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평가론
조기형 지음 / 지오출판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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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_ 맛 평가론, 조기형, 지오출판사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식당에 TV프로그램에서 맛집으로 소개되었다는 안내가 붙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지만 호기심에 그 식당들에 줄을 선다. 실제로 TV에 나온 맛집은 1년에 만 개에 가깝다고 한다. 왜 이렇게 많은 식당이 TV에 맛집으로 소개되는 것일까? 이렇게 많은 맛집을 보유한 한국은 미각의 제국인 것일까?

 

       2011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트루맛쇼>는 맛집에 숨겨진 비밀을 폭로한다. 또한 맛집으로 소개된 식당이 왜 맛이 없는지도 알려준다. <트루맛쇼>가 알려준 바, 가장 큰 이유는 방송사들이 맛집 프로그램에 식당을 소개해주는 비용을 받기 때문이다. 식당 운영도 무한 경쟁의 틀을 벗어날 수 없기에 그들은 ‘맛’의 연구 대신 미디어와의 부적절한 연애를 선택하는 것이다. 맛은 필요 없다. 아무런 사전 검증도 없다. 그저 출연을 위한 ‘값’을 지불하면 프로그램에 맛집으로 소개되는 것이다. 심지어 방송사와 식당을 연결해주는 홍보대행사와 브로커도 등장했다고 한다. 결국 맛집 프로그램은 초기의 ‘맛집 정보 제공’이라는 기획의도에서 벗어나 블랙마켓을 형성하게 된 것이고 이로 인한 손해는 시청자 혹은 소비자의 혀에 오롯이 전가된다.

 

       맛집은 없다! 아니, 맛집은 결국 우리가 직접 발견해야만 한다. 제대로 된 맛집을 구별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 출간되었다. <맛 평가론>이라는 딱딱한 제목에, 대학 교재를 연상시키는 딱딱한 표지를 지닌 책이다. 이 책은 특정 맛집을 소개하지 않지만, ‘맛’을 평가하는 방법,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의 약력은 다소 특이하다. 전공은 경영학이지만 10년 동안 영어교육사업에 몸담았고, 현재는 부천대학교 호텔외식 조리학과 외래교수직에 있다. 그는 말한다. “맛있게 먹는 것은 내 몸을 사랑하는 것이고 마음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그는 ‘맛있게 먹는 법’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맛 평가론>을 쓴 것이다. 저자는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맛’을 이론화 한다. 맛의 이론을 정리하는 색다른 시도를 하는 것인데, 그 체계성이 놀랍다. 미국의 사회학자 토니 왓슨에 따르면 이론이란 실재의 지도 혹은 사용설명서인데, 저자의 ‘맛 이론화’ 시도는 맛의 지도를 그리는 시도인 셈이다.

 

       <트루맛쇼>가 개봉한지 어언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도 많은 사람들은 TV에 소개된 ‘맛집’을 찾아다닌다. 그들은 미디어나 타인이 제공한 맛의 정보에 의존하는데, 저자는 자신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미각을 통해 맛을 느끼고 판단하는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맛집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저자가 “맛집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는 맛의 기준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듯, 사전의 준비가 필요한데, <맛 평가론>은 당신의 진정한 맛집을 찾기 위한 여정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맛에 대하여 관심이 깊어지면 밥상에서의 행복한 시간은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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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가격으로 승부하지 마라 - 싸게 팔지 않고 고객을 꽉 잡는 장사의 기술
다케우치 겐레이 지음, 김정환 옮김, 김중민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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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세일

       가을이다. 정녕 가을이다. 이번 여름을 돌이켜보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폭염일 테지만 아직 ‘정상적인 소비자’ 범주에 포함되는 사람이라면 한 가지 사실을 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백화점 여름 세일 기간이 유난히 길었다는 것을. 보통 여름 정기 세일은 17일이다. 그러나 롯데, 신세계, 현대 등의 유명 백화점 3사는 올해, 그 기간을 한 달로 늘려 유례없는 장기 세일을 하였다. 백화점뿐만 아니었다. 소비자가 지갑을 닫아버리자, 소비시장은 세일로 응답하였다. 무기한 세일에 돌입한 매장도 많아졌다.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90%까지의 떨이 세일, 더 이상 세일은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다. 365일 세일, ‘반값’이라는 슬로건이 넘치는 세상, 초특가 경쟁의 연속, 그렇다면 이 사회의 소비자들은 축복 받은 것일까? 결코 그렇지가 않다. 왜냐면 ‘365일 세일’은 365일 경제 불황을 의미하기에. 세일을 하지 않으면 자본의 순환이 중단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무한 세일 마케팅에 딴죽을 거는 책이 출간되었다. 제목은 <절대! 가격으로 승부하지 마라>이다. 저자 다케우치 겐레이는 경영 컨설턴트이자 유한회사 이로하의 대표이사로, 이 책을 통해 마케팅 전략을 전수한다. 특히나 이 책은 이 불황의 경제 속에서 작은 가게나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기술이 담겨 있다.

       그는 싸게 파는 것이 악순환을 초래할 뿐이라고 단언한다.

 

 

“싸게 팔면 손님이 모여든다. 그러나 이익이 줄어들고 서비스와 품질이 낮아진다.”

 

       저자는 할인 판매가 경쟁자와의 가격 경쟁을 부르고 결국 자본력이 강한 대기업이 생존하는 구조를 야기한다고 분석하며 사실은 ‘할인 판매 경쟁’이 당신들에게 함정일 수 있다고 폭로한다. 따라서 ‘상품을 싸게 파는’ 드라마에 해피엔딩은 절대로 없다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장사’의 핵심은 무엇일까? 당연히 ‘상품을 비싸게 파는’것이다. 그는 이렇게 정리한다.

 

 

“장사나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상품을 비싸게 파는’ 것이 정답이며 ‘상품을 싸게 파는’ 행위는 틀린 답이다.”

 

       이 책은 날로 심화되는 무한 경쟁의 체계에서 소상인들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러나 최근의 우리 사회 현실은 ‘성공’보다는 ‘생계’가 화두가 되는 환경이다. 모두가 생존할 수 없다. 패자부활전은 없다. 경쟁을 갈수록 피튀긴다. 그래서 예전처럼 쉽게 ‘창업’이라는 말을 꺼낼 수 없게 되었다. ‘창업’이라는 낱말 뒤에는 ‘성공’보다는 ‘실패’의 그림자가 더욱 짙게 되었기에.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일수록 ‘전략’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의 법칙이다. 꽁꽁 얼어붙은 소비자의 지갑을 한 기업의 마케팅 전략으로 녹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 책이 돌발변수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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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구본형 지음 / 와이즈베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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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시대

     ‘초일류기업’ 삼성의 한 연구원은 ‘목숨 걸고 자기계발하라!’고 말했다. 이어 “자기계발에 목숨 걸지 않고 현재 상태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바야흐로 ‘자기계발의 시대’, '너 자신의 CEO가 되어라!'(대세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도태되리).

 

       자기계발을 역설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러자 ‘엉망’인 자신을 발견한 사람도 늘어났다. 자기계발 담론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넌 엉망이야!’. 저항 없이 나머지 사람들도 이렇게 말한다. ‘난 엉망이야!’. 자신의 무능을 발견한 직장인, 그리고 취업준비생 혹은 학생들은 ‘자기계발 스트레스’라는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미친 노력’을 대담하게 권유해도 별 탈 없는 사회이기에 더 미쳐야 한다며 선지자 노릇을 하려는 사람들도 나타난다.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책 <대한민국 부모>의 저자는 자신이 만난 한 부모에 대해 말한다. “이웃집 아이의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탈모증조차 부럽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우리 아이가 원형탈모증에 걸리더라도 공부를 잘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언을 서슴없이 하여도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사회에서 ‘자기계발로 경쟁력을 키워라!’ 따위의 문장은 일반 상식으로 통한다. 이러한 상식의 함의된 또 다른 상식은 경쟁력 없는 사람은 가난해도, 인정 받지 못해도, 범죄에 노출되어도 괜찮다는 것이 아닐까? 이 시간에도 자기계발의 값을 지불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레 멸시받고 있다. 이것이 자기계발 사회의 이면이다.

 

신화 읽는 시간

        일명 ‘변화경영사상가’라고 불리는 구본형은 초기부터 지금까지 자기계발 담론을 이끈 탁월한 작가이다. 구본형만큼이나 유명한 공병호와 함께 자기계발 분야를 책임지는 구루(guru)인 셈이다. 그의 이름은 이미 브랜드가 되었다. 이 성공한 ‘1인기업가’는 1990년대 중반부터 거의 매년 끊임없이 자기계발 분야를 대표하는 책을 출간하고 있다.

 

        구본형은 어김없이 2012년에도 책을 출간하였다. 제목은 <신화 읽는 시간>. 다소 우회로이지만 이 책 역시도 자기계발(그는 자기경영이라는 용어를 쓴다)이라는 분야에 가닿는 책이다.

 

        그가 말하는 신화란 특히 ‘그리스 신화’이며 크로노스, 아프로디테, 제우스, 오디세우스, 나르키소스 등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리스 신화를 소개하는 책일까? 분명 그러한 역할도 담당하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관심은 그리스 신화를 ‘신화경영모델’로 변주하는데 있다. 이러한 프레임은 니체와 융의 이야기에서 ‘신화경영’을 도출해내는 신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새로운 독법

       날카로운 사회비평을 내놓는 박권일이 “지금 한국은 미래를 살해하고 있다”고 말해야만 했을 만큼 한국사회는 병들었다. 수많은 자기계발적 주체가 미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되었던 행복은 오히려 더 멀리 떠내려갔으며, 신자유주의라는 열차에 일찌감치 탑승한 승객들은 그것이 사실은 지옥행 급행열차라는 것 알아차리고서는 뛰어내리지 못한 채 벌벌 떨고만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유행을 끄는 것은 자기계발이라기보다는 힐링이다. 자기계발의 신화를 대표하는 구본형은 지금 이 시간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가 꺼내든 카드는 ‘그리스 신화’다. 그리고 그것의 새로운 독법을 역설한다.

 

 

"신화를 읽을 때 우리는 그 독법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신화라는 신비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와 같다. 만일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전혀 다른 열쇠를 가지고 있다면, 신화는 원시적 인간이 꾸며낸 어리석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게 된다."(12p)

 

      그는 결국 신화에서 자기경영의 원칙을 발굴하려 했다. 그러나 세상에 ‘자기경영’을 할 만큼 여유 있는 사람들은 줄어가고 있다. 그들에게도 이 책이 무용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우리를 신화의 세계로 인도할 훌륭한 가이드이기도 하기에, 결국은 독법, 그러니까 해석의 문제가 중요하다. 통용되는 독법, 구본형의 독법의 이점 혹은 의문점을 발견하고 신화를 재전유하기 위한 독자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독법이 필요한 것일까? 이제는 자아를 가꾸는 일보다 자아의 외부를 발견하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 그곳에는 ‘자아를 가꾸는 일, 즉 자기계발이 왜 미치도록 어렵게 되었는지’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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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부터 반짝반짝 빛나는 - 소중한 삶과 마주하는 60가지 행복연습
스즈키 유카리 지음, 서수지 옮김 / 아이콘북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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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부터 반짝반짝 빛나는, 스즈키 유카리, 아이콘북스 

 

온스타일과 같은 케이블 방송을 보면 같은 나이, 같은 시간을 살아도 보통 여자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잇 걸'들이 나온다. 그녀들은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선망할 라이프스타일을 전시한다. 도대체 잇 걸들을 어떤 자세로 세상을 살아 왔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돋보이는 것일까?

 

그녀들의 삶과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제목은 <서른부터 반짝반짝 빛나는>이고 '소중한 삶과 마주하는 60가지 행복연습'이라는 소제목이 달려 있다. 연분홍색의 예쁜 표지, 본문에 곁들여진 감각적인 일러스트로 꾸며진 이 책은 카페에서 홀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보기에 적당한 책으로 보인다.

 

저자 유카리는 전적으로 여자만을 독자로 삼고자 한다. 그리고 여자에 대해 말한다. 그렇다면 어떤 여자를? 앞서 말했듯이 '잇 걸'에 대해 말한다. 정확히 말해서 젊은 여자들이 '잇 걸'로 성장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즉 예상 독자들은 잇 걸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요약하자면 세상살이에 뛰어들 '여자' 후배들을 위한 '여자' 선배의 조언이 담긴 책이다. 저자는 이러한 의도성을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설명한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여자들이 우아하고 아름답게 빛나기를 바라며, 아름다움의 DNA를 배양하기 위한 지침들을 이 책 속에 정리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일본 사회도 우리와 맞먹는 외모지상주의 사회일 것이니, 외모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구심을 해소시켜주기 위해 저자는 자신이 말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아름다운 사람이란 아름다움을 느끼고 말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사람이다. 마음이 아름다우면 겉모습도 자연히 아름답게 변하는 법이다."

 

흔한 이야기를 풀어 쓴 느낌이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야기이긴 하다. 저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요즘 여자'의 '본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조언하는데 나머지 지면을 할애한다. 그녀는 어떠한 여성상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위의 인용문만 봐서는 쉽게 짐작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목차를 살피면 그 정체가 드러난다. 잠시 선별한 목차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할 수 없다'는 한계와 벽은 모두 자신이 만든다', '욕심 있는 여자가 억대 연봉을 받는 법이다.', ''잉여인간'으로 살지 말고 '엄친딸'로 등극하라', '뼛속부터 상위 1% 여자로 거듭나라',

 

모두 목차에서 발췌한 것들이다.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지만,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노골적인 솔직함을 보여준다. 여성이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두려움을 지닌 가부장적인 남성들이 보면 개탄할, 그러한 목차이기도 하지만 오늘의 분위기는 확실히 바뀌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목차이기도 하다.

 

다만 자기계발서의 인기가 하락하고 있는 한국의 추세가 반영된 책은 아닌 것 같다. 한국에서는 지금 자기계발에 쏟은 노력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이제 자기계발서를 찾기보다는 자신을 위로해줄 멘토나 힐링서적을 찾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이 오늘의 지배적인 분위기에 딱 알맞은 책은 아닌 것 같다. 오늘은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보다는 '우리를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어주는 세상은 가능한가?'에 관심을 갖는 날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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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윤리적인가? - 우리 시대의 몇 가지 우스꽝스러움과 독재에 대한 고찰
앙드레 콩트 스퐁빌 지음, 이현웅 옮김 / 생각의나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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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올림픽이 한창이다. 뉴스는 온통 올림픽 소식으로 도배되어있다. 사람들은 그것에 집중하고 즐거워하며 함께 눈물 흘리고 황홀해한다. 다른 이슈는 잊히기 딱 좋은 시절이다. 물론 ‘주티야올’(낮에는 티아라 밤에는 올림픽)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로 ‘티아라 왕따 사건’이 부각되었지만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역시나 다른 현안은 묻히기 일쑤였기에.

 

이 와중에 집요한 관찰자들은 올림픽 이슈의 틈바구니에서 ‘컨택터스’라는 낯선 단어를 발견했을 것이다. 컨택터스란 경비업체 상호인데 몇몇 언론은 비록 적은 면적일지라도 지면에 그 이름을 올려놓았다. 그것은 왜 올림픽 소식만을 전하기에도 비좁은 언론의 지면을 파고든 것일까? 대체 무슨 사연이 숨어있는 것일까?

 

사건의 전말을 알기 위해서는 컨택터스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 컨택터스라는 ‘경비업체’의 주요 업무는 무엇일까? 이 업체는 민간군사기업을 표방하는데 인력을 최대 3000명까지 운영할 수 있고, 살수차, 작전차량, 시위진압용 특수견, 무인 헬기 등의 특수장비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서비스는 주로 파업현장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그들은 국가폭력에 맞서 노동자를 보호하는가? 아니다. 기업 측에 의해 고용되어 다양한 파업현장에서 노조탄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들의 업무다. 쉽게 말해 컨택터스는 현장에 용역깡패를 투입하는 업체인 것이다. 얼마 전에 그들은 자동차부품업체인 SJM 공장에 있었다. 사측이 폭력을 구매한 것이다. 당연히 파업 중인 노동자들은 얻어맞았고 이 사건이 문제시되며 언론에 ‘컨택터스’라는 이름이 오르게 된 것이다.

 

스스로를 ‘사람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휴머니즘 종합보안회사’라는 컨택터스,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에게 무참하게 짓밟힌 노동자들은 ‘사람’의 범주에서도 탈락한 것인가?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노동자란 ‘때려눕혀야 할 빨갱이’일 뿐이다. 한겨레는 이 사건을 두고 “이제 우리가 ‘폭력도 상품’인 사회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또한 “폭력의 구매자는 당연히 자본가이고, 폭력의 대상은 사회적 약자다. 돈 있는 자들이 돈 없는 이들의 정당한 요구를 짓밟는 데 폭력 상품은 이용될 것이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언제부턴가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더니, 이제는 폭력도 거래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체계적인 기업의 형태로 폭력 상품을 판매하게 된 것이다. 돈만 있으면 언제든 구입 가능한 사적 군대, 이는 우리 사회에 잔존하는 연약한 윤리마저도 말소시킬 것이 분명해 보인다.

 

다행히도 이 사건을 방관했다는 의심의 여론에 둘러싸인 경찰의 대응으로 컨택터스는 (일시적으로라도)소멸될 터이지만, 이 사건이 우리에게 던진 문제는 쉽게 소멸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윤리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실체가 외설적으로 드러나는 사건이었기에. 이 사건이 어쩌면 우리 미래의 일상이 될 수도 있기에.

 

마르크스가 사망한지는 1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자본주의는 스스로 붕괴하기는커녕 더욱 밀도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유형과 무형, 물질과 비(非)물질을 막론한 상품화의 과정은 ‘윤리 없는 자본주의’의 면모를 강화한다. 거의 모든 것이 ‘거래 가능 품목’에 추가되고 있다. 폭력을 판매하는 컨택터스, 외모를 판매하는 성형외과, 학벌을 판매하는 학교, 성매매, 장기매매 등이 실현된 멋진 신세계, 가까운 미래에는 도대체 무엇까지 상품이 될 것인지 예측할 수조차 없다. 이러한 경향에 제동을 걸기 위함일까? 얼마 전 방한한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신간을 들고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남기고 떠났지만 우리는 명쾌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단, 세상을 바라보는 이전의 태도는 그대로였다. ‘저것은 돈이 되는가?’, ‘돈 좀 되겠는데?’

 

 

윤리 없는 자본주의의 면모가 ‘거의 모든 것의 상품화’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얼핏 자본은 소비자를 돕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본은 소비자를 구원하는 시늉만 하지, 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특정 기업들이 전쟁, 지진, 쓰나미, 경제위기 등의 위기 상황을 이용하여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가리켜 ‘재앙 자본주의’라고 명명했다. 넓게 보자면, 기업이 개인이 자본주의적 일상에서 느끼는 고통, 불안감과 같은 심리기제를 이용하여 마케팅을 하는 것도 ‘재앙 자본주의’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으리라. 자본은 소비자의 갈등, 위협, 고통, 공포, 불안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는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다. 다만 즐거움에서 고통까지 모든 것을 풍요롭게 만들어버렸다. 고통까지도 양적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지금의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고통은 필연이지만, 기업들은 그들이 고통을 감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대신에 ‘고통을 소비로 해소하라!’라고 떠든다.

 

기업에게는 소비자의 고통과 결여가 필요하다. 그래야 소비자가 상품을 필요로 하기에. 나는 이를 이용한 이윤 창출의 형태를 ‘고통 마케팅’이라고 규정하고자 한다. 이는 개인의 고통에 기생하는 자본에 대한 개념인데, 사회적으로 양산된 고통에 대한 해결책을 상품의 형식으로 제공함으로써 자본의 축적을 가속하는 기만적인 마케팅 전략을 이른다. 예컨대 최근에 성장한 힐링 산업의 경우도 소비자의 고통을 전제로 성장하는 고통 마케팅이다. 이러한 전략의 모순은 개인의 ‘신경증’, ‘스트레스’, ‘우울증’이 부재하면 수익 창출 아이템을 폐기해야한다는 사실에서 발생한다. 자본은 부재로 인한 ‘손해’를 원하지 않는다. 모기가 멸종되면 더 이상 에프킬라는 필요 없어지기에 올여름의 모기 개체수는 늘어나야만 한다! 이들의 논리에 입각한다면 결국 고통은 없애야 할 것이 아닌 더 많아야 하는 것이다. 더 많은 고통은 더 많은 처방전의 판매를 보장하기에! 달리 말하면 소비자의 고통은 자본의 기쁨이자 가능성이다. 그렇기에 고통 마케팅은 고통의 뿌리를 캐내려하기 보다는 분노로의 전이를 잠재워서 은밀하게 현재의 사회구조를 유지시키는데 이바지한다. 즉 근본적인 정치의 목적인 사회 조건의 재배치는 일어나지 않는다. 자본에게 윤리란 ‘제약’에 다름 아니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윤리의 집’이라 믿는 민주주의의 원칙과도 호환성이 그리 높지 않다. 이는 1인 1표와 1원 1표의 원리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것인데, 그럼에도 자본은 윤리로 불리고 싶어 한다. 정확히 말하면 윤리가 되어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이에 대해 앙드레 콩트 스퐁빌은 말한다. “자본주의를 하나의 윤리로 만들려는 것은 시장을 하나의 종교로, 기업을 하나의 성상으로 만들려는 것과 같다.” 시장이 지배적인 종교로 작동하는 사회, 그러나 부의 민주적 분배는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부의 분배’ 자체는 일어났다고 할 수 있는데, 분배의 방향은 민주적 분배와는 정반대로, 빈자들이 부자들을 돕는 우스운 꼴이 연출되고 있다.

 

그러나 이 부당함에 대한 문제제기는 효력이 미미하다. ‘자본주의’의 대안은 없다는 합의에 다다르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은 문제다!’라는 의견은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스퐁빌의 말처럼 결국 “그 체제가 싫든 좋든 간에, 우리는 모두 그것을 경험하며 살아”가야 할 판이다. 놀랍게도 아직 자본주의를 절대 악으로 규정하고 체제 전복을 꿈꾸는 급진적인 세력도 있지만 그들의 전략은 불임의 전략이다. 대다수의 개인에게 자본주의의 이미지는 ‘악’으로조차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처럼 자본주의를 절대 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자본주의는 찬양 받기도하고, 비판적 지지를 받기도 하고, 필연적인 것으로 공기처럼 다루어지기도 한다. 즉 자본주의에 대한 가치판단은 쉽게 정합될 수 없을 만큼 다채롭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자본주의의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규정과 몰아세움보다는 질문을 던져 그것이 정말로 ‘문제’라는 것, 정확히 어떠한 속성이 문제인가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작업이 필요한 것인데, 가령 스퐁빌이 던지는 질문은 생산적이다: “자본주의는 윤리적인가?”

 

자본의 치밀한 인상관리에도 불구, 견제 받지 않는 자본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임은 분명하다. 심지어 에드워드 러트윅이 ‘터보 자본주의’라고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드라이버는 여전히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그만큼 뺑소니도 빈번해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자본의 신형 엔진을 우리는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그것은 편향적인 설계로 인해 ‘복지’의 실패라는 결과와 더불어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 도장까지 찍으며 약속했던 ‘부의 성장’도 지키지 못했다.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이 가세했음에도 그들은 왜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것일까? 신자유주의 대한 기념비적인 저서를 내놓은 데이비드 하비는 “신자유주의화의 본질적이고 주된 업적은 부와 소득의 창출보다는 재분배에 있었다.”고 밝히는데, 주의해서 봐야할 단어는 ‘재분배’이다. 여기에서의 재분배란 최근에 활발히 논의되는 ‘경제 민주화’로 일컬어지는 재분배와는 달리 피라미드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분배를 뜻하는 것이다. 즉 신자유주의화는 반(反)경제 민주화인 것이다. 각종 협약에 의해 자본에 ‘성가신’ 노동자들은 사용자 마음대로 “일회적으로 사용하고 처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구조 개편은 수익에 불필요한 노동을 ‘쓰레기’로 분류한다. 이 ‘인간쓰레기’들은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다. 하비에 따르면

 

 

“시장 체계에서 버려지거나 또는 외부로 던져진 사람들에게 빈곤, 기아, 질병, 절망을 제외하고 신자유주의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한국의 맥락에 닿는 분석은 사회비평가 박권일에게서 나왔다. ‘인간쓰레기’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더욱 가열 찬 경쟁에 뛰어드는데 그에 따르면

 

 

“다같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믿었던 아름다운 시절은 끝나버렸다. 이제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부자 아빠냐, 아니면 자살하는 아빠냐”

 

그러나 자본과 노동의 불화를 조장한 이 범죄는 오래갈 수 없었다. 바로 ‘전지구적 경제 위기’라는 역풍을 맞게 된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의 위기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영원할 것만 같던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 끝에서 맹렬하게 진동하고 있다. 마치 금방이라도 붕괴할 것처럼 말이다.

 

결국 지금은 자본주의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좋은 시점이다. 특히 박탈당한 사람들이 직접 그것의 배제적인 특질에 대해 이야기하기 알맞은 시점이다. 어제의 자본주의는 분명 누군가에게는 특권을 주었다. 그러나 특권은 배제의 자리를 함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배제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길거리로 쫓겨난 노숙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동안 ‘길거리에 나앉은 노숙자’라는 장면은 너무도 당연시 되어왔다. 이러한 극단 말고도 ‘배제적인 것’은 편재한다. 차별과 배제는 사회적 공기가 되었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 몫 없는 자들의 범주가 점진적으로 확장되더니, 이제는 거대한 무리가 되었다. 아직 자기는 배제되지 않았다고, 언젠가는 특권을 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미 배제된 사람들을 ‘나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좀비’처럼 재현하지만 좀비가 너무도 많다.

 

 

이 상황이 윤리적이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다시 스퐁빌의 의견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그가 <자본주의는 윤리적인가?>라는 책을 통해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자본주의는 윤리와 관련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이상 윤리의 부재는 필연이라는 것일까? 그는 이러한 의문을 상쇄하기 위해 덧붙여 이렇게 말한다.

 

 

"자본주의는 윤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우리가 윤리적으로 되어야 한다.(...)우리가 경제와 윤리 둘 모두를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윤리가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가 (특히 자본주의가)윤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의 결론이다. 얼핏 자본주의적 경제구조가 유일한 경제구조라고 생각하는, 자본주의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설파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이 ‘윤리’를 바탕으로 자기규제가 아닌, 윤리에 앞서는 정치를 기획하여 더 나은 경제구조를 모색해야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정치는 우선 질문을 필요로 한다. 2012년의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일하고, 저축하고, 소비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즉 누구든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에 접속해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질문은 누구든 할 수 있다. 누구든 자신의 삶과 연계하여 자본주의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다. 그 질문은 현재의 고통을 게워내기 위해서라도 시급하다. 자본주의에 대한 질문이 시급한 이 시간, 앙드레 콩트 스퐁빌의 <자본주의는 윤리적인가?>는 ‘치명적인 질문’을 던지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다. 물론 질문의 내용은 전적으로 당신의 몫이다. 함께 자본주의에 대한 유효한 질문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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