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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에게는 비밀이 있다 -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의학의 진실
데이비드 뉴먼 지음, 김성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간만에 제 전공을 떠올릴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을 한권 읽어서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저는 6년제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제가 98학번인데 그 전까지는 4년제였거든요.) 사람 약을 다루는 제약회사에서 항생제/항암제 PM(product manager)으로 근무를 했었어요.
제 대학 동기들 대다수가 동물병원에서 근무하거나 동물약품회사 또는 사료회사 같은 동물 관련 업체에서 일한 것과 비교하면 살짝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는 편이죠.
그래서 수의사로서 6년간 공부한 의학적 지식과 제약회사 PM으로 2년반 근무하면서 얻은 사람 약에 대한 지식이 섞여서 이 책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일단 '의사들에게는 비밀이 있다.'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뉴먼은 현재 뉴욕의 한 종합병원 응급의학과에서 근무 중인 의사구요. 의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진 다양한 (일부 충격적인) 사실들에 대해서 내부고발적인 분위기로 글을 써내려 가고 있어요.
그렇다고 모든 의사가 다 잘못이 있다거나 오직 돈을 위해서 이런 비밀을 숨기려고 한다거나 하는 식의 부정부패를 고자질하려는 의도는 아니구요.
다양한 이유에서 의사들 사이에 이런 비밀이 형성되었고 그 비밀을 환자에게 꼭 알려줄 필요가 없다거나 아니면 의사들 스스로가 그것이 잘못임을 모른채 자행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토로하고 있어요.
또 제약회사의 리베이트나 보험회사 같은 이익집단의 마케팅, 또 이들과 정부 차원의 복잡미묘한 관계들이 얽혀서 이루어진 결과물이라고 차분하게 객관적으로 서술해나가고 있어요.
대걔 제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은 20~30대의 아이를 둔 엄마들이 많으신데요.
몇 년전 슈퍼박테리아와 항생제 오남용에 대해 각종 매체에서 대대적으로 떠든 후로 소아과나 이비인후과에서 처방해주는 항생제에 과민반응들 많이 보이시지요. 또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들의 경우, 피부과에서 처방해주는 스테로이드제제에도 예민하시구요.
사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100% 항생제(또는 스테로이드제제)를 써서는 안된다고 말할 순 없어요.
병의 경중에 따라, 병의 종류에 따라서 필요한 경우에는 꼭 써야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콧물+기침 감기의 경우 바이러스성 질환이기 때문에 세균을 없애는데 사용되는 항생제를 쓸 필요가 없구요. 대신 중이염이나 결막염, 폐렴 등 염증 소견이 심할 경우에는 항생제를 처방받은대로 먹어야 하는게 정답이지요.
스테로이드제제 역시 무조건 쓰면 안된다가 아니라 꼭 필요한 심한 피부 소견에서는 단기간 처방을 해주실 수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일단 스테로이드 제제를 바른 후 증상 완화가 아주 빠르게 나타나는걸 보고 자꾸 연속 처방을 원하기에 문제가 되는거지요.
p.55 ~ 항생제가 기관지염, 인후염, 심지어는 감기에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좀 의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비세균성 질병에 항생제를 사용하는 경향은 수십 년 동안 이어져왔으며, 그 과정에서 미국 사람들은 이런 질병을 치료하는 데 항생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게 되었다. 사람들은 보통 증상이 시작되고 3일에서 7일 정도가 지난 후에 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일반적인 바이러스성 질환은 보통 7일에서 10일 정도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다. 내원할 떄 즈음이면 항생제를 먹든 먹지않든 병이 나을 때가 다 되었을 때라는 의미다. 하지만 우연한 시간적 일치에 불과한 것이긴 해도 항생제 복용 후 며칠, 심지어 몇 시간만 지나도 몸이 나아지는 기분이 들기 떄문에 항생제의 막강함에 대한 환자들의 믿음은 더욱 강화된다.
이런 부적절한 행동이 있을까 싶겠지만, 사실 환자들이 노골적으로 항생제를 요구하면 의사는 그런 요구를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계에서는 환자들이 자신이 희망하는 의사를 골라가서 찾아가기 때문에 환자를 끌어들여야 하는 의사 입장에서는 그런 유혹에 빠지기가 더욱 쉽다.
그런 문제 말고도 의사의 관점에서 보면 항생제 처방은 아주 간단하고 편리한 측면이 있다. 의사들은 진료할 떄 늘 시간에 쫓긴다. 그렇다보니 목구멍 안쪽을 슬쩍 살펴보고나서 신손학 항생제를 처방하는 것이 의사나 환자 모두에게 이로운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의사는 밀린 환자를 빨리빨리 볼 수 있어서 좋고, 환자는 잘 들을 것 같은 치료를 받게 되어 기쁘니 좋은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이 항생제오남용에 대해서 자주 언급을 하는데요. 아마도 이 문제가 의사집단과 환자집단 모두에게 제일 널리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라서 그런게 아닐까 싶어요.
또 우리가 흔히 듣는 디스크 환자들에 대한 수술에 대해서도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털어놓아요. 저도 몇 년전에 교통사고로 MRI로 추간판팽륜증 (추간판 탈출 직전의 상황) 진단을 받았는데요. 상대방측 보험회사에서 추간판 탈출이 아니라서 보험금 지급을 못하겠다고 우겨서 민사소송까지 한 적이 있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보험금을 받긴 했지만, 그 후 제 생명보험을 가입하려고 할 때 추간판 팽윤도 추간판 질환이라고 허리쪽 문제는 무담보(보험급을 지급하지 않겠다)로 처리하라는 통보를 받았답니다.
그런데 요통(허리통증)은 그 후에도 조금만 무리하면 도져서 늘 고생인지라 저 역시 나중에 더 심해지면 추간판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고민 중이었던지라 이 부분을 읽곤 좀 충격이 컸어요.
(우리가 흔히 아는 디스크가 추간판이랍니다.^^)
p.31 ~그럼 MRI로 요통의 원인을 추적해보는 것은 어떨까? MRI는 몸에 칼을 대지 않아도 근육에 일어난 중요한 변화를 꽤 잘 볼 수 있기 때문에 요통을 평가할 때는 우선적으로 찾는 검사방법이다. 특히 신경 압박과 척수의 문제같이 근육이 원인이 아닌 요통을 평가할 때는 더욱 쓸모가 있다. 하지만 MRI와 요통에 관해서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다. 흔히 의사들이 MRI를 보면서 요통의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내용들, 즉 추간판탈출증, 추간판 파열, 추간판팽륜증은 요통이 없는 건강한 사람들의 MRI에서도 흔히 보이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방사선과 의사들이 허리 MRI에서 찾아내는 추간판탈출증이나 추간판팽륜증, 그리고 기타 내용들이 일반적으로 요통과는 관련이 없음을 의미한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MRI에서 추간판탈출증이 보이는 경우 별다른 문제가 없다. 이들은 대부분 정상적인 소견으로 추간판이 찢어지거나 원래의 위치에서 탈출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지만 우리 몸이 별다른 사건을 일으키지 않고 그것을 치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p.32 ~ 그렇다면 광범위하게 시행되는 찢어진 추간판에 대한 외과 수술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내가 의과대학에 있을 때, 한 신경외과 의사가 말하기를 자기는 척추 수술의 효과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척추 수술환자를 앞에 두고 소독을 할 때 그런 말을 들으니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럼 지금 이 수술을 왜 하는거냐고 물었다.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다들 이렇게 하니까."
물론 저 역시 요통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지라 다양한 정형외과, 한의원(추나요법)을 돌아 다녀봤는데 수술을 권하시는 분은 극히 드물었어요. 대신 살을 빼고(허리에 대한 압박 최소화), 무리한 운동 대신 수영이나 가벼운 산책 정도의 약한 운동을 하라는 처방을 내리시더라구요. 그리고 너무 통증이 심할 때만 진통제(알약)나 직접 근육 내 주사를 놔주시는데 너무 아플 때는 누웠다 서는 것조차 할 수 없어서 저 역시 간편하게 '수술'을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이 글을 읽고나니.. 아..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지더군요.
또 저도 의사는 아니지만 수의사 자격증이 있는지라 5장. 의사는 검사를 좋아한다.는 정말 공감 백배하면서 봤답니다. 대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 본과 3,4학년 때 임상관련 과목들을 듣는데.. 그 중 절반, 아니 그 이상의 내용이 다양한 검사법의 해석과 그에 맞는 치료방법일 정도로 검사를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p.158 ~ 우리 의사들은 검사를 사랑한다. 아마 환자보다도 검사를 더 사랑할 것이다.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심전도, 엑스레이, MRI, 대장 내시경, CT 촬영, 혈액검사, 스트레스 세스트, 세균 배양 등등... 의사들은 이 검사들의 객관성, 유용성, 진실성을 철썩같이 믿는다. 앨리스의 혈구 수치는 낮았다. 앨리스가 입원해서 수혈을 받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녀가 거의 죽을 뻔한 출혈을 겪었을 때도 당직 의사는 앨리스를 진찰하지도, 심지어는 앨리스와 얘기를 나누어보지도 않았다. 그저 더 많은 검사를 지시했을 뿐이다. 대장 내시경 검사로 그럴듯한 진단이 나오자 앨리스의 담당 의사는 자기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혈구 수치가 개선되자 앨리스는 퇴원했다. 앨리스의 초기 치료, 진단, 치료 성공 여부의 판단 기준이 모두 검사를 근거로 이주어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런 검사들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정당한 근거가 있었고, 유용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출혈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검사를 한 덕분에 우리는 앨리스가 출혈을 겪는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고, 이유을 찾아내고, 얼마나 심각한지도 측정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p.169 ~ 적절한 상황에서는 현대적인 의학 검사를 통해 정확한 진단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검사를 통해 목숨을 구하는 정보를 얻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혜택을 받는 경우는 검사를 받는 사람 중에서도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의학 검사는 우리 문화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고, 현대 의료의 기본적 요소가 되었다. 하지만 이 의학 검사가 대단히 부적절해졌고, 때로는 위험하게도 의사의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의학계가 제일 깊숙이 감추어놓은 비밀 중 하나다. 우리는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배를 촉진해보고, 신경학적 검진을 하는 등의 진찰 기술의 가치를 깍아내렸다. 환자와의 소통이나 관찰 등의 기본적인 진찰 기술은 점점 외면당하고 혈액검사나 엑스레이 등의 검사만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런 검사는 우리 의사들을 환자와 가까워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멀어지게 만든다. 이런 기술의 퇴보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소통 악화와 만족도 감소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의사는 자기 직접에 만족하지 못하고, 환자는 자기 의사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심정지 환자에게 시행하는 심폐소생술(CPR)이 일반적인 대중의 믿음과 언론의 묘사와는 달리 전체적인 실패율이 93에서 99프로 정도라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기도 했어요. 수의학과에서는 CPR이 비용 대비 큰 이득이 없기 때문에 배운 적이 없거든요. 그래도 의학계에서는 저 역시 무지한 대중으로 CPR 효과가 큰 줄 알고 보건소에서 진행하는 CPR 수업도 듣고 했는데..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또 여성이 강력한 오르가즘을 느끼는 성감대라고 불리는 질 내 G스팟에 대한 연구가 사실은 의사의 개인적인 경험에 추측으로 써놓은 논문일 뿐 과학적으로 증명된 적이 없는데도 모든 사람들이 G스팟의 존재를 믿고 있다는 내용도 참 재미있게 읽었네요.
이외에도 책 말미에 저자가 환자들을 위해 이 책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놓은 환자를 위한 지침도 많은 부분 공감하면서도 이렇게 직설적으로 써놔도 의학계에서 매도 안될까? 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네요.
이 책이 340여 페이지로 다소 두꺼운 편인데다가 행간 여백이 거의 없어서 조금 지루할 수도 있는데요. 저자가 겪은 상황 위주의 설명이 많다보니 이해하기 쉽고, 전반적으로는 참 유용한 내용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p.300-301 품질 높은 연구를 바탕으로 조사한 다양한 건강관리법의 NNT
p.331~337 환자를 위한 지침
특히 이 두가지 내용은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