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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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글을 다 읽고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왔을 때, 그 도입부분이 전체 서사의 일부로 느껴지고 그 감정이 전체 글의 특징을 드러낸다고 느낄 수 있어야 좋은 이야기라고 했단다. 맞지.

얇은 책 한 권의 여운이 작가의 바램처럼 길다. 시처럼 소리내어 읽고 작가가 원한 대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었다.
마음에 걸리적거리지만 뭐라 딱 끄집어내지 못 하는 깔끄러운 감정을 이렇게 그려줄 수도 있구나 싶다. 소리없이 쌓이는 눈 같다.
크리스마스 연휴로 배달 일이 많아진 석탄 야적장을 가진 펄롱이 일하며 마주하는 이웃들을 대할 때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을 통해 편치않은 마음을 페스츄리처럼 쌓아 올린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이 늘 삶에서 쌓여 봇물을 이르곤 하지. 자꾸 맘에 걸리는 그것이 그리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1980년대의 아일랜드공화국은 우리의 60년대 같았나 보다. 연탄집 풍경이 눈에 선하다. 나르다 깨어져버린 연탄이 문뒤편에 쌓여 있기 일쑤고 이른 아침에 간혹 연탄 한 장을 새끼줄에 꽂아 분주히 걸음을 옮기는 이를 보며 짠하던 마음이나
그 심부름길에 무게를 못 이겨 박살내버린 아이의 당황스런 표정도 떠오른다.
감자기근만 있었는 줄 알았는데 그후로 오랫동안 가슴 아픈 시절을 살아 지금의 그 나라인가 보다. 정부와 손 잡은 수녀원의 냉혹함이라니. 종교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 때의 횡포는 전후 맥락도 없이 그저 고해성사로 넘겨져 버리는걸까?

˝그 수녀들이 안 껴 있는 데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해.˝ 필롱이 뒤로 물러서며 미시즈 케호를 마주 보았다.˝그 사람들이 갖는 힘은 딱 우리가 주는 만큼 아닌가요?˝

펄롱은 자신과 엄마를 품어주었던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그것들이 한데 합쳐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다 드러내놓은 의미들의 여운이 참 맑고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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