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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다른 크리스마스
메이브 빈치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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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다른 크리스마스》를 읽었던 이유는 제목 때문에, 작가 때문이 컸다. 내가 2018년에 읽었던 가장 좋았던 소설 《그 겨울의 일주일》의 작가였으니까. 행복이 넘쳐나야 하는 때에 행복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쓸쓸함을 담아낸 이 작가의 글이 나는 왜 그리 좋은지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의 책이 나오면 홀린 듯 책을 사고 있었고 빠르게 읽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힘이 되어준 작가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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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다른 크리스마스》 속 단편 소설은 굉장히 짧았고, 각각 독립된 이야기에는 크리스마스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인물들이 등장했다. 행복해야만 할 것 같은 크리스마스가 주는 중압감에 눌려 행복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가 보내온 크리스마스와 사뭇 달라 낯설기도 했지만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결이 비슷하여 괜찮았다. 때로는 슬펐고, 화가 났고, 포기하고 싶었고, 외로웠고, 견뎌낸 이야기 뒤에 반전. 역시, 메이브 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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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단편 이야기는 크고 작은 크리스마스 기적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해 동안 지키고 차가워진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물론, 마음에 따뜻해지기에 이야기는 짧았지만. 크리스마스니까 허용되는 우연히 저절로 이루어지는 마음의 작은 변화를 확인하는 과정은 크리스마스 느낌 나는 마음이 사르르 풀리는 벽난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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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특히 힘들죠. 기대치가 높아서 절대 거기에 부응할 수 없으니까요."
"꼭 스크루지처럼 말씀하시네요." 페니는 말투에서 비난의 기미를 지우느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사실이에요. 크리스마스 다음날에 크리스마스이브만큼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애가 됐건 어른이 됐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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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크리스마스를 참 좋아했다. 설날이나 추석보다 쉬는 날은 짧았고, 용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엄청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크리스마스가 좋았다. 크리스마스에만 느낄 수 있는 포근함이 좋았고, 가족과 온종일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그래서 난 크리스마스를 참 많이 기다렸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다음날부터 다음 크리스마스를 기다렸고, 다음 해 12월이 되면 커져가는 날짜만큼 내 마음의 설렘이 더 커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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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좋았던 이유는 매년 다른 이유로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 기다림이 난 한 번도 올해와 같은 크리스마스이었으면 하지 않았다. 내심 올해보다 더 행복한 크리스마스였으면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래왔다. 스무 살 이후에 맞이한 크리스마스는 망음 한쪽에 외로움과 슬픔에 덜그럭 거리던 시간이 있었지만, 그 외로움과 슬픔을 꽉 안아주는 사람이 내 곁에 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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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인생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또 기대하는 일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크리스마스가 매해 마감날이었던 것 같다. 물론 예전보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설렘은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12월이면 연말보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이미 2020년이라 생각하는 나에게 《올해는 다른 크리스마스》의 수많은 크리스마스 이야기와 또 다른 나만의 다른 크리마스가 찾아오면 좋겠다. 그렇게 올해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