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신 사랑 나쁜 사랑 3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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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어톤먼트>가 생각났다. 고구마를 100개쯤 물 없이 먹은 듯, 답답하고 나를 화나게 했던 영화 감상 후와 소설 《성가신 사랑》을 읽었을 때는 달랐다. 내 머리를 스친 생각은 분노가 아닌 탄식이었다. 어머니의 삶이 너무나도 가여워서. 그리고 그 어머니를 잃은 후에야 알게 된 진실을 홀로 감당해야 할 딸 역시 안쓰러워서. 읽고 난 후에 내 마음마저 씁쓸했다.

"5월 23일 밤, 어머니는 물에 빠져 죽었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어머니의 사체는 민투르노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스파카벤토 인근 바다에서 발견됐다."

생일날 들었던 어머니의 부고. 어머니의 장례 중에 주인공이 겪었던 신체적 변화. 어머니 집에서 발견한 물건들. 그리고 아버지와 어린 시절 나에 대한 기억.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중편 소설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가진 이야기를 쉬지 않고 읽었다. 델리아처럼, 그녀의 어머니의 죽음의 이유를 찾아서 말이다.

결말까지 읽고 난 후, 엄마의 숙명 같은 딸에 대한 사랑과 그런 엄마의 사랑을 알아가는 딸의 과정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내가 소설을 읽으며 공감했던 부분을 꼽자면, 엄마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딸의 심리상태였다. 나 역시, 지금도 우리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모르기에. 차이가 있다면, 몰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점 정도랄까?

엄마의 생각과 마음의 주인은 엄마다. 그래서 내가 알아야 할 필요가 없지만, 때때로 엄마의 삶에 큰 부분을 때론 작은 부분에 들어있는 딸인 내가 엄마의 생각과 마음을 짐작조차 못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여긴 적도 있었다. 델리아처럼, 이따금 엄마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이야기와 행동을 하실 때마다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인 날 발견하곤 했다.

"나는 어머니와 관련된 것이라면 내 내면 가장 깊은 곳에 뿌리내린 것까지 모두 지워내고 싶었다. 나는 내게서 어머니의 몸짓과 말투를 지워내려 했다. 컵을 쥐는 방식이나 찻잔으로 차를 마시는 모습, 치마나 옷을 입을 때의 어머니의 움직임, 주방과 서랍에 물건을 정돈하는 방식, 은밀한 부분을 씻는 방법, 음식 취향, 어머니가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등 모든 것을 지워버리려 했다. 어머니가 사용하던 언어와 어머니의 도시를 지워버리고 싶었다. 어머니의 호흡마저 닮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에게서 떨어져 나와 온전히 내가 되기 위해 그 모든 것을 새로 만들고 싶었다."

"내 속으로 낳았지만 도대체 알 수가 없는 존재"였던 딸이었던 난, "우리 엄마라고 하는데 남의 엄마처럼 멀게 느껴지는 존재"가 엄마인 적도 이따금 있었다. 그럴 때면, 엄마를 닮지 않겠다고 울면서 다짐하는 속 좁은 딸이 돼 곤 했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엄마와 입맛부터 쿵작이 잘 맞는 모습에. 역시 나는 엄마 딸이었구나 싶어 웃은 적도 많았다.

《성가신 사랑》은 공감하기란 쉽지 않은 소설이지만, 엄마와 딸. 두 관계의 미묘함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극적인 사건과 묘사로 보여주어 긴장감과 미스터리한 것이 많아 충격적일 때도 있지만. 델리아와 그녀의 어머니 사이의 사랑을 《성가신 사랑》이라 정의한 엘레나 피란테의 이야기에서 엄마와 나의 관계를 자연스레 돌아보게 된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 엄마와 딸 사이에 놓인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다 보면. 성가시다고 버릴 수도 놓을 수도 없었던 그 사랑의 결과에 화보다 슬픔이 스치는 걸 보면. 영화 <어톤먼트>를 볼 때와 내 마음이 달라졌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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