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무렵  /  도종환

 

열정이 식은 뒤에도

사랑해야 하는 날들은 있다.

벅찬 감동 사라진 뒤에도

부둥켜안고 가야 할 사람이 있다.

 

끓어오르던 체온을 식히며

고요히 눈 감기 시작하는 저녁 하늘로

쓸쓸히 날아가는 트럼펫 소리

 

사라진 것들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풀이란 풀 다 시들고

잎이란 잎 다 진 뒤에도

떠나야 할 길이 있고

이정표 잃은 뒤에도

찾아가야 할 땅이 있다.

 

뜨겁던 날들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거기서부터도

또 시작해야 할 사랑이 있다.

 

시집 <흔들리지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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