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의 도쿄 도시 산책 시리즈
양선형 글, 민병훈 사진 / 소전서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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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여름의 도쿄. 산책은 얼마든지 길을 잃어도 좋은것이 아닐까. 그렇게 예상치 못한 풍경을 긍정하는 일이 아닐까.”책중에서

나는 이제 ‘미시마 유키오‘를 ‘미시마 도쿄‘라고 부를 것 같다. 양선형 작가님의 글은 충분히 그의 작품세계를 들려주었고 미시마의 소설을 다 읽지 않아도 그의 소설을 읽어 본듯한 느낌을 충분히 갖게 했다. 도쿄에서 나고 자라고 생을 다한 미시마 유키코, 작가는 산책하듯 걸으며 그의 흔적들을 사진과 함께 아름답게 열어준다.하나의 도시로만 보여지던 도쿄의 이미지를 새롭게 바꿔주었고 그 안에서 마지막까지 글을 쓰고 활복자살을 한 미시마의 삶을 통해 여실히 작가를 끌어안을 수 있는 힘을 들려주었다. 사실 미시마의 소설을 아직 많이 접하지 않았다. [금각사]와 [사랑의 갈증], [봄눈]을 구입하고 제대로 읽었나싶은 생각과 함께 그를, 더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문장들의 의미를 계속해서 찾고 싶어졌고 그의 모든 책을 나의 한 공간에 채워두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곧 그의 자전적 소설인 [가면의 고백]을 읽게 될 것 같다.

‘나는 무언가 나를 죽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인가 나를 살게 해주기를 기다리는 것과 똑같은 일이었다.’ -가면의 고백중에서

미시마 유이코는 탐미주의자, 바디빌더, 극우작가, 퀴어, 활복자살을 한 작가다. 일반들에게는 거의 광인처럼 느껴지는 생을 살았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멈출 수 없게 극단적인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그것은 작가가 살아온 시대를 통해서 그리고 그 시대속에서 오로지 탐구한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어렸을때부터 허약했던 미시마, 그런 미시마를 과보호하고 예민하게 교육시켰던 할머니( 미시마를 빛을 보지 못하게 할 정도로), 그리고 늘 죽음을 보여줬던 태평양전쟁과 제국의 패망……미시마는 소외감속에서 글을 쓰고 컴컴한 어둠속에서 빛을 그리며 수많은 책을 탐독했다고 한다. 그리고 십대부터 집필해낸 소설들. 미시마는 소설과 일체할 수 있는 죽음을 생각했다. 미시마의 모든 소설은 죽음을 예고하는 죽음의 미학을 그려내는 글들이었다고 한다. 그는 죽음을 사랑했고 그것은 삶을 사랑하는 일과 동일했다. 소설속에서 인물들의 죽음은 어쩌면 어느정도 그의 죽음을 예고해준것이 아닐까 싶다. 문학과 현실의 간극을 폐지하는 일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작품속으로 자신을 밀어넣는 것이었는지도, 그래서 불타는 [금각]은 활복을 통해 [금각]이 되었는지도.

‘작품에 매혹된 독자라면 그 매혹에 상응하는 사유의 값을 치러야 한다. 그의 소설을 좋아하면서도 그와 갈등하기를 바랐고, 갈팡질팡하면서 그에게로 향하는 회귀한 샛길을 발견하기를 바랐다.미시마도 그걸 원하지 않았을까? 그는 대결과 반항을, 모독과 투쟁을 사랑했으니말이다.’-본문중에서

양선형 작가님의 글들이 빛이난다. 자꾸만 계속적으로 미시마를 표현해내는 문장들이 끌림이다. 계속해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을 찿고, 작가님의 소설도 찾게 되었다(소설가인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그리고 소전서가의 책들을 찾아내서 담아놓았다. 이 책 전에 펴낸 [카프카의 프라하]와 이 후에 펴낸[울프의 런던]까지 함께 읽고 싶어졌다. 책 속의 글 뿐만이 아니라 감성있는 사진 그리고 페이지마다 고급스런 종이의 색채는 읽을때마다 나 나름대로의 단락을 나눌 수 있게끔 해주었다. 고민하지 않게 한다면 사유하지 않는다면 그건 글의 생명력을 잃은건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의식하게하고 내 의식을 새롭게하고 나의 세계관을 넓혀주는 책들, 그러한 책을 탐미하는것은 또 오로지 독자의 몫이 아닐까하는, 나의 책읽기에 더한 욕망을 주고 일상의 시간을 책읽기에 쏟아붇고 싶게하는 이러한 책들은 계속해서 곁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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