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전들
저스틴 토레스 지음, 송섬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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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 안에 들어가서,
죽은 남자를 찾았고,
그 사람과 대화했고,
그의 비밀을 끄집어냈다.‘

퀴어의 서사는 아직 낯설지만,소설속 두 남자의 이야기는 왜이렇게 철학적인건지. 마지막 장을 덮을때는 무언가 슬퍼지고 죽음의 도래앞에 선 이의 말과 행위에 먹먹하기까지 했다. 표지와 제목부터 묵직했던 책, 주인공 후안(너무도 위트있고 철학적인)과 네네(주인공 이름은 끝내 밝혀지지않고)로 불리는 두 남자의 만남은 그리스 철학자와 제자의 모습이 오버랩 되기도 했다. 팰릭스 후안의 집으로 네네가 찾아온다. 후안은 자신이 죽으면 팰릭스에 남아있는 자기방을 넘겨받으라고 한다. 그리고 한때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프로젝트를 완성해 달라고 유언처럼 부탁한다. 네네는 후안과 지내며 그의 프로젝트의 비빌들을 하나씩 대화하듯 주고 받는다. ‘당신이 했던 말때문이 아니라 내 말을 듣던 방식 때문이예요. 바짝 귀를 기울였죠. 때로는 눈을 꼭 감고, 불편할 만큼 한참이나 그대로 있었죠. ‘ 그들은 한편의 영화이야기를 하듯이 , 동물들의 우화를 나누기도 하고 끊임없이 어떠한 자료를 토대로 그들의 끈덕진 기억들을 나누게 된다. 서로의 말을 듣는 그들의 태도와 행위가 위트하면서 너무 고급스러웠다.

후안이 프로켁트 자료로 네네에게 건네준 것들이 신비로웠다. 종이조각, 신문에서 잘라낸 기사들, 사진들, 손으로 쓴 메모들이 들어 있는 파일 폴더. 그리고 페이지 대부분을 시커멓게 칠해 지운 두꺼운 책 두 권. 이 책의 제목은 [성적 변종들: 동성애 패턴 연구]라는 제목으로 출간 된 연구서다. 이 책은 후안이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중간중간 지워진 짧은 시와 관찰들로 변해있었다. 저자는 1930년대, 퀴어 사회학자 잰 게이로 3백명이 넘는 동성애자를 상대로 그들의 삶과 욕망에 관한 증언들을 수집했다. 이 방대한 연구는 오로지 권위있는 남성 의사의 이름으로만 출판 할 수 있었다. 세상에 꺼내놓으려했던 이 증언들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암전들]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안은 죽음을 앞두고 자기 세대에서 완성할 수 없었던 이 기록물을 네네의 세대로 옮겨주고 싶은것이다.

’우리가 가진 이 책, 내가 찾아낸 모습 그대로 새까맣게 지워진 이 책이 더 좋아. 깨달음의 짧은 시들로 가득한 이 책 말이야. 책을 순서대로 읽는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어? 아무 페이지나 열어젖히면 그 속에 과거로부터 솟아오른 어떤 삶의 스케치가 끝없이 펼쳐지고, 그 하나하나가 등장한 인물이 그그복했거나 극복하지 못했음을 토로하는 단 하나의 증언인것을.’(p117) 책은 대부분 검은색 마커팬으로 죽죽 뒤덮혀 있고 남은 글자들은 무질서하게 공간이 벌어져있어 삭제된 텍스트만으로는 읽기조차 어려워보인다.( 삽화 참조) 그래도 후안은 퀴어의 정체성이 담긴 그 증언들을 그냥 어둠속으로 사라지게 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암전들]은 허구라고 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어디서부터 허구인지 어디서부터 실제인물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책속에 들어가 있는 삽화나 사진을 보면 실제 인물같기도하고 서사는 있었을까싶은 허구같기도 하다.침묵을 강요받은 시대에 별종이라 불린 그들의 정체성을 연구한 이 자료는 이대로 사라지면 안될듯했다.

후안의 마지막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너를 위해 여기까지 짊어지고 왔다.‘라고 말하며 거울을 가져다 달라고 한다. 네네는 유리가없는 텅빈 틀을 들어 보여준다.(그의 죽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는듯)후안은 ‘네가 얼굴이 되어다오’라고 말하며 거울틀을 들어 마지막 입맞춤을 한다. 네네는 모든 자료들을 모아 조금씩 책을 만들어 간다. 저자는 네네인듯 후안인듯 아니 잰 게이인듯 말한다.’ 모호한 것이 모조리 해소될 필요는 없다‘고. 암전들로 사사라지지 않는 그들의 연대가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모두의 영혼에 함께 응원을 보내고 싶다. 그저 살아낸 삶이 아름다운 삶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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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이렇게 읽어라 - 무기력하고 괴로운 현실에 상상력과 자유를
니헤이 지카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알파미디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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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들을 좋아한다. 작가와 작품을 소개받을 수 있는 책. 소설의 이력같은거를 좀 더 깊이 발견해 낼 수 있는 책을. 내가 읽은 작가의 소설을 검증해보기도 하고 작가의 또다른 저서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모르는 독자가 있을까 싶을정도로 그의 소설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읽힌다. 그러나 그의 소설을 얼마만큼 이해했냐고 물어보면 사실 조금 망설여진다. 그만큼 그의 소설은 완독은 하지만 어렵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렇게 읽어라]는 하루키의 책을 읽었거나 아니면 앞으로 읽으려하는 독자들에게 주는 하루키 입문서 같은 책이다. 하루키의 대표작품을 선정해서 작가가 그 책을 쓴 의도를 그리고 그의 전체 작품속에서 읽히는 그의 소설의 바탕이 되는 주요 주제 몇가지를 들려준다. 저자가 소개하는 책을 나 또한 다 읽어보지 못했지만, 전체적으로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하루키 책을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처럼 저자는 이해하기 쉽게 그러나 깊이있게 하루키 소설의 주요 의미들을 정리해 주었다.

하루키의 소설은 데뷔부터 일관 된 테마는 ‘자유롭게 사는 것’이라고 한다.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유를 잃지 않고 현대를 살아간다.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존재는 국가나 사회의 권위로부터 거리를 둔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 한다.현대사회는 개인의 선택의 자유보다 선택당하고 있는 부자유가 더 크다. 이렇게 자유의 본질을 찾는 여정은 조금은 느리고 결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해도 하루키는 그 과정을 소중히 여긴다. 자본주의라는 거대 시스템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강요당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사는 방식을 세워가야 한다고 소설속 주인공을 통해 들려준다. 또한 ’효율’ 이라는 도구로 취급되지 않도록 단순하고 위험한 가치관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준다. 이렇게 하루키 소설은 다양한 상상력의 발로를 펼쳐주고 다각면으로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세계관을 그려준다.

내가 하루키 작가를 알게 된 소설은 [상실의 시대]였다. 아주 오래 된 소설, 처음 읽을때는 단순히 사랑얘기인가 했다. 사실 두 번째 읽을 때도 이게 왜그렇게 인기가 있는건지 의아하기도 했다. 지금 중년을 넘기고 저자가 소개하는 [노르웨이 숲]을 읽으며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고 한 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얼마전에 영화로 본 [드라이브 마이 카]도 이제야 이해가 되고 하루키 소설이 원작인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다시 읽어봐야 겠다. IQ84를 통한 ’선과악‘의 경계선이 흥미로웠고 사실 하루키가 겪었던 ’지하철 사린 사건(일본에 처음 발생한 테러사건)과 그것을 실행한 옴 진리교를 통한 작가의 ‘선과악‘의 통찰력은 새로운 인식을 열어주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빵가게의 재습격]과 [댄스 댄스 댄스]는 통일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이물로서 주변과의 균형을 잃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주제가 포함되어 있는데, 지금 현대인에게 들려주는 중요한 메세지로 들린다. 단편 [코끼리의 소멸]은 왠지 슬픈 현대인의 자화상을 보는 듯 했다. 쓸모를 다한 우리는 이렇게 밀려나고 결국 남겨지는 것은 코끼리가 사라진.텅빈 공간이 아닐까싶은.

내가 읽은 하루키의 책들을 모아보았다. 아직 많지 않다. 사실 더 읽어야하나싶은 생각을 가졌던 적도 있었다. 제목도 그렇고 더 끌림이 없어서 빠진 책들이 많다. SF소설 같기도 하고,인물들도 수상하고, 공간들이 순간적으로 바뀌기도 하고, 일본의 정통적인 소설관과 조금 먼것도 같고. 이래저래 이유가 많았었다. 그만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작가이긴 한듯 하다.늘 그의 소설들이 주변을 서성이는것 보면. 이번에 [무라카미 하루키 이렇게 읽어라]를 통해 하루키의 소설이 확실히 친근하게 다가온다.좀 더 하루키 소설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편적 느낌이라해도 상관없다. 그만큼 하루키만의 색채가 스펙다클해졌다. 왠지 오래 사랑하는 작가가 될듯한 예감이 들고 재발견 된 소설의 소개로 인해 다시 천천히 ’하루키스페이스‘를 다시 만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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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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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걸렸다. 나는 태아 자세로 몸을 웅크렸다. 흔들릴 수 있는 외로움. 위대한 여성적 비극.나의 어머니, 나의 사랑. 너무 늦었다. 나는 책들을 먹었고 , 여기서 살 수 있었다.‘(p30)

수잰 스캔런 작가의 이름이 낯설다. 미국에서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스캔런은 많은 책을 쓴거에 비해 한국에서 번역,출간된 책은 이 책이 처음인듯하다. [의미들]이라는 책 제목이 좋아서 우선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작가의 회고록으로 어린시절 엄마를 잃은 슬픔을 비롯한 해소되지 않은 상처로 인해 스무 살에 자살 시도를 하게 되고 이후 정신병원에 입원해 정신치료를 받았던 삼년간의 기록물이다. 그녀의 끊임없이 파고드는 자살유혹 속에서 유일하게 삶의 전환으로 이끌었던게 글쓰기와 책읽기였다. 오랜 시간 그녀를 죽음의 광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한 작가와 책들이 그녀만의 시선으로 강렬하게 그려져 있다. 일찍이 페미니즘을 선언한 그녀는 어쩌면 광기에 가로잡힌듯, 죽음과 가까웠던 소위 ‘미친 여자들‘이 창조해낸 문학을 탐구하며 그것에 기대어 자신의 삶의 의미를 계속해서 발견해 나간다.

“내 인생은 일찌감치 너무 늦어버렸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저자가 처음 언급한 작가의 인상이 강렬하다. ’뒤라스스페이스’라는 창조된 단어도 너무 매력적이다. 저자는 뒤라스의 [ 연인]을 ’이 책이 없었다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지 모르겠다고, 내 인생의 시기에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이라고 처음 읽었던 느낌을 관조한다. 수치와 자기혐오로 가득했던 십대 시절에 뒤라스스페이스는 인식이며, 젊음과 노년의 연결, 제정신과 광기의 연결, 사랑의 완성과 고독에 대한 욕구 사이의 연결이 되어주었다. 이렇듯 시절마다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와 책들이 있다. 저자는 [연인]이 형성적 영향을 미친것은 그 책이 그런 책이 되는 것을 내가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고 쓴다. 스캔런의 저서 [의미들]을 선택하고 읽으면서 내 안에 깊이 와닿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그런 책이 되는것을 지금 나이에 필요로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덫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부단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삶의 의미를 찾아낸다. 실비아 플라스, 마르그리트 뒤라스, 버지니아 울프등 여성작가들의 문장과 자신의 경험을 교차해 쓰면서 고통의 언어를 의미있는 생의 언어로 이행시킨다.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읽기’가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는지를 오랜 시간에 걸쳐 성찰하고 그 과정을 의미있게 풀어간다. 끊임없이 번져가던 불안, 우울, 상실, 소외등을 문학작품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들과 연대하며 결국 삶을 지탱하는 문학의 자리에 자신을 스스로 회복해 나간다. 수전 선택이 일기에 쓴 ‘미친 여자의 자유‘,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이해받지 못하리라는 공포가 광기와 글쓰기를 연결한다.‘ 처럼 저자 또한 그 궤적을 함께 그려나간 것이다.

읽을 수록 특별한 책을 만났다는 충만한 기분에 쌓인다. 강렬한 독서의 경험을 하고 싶다면 저자가 기록한 이 회고록을 읽어보기를 조심스레 권한다. 저자는 ‘한 권의 책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누군가에게 말하는 한 방식이다. 이 책은 나에게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살아가는 다른 방식들을’ 나또한 삶의 다른 방식을 찾아낸 것이다. 내 삶의 의미를. 하루종일 누군가와 말하지 않아도 나는 누군가와 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의미를 묻고 답을 내기도, 다시 질문을 하고 다시 고심하기도. 읽기는 그런것인듯 하다. 스스로 선택한 책들이 너무도 소중해진다. 우리가 같을수는 없지만 나만의 읽기를 찾아내는듯하다. 나에게 남겨진 시간은 이렇게 읽고 쓰는 필연적 고립의 삶일듯 하다. 여러 작가들이 그러하듯, 그들의 궤적에 기꺼이 편승해본다. 내가 아는 유일한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한듯하다. 깊어지는 계절에 의미들에 의미를 부여하고싶은 분들이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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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식기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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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읽었다. 아사이 료의 <생식기>.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던 그리고 표지조자 끌림이었던 책. 호기심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직접 읽어봐야 한다는 것을. 다른 누군가의 리뷰도, 책에 대한 소개도 그저 호기심을 더 자극할 뿐이라는 것을. 이럴때는 직접 책을 읽는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 인간개체 쇼세이 안에 서식하게 되면서 혼잣말처럼 주장하는 이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소설을 하루만에 종식시키고 그 개체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알아가게 되었다. 쇼세이가 잠들때마다 성적 흥분이나 의식의 유무와 상관없이 생식기에 스스로를 팽창시켜야하는 존재. 이렇게 말하면 그게 또 무척이나 의심스러워진다. 책의 제목으로 할 만큼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하는 호김심의 발로,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책읽기는 이래서 호기심 많은 존재들의 집단처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우리도 어쩌면 하나의 공동체가 된 것인가? 주인공 쇼세이는 개체감각이 공동체 감각에 압도당하는 것을 극도로 주저하고 공동체에 사로잡히지 않는 진정한 <온전함>을 하나씩 모아가는 중인데, 나도 그것에 편승하고 싶어진다.

다쓰이 쇼세이. 33세. 독신, 가전회사의 총무과 총무부 회사원. 동성애개체.감정으로 사는 종. (이것은 지극히 쇼세이의 안의 그 존재가 입력한 입력값이다.) 쇼세이가 회사에 다니는 것은 돈을 벌기위한 의태이다. 그는 사회가 원하는 확대.성장,성장을 목표로하는 공동체에 함께하기 싫어하는 아웃사이더이다.사회는 공동체의 목표를 저해하는 개체를 <악>으로 판단하고 공동체의 공통 목표인 균형, 유지, 확대, 발전, 성장을 저해하는 개체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쇼세이는 이러한 직장을 비롯한 모든 공동체에 공헌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그는 개체의 시간을 공동체 감각으로부터 도망히는 시간, 공동체의 균형, 유지, 확대, 발전, 성장에 공헌하려는 초기설정에 아무 문제 없이 호응하는 개체들의 감시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시간을 만들어 낸다.쇼세이는 일은 하지만 개체 감각을 공동체에 압도당하지 않고 이 심신을 다음 시간으로 무사히 가져가기위해  판단, 결단, 선택, 선도의 자리에 오르기를 거부한다. 인간이 만든 사회구조에 필수적인 <성장>을 계속하기위해 생식본능에 우선하지 않는다. 사회 공동체의 <성장>은 계속해서 자신을 새롭게 상품화하는 일에 전념해야하고, 그것은 곧 인간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임을 내버리지 않도록 서로를 감시하게 되는 체제이다. 쇼세이는 직장을 확대. 발전, 성장의 맥락을 이용해 금전을 얻는 매개로서 스스로를 다른 구조를 지닌 별의 파견 근무지로 설정한다.경제적 자립을 흔드는 해고라는 결과로 이어질 만큼의 악평만 없으면 회사라는 공동체의 평가는 딱히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성실하게 그 시간을 내어주고, 직장동료의 얘기를 들어주고(들어줄 뿐입니다. 그러다 가끔 공감하게 되고) 타인에게 친절하고( 친절할 뿐이라고 하지만) 다른이들이 이야기 대상자로 위로를 받곤 한다. 직장 동료인 소우도 ” 다쓰야 선배는 제 주위에도 없고 이전에 만난적도 없는 타입“이라고 말하며 위로를 받기도, 이쓰키는 ” 어쩐지 다쓰야 앞에서는 다른 사람한테 못하는 말을 하게 돼“ 라고 말하기도 한다.

쇼세이는 다른 개체들처럼 공동체의 <지금보다 더>라는 슬로건에 갇히지 않는다. <성장>을 목표로하는 삶은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그는 다만 한 인간개체로의 삶을 유지한다. 그는 다이어트를 해서 ‘몸무게와 체지방률을 자신과 같은 키의 삼십대 남성 평균치까지 떨어트린다‘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스스로 약속한 네 가지 약속 사항을 철저히 지켜낸다. 그리고 자신만의 <다음>으로  성장은 베이킹 레시피에 도전하는 것이다.. 쇼세이는 독신아파트에서 이사하는 친구 다이스케를 위해 자신이 만든 디저트를 내놓는다. 쇼세이는 자기의 행복 기준을 [이성애 개체로부터 특권의식이 떨어져 나가는 미래] 에 맡겼으며 자신이 노화 개체가 되든 말든 심신이 시간속에서 전진하는 순수한 행복을 탐구하며 살아가기로 한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이 세계에 손을 얹는다. 문명화 된 세계는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런 일의 되풀이는 인간종에게 다시 일어날 수 없다 그건 멸종이고 퇴행으로 여길수 밖에 없을 테니까.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방법을 여전히 모를수도 있기에. 쇼세이는 오늘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다같이 디저트를 먹고 이것이 쇼세이의 새로운 생활인 것이다. 인간의 경우 같은 종의 개체라도 어떤 <온전함>을 쌓아왔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게 되는 것이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은 살아가는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오늘 나도 이렇게 새로운 생활의 시작이다. 책을 읽고, 그 책의 느낌을 써보고, 가끔 타인과 관계를 맺고, 가족의 일상을 궁금해하고, 보리와 산책을 하고, 그렇게 계절을 느끼고. 쇼세이처럼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아무도 모르게. ’저 애가 어른이 되었을 때 이 책의 내용이 현실이 되어 있을까?‘(그렇다면 기대되는데)후후 좋으네요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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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하다 앤솔러지 1
김유담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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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들의 소설이 계속 출간되는 것이 반갑기만 하다. 그들의 소설을 읽으며 현시대의 감성과 함께 현 시대의 결핍 또한 읽을 수가 있다. 때로는 우아하게 때로는 섬뜩하게 그들의 필체를 통해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사가 나의 시야를 깊게 해주고 생각의 폭을 넓혀준다. 또한 시대를 면밀하게 관찰해 내는 그들의 소설이 때때로 나를 불편하게도 하고 고요한 감정의 정서를 흔들어 놓기도 한다.

이번에 열린문학에서 다섯 명의 소설가가 하나의 주제로 함께 글을 쓴 새로운 앤솔러지 소설집 『걷다』가 출간되었다. <하다 앤솔러지>는 동사 <하다>를 테마로 우리가 평소 하는 다섯 가지 행동 즉 걷다, 묻다, 보다, 듣다, 안다에 관해 모두 25명의 소설가가 같이한 단편소설집이다. 그 첫 번째 앤솔러지 『걷다』 편에는 김유담, 성해나, 이주혜, 임선우, 임현이 참여했다. 나는 <걷다>를 읽게 되었다. 책 자체가 너무 예쁘게 출간되어서 놀랐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이 담겨있어 의미있게 읽게 되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성해나님의 소설도 좋았지만 임현 작가님의 소설을 늘 좋아한다. 임현 작가님의 소설은 <고두>를 통해 좋았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통해 더 좋았었다. 이번 <걷다>소설집에는 <느리게 흩어지>는 으로 소설속 명길의 모습은 점점히 나를 투영해 주기도 했다. <사람들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명길>의 산책을 따라가다보면 인간의 모순이나 결점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사람에게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명길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매번 어려웠다. 그런데도 개의치 않고 서슴없이 먼저 사적인 이야기를 마구 털어놓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웠다. 그런 것은 대화라고 부르기 어려운 공허한 소음들일 뿐이다.(p167)

소설집의 다섯편의 단편 소설은 걷는 이야기다. 함께도 걷고,뒤로도 걷고,반려견과도 걷고, 혼자서도 걷는다. 걷는 모습은 다 다르지만 소설속 그들은 계속 걷고 있다.그들이 걷는 속에서 나도 걷고 싶어지기도 한다. ‘다. 살려고. 기를 쓰고. 걷고. 뛰는 거예요. 죽으려고. 아니고. 살려고. 죽겠으니까. 살려고. ㅡ 이주혜, 「유월이니까」처럼 그들은 살기위해 걷고 죽지않기위해 걷고 또 뛰기도 한다. <산책>의 한자가 흩어질 산에 꾀책 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명길은 ’산책이라는 게 흩어지는 거구나. 꾀를 내어 흩어지는 일, 흩어지기위해 꾀를 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걸까. 복잡한 머릿속을 흩어지게 하는 일, 그게 산책인걸까.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함께도 걷고 혼자서도 걷는 것일까.

‘다른건 몰라도 낭만에 때 묻히고 싶지 않아‘(p36)라고 말하는 세실이, ‘나는 아주 재미없는 어른이 되었다’(p131)고 말하는 영아의 모습이 나는 오래도록 그들을 애정하게 된다. ‘낮과 밤이 공존해야 하는 것이 삶이라면, 최대한으로 밝게 살았으면 해서.‘라고 말하는 영아의 언니가,’ 좋기만 한 시간 속에서 자꾸만 너의 쓸모를 찾아서 무엇해. 정 그러면 너의 행복이 너의 쓸모라고 생각해 봐‘라고 위로하는 준이 어디서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임선우 님의 <유령개 산책하기> 소설이 꽤나 좋았었나 보다. 이렇게 좋은 문구들을 사용하는거 보면. 다섯편의 소설이 소설 속 주인공들의 걷는 모습에 자꾸만 동행하고 싶어진다. 많은 말을 주고 받지 않아도 그저 걷기만해도 오랜 여운이 남을 듯 하다. 오늘도 낭만에 때를 입히기 싫어서 읽고 읽는다. 좋은책속을 걷는 중에 어쩌면 생의 의미를 더 찾아낼수도 있으리라 생각하며 좀 더 남은 삶을 의미있게 살아낼수도 있겠다고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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