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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할머니 - 사라지는 골목에서의 마지막 추억
전형준 지음 / 북폴리오 / 2019년 11월
평점 :

햇살이 따사로운 어느 날 할머니가 고양이를 꼬옥 끌어안고 있는 사진을 보았다. 내가 몰랐던 사랑스러움 하나를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고양이와 할머니』는 그런 책이다. 마음이 포근해지는, 사랑스러움의 빛깔을 하나 더 늘려주는 책이다. 사진을 보고 글을 읽는 동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와 고양이의 오묘하고 기묘한, 묘(猫) 한 동거를 보며 나도 모르게 시골 큰어머니 댁의 추억이 떠올릴 수 있었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집 근처부터 재개발 지역까지 부산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기록한 수많은 길고양이들의 사진과 그 사진에 함께 한 할머니의 모습은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어렸을 때 큰집에 가면, 큰어머니는 저녁마다 길고양이에게 끼니를 챙겨주셨다. 고양이가 사촌 오빠의 턱에 낸 상처를 보았던 터라, 난 사랑방을 살짝 열어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이제 나는 동그란 눈을 빛내는 고양이를 바라보는 묘미를 아는 어른이 되었고, 열 마리 남짓한 고양이의 끼니와 물을 챙겨주던 카리스마 넘치던 큰어머니는 할머니가 되셨다. 지난 추석에 알게 된 사실이 큰집에는 한 마리 고양이만 남았다는 것이다. 꼭 책 속에 동네 길고양이 형제 여덟 마리 중 혼자 살아남은 ‘하나’를 집으로 들이신 하나 할머니 같았다.
하나를 품에 끌어안는 할머니의 사진에서 고양이는 큰어머니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우는 모습에 서글픈 마음이 들었는데, 전형준 작가의 첫 번째 고양이 포토 에세이 『고양이와 할머니』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추석 동안 내가 본 모습과 달리 큰어머니의 일상 속에 '나비'는 조금 다른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자식부터 조카까지 북적이던 탓에 평소와 달리 바쁜 큰집에서 '나비'는 할머니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그렇게나 울었구나 싶었다.
콩알만 한 게 야옹야옹 말도 많아 꽁알이로 부르는 길고양이들의 밥 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꽁알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오늘따라 야가 왜 이러노"라고 무심하게 말하지만, 사료를 챙겨주던 큰어머니가 생각났다. 한겨울에도 다섯 정거장 떨어진 시장에서 명태를 사 와 손수 살을 발라주는 찐이 할머니를 보며, 마루 한켠에 고양이 간식이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묶어둔 큰어머니의 사랑이 떠올랐다.
무심하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정 많은 우리 큰어머니처럼, 부산 골목에 사는 할머니들이 작은 고양이들에게 보여준 사랑의 순간을 바라보며 쌀쌀해진 날씨와 달리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만 같았다. 고양이를 유독 아끼고 책에 많은 부분에 등장한 찐이와 찐이 할머니의 이야기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아마도 찐이를 사랑했던 찐이 할머니가 인생의 사계절을 다 보낸 후, 하늘에서 새로운 봄날을 맞이하러 간 이야기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수많은 재개발 현장에서 길고양이들을 만났다. 마을의 생이 마감하는 순간을 함께하는 건 사람들이 떠나고 남은 고양이들이었다."
"사람들은 떠났지만, 그곳에 대한 정과 기억은 남아 있다. 고양이들도 그리움을 안다."
작가가 "이 작은 털 뭉치들에게 베풀어진 온정을 보며 위로를 얻기도, 또 희망을 느끼기도 했다"라는 말처럼. 책을 읽으며 마음이 사르르 풀어지는 사랑스러움의 순간을 보며, 나 역시 위로와 희망을 그리고 행복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