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린
루 버니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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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네이먼드 챈들러의 작품 맛을 풍기는 작가를 만났다. 아주 오랜만에 건조한 바람내를 맡은 기분인데 훨씬 깔끔하다. ‘세월이 지났으니 이 정도는 쾐찮지?‘ 라는 듯.

과거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하는 사람들.

아르바이트를 하던 동네 영화관에서 재치있고 반항적이고 다른 십대들보다 어른인 척 하는 오말리를 좋아하던 와이엇은 어느 날 영화관에 든 도둑들이 강도로 변하면서 일으킨 사건에서 혼자 살아 남는다. 피웅덩이에서 죽은 줄만 알고 누워있다 경찰들에 의해 발견 되었을 때도 총성에 귀가 먹먹한 상태였던 와이엇은 경찰관의 운이 좋았다는 말을 여전히 기억하지만 멀리 떠나서 성장하였음에도 ‘왜 나만? 왜 나를‘ 이란 물음을 해결하지 못 해 현실과 유리된 기분으로 살고 있는데 사건 하나가 오클라호머시티 바로 그 도시로 그를 불러 들인다. 가는 곳마다 익숙한 장소는 예전의 기억을 불러내고 기억은 하나하나 새로운 사실로 드러난다.

오클라호머시티에 사는 줄리에나는 열두살 때 무척이나 따르던 열일곱의 언니와 박람회장에 갔다가 십오분만에 돌아온다던 언니가 실종되어 버린 사건을 겪은 후 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자신을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느라 현재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 한다.

같은 장소라는 외엔 이들의 접점은 없다. 짧은 토네이도가 갑자기 생겼다 사라져버린 날의 기억을 서로 일깨웠을 뿐이다.

이 소설의 장점은 이랬을까 저랬을까 하는 여지를 주지않고 끝까지 깔끔하게 마무리지어 봉합해준다는 것이다. 때론 열린 결말보다 속이 시끄럽지 않아 좋다.


‘그럼에도 줄리애나는 매일같이 새로운 게시물을 확인했다. 어디서 뭘 찾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계속 주시해야만 했다. 절대로 멈춰서는 안 된다. 그것이 적어도 그 문제에 있어 지금 현재 줄리애나의 위치이다.‘


‘과거에는 힘이 있다. 과거는 조충(다른 조류와 부딪쳐 격랑을 일으키는 조류) 이다. 그게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에 분명 뇌가 있다면, 애초에 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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