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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라는 왈츠는 우리 없이도 계속되고
비르지니 그리말디 지음, 손수연 옮김 / 저녁달 / 2025년 8월
평점 :
책표지를 보고 무조건 신청했다. 제목과 함께 책이 예뻤다. 그리고 또 프랑스 소설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전체적으로 모든 것이 낭만적인 느낌이 들게 했다. 소설은 한 편의 프랑스 영화를 보는듯 읽혀졌다. 통통튀는 대화들이 웃음짓게 하면서도 가슴 시리게 하는 문장들이 가득했다. 짧은 페이지인데 포스트잇이 가득하다. 소설 속 두 주인공인 엘사와 뱅상의 만남과 일상을 읽으며 열렬히 좋아지고 따뜻하게 공감하며 무조건 애정을 갖게 되었다.
아빠의 죽음으로 상실의 시간을 겪는 장례상담사인 엘사와
소설가이면서 사랑을 떠나보내고 오래된 상처를 안고 있는 뱅상,
그 둘은 정신과 대기실에서 스치듯 만남을 갖게 된다.
뱅상: “행복할 조건은 다 갖췄죠. 저도 알아요. 그런데도 공허해요. 더 이상 아무것도 의미가 없어요. 저는 부정적인 것만 기억하고ㅜ모두를 의심해요. 사람들은 제가 인류애 넘치는 이야기를 쓴다고 말하지만, 저는 더이상 인간을 믿지 않아요.우리는 공겨적이고, 비겁하고, 잔인해요. 실망스럽죠. 저는 더이상 정보를 접하지 않아요. 몇 달 째 신문을 펼치지도, 텔레비젼을 켜지도 않았어요. 세상의 소식은 저를 괴롭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 저를 지어삼키는 것 같아요.”
엘사: "어떤 상황속에서도 잘 지내야 한다는 그 압박감, 불편한 페이지는 빨리 넘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저를 몹시 짜증나게 해요. 아마도 제가 그런 것들에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일 거예요. 저는 행복 속에서 살기 위해, 아니, 최소한 거기에 가까워지기라도 하려고 오랫동안 저를 아주 몰아새웠거든요. 저는 슬픔을 문밖에 두려고 오래느시간 애썼어요. 얼마나 파괴적인지 잘 알고 있어서 집 안으로 들이고 싶지 않은 오래된 친구처럼요. 행복의 횡포에 짓눌렸던 거예요. ”
이러한 그 둘은 쇼메 박사의 정신과 진료실에서 대기하고 있다. 우연적 요소들이 겹치다 보면 인연이 되는걸까.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 그곳을 찾지만 결국 상처의 치유는 사랑밖에 없음을 은근슬쩍 보여준다. 둘은 어떤 기대도 의도도 없었지만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스미고 교차한다. 그들의 발랄하면서도 웃픈 대화법은 나도 이런 재치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부러움을 갖게 한다.(역시나 프랑스 소설다운)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면서도 서로의 삶의 유머를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치유되어가는 시간들, 빠르게 무언가를 이루려는 것이 아닌 서로를 충분히 깊이있게 이해하고 공감해가는 시간들이 너무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둘은 식빵에 케첩을 발라 먹고, 맛이 조금 변한 와인을 마셨다. 아이들과 읽는 책, 엘사의 일, 자신들의 어린 시절과 친구들, 흘러가는 시간과 90년대, 쇼메 박사, 지연된 기차,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어둠이 속마음을 털어놓는 걸 부추겼고, 그들은 흔들리는 촛불 아래서 한 겹씩 자신을 드러내 보였다.(p172)
문학을 품은 나라 프랑스의 한 신인 소설가 비르지니 그리말디. 그녀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재치 있는 글로 독자와 소통하다가 2014 에크리르 오페미닌 문학상을 수여하고 다음 해 첫 소설을 출간한다. 그녀의 소설은 2019년부터 매년 100만 부 가까이 팔리고 있으며 총 누적 판매 부수는 800만 부에 이르렀고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연이어 11권의 소설을 발표하지만 우리나라에는 3권정도가 출간되었다. 프랑스가 가장 사랑하는 여성 소설가 비르지니 그리말디의 이야기, <세상이라는 왈츠는 우리 없이도 계속되고>는 그녀의 열번째 소설이다.어쩌면 그녀의 소설을 한국에서도 계속해서 읽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일상의 대화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어쩌면 지상에서우리의 삶은 연습과 훈련이 아닐까싶은, 죽음에 대한 것 까지도 우리는 미리 준비하고 서로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갑작스럽게 닥친 죽음의 이별은 오래 아픔이 쌓이고 현실의 삶을 멈추게 한다. 여러 상실의 이유들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큰 장애가 되기도하는데 그때마다 찾게 되는 여러 다양한 문학들, 동시대에서 함께 그러한 상실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된다. 아프면서도 유쾌한 치료법, 그것이 프랑스문학의 오랜 힘이지 않을까싶다. 작가의 섬세한 통찰력이 또 하나의 상처를 조금은 가벼웁게 하고 웃게하고 다시 사랑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