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다른 크리스마스
메이브 빈치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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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다른 크리스마스》를 읽었던 이유는 제목 때문에, 작가 때문이 컸다. 내가 2018년에 읽었던 가장 좋았던 소설 《그 겨울의 일주일》의 작가였으니까. 행복이 넘쳐나야 하는 때에 행복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쓸쓸함을 담아낸 이 작가의 글이 나는 왜 그리 좋은지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의 책이 나오면 홀린 듯 책을 사고 있었고 빠르게 읽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힘이 되어준 작가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올해는 다른 크리스마스》 속 단편 소설은 굉장히 짧았고, 각각 독립된 이야기에는 크리스마스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인물들이 등장했다. 행복해야만 할 것 같은 크리스마스가 주는 중압감에 눌려 행복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가 보내온 크리스마스와 사뭇 달라 낯설기도 했지만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결이 비슷하여 괜찮았다. 때로는 슬펐고, 화가 났고, 포기하고 싶었고, 외로웠고, 견뎌낸 이야기 뒤에 반전. 역시, 메이브 빈치였다.

이 책의 단편 이야기는 크고 작은 크리스마스 기적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해 동안 지키고 차가워진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물론, 마음에 따뜻해지기에 이야기는 짧았지만. 크리스마스니까 허용되는 우연히 저절로 이루어지는 마음의 작은 변화를 확인하는 과정은 크리스마스 느낌 나는 마음이 사르르 풀리는 벽난로 같았다.

"크리스마스가 특히 힘들죠. 기대치가 높아서 절대 거기에 부응할 수 없으니까요."
"꼭 스크루지처럼 말씀하시네요." 페니는 말투에서 비난의 기미를 지우느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사실이에요. 크리스마스 다음날에 크리스마스이브만큼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애가 됐건 어른이 됐건."

난 크리스마스를 참 좋아했다. 설날이나 추석보다 쉬는 날은 짧았고, 용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엄청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크리스마스가 좋았다. 크리스마스에만 느낄 수 있는 포근함이 좋았고, 가족과 온종일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그래서 난 크리스마스를 참 많이 기다렸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다음날부터 다음 크리스마스를 기다렸고, 다음 해 12월이 되면 커져가는 날짜만큼 내 마음의 설렘이 더 커지곤 했다.

크리스마스가 좋았던 이유는 매년 다른 이유로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 기다림이 난 한 번도 올해와 같은 크리스마스이었으면 하지 않았다. 내심 올해보다 더 행복한 크리스마스였으면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래왔다. 스무 살 이후에 맞이한 크리스마스는 망음 한쪽에 외로움과 슬픔에 덜그럭 거리던 시간이 있었지만, 그 외로움과 슬픔을 꽉 안아주는 사람이 내 곁에 늘 있었다.

어쩌면 인생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또 기대하는 일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크리스마스가 매해 마감날이었던 것 같다. 물론 예전보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설렘은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12월이면 연말보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이미 2020년이라 생각하는 나에게 《올해는 다른 크리스마스》의 수많은 크리스마스 이야기와 또 다른 나만의 다른 크리마스가 찾아오면 좋겠다. 그렇게 올해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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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할머니 - 사라지는 골목에서의 마지막 추억
전형준 지음 / 북폴리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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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따사로운 어느 날 할머니가 고양이를 꼬옥 끌어안고 있는 사진을 보았다. 내가 몰랐던 사랑스러움 하나를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고양이와 할머니』는 그런 책이다. 마음이 포근해지는, 사랑스러움의 빛깔을 하나 더 늘려주는 책이다. 사진을 보고 글을 읽는 동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와 고양이의 오묘하고 기묘한, 묘(猫) 한 동거를 보며 나도 모르게 시골 큰어머니 댁의 추억이 떠올릴 수 있었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집 근처부터 재개발 지역까지 부산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기록한 수많은 길고양이들의 사진과 그 사진에 함께 한 할머니의 모습은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어렸을 때 큰집에 가면, 큰어머니는 저녁마다 길고양이에게 끼니를 챙겨주셨다. 고양이가 사촌 오빠의 턱에 낸 상처를 보았던 터라, 난 사랑방을 살짝 열어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이제 나는 동그란 눈을 빛내는 고양이를 바라보는 묘미를 아는 어른이 되었고, 열 마리 남짓한 고양이의 끼니와 물을 챙겨주던 카리스마 넘치던 큰어머니는 할머니가 되셨다. 지난 추석에 알게 된 사실이 큰집에는 한 마리 고양이만 남았다는 것이다. 꼭 책 속에 동네 길고양이 형제 여덟 마리 중 혼자 살아남은 ‘하나’를 집으로 들이신 하나 할머니 같았다.


하나를 품에 끌어안는 할머니의 사진에서 고양이는 큰어머니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우는 모습에 서글픈 마음이 들었는데, 전형준 작가의 첫 번째 고양이 포토 에세이 『고양이와 할머니』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추석 동안 내가 본 모습과 달리 큰어머니의 일상 속에 '나비'는 조금 다른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자식부터 조카까지 북적이던 탓에 평소와 달리 바쁜 큰집에서 '나비'는 할머니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그렇게나 울었구나 싶었다.


콩알만 한 게 야옹야옹 말도 많아 꽁알이로 부르는 길고양이들의 밥 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꽁알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오늘따라 야가 왜 이러노"라고 무심하게 말하지만, 사료를 챙겨주던 큰어머니가 생각났다. 한겨울에도 다섯 정거장 떨어진 시장에서 명태를 사 와 손수 살을 발라주는 찐이 할머니를 보며, 마루 한켠에 고양이 간식이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묶어둔 큰어머니의 사랑이 떠올랐다.


무심하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정 많은 우리 큰어머니처럼, 부산 골목에 사는 할머니들이 작은 고양이들에게 보여준 사랑의 순간을 바라보며 쌀쌀해진 날씨와 달리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만 같았다. 고양이를 유독 아끼고 책에 많은 부분에 등장한 찐이와 찐이 할머니의 이야기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아마도 찐이를 사랑했던 찐이 할머니가 인생의 사계절을 다 보낸 후, 하늘에서 새로운 봄날을 맞이하러 간 이야기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수많은 재개발 현장에서 길고양이들을 만났다. 마을의 생이 마감하는 순간을 함께하는 건 사람들이 떠나고 남은 고양이들이었다."

"사람들은 떠났지만, 그곳에 대한 정과 기억은 남아 있다. 고양이들도 그리움을 안다."


작가가 "이 작은 털 뭉치들에게 베풀어진 온정을 보며 위로를 얻기도, 또 희망을 느끼기도 했다"라는 말처럼. 책을 읽으며 마음이 사르르 풀어지는 사랑스러움의 순간을 보며, 나 역시 위로와 희망을 그리고 행복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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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미트 - 인간과 동물 모두를 구할 대담한 식량 혁명
폴 샤피로 지음, 이진구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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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열심히 들었던 수업 중 하나가 <기후변화, 식량, 농업문제>라는 수업이었다.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져 식탁 위에 올라오는지 그 과정을 확인하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공장제 가축 운영 시스템의 대안으로 여러 가지를 배웠으나, 실험실에서 고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클린 미트』는 국내 최초로 "청정 고기"라는 개념과 기술 발전과정과 영향력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실험실에서 고기를 만들 수 있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궁금한 마음에 『클린 미트』를 읽었다.

오늘도 나는 소고기가 들어간 된장찌개에 밥을 쓱쓱 비벼 먹었다. 그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맛있는 치킨을 먹기도 하고, 맛깔스러운 돼지고기 두루치기에 쌈 싸서 먹는 걸 참 좋아한다. 이렇듯 내 식탁 위에 종종 올라와 있는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등은 내 입을 즐겁게 만들고 기분 좋은 포만감과 행복감을 안겨주지만 지구 환경에는 치명적인 위협이 되기도 한다.

소방귀 때문에 지구 온난화가 온다는 이야기처럼, 인류 멸종을 부를 수 있는 산업 중 하나가 바로 축산업이다. 자동차와 기차, 비행기 하물며 로켓이 뿜어내는 온실가스의 총합보다 축산업이 내뿜는 온실가스의 양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단기간에 빠르게 가축을 키우기 위해 투여하는 항생제의 양도 엄청나다. 사육할 때 병에 걸릴 가능성이 많아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 항생제를 투여한 동물을 먹는 우리가 단순히 고기만 먹는 건 아니다.

"저는 고기의 대체재를 찾는 모든 노력이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환경적, 도덕적, 윤리적 이유로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소비를 줄여야 할 테니까요."

공장제 사육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고기의 세포를 이용해 배양해내는 고기, 클린 미트"다. 실제 가축이 아닌 세포 배양으로 고기를 얻는다면 하나의 산업처럼 운영되는 공장제 사육은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 변화의 아이디어가 뉴욕의 한 연구소 밀집 지역에서 움트기 시작한 이야기부터 현재 어떤 단계까지 이르렀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 『클린 미트』였다.

"우리는 기술을 통해 인류에게 닥친 어여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고기를 많이 먹는 습관은 많은 사람들이 끊기 힘든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청정 고기 산업은 온갖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도 사람들에게 동일한, 어쩌면 더 나은 식품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거기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 이상 기쁜 일이 없을 겁니다."

내가 난생처음 들어본 이 기술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올해 주목을 받았는데, 빌 게이츠가 2019년 10대 유망 기술 중 하나로 선정한 것으로, 세포를 원료로 이용해 식품을 만드는 기술이다. 세포 농업에 대한 관심은 세계적인 종자 회사로 유명한 몬타나를 비롯해 농업 회사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동물의 세포를 분리해 영양분을 공급해 인큐베이터로 배양하면 마치 세포가 증식하듯 원하는 양의 고기를 얻을 수 있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공장제 가축에서 일어나는 환경문제와 항생제에 오염된 고기를 먹는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난 클린 한 고기를 섭취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광우병, 구제역, 아프리카 돼지열병, 조류 인플루엔자를 비롯하여 가축이 걸리는 질병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난 안전한 육류 섭취가 가능하다.

저자는 세계 최초로 클린 미트를 먹어본 사람으로, 클린 미트가 육류의 대체재이자 육류를 섭취할 때 생길 수 있는 환경적, 윤리적, 도덕적 문제에서 자유로운 기술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 배양해서 만든 고기, 가금육, 물고기, 유제품을 섭취하는 것에 거부감을 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공장제 가축과 기술적 검증이 끝난 클린 미트가 동시에 식탁에 오를 수 있다면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분명하다고 확신한다.

책을 읽으며 클린 미트가 과연 공장제 사육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마법의 탄환이 될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더 깨끗하고 인간과 동물에게 더 나은 삶을 안겨줄 수 있는 기술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유전공학 식품인 GMO 식품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현대인에게 클린 미트가 얼마나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8장까지 읽으며 "배양 제품은 안전성, 지속 가능성, 오염 수준, 동물복지 측면에서 기존 식품보다 낫습니다. 가격이 같거나 조금 비싸더라도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이점을 잘 설명하는 것이 셀링 포인트"라고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정성이기에. 이에 대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니 2020년대에 내가 클린 미트를 먹을 날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사에 대하여 쓴 책이기 때문에, 조금 어렵게 다가갈 수도 있다. 전문적인 용어보다는 일반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클린 미트가 어떻게 개발된 기술이며 기술의 정교함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그 전반의 과정을 읽을 수 있기에 생각보다 부담이 적을 것이다. 지난주 중앙일보 비즈니스 면에 소개되었던 기술이니만큼 2020년대의 떠오를 신기술의 발전사와 의의를 알고 싶다면 『클린 미트』를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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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20년 - 엄마의 세계가 클수록 아이의 세상이 커진다
오소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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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은 딸과 엄마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딸이 성장하는 시기에는 엄마와 그렇게 멀어지다가도 자식을 낳고 딸이 또 누군가의 엄마가 되면 비로소 모녀는 화해를 한다고.  아직도 이 말을 절반 정도 이해하고, 절반 정도는 잘 모르겠는 난, 엄마와 조금 더 화해하기 위해(?) 《엄마의 20년》이라는 책을 읽어보았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세계 여행을 다녔던 오소희 작가의 이야기는 엄마의 이야기를 쓴 여느 책과 달랐다. 한 번도 부모 수업을 받아보지 못한 채 얼떨결에 부모가 되어, 서투르고 실수투성이인 엄마인 이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자녀에게 위대한 존재이고 안정감과 사랑을 안겨주어야 하는지를 말하는 책과는 분명 달랐다. 어떻게 하면 자식을 더 잘 키울 수 있는지를 말하는 책이 아니었다. 엄마인 당신을 자녀처럼 소중히 여기라고 말하는 엄마를 위한 엄마책이었다.


엄마라면 아이를 위해 자신의 존재를 잊고 그 잊는 과정이 당연한 걸까. 자신의 이름을 00엄마로 대체하고, 가방 안에 자신의 물건보다 아이를 위해서 챙겨야 할 짐이 한가득이고, 무엇을 보고 듣고 입고 먹을 때도 모든 기준이 아이가 되어버린 엄마에게 저자는 묻는다. "자신을 잘 돌보지 않는 엄마가 어떻게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까요?" 나를 돌볼 잠깐의 짬을, 생각의 틈 조차 내지 못하는 엄마에게 오소희 작가는 단호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말한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엄마의 20년》은 20년간 중빈이 엄마로 살았던 작가 오소희가 엄마 졸업을 선언한 후, 엄마로 살아온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쓴 책이다. 지나온 시간에서 섬세하게 떠올린 이야기에는 엄마이면서, 엄마만은 아닌 누군가에게 꼭 전하고 싶은 당부가 단단하게 박혀있다. 삶을 대하는 태도,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 나 자신을 돌보고 성장하는 방법 15가지를 읽으며 문득 우리 엄마도 이렇게 살았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어렸을 때,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를 엄마가 유난히 몰입해서 보던 기억이 난다. 나는 엄마가 드라마 속 엄마처럼 진짜로 독립을 해버릴까 봐 불안해하며 "엄마도 엄마가 된 거 후회해?"라고 물었다. 엄마는 처음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한 번 더 묻자, "아니야, 뭘 그런 걸 물어."라고 했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닌 게 아니고 그런 게 그런 거라는걸. 엄마가 나에게 솔직하게 할 수 없었던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혜란이 엄마가 아닌, 엄마도 자신의 삶만을 온전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내년이면 엄마가 아빠를 만난 나이와 동갑이 된다. 후년이면 엄마가 아빠와 결혼을 한 나이가 된다. 그리고 내후년이면 엄마가 엄마가 된 나이가 된다. 이 사실에 깜짝 놀라곤 한다. 아무런 생각도 준비도 되지 않고 나이만 먹은 난, 3년이 지난다 해도 우리 엄마처럼 될 자신이 없기에. 성년을 언제 지났는지도 모를 나이지만, 엄마 앞에서 어리광을 피우며 엄마의 독립을 번번이 붙잡았던 난, 엄마에게  《엄마의 20년》을 선물하고 싶다. 뱃속에서부터 26년 동안 뜨겁게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지만 이젠 나보다 엄마의 삶을 더 사랑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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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라이프 2021-03-25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출판사 북라이프 입니다.<tory1416>님 ‘엄마의 20년‘ 도서 리뷰를 보고 오소희 작가님 신간 ‘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면‘ 출간 소식 공유드리고자 합니다.

도서소개 일부입니다.

˝떠남이 제한된 시기, 모두가 집에 머물며 깨달은 사실이 있다. 떠나지 않고도 행복해지는 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답답한 일상을 환기해줄 특별한 장소를 찾아 떠나던 과거의 방식 대신, 지금 머무는 자리에서 행복을 찾는 이들에게 ‘자기만의 세계를 가꾸는 이들의 멘토’ 오소희 작가의 존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오소희 작가님 신간에도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성가신 사랑 나쁜 사랑 3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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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어톤먼트>가 생각났다. 고구마를 100개쯤 물 없이 먹은 듯, 답답하고 나를 화나게 했던 영화 감상 후와 소설 《성가신 사랑》을 읽었을 때는 달랐다. 내 머리를 스친 생각은 분노가 아닌 탄식이었다. 어머니의 삶이 너무나도 가여워서. 그리고 그 어머니를 잃은 후에야 알게 된 진실을 홀로 감당해야 할 딸 역시 안쓰러워서. 읽고 난 후에 내 마음마저 씁쓸했다.

"5월 23일 밤, 어머니는 물에 빠져 죽었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어머니의 사체는 민투르노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스파카벤토 인근 바다에서 발견됐다."

생일날 들었던 어머니의 부고. 어머니의 장례 중에 주인공이 겪었던 신체적 변화. 어머니 집에서 발견한 물건들. 그리고 아버지와 어린 시절 나에 대한 기억.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중편 소설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가진 이야기를 쉬지 않고 읽었다. 델리아처럼, 그녀의 어머니의 죽음의 이유를 찾아서 말이다.

결말까지 읽고 난 후, 엄마의 숙명 같은 딸에 대한 사랑과 그런 엄마의 사랑을 알아가는 딸의 과정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내가 소설을 읽으며 공감했던 부분을 꼽자면, 엄마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딸의 심리상태였다. 나 역시, 지금도 우리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모르기에. 차이가 있다면, 몰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점 정도랄까?

엄마의 생각과 마음의 주인은 엄마다. 그래서 내가 알아야 할 필요가 없지만, 때때로 엄마의 삶에 큰 부분을 때론 작은 부분에 들어있는 딸인 내가 엄마의 생각과 마음을 짐작조차 못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여긴 적도 있었다. 델리아처럼, 이따금 엄마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이야기와 행동을 하실 때마다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인 날 발견하곤 했다.

"나는 어머니와 관련된 것이라면 내 내면 가장 깊은 곳에 뿌리내린 것까지 모두 지워내고 싶었다. 나는 내게서 어머니의 몸짓과 말투를 지워내려 했다. 컵을 쥐는 방식이나 찻잔으로 차를 마시는 모습, 치마나 옷을 입을 때의 어머니의 움직임, 주방과 서랍에 물건을 정돈하는 방식, 은밀한 부분을 씻는 방법, 음식 취향, 어머니가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등 모든 것을 지워버리려 했다. 어머니가 사용하던 언어와 어머니의 도시를 지워버리고 싶었다. 어머니의 호흡마저 닮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에게서 떨어져 나와 온전히 내가 되기 위해 그 모든 것을 새로 만들고 싶었다."

"내 속으로 낳았지만 도대체 알 수가 없는 존재"였던 딸이었던 난, "우리 엄마라고 하는데 남의 엄마처럼 멀게 느껴지는 존재"가 엄마인 적도 이따금 있었다. 그럴 때면, 엄마를 닮지 않겠다고 울면서 다짐하는 속 좁은 딸이 돼 곤 했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엄마와 입맛부터 쿵작이 잘 맞는 모습에. 역시 나는 엄마 딸이었구나 싶어 웃은 적도 많았다.

《성가신 사랑》은 공감하기란 쉽지 않은 소설이지만, 엄마와 딸. 두 관계의 미묘함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극적인 사건과 묘사로 보여주어 긴장감과 미스터리한 것이 많아 충격적일 때도 있지만. 델리아와 그녀의 어머니 사이의 사랑을 《성가신 사랑》이라 정의한 엘레나 피란테의 이야기에서 엄마와 나의 관계를 자연스레 돌아보게 된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 엄마와 딸 사이에 놓인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다 보면. 성가시다고 버릴 수도 놓을 수도 없었던 그 사랑의 결과에 화보다 슬픔이 스치는 걸 보면. 영화 <어톤먼트>를 볼 때와 내 마음이 달라졌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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