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중국의 종말 - 우리의 일자리와 경제구조를 바꿔놓을 중국의 변화 키워드 10
숀 레인 지음, 이은경 옮김, 박한진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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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de in china', 이것은 나 어릴적 싸구려 상품의 애칭(?)이었다. 싸구려 장난감, 싸구려 시계, 싸구려 필기도구에는 어김없이 'made in china'라 적혀 있었다. 고로 내 물건이 'made in china'인 건 기분 나쁜 일인 거다. 그 시절, 중국산 제품은 널리 퍼져 있으면서도 제대로 대접 받지 못했다.


       우리에게 현대의 중국의 이미지는 어떠할까?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다. 심지어 얕잡아보는 경향도 있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보았을 '대륙 시리즈'라는 것이 있다. 그 사진들에 나타나는 중국의 이미지는 참으로 기이하다. 엽기적이며 말도 안 되고, 후진국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히며 어이없고 우습기까지하다. 13억 인구의 중국, 도대체 정체가 뭘까?

       올해는 한중수교 20주년이다. 그간의 교역액은 35배로 불었고, 이제는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중국에 대한 이해는 정체하고 있다.
 
       동시대의 중국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책이 한 권 출간되었다. 제목은 <값싼 중국의 종말>이다. 인기 칼럼니스트 숀 레인의 책이다.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중국 경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중국에서 기업전략 컨설팅회사를 세워 중국인의 먹고 입고 사는 모습을 근거리에서 관찰했기에 중국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닐 수 없었다.

       레인은 "값싼 중국의 시대는 끝"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 중국은 신흥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지금 중국은 고용 가능한 노동자 수보다 일자리가 많은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이 전세계적 불황의 틈바구니에서도 경제가 호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인건비,부동산비가 오르면 전 세계 제조업과 소비지형도는 어떻게 바뀔까?" "중국의 부동산 경기는 붐일까 몰락의 전조일까?" "중국인과 중국 정부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려면 왜 문화대혁명을 알아야 할까?" 등 중국에 대한 궁금증을 파헤치는 일에도 지면을 아끼지 않는다.

       "중국 브랜드는 다른 나라 브랜드 비해 못하다"는 내 어릴적 편견도 깨주었다. 예전에는 기업들 사이에서 중국 브랜드와 경쟁하려면 고급 브랜드 전략을 써야 한다는 게 상식처럼 통했지만 레인은 이게 사실이 아니리고 일축한다.

       중국인 노동자들은 더 이상 값싼 임금으로 애플의 아이폰과 나이키의 에어줌을 조립하면서 노예처럼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역할은 이제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지의 노동자의 몫이 되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과거의 중국은 값싼 제품을 생산하는 대규모 공장의 역할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제품을 소비하는 최대의 시장이 되었다. 냉전 종식 이후 처음으로 '초강대국' 미국은 새로운 라이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미국은 지금 중국에 대해 예각을 세우고 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 시점에서 전 세계 국가들은 두 나라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현재는 물론 미래의 세계 질서는 그들의 결정에 많은 부분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중국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혀 놓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그 힌트가 이 책에 담겨 있다. 하여,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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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결단의 순간 - 인생의 갈림길에서 후회 없이 도약하라!
김선걸.이승훈.강계만 지음 / 와이즈베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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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령
       알베르 카뮈가 말했다.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총합'이라고. 오늘도 우리는 갈림길 앞에 서있다. 선택의 순간에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다른 선택은 다른 결과를 만든다. 다른 선택이 동일한 결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운명을 뒤바꿔 놓기도 한다. 이 무게감 때문에 때론 '결단'이라 불리는 과감한 선택도 필요한 것이다.
 
       결단을 위해서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 없는 용기, 용기 없는 지혜는 결단을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결단이 선택의 성공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하여, 선택의 개념은 양면적인 것이다. 기대와 소망을 담을 수 있는 반면에 소망을 무산시키는 실패, 그것의 두려움을 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여지껏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선택은 미술을 전공한 것이다. 무슨 가장 큰 선택이 그리 싱겁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그동안 선택의 기회가 극히 적었던 탓이다. 작년까지 미술대학에서 공식적으로는 서양화를 배웠고, 관심사는 현대 미술이었다. 지금은 졸업한 상태다. 학부 시절때는 이 선택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미술로 먹고 산다는 것의 어려움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또 다른 선택, '결단'이 필요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여느 20대처럼 자의 반 타의 반 인생의 분수령에 서게 된 것이다.

멘토들의 위대한 결단
       나를 비롯한 청년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하는데 지침이 될 책이 하나 출간되었다. 제목은 <위대한 결단의 순간>이다. 저자 3인은 "현재의 인생은 곧 과거의 선택의 결과물이고, 미래는 현재 선택의 결과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매일경제신문의 기자들인데,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 멘토'라고 부를 수 있는 28인의 인생과 선택 그리고 결단에 대해 말한다.

       메가스터디 대표, 이화여대 총장, 삼성전자 사장, 엔씨소프트 대표, 동부
그룹 회장, 미래에셋 회장 등의 28인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성공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나 같이 위기를 겪은 적이 있지만 그것을 기회로 도약했다고 밝힌다.

" '오늘의 성공한 당신이 있기까지 도대체 어떤 순간이 당신을 평범한 삶에서 도약하게끔 만들었나요?' 이런 질문에 (28인)대부분의 사람이 분명하게 한 순간을 들었다. 그만큼 그들에겐 기억에 남는 한 순간,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어느 한 순간이 있었다. 우리는 이 포인트를 '위대한 결단의 순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대는 아직도 글로벌 리더를 꿈꾸는가?
       '나이가 많아서, 시간이 없어서, 주위에서 반대해서'와 같은 핑계 대지 말고 적극적으로 소우주에서 대우주로 도약하라는 게 그들의 주문이다. 이들의 조언은 최근의 경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결단, 추진력, 도전 정신, 이른바 '나는 할 수 있다!'의 정신은 도덕적 우월함을 담보한다. 반대로 머뭇거리고 깊이 고민하는 것, 즉 신중함은 나태함, 무능함, 나약함, 실패의 표징이 되어버렸다.
 
       경제 불황과 취업 대란은 계속되었고, 유의미한 조치는 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들에게는 현명한 결단의 책임이 부과되었다. 사회가 고장났다고 '사회 탓'하는 사람들이 설 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이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위에 언급한 '성공한 사람'과 비등한 사람을 가리키며 '저 탁월한 사람을 보라!'며 당신도 혹은 자신도 이 일상적 위기 속에서 언젠가는 성공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니 꿈을 잃지 말라고.

       특히나 여유로운 경제적인 기반을 갖춘 어른들은 잉여로운 청년들에게 "위기는 곧 기회, 쫄지 말고 들이대고 저질러라."고 훈수를 둔다. 그러나 청년들 대부분은 증가하는 불안정 고용 형태와 사회 안전망의 부재, 학자금이라는 빚더미로 인해 평생 위기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혹자는 이들을 역사상 가장 가난한 세대라 부른다. 이는 물론 상대적 빈곤이다.
 
       책에 나오는 고위험을 선택하여 고수익을 달성한 사람들이 신뢰하는 현실원칙은 고위험은 고수익을 만들고 저위험은 저수익을 만든다는 것인데, 현실의 많은 젊은이들은 반강제적으로 고위험 저수익의 늪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 불확실성의 세계의 젊은이들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법'은 공무원과 같은 안정적인 생계가 보장되는 직업에 도전하기로 '최후의 결단'을 내리는 것뿐이다. 그것의 경쟁률이 70:1이든 100:1이든 상관하지 않고 말이다. 이들은 분명 선택권이라는 개인의 권리를 쥐고 있지만 '저위험 저수익 vs 고위험 고수익' 중에 선택할 권리도 없는 싸구려 선택권만을 쥐게 된 것이다. 이들은 오늘도 '성공'을 위한 경쟁이 아닌 '생계'를 건 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자발적인 자기계발은 불가능해지고 있다. 살아남기 위하여 자기계발, 멘토, 롤모델에게로 떠밀리고 있을 뿐이다. 이 불확실한 세계에 맞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함정 아닌 선택지는 남아 있기나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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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륨 존 전략 - 10년을 전망하는 한국 기업의 선택
이지평 지음 / 와이즈베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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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용어는 '볼륨 존'이다. 일본 기업들이 지어낸 이 용어는 신흥국의 중간소득층 시장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 시장은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어서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브릭스, 그러니까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은 물론 최근 부상하고 있는 인도차이나, 중동과 아프리카, 중남미 지역이 볼륨 존이자, "새로운 이노베이션의 산실"이다.

"미국의 금융위기와 유럽의 재정위기로 선진국 시장이 위축되면서 신흥국 시장에 대한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투어 신흥국 시장 공략에 나서면서 신흥국 시장은 선진국 기업, 신흥국 기업 할 것 없이 기업 간 경쟁의 최대 격전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7p)

       어찌보면 <볼륨 존 전략>은 철저히 기업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고, 철저히 그들의 관심을 대변한다. 이들이 볼륨 존을 주시하는 이유는 물론 이윤 창출의 가능성 때문이다. 많은 기업들이 예전처럼 이윤을 내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세계경제는 잠정적인 위기에 빠졌고, 기업은 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글로벌 기업은 사상 최고의 이익을 갱신하고 있다. 콜게이트, 킴벌리, 유니참 등이 그러하다. 이 기업들은 볼륨 존의 현지 사정에 맞는 차별화 포인트를 갖추는 전략을 적절히 구사했기에 '사상 최고의 이익'을 낼 수 있었다는 게 저자 이지평의 진단이다.

       볼륨 존 공략에 '기업의 사활'이 걸려 있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저성장 시대의 청사진이다. 부정적 세계화 시대에서 경쟁력 있는 글로벌 경영의 유효한 방법론이 빼곡히 담겨 있다.

       그런데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책은 철저히 기업의 입장에서 쓰여졌다. 저자는 '전 세계 중산층은 2020년에 30억, 2030년에는 54억에 육박하고 세계 경제성장의 75%가 신흥국에서 이루어질 전망'이라고 소리 높여 말하며 더욱 치열해진 경쟁에서 승리할 필승의 전략을 제시하지만 빈국은 얼마나 증가할 것인지, 노동에 대한 착취는 감소할 것인지,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줄어들 것인지, 한 나라 안에서의 불평등은 얼마나 해소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하다. 애초에 '경쟁을 완하하고 그 피해를 줄이자'가 아니라 '경쟁에서 승리하라!'는 자본 논리의 토대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부정적 세계화의 시대, 경제 성장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끊임 없는 경제 성장만이 지구촌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걸까. 경제 성장이란 게 단순히 몇몇 기업이 부를 독점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2008년, 버락 오바마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문을 통해 탁월히 지적한 바 있다.

"우리는 경제의 힘을, 억만장자들이 몇 명이고 포춘지 5백 대 기업들의 이익이 얼마인지로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디어를 가진 누군가가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지, 손님에게 받은 팁으로 살아가는 웨이트리스가 일자리 잃을 걱정을 하지 않고도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 하루 휴가를 낼 수 있는지를 가지고 평가한다. 우리는 노동의 가치와 존엄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경제를 만들려 한다."

       국민도 경쟁하고 국가도 경쟁하고 노동자도 경쟁하고 기업도 경쟁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나라가 이 틀을 그대로 두고서 미래의 부를 쟁취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감격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이면의 희생과 차별 그리고 눈물을 직시하는 게 시급하다. 이 고민을 포함하지 않는, 중점으로 두지 않는 이윤 창출과 경제 성장은 악순환에 다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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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번던스 - 혁신과 번영의 새로운 문명을 기록한 미래 예측 보고서
피터 다이어맨디스.스티븐 코틀러 지음, 권오열 옮김 / 와이즈베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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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미래를 원하십니까?

       빼어난 웹툰 작가 하일권은 <3단 합체 김창남>에서 미래의 모습을 그려낸다. 허나 그것은 우리의 소망과는 다르게 지금 시대와 닮은 구석이 많고, 그래서 디스토피아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재개발, 왕따, 질병, 알콜 중독, 양극화, 빈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고삐 풀린’ 자본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사회적 배제와 차별은 계속되었고, 사회는 진보하지 않은 것이다.

 

       동시대인들의 책임은 지구의 미래가 저러한 디스토피아에 가닿지 않도록 막아내는 것이 아닐까? 이를 원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이미지를 진보와 혁신 그리고 희망과 행복으로 치장하려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세상은 잰걸음으로라도 나아가고 있다. 풍요와 번영을 약속하는 미래의 영토로 말이다. 이 노력에 일정한 성과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평균 수명은 증가하였고, 살육은 감소하였으며, 과학기술은 일상화되었고, 소통의 범위는 장대해졌다. 물론 OECD국가에서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임박한 파국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말한다. 이대로라면 우리 모두 망하고 말 것이라고. 일부의 몽상가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SF영화를 너무 자주 본 탓일까? 하긴 그것들은 미래 사회를 불모지나 첨단 기술의 지옥으로 묘사하곤 하였다.

 

       얼빠진 몽상가만이 주목받기 위해 지구멸망론을 펼치고 다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자나 깨나 보편성을 염두하며 호흡하는 지성들도 파국을 현실적인 위협으로 여긴다.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의 <장기 비상사태>, <자레드 다이아몬드의 <붕괴:사회는 어떻게 실패 또는 생존을 선택하는가>, 유진 린든의 <변화의 바람:기후와 문명의 파괴> 등의 저서가 지구적 대재앙의 시나리오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린든은 말한다. “이 시대는 1938년, 즉 제2차 세계대전 직전보다 훨씬 더 암흑의 시기”라고. 범죄 위험, 생태적 위험, 정치적 위험, 질병의 위험, 테러의 위험 등 위험 아닌 게 없다. 심지어 인간 자체도 ‘악성 종양’으로 간주되는 형국이다. 이들은 한 술 더 뜬다. “그리고 그것은 더 나빠지고 있다.”며. 이러한 호들갑에 날을 세우는 사회학자 프랭크 퓨레디는 비꼬아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단지 <요한계시록>의 네 명의 기사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종말을 전파하고 다니는 연대 규모의 기병 부대를 가지고 있다.” 

 

당신의 미래는 윤택할 것이요

       다른 이들에 비해 지나친 ‘긍정적 마인드’를 내장한 탓일까? 미국인 피터 다이어맨디스와 스티븐 코틀러는 새 책 <어번던스abundance>를 통해 우리들의 미래는 윤택할 것이라고 낙관한다. abundance는 풍부, 충만, 윤택, 넘칠 만큼 많음을 뜻한다. 그들은 미래학자적인 수사학으로 우리의 미래가 “유례없는 풍요와 번영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물론 그들이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는 아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대책 없는 비관론자가 더 큰 문제의 근원이며, 맹목적 낙관보다는 풍부한 사례와 단단한 논리로 어두운 비관주의의 해독제가 되고자 한다.

 

       도대체 어떻게?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각종 혁신 기술이다. 나노 기술, 생명 공학, 로봇 공학 등이 긍정적 미래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이 새로운 기술결정주의는 새로운 기술의 발명과 적극적인 활용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과학 기술이 인류를 멸망케 할 위력을 지녔음에도 결국 그 폐해는 더 뛰어난 과학 기술로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물론 나도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만.

 

디스토피아 아닌 미래를 위하여

       퓨레디가 “21세기 초의 문화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틀 짓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공포”라 규정해야 되었을 만큼 파국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두려움은 과잉이었다. 이 틈바구니에서 희망의 노래가 담긴 <어번던스>는 도드라져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청사진이기에 충분한 것인가는 의문이 든다. 우리의 미래가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결정주의’말고도 추가로 강조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게 내 입장이다.

 

       오늘의 진보는 더 이상 과거의 진보가 아니다. 진보의 주체도 다르다. ‘인원감축’, ‘구조조정’이 기업에 입장에서는 ‘진보’인 것처럼, 기존의 언어가 지시하는 가치는 시장이 전유한지 오래다. 나오미 클라인이 지적했듯이 우리가 사는 “지구촌은 빌 게이츠가 살면서 550억 달러의 재산을 축적한 마을이지만, 그의 전 직원 가운데 3분의 1은 임시 노동자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후자 혹은 우리 중에는 <어번던스>의 저자들이 제시하는 ‘줄기찬 풍요의 증거’를 확인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이들도 많은 게 현실이다.

 

       불평등, 양극화, 차별,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미래의 선결과제이다. 이를 위해 새로운 기술들이 기여하는 바도 분명 있겠지만, 정치를 통해 공동의 가치를 정립하는 것이 동반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다 잘 될 것이다.’와 같은 섣부른 예측보다는 ‘해야만 한다.’는 정치적 합의와 결정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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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과학 - 위대한 석학 16인이 말하는 뇌, 기억, 성격, 그리고 행복의 비밀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1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이한음 옮김 / 와이즈베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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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과학>이라는 제목의 두툼한 책이 한 권 출간되었다. 여러 저자가 참여한 이 책은 ‘엣지재단’의 가시적인 성과인데, 이 재단에 대해 알아야 이 책의 의의가 보인다. 엣지재단은 국내에 알려진 바가 없다. 인터넷에 가득 찬 그 수많은 기사들에도 ‘엣지재단’은 언급되지 않았으며, 엣지재단에 대해 말하는 국내 웹페이지도 쉽게 찾을 수가 없다.

 

       도대체 엣지재단은 무엇일까? 1996년, 편집자 겸 출판사 대표이자 이 책의 엮은이인 존 브록만에 의해 출범한 엣지재단은 세계적인 석학이 한데 모여 학문적 성과를 나누는 장이다. 유명하기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 재레드 다이아몬드, 리처드 니스벳, 조지 레이코프 등을 비롯하여 과학자, 철학자, 예술가, 기술자,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회원이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학자들 사이의 유행어인 ‘통섭’으로 설명이 되는데, 사람들은 이들에게서 인문학과 과학의 통섭을 발견한다. 통섭 이외에도 ‘다학제적’, ‘탈분과’, ‘절합’, ‘융합’ 등의 학문적 트렌드를 지칭하는 용어가 이들에게서 떠오른다.

 

       <마음의 과학>은 엣지재단의 출간물 중 <The Mind>를 번역해놓은 걸로, 제 1권에 해당하는데, 앞으로 <Culture>, <Life>, <Universe> 등의 후속편도 번역·출간될 것으로 보인다. 이 중에서 <마음의 과학>은 무엇보다도 현대과학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텍스트 뭉치인데, 짐화심리학, 신경과학, 생물학, 인지과학 등의 최신 성과를 살피기에 안성맞춤이다.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그들을 지켜본 브록만은 저자들의 탁월함을 찬양한다. “엣지 마스터 클래스는 탁월한 생각을 지닌 인물들이 모인 놀라운 자리였다. 엣지 행사에 모인 이들은 세계의 문화를 다시 쓰고 있다." 세계의 문화를 다시 쓰는 현장이 한국에서는 전혀 조명받지 못했다는 아이러니에 의아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소개되었으니 정말로 그들이 ”세계의 문화를 다시 쓰고 있”는 지를 한국 독자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일찍이 사회비판가 앙리 르페브르는 “과학이라는 것이 현실에 대해 아무 말도 해주지 못할 수도 있다.”며 우려 했는데, 이는 일정부분 현실이 되었고, 과학자들도 이 지점에 대한 고민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통섭’이라는 실험도 이 우려가 현실로 고착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추동된 것이리라.

 

       과학자 최재천은 "통섭은 무조건 학문의 경계를 허물어 하나로 버무리는 것이 아니다. 지금처럼 지나치기 높이 솟아잇는 학문 간의 장벽을 낮춰서 약간의 노력만으로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이라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주소록’을 지닌 존 브록만과 그 동료들, 이들이 분과 간 장벽, 대중과 학자 간의 장벽, 언어 간 장벽을 얼마나 무너트릴 수 있을지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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