를 보여준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에 횔덜린의 ’거주하는 삶‘의 연대기 서술이 특별하면서도 재미있게 읽혀졌다. 괴테와의 같은 시기의 연대기는 서로의 삶의 방향성을 여실히 대비시켜 보여준다. 괴테의 얘기를 전혀 하지않았다는 횔덜린의 이야기가 흥미로울만큼 서로의 삶의 길은 달랐다. 작가는 이 부분을 책장의 좌우로 왼쪽지면에는 괴테의 일기를 중심으로 하는 소유적 삶의 세계를 오른쪽 지면에는 횔덜린의 시적 거주자로서의 삶의 세계를 기록해서 그 둘의 삶을 대비시킨다. 이분법으로 나뉘다시피한 현 세대에서 우리가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넌지시 일러주는듯 했다.

아감벤은 횔덜린이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와 그를 아는 후원자와 주변인들의 기록과 일기, 그리고 여러 메모들을 책속에 집어넣었다. 모든 세세한 기록물의 나열이 재미있게 읽혀진다. 더 재미있었던건 병원측에서 발행한 청구서 목록들이었다. 그 안에는 옷과 신발의 수선비, 뜨게양말가격, 실값, 코담배, 와인가격까지 한 조각도 버릴 수 없는 일상의 기록물들이 들어있다. 광기라는 시간속에서 그는 여전히 시를 썼고 피아노를 치고 산책을 즐겼다.그의 마지막 시로 여겨지는 부분과 마지막 기록물이 되는 그의 죽음의 기록을 읽어본다.

인간의 거주하는 삶이 저 멀리 사라져버리고
포도 넝쿨의 시간이 저 멀리서 빛날 때,
여름의 텅 빈 들판도 그곳에 함께 있고,
숲은 어두운 모습으로 나타나네.
-그의 마지막 시로 여겨지는 [전망]중에서


*프리드리히 횔덜린. 사서. 시인.
약 40년간 정신 이상 상태
출생일 및 나이: 1770년 3월 29일. 향년73세
사인: 폐질환
사망일: 6월7일 밤 10시 45분, 6월 10일 10시 안장

횔덜린의 삶이 실패로 보이는가? 우리는 삶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어야 될까? 이성/광기, 성공/실패, 공/사, 비극/희극. 같은 이분법적 사고들이 유연해지지 않는가? 힐덜린에게 ’거주하는 삶‘은 “ 인간은 이 지상에서 시적으로 거주한다”는 그의 명제처럼 ’시적인 삶‘이다.시적으로 거주하는 삶이란 우리가 주체적으로 구성하고 통제하는 삶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지고 구술되는 대로 살아가는 삶인 것이다. 우리는 이 삶을 소유할 수 없으며, 단지 그 안에 ‘거주‘할 수 있을 뿐이다. 아감벤은 사회전체의 광기에 비하면 횔덜린의 광기는 차라리 무해한 광기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거주하고 있는가? 지금’거주’의 자리는 어느정도로 무해하고 ‘시적일 수 있을까‘ 황폐해지는 정신의 세계에 또 하나의 큰 울림을 준다. 죽음직전까지 시를 놓지않고 폐허가 되는 정신속에서도 시를 썼던 시인의 ’거주‘가 끝없이 우주속에 이방인 같은 그의 존재가 현 시대의 살아가는 고독하고 쓸쓸한 존재들에게 깊은 위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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