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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20년 - 엄마의 세계가 클수록 아이의 세상이 커진다
오소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2월
평점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은 딸과 엄마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딸이 성장하는 시기에는 엄마와 그렇게 멀어지다가도 자식을 낳고 딸이 또 누군가의 엄마가 되면 비로소 모녀는 화해를 한다고. 아직도 이 말을 절반 정도 이해하고, 절반 정도는 잘 모르겠는 난, 엄마와 조금 더 화해하기 위해(?) 《엄마의 20년》이라는 책을 읽어보았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세계 여행을 다녔던 오소희 작가의 이야기는 엄마의 이야기를 쓴 여느 책과 달랐다. 한 번도 부모 수업을 받아보지 못한 채 얼떨결에 부모가 되어, 서투르고 실수투성이인 엄마인 이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자녀에게 위대한 존재이고 안정감과 사랑을 안겨주어야 하는지를 말하는 책과는 분명 달랐다. 어떻게 하면 자식을 더 잘 키울 수 있는지를 말하는 책이 아니었다. 엄마인 당신을 자녀처럼 소중히 여기라고 말하는 엄마를 위한 엄마책이었다.
엄마라면 아이를 위해 자신의 존재를 잊고 그 잊는 과정이 당연한 걸까. 자신의 이름을 00엄마로 대체하고, 가방 안에 자신의 물건보다 아이를 위해서 챙겨야 할 짐이 한가득이고, 무엇을 보고 듣고 입고 먹을 때도 모든 기준이 아이가 되어버린 엄마에게 저자는 묻는다. "자신을 잘 돌보지 않는 엄마가 어떻게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까요?" 나를 돌볼 잠깐의 짬을, 생각의 틈 조차 내지 못하는 엄마에게 오소희 작가는 단호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말한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엄마의 20년》은 20년간 중빈이 엄마로 살았던 작가 오소희가 엄마 졸업을 선언한 후, 엄마로 살아온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쓴 책이다. 지나온 시간에서 섬세하게 떠올린 이야기에는 엄마이면서, 엄마만은 아닌 누군가에게 꼭 전하고 싶은 당부가 단단하게 박혀있다. 삶을 대하는 태도,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 나 자신을 돌보고 성장하는 방법 15가지를 읽으며 문득 우리 엄마도 이렇게 살았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어렸을 때,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를 엄마가 유난히 몰입해서 보던 기억이 난다. 나는 엄마가 드라마 속 엄마처럼 진짜로 독립을 해버릴까 봐 불안해하며 "엄마도 엄마가 된 거 후회해?"라고 물었다. 엄마는 처음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한 번 더 묻자, "아니야, 뭘 그런 걸 물어."라고 했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닌 게 아니고 그런 게 그런 거라는걸. 엄마가 나에게 솔직하게 할 수 없었던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혜란이 엄마가 아닌, 엄마도 자신의 삶만을 온전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내년이면 엄마가 아빠를 만난 나이와 동갑이 된다. 후년이면 엄마가 아빠와 결혼을 한 나이가 된다. 그리고 내후년이면 엄마가 엄마가 된 나이가 된다. 이 사실에 깜짝 놀라곤 한다. 아무런 생각도 준비도 되지 않고 나이만 먹은 난, 3년이 지난다 해도 우리 엄마처럼 될 자신이 없기에. 성년을 언제 지났는지도 모를 나이지만, 엄마 앞에서 어리광을 피우며 엄마의 독립을 번번이 붙잡았던 난, 엄마에게 《엄마의 20년》을 선물하고 싶다. 뱃속에서부터 26년 동안 뜨겁게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지만 이젠 나보다 엄마의 삶을 더 사랑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