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019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신작이다. 이야기는 그러려니, 차르다시처럼 폴짝거리면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 

게다가 고맙게도 중간에 줄도 바뀐다. 마침표가 문단 하나에 하나 밖에 없어도 그냥 두런거리는 말 이리저리 길게 빼는 수준이다. 더군다가, 얄짤없는 피비린내를 가다가다 섞어 긴장의 끈을 단단히 죄기도 하고-


모든 것을 어둠 저편, 공포 아래, 우울증 한꺼품 위, 어두운 11월 비 추적거리는 헝가리 어느 동편 평야지대에서 반복하는 작가답게 다시 찾은 곳이 작가의 "이름없는" 출생지, 쥴라, 저항의 멜랑콜리의 주무대, 그리고 그 오십 년 후를 그렸다.  

















벤크하임 바로 (벤크하임 남작) 대로가 평화 대로로 이름이 바뀌고, 해방군이 점거하던 시청이 도서관이 되고, 

몇 개 자분정이 덮이고, 올마시 궁이 고아원으로 바뀐 거 빼고는 오십 년간에 거의 바뀐 것이 없다.


쾨뢰시 강에 두 다리, 괸되치 공원, 시민 공원, 요커이 거리, 갈수록 시간표를 어기는 기차역, 코믈로 호텔, 

카지노(신사클럽, 예전의 의미와 현재의 일반적 의미로 일부러 혼동을 일으키는 장소), 분유공장, 급수탑이, 대성당이 

루마니아 구역이 공동묘지들이, 손 안 본 중세의 성벽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며  

남은 이 곳, 반세기 지나 시는 넓어지고, 사람들의 손에 아이폰을 들리고, 무릎에 노트북을 얹고 있기는 해도 

거리는 동유럽에서 밀려든 난민들로, 어린 거지들떼로, 50년전 그 유명한 "깔끔한 정원 말끔한 집안"을 모토로, 그에 따른 

질서에 한몫을 여전히 하는 나치추종 폭주족으로 시끄럽긴 해도, 

툭 하면 딸리는 휘발유에, 훔쳐가느라 드문드문 켜진 가로등에, 여전히 세찬 11월 비바람을 맞받으며, 

세상은 그렇게 계속되고,  사람들은 여전히 땅밑의 얇은 얼음판 같은 삶을 발을 짚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야기 구성은 이번에는 다 카포, 처음으로 되돌아가 갔다가 삼분의 2쯤에서 돌아온 인물이 그 초라한 끝을 맞은 뒤에

완전히 새로운 모티브로 이전의 주제를 반복한다. 

세상에 격리되기를 자처하는 교수(이번에는 '이끼"로 유명한 세계적인 석학이다)가 철학적인 사변을 직접적으로 

뜬구름 잡는 일없이 까놓고 대변하는데, 현실의 공포와 환상의 환희를 맞붙어 놓지만, 이번에 책에는 벌루시커는 없다. 

온통 현실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 (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 그리고 전쟁과 전쟁, 더불어 마지막 늑대의 인물들이) 

전쟁과 전쟁에서 선보였던 나레이션으로 서로의 생각의 꼬리를 물고 등장을 한다. 

"사탄탱고", 이 소도시에서 가는, 이제는 운행을 중지한 지선에 놓인 집단농장, 다들 어딘가로(아마 여기로) 떠났다가, 

"저항의 멜랑콜리", 벽지에서 꾸역꾸역 모여드는 사람들이 가장 낮은 자분정 물에 고이듯 모여 들었다가, 

"전쟁과 전쟁", 삶의 낙이라고는 없는 늙은 사서 소도시 도서관을 관두고 암시장에서 전재산을 바꾸고 뉴욕으로 떠났는데, 


서두에 서두를 지난 서두는 물론 누군가의 귀환으로 시작을 한다.

이번에는 마을을 버리고 도망 갔던 사기꾼에, 짭새 앞잡이도 아니요, 

동쪽에서 파괴를 목표로 천천히 기어오는 고래 속 난장이 대공도 아니요, 

대공과는 비교되지 않는 가장 하위 서열의 귀족 남작, 키다리아저씨보다 더 키가 큰

 벤크하임이 영락한 신세가 되어, 무성한 소문의 기차를 타고 떠났던 고향을 향해 

서쪽에서, 아르헨티나에서 돌아온다. 마을은 김칫국부터 먼저 원샷을 하는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옛이야기를 들려주느라 책이 몹시 길다. 애절하다, 안타깝다, 허망하다, 그리고 "우습다" 

하늘 아래 슬픔과 비애로, 저 아래 서왕모로, 세상은 계속 된다로 세상을 돌던, 자신의 질문에 질문을 던지던 

 작가가 그 초기 발판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그 속에 잊혔던 인물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보살핀다. 사탄탱고가 언급되고, 영화에 나온 

음악학교 교장까지 언급이 되지만, '전쟁과 전쟁' 속, 전쟁후 고향을 향해 떠났던 4명의 병사, 

시간과 세계를 헤매던 이 4병사들을 끊임없이 따라다니던 그분까지 시간의 정지 속에 등장을 하지만, 

끝끝내 벌루시커는 없다, 

빛이 꺼지고 멈춰선 벌루시커와 "전쟁과 전쟁"의 주인공 카린을 합쳐놓은 인물인 남작, 그리고 넌지시 등장하는 노인네 정도

그러니 얼마나 암울하게 추적거릴 것인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손 시린 겨울에 딱 맞는 서늘한 이야기, 하필 그 자리, 그곳에 태어나 달리 어쩔 수 없는 

 다시 찾은 그 암울한 메시아없는 "메시아주의", 천년왕국의 도래다. 디비나 코메디아의 가장 아래로 거꾸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래도 세상은 계속 되냐고? 





하지만 사실 이 책은 시작도 하기 전에 탱고를 추고 있었다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r Bridge (Paperback)
Connell, Evan S / Penguin Classics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Evan S. Connell 작가가 1969년 작이며, 

희한하게 1930년대가 배경이다. 내가 읽은 건 아래 표지로 바뀐 새 책, 




사실 표지에서 웃고 있지만, 브리지 씨, 여간해서는 웃지 않고 늘 똑부러지게 

한 소리 늘어놓고, 실없는 웃는 사람에게 가차없는 눈초리를 던지는 "꼰대" 전형이다. 

내용은 길어봤자 세장, 짧으면 반장의 에피소드들로 웃기기도 하고, 생각거리를 주기도 하는 

짧게 치고 들어오는 펀치들이다. 


중산층보다는 상류층에 가까운, 늘 일에 치이고, 돈 걱정에, 가족들 대소사를 살뜰히 챙기는, 

그렇다고 사사건건 간섭이 아니라, 엄중한 결단이 필요한 경우에만 번복없는 판정을 내리는 

오른쪽으로 홱 돈 정치관도 또렷하고, 인간 관계에 맺고 끊는 일 중요하고, 남에게 해끼치지 않는다는 지론 역시 지당하나, 

그 시대의 (30년대의) 시대 정신으로 철저히 무장한 "옹고집쟁이" 시민이다. 


글 읽어나가는 일은 무난하다, 재미 있는 일화들이 일화들이라, 책은 쉽게 넘어간다. 

작가가 이 알랑한, 속좁은, 편견을 자랑하는 소시민의 삶에 가타부타 끼어드는 일은 없이, 오로지 브리지 씨의 

   생각만 책은 진행되는데, 

그래도 매번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응어리가 지는,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한다. 

자식들은 하나씩 (소소하지 않은 말썽들을 부리며) 떨어져 나가고, 시대는 40년대로 고비로, 하나씩 억눌렀던, 모른 

척 넘겼던 일들이 그렇게 세월의 격랑 속으로 딱 한발자국 앞에서 책은, 멈춘다.

뒤의 해설자 말대로 펜을 놓을 때를 절묘하게 아는 것이다. 


이 책은 Mrs. Bridge 인디아 브리지 여사(1959), 그 10년 후에 나온 후편인 셈인데, 브리지 여사는 

같은 시기를 두고, 뒷전에서 등장하는 일 별로없는 브리지 씨를 두고 아이들 피우는 말썽에 머리는 앓지만  

남에게 폐끼치 않고, 사람 몫하는 아이들 키우는 일에 열심인 아주머니, 

점차 이유없이 우는 일 많아지던 중년의 가정주부 주인공을 중심으로 역시나 무미건조한 어조로, 

재미난 에피소드들로 연결이 된다. 사실 브리지 씨 보다 독자층이 10배는 넓고, 이름도 훨씬 많이 났다.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걸음걸이, 웃기면서도 웃지 못할 상황, 끝이 끝이 아닌 책. 좀 미묘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peration Wandering Soul (Paperback, Harperperennial)
Richard Powers / Perennial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리처드 파워스는 변화무쌍한, 다중인격자 아닌가 의심스럽다.  

닳고 닳은 소재를 가져와, 평이한 서체로, 별로 공감가지 않는 상황을 전제로 펼쳐지던 에코 메이커 (인디언 명, 두루미)

마치 얼굴 싹 바꾸고, 여보란듯이, 어렵기 그지 없는 단어와 어지럽기 그지 없는 구성으로 이 책을 썼다. 

  (사실 시간순으로 '객귀 작전'이 메아리 새보다 앞선다만) 

뚜렷한 목적의식과 똑부러지는 주제 선택을 보면 같은 사람 같은데, 이 책, 상당히 힘겹게 읽어나갔던 

황금충 변주곡보다 더 글이, 어ㅡ렵-다! 한 마디로," 미친" 글발이다. 두 마디-


그것말고도, 이중, 이겹, 두 손을 갖고 손뼉을 치는데, 

현대의 보잘것없는 인생사 조류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항상 어딘가, 작가 좋을 대로 점지한 큰 틀에 끼워넣는 게 그렇다.

여기서는 어린이, 그리고 동화들이다. 자다 경기 일으키며 자지러질 동화, 생각하면 

오랫동안 상처처럼 쓰린 동화들이니, 병문안용으로 절대 들고 가지 말아야할 것 같은 동화들이 곁가지를 친다. 


작가의 처음 작품  

'춤추러 가는 세 농부'


역시, 현재 디트로이트에 잠깐 들러 이 사진을 보고 강박에 빠진 나, 그리고 디트로이트,

 1914년 네덜란드 변경 독일의 세 농부, 어느 잡지사의 이야기가 빙글빙글 같이 나열 되고 있으니까, 

일반화하기에 그리 많이 읽지 않았으나, 그래도 

이런 병치배열은, 아마 작가의 강박이자 뮤즈가 아닐까 의심이 든다. 


전작이 실망스러워 접을까하다가, 그래도 아쉬워 읽기 시작했고,

 그 전작의 전작은 그 작품의 단점을 역으로 이용하고 있어서, 왜라는 질문을 거꾸로 던지며 읽어나갔다만,  

이런 구성과 제 마음대로, 일부러 어렵게 가위질해 붙여준 이야기들은 절대 번역되어 

출간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번역되어도 더럽게 욕먹을 거다. 


내용은, 불면증의 밤을 세는 소아외과 레지던트, 지지리궁상동네 파견와 근무중, 띠동갑 물리치료사와  

라오스 출신의 '방랑하는 영혼' 조이의 다리 수술을 매개로 만나게 되고, 중반쯤 소아과병동을 휘집고 다니며 

사람들 혼을 빼놓고 속도 뒤집고 다니는 애어른 녀석이 나오지만,

 이건 다 동화 이야기로, 과거 이야기로, 현재 이야기로 가는 가림막이다. 


이제껏 읽었던 리처드 파워즈의 책중에는 제일 낫기는 한데, 

이 '현실을 그대로 전하지 못할까' 어지럽힌 이야기 구조가 기가 막히긴 한데,

, 아주 살짝 작위적인 (일곱 페이지)결말이 아주, 아주 정말 개미똥만큼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Waiting for Lefty (Paperback)
Clifford Odets / Dramatist's Play Service / 198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택시노동조합의 파업전야, 그리고 그들을 잇는 직설적인 징검다리들, 1935년 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늘 한결같은 사람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한결 같은 모습이 다른 방향을 모색하면 반복 읽기를 아니 할 수는 없는지라, 

새로 읽기는 하지만  다만 똑같은 지점에서 질려 선택의 기로에 선다. 삼분의 일은 건넜는데 실패한 두번째 결혼. 삼분의 일, 이걸 물려 말어? 
















장편소설가의 재주가 짧은 이야기 길게 늘이기는 아니겠지만, 분명 이 작가는 그러한가보다. 

어찌나 긴지, 책 한권 분량을 용케 읽고 나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삼분의 일, 그 내용은 

(여기서는 줄었지만) 기존지식을 끌어다안고, 그 재미있는 '가십'거리들로 책의 반은 족히 채우고

나머지는 개성없고, 특색없고, 평면적인, 책처럼 납작한 인물들이, 그 부족분을 메운다.  

주로는 흥미로운, 당대 각광받는 분야의 과학들이 그 중심점이라 인물들은 맥빠진 연결지점으로 데려다 썼나, 

주객전도의 의심을 아니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는 뇌신경학, 그 증례연구들이 객방을 차지하고 들어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그 차가운 예로, 















유전학, 분자생물학의 발달 과정이 교과서 수준으로 책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1991년 당시. 

분명 태동기의 컴퓨학도, 멸종위기의 도서관과, 고미술학도 삼차원 책 엔진을 이루긴 한다. 

역시나 빼곡한 글씨로, 유전학 책 내용을, 주인공의 감성과 맞물려 엮어 내는데, 이런 작정하고 맞물리는 작업에는 

자칫, 억지가 들어가기 쉬운 법이나, 매끈하게 기워 놓았다는 느낌을 준다. 

격언들처럼 흐르는 책 내용들이 경구같아서, 해독하기 힘든 측면이 지나쳐, 

툭하면 줄거리를 놓치기 쉬워서 이런 착각을 주나, 의심을 해보지만 글은 여하간 멋지다.  

어려운 처음을 좀 넘다 보면 그러니까, 리듬 좀 타다보면, 거기 끼여 삐걱거리는 사람들이, 자꾸 덜커덩거리며 '본 줄기'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돌아가는 트레드밀에 헉헉대며, 그저 표정없는 얼굴을 꾸미고 미적거리기만 하는 B급 영화, C급 영화 배우 흉내를 내는지라, 엉뚱하고 뜬금포없는 이 진전이나, 탐구들이란, 목엣가시는 아닐지언정 껄끄럽다. 

뭐라는지 도통 알아듣지 못할 주절거리는 이 생기 하나 없는 실험실 생쥐들은 내려놓자 싶어 잠시 내려놓았지만, 접기에는 많이 아쉬운 책이라, 언젠가-는 다시 펼질지 모를 일이나, 두 번째 실험에 돌입하는 마음으로 집어들었던-


십여 년 차이 지는 '에코 메이커'는 

포와 바흐의 합집합, '황금충 변주곡' 책처럼 혼종이다. 이번에는 대중과학잡지, 유행처럼 번지는 뇌과학 책와 '영화'로 제작하기 딱 좋을 미국식 소설의 면면을 갖췄다. 

영화라고 쳐도 그렇게 대중 영화는 아니겠으나, 꽤나 어깨 힘을 주는 소설을 옮겨 놓으면 갖다 쓰는 그런 '클리셰'들을 

미리부터 자체 장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데자뷰'로 이건 이런 장면이 되겠구나, 미리 보기를 하고 있다. 

인물들 연결은, 이전보다 낫다. 이전 부풀어 올라 높은 줄 모르고 날아오르던 소설적 성취를 접어두고 한껏 내려앉은 평이한 서술은 건너지르기 쉬워 고맙다. 

그래도 이런 패턴의 반복이 아주 달갑지는 않은 것이, 교과서 빼면 얼마 안 되는 착해빠진 주인공들이, 그 행동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맡은 바 역할을 하나만 줄창 연기, 책 반까지 그러고 있다. 그러니까, 시작이 반이다!  

 그런 것은 그렇다쳐도, 무능력, 무기력, 신경과의, 더러운 꼴 안보려고 애초부터 외래진료를 접었는데, 연구실에서 소설책만 팠나, 연구란 게. 겨우 어불성설 (보지도 않는 환자) 케이스 연구, 더해 기본은 무시, 실제상황은 무지하고, 그 고민이란 어리석기 그지 없는데다,-그외는 스포일러인 관계로 중략, 그렇게 책을 여러 번 던지고, 당겼다가, 던지다 보면 헛웃음만 허- 


읽지는 않았으나, 그런 반복이 



"오버스토리"-은행나무, 




여기서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넘겨짚어 본다. 

역시나 대학 전문 교재 분량, 꽤나 길다. 

나무, 환경 관련 학구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나 본데/가져다 썼나 본데,

나무보다는 가구들을 좋아하는지라, 볼 거 같지는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